부서진 것들을 위한 슬픔의 자동기계
진송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론』에서 ‘예정조화설’이라는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예정조화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계의 모든 일은 신이 예정해 놓은 대로 일어나며, 그것은 신이 보기에 조화롭다는 것이다. 아무리 끔찍하고 비참한 일이 일어난다 해도 라이프니츠의 말에 따르면 그것 역시 신의 ‘큰 그림’ 하에서는 조화로움에 해당한다고 한다. 라이프니츠는 세계를 신이 만든 하나의 정교한 기계처럼 본다. 이 기계 속에서 그가 세계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실체로서 주장한 ‘모나드’는 신이 결정한 조화로운 작동 방식에 따라 움직인다. 믿거나 말거나.
장난스럽게 덧붙였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절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기계를 멈추지 못해서, 기계가 고장났는데도 노동하기를 멈추지 못해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창고가 불타는 세상에서, 세계 전체가 모든 잔인함과 끔찍함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완벽한 기계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나는 감히 이런 문학적이지 못한 표현을 쓴다). 이 세계가 기계라면 정지 버튼이 고장나 멈추지 못하는 기계일 것이고, 그 안이 속속들이 부서지고 파열하는 기계일 것이다. 우리는 신의 실패작 속을 살아가고, 아니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은영은 「견습생 마법사」라는 시에서 세계가 처음 만들어지던 순간으로 돌아가 하느님이 잠깐 외출한 사이 시의 화자가 창세기를 대신 만들어내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시에서 하느님은 신이 아닌 “대마법사”로 호명된다. 그 신화적·역사적 상관성을 고려해 보건대, “에덴 동산”, “윌리엄 텔”, “백설공주”, “만류인력 법칙”, “트로이 전쟁”과 함께 등장하는 “사과나무”는 하느님이 고안한 “사과의 역사책”의 뿌리이자 줄기일 것이다. 하느님이 써내린 사과의 예정조화는 이성적이고 질서정연하지만 윌리엄 텔로 하여금 “아들에게 독화살을 날리”게 할만큼 “비인간적”이며 백설공주로부터 “일곱 난쟁이와 함께”할 “행복한 여생”을 빼앗아갈 만큼 냉혹하다.
그리하여 견습생 마법사는 창세기의 페이지에 하느님이 심은 질서의 사과나무가 아닌 “한 그루 말[言]의 복숭아나무”를 심는다. 그러자 난데없이 출현한 무릉도원에 시간마저 길을 잃고(“에덴 동산의 시간에 출현한 무릉도원/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 모든 질서와 원리가 무효해진다(“만류인력 법칙도 상대성 원리도 우주선도 사라진다”). 오직 “분홍 꽃잎, 꽃잎”만이 휘날리는 향락적인 풍경이 펼쳐질 뿐이다. 하느님의 완벽한 세계에 복숭아 꽃잎의 대홍수를 내리듯 “빈 사과 궤짝을 타고” “도망”가며 그는 세상의 멸망을 너무도 가볍게 입에 담는다(“하느님이 돌아오시면 화내며 세상을 멸망시키실까”). 세상을 가볍게 망가뜨리고는, 마치 이 가벼움만이, 망가짐만이 지금 가능한 유일한 낙관이라는 듯이. 실로 견습생 마법사가 망가뜨린 세계는 향긋하고 아름답다.
「사랑의 전문가」 역시 마법사와 관련되어 있는 시지만, 이 시에서 시의 화자만큼은 마법사와 사랑에 빠진 그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 “나는 엉망이야”라는 선언으로 시작해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라는 진술으로 이어지는 이 도입의 어긋남과 비합리성이 지닌 힘은 강렬하다. 엉망진창인 이 사람은 엉망인 자신이 아니라 사랑의 마법을 사랑하는 한 마법사에 의해 ‘운 좋게’ 사랑의 대상으로 간택받게 된다. 마법과 사랑에 빠진 사랑의 마법사는 화자의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의 황홀한 마법을 부린다.
나는 엉망이야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 나는 돌멩이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건드리자 가장 연한 싹이 돋아났어. 너는 마법을 부리길 좋아해. 나는 식물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부러뜨리자 새빨간 피가 땅 위로 하염없이 흘러갔어. 너의 마법을 확신한다. 나는 바다의 일종. 네가 흰 발가락을 담그자 기름처럼 타올랐어. 너는 사랑의 마법사, 그 방면의 전문가. 나는 기름의 일종이었는데, 오 나의 불타오를 준비. 너는 나를 사랑했었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나는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 영원히
(「사랑의 전문가」 전문)
소생(“연한 싹이 돋아났어”)과 폭력(“부러뜨리자”)을 마구 오가는 그의 영향력에 뒤이어 “너의 마법을 확신한다.”고 말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마치 ‘너의 사랑을 확신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사랑의 마법사인 그에게 마법이란 곧 사랑이기도 하므로. 그러나 화자가 마법사의 마법=사랑을 확신하고 “바다의 일종”에서 “기름의 일종”으로 일순 바뀌어 “불타오를 준비”를 끝마친 순간 무정한 마법사의 사랑은 과거형으로 바뀌어버린다(“너는 나를 사랑했었다”). 사랑에 의해 비가역적인 변화를 겪은 나는 완전히 망가지고(“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망가진 이후에도 그가 준 황홀한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 /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 영원히”)
시는 마법사를 ‘사랑의 전문가’로 호명하지만 내게 정말 무시무시한 사랑의 역량을 지닌 쪽은 이 ‘망가진’ 시의 화자처럼 느껴진다. 그는 사랑의 진정성을 곱씹기도 전에 신체의 변형과 훼손을 오롯이 겪어내며 격렬하게 사랑하고, 심지어 그 사랑은 마치 ‘창이 없는 모나드(라이프니츠)’처럼, 마법사와 무관하게 영원하다. 어쩌면 화자는 사랑에 빠진 그 순간부터 사랑의 창조주가 되어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의 세계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를 사랑의 자동기계요, 슬픔을 위한 예정조화라 해도 좋겠다. 부서진 자동기계들의 이토록 강렬한 사랑, 망가진 사랑의 이토록 성스러운 영원함, 이치에 맞지 않고 논리를 한참 벗어난 이 반복과 어리석음은 아름답다. 그리고 진실하다. 부서진 어떤 이들은 이것 외에 다른 사랑의 방식을 알지 못하므로.
너는 건드렸다
컵들은 다 깨졌어
사랑하는 이여, 금 간 컵들에 대해 변명할 필요가 없다
나를 이 몹쓸 바닥에서
(「봄의 노란 유리 도미노를」 전문)
「견습생 마법사」와 「사랑의 전문가」에 등장하는 두 명의 비공식적 창조주는 세계의 냉혹함이나 사랑의 위기 앞에서 거침없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창조된 그 세계는 곧 무너질 세계이거나 이미 무너진 세계다. 무너진 그 세계에는 시간과 질서, 원리가 사라진 대신 “일곱 난쟁이와 함께 행복한 여생을 마치”는 백설공주가 있고, 해방된 윌리엄 텔이 있으며(「견습생 마법사」), 망각에 섞이지 않는 슬픔과 영원한 “불타오를 준비”(「사랑의 전문가」)가 있다. 이들이 만든 연약한 세계만이 온전치 못한 깨진 유리 조각들(“컵들은 다 깨졌어”)과 피 흘리는 손(“쓸어 담아줘”), 그들이 부딪히며 내는 날카롭고 아름다운 소리를 기꺼이 환대할 것이다. 슬픔처럼 영원할 부서진 것들을 위한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중에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