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인 그루피 지망생

고은하
그건 네이버 블로그에 번역 연재 중인 소설이었다. 나는 그 글을 2-4란 제목이 붙은 포스트로 중간부터 접했다.
처음에는 블로그 주인의 수기나 일기인 줄 알았다. 글 속 화자가 이 글을 쓴 이를 자신이라 주장해서였다. 외부 세계가 극도로 제한된 묘사도 판단에 힘을 실어주었다. 주인공은 풍랑에 휘말렸다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정신이 없었다. 몸을 떨면서, 보고 느낀 바를 띄엄띄엄 실토했다. 아직 겪은 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포스트는 1-1부터 3-3까지 있었다. 등하굣길에 업로드된 전부를 훑었다. 풍랑의 정체와 전말을 알고 싶었다.
끝내 풍랑의 전말까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주인공이나 풍랑의 정체 정도는 알 것 같았다. 내내 주인공의 입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탐험했기 때문이다.
내부에 들어갔다고 봐도 될까? 여기 열차가 지나간 뒤 뜨겁게 달아오른 선로에 뺨을 대어 보고 입은 화상에 대해 쓰인 글이 있다. 화상 입은 고통을 구구절절 토로하는 호흡에는 자기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 자의 열기가 어리고 습기가 서렸다. 살갗에 닿는 더운 숨에 속아, 들어간 거라고 착각한 게 아닐까?
3-4 (1)은 내 오해를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말미에 설명이 붙어 업데이트됐다. 내용인즉슨 숫자만 달린 이 포스트가 실은 <악어 노트>라는 제목의 대만 소설이라는 것이다.
곧바로 블로그 주인과 글쓴이가 동일 인물이란 믿음을 걷지는 못했다. 블로그 주인 닉네임이 소설 주인공과 같은 ‘라즈’였던 것이다.
소설 주인공은 이 편에서야 호명되었다. 후배에게 선동가라는 놀림과 추앙을 받으면서 비로소 라즈가 됐다. 라즈(拉子, Lazi) 이전에 주인공은 '나'이기만 했다. 먼저 라즈로 등장한 블로그 주인의 회고록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블로그엔 성실하게 번역본이 올라왔다. 3-4 (2), 3-5, 3-6. 블로그 주인은 사흘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설명과 사견을 첨부했다. 이 소설은 구묘진이라는 작가가 썼으며, 작가도 소설에 나오는 인물도 국립타이완대를 나왔는데, 역자 역시 지난 3월 그곳에 방문했다고. 소설인 줄 몰랐던 소설과 확연히 다른 글투였다.
내 부정은 블로그 주인이 이 소설을 번역해보겠다는 계기를 밝히겠다는 포스트에서 종결됐다. 포스트는 줄곧 그랬던 것처럼 소설에 대해서 말했다.
‘내가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이건 총 여덟 장 일기 노트 형식으로 쓰인, 일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이다. 글쓴이는 대학 사 년간의 일상을 학기별로 기록했다. (중략) 두 번째 학기를 번역하면서는, 언어를 옮기는 것뿐인데도 숨이 가빠 주저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이 작업을 저지하는 것 같았다.’
그때에서야 나는 그가 단지 소설 주인공과 공명할 뿐인, 다른 인물이란 걸 받아들였다.
블로그 주인은 구체적인 전말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개인사라는 단어를 방패 삼았다. 그러나 주인공과 비슷한 사건을 겪었을 것이다.
내가 파악한 소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은 여자인 수령을 좋아한다. 운이 따라주어 수령도 주인공에게 관심을 가진다. 둘은 쉽사리 사랑을 인정하지 못한다. 성별이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처를 주고받는다. 운명과 인연에 불화한다. 바로 그 불화 때문에 불안해하고 수치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나는 스스로 무게를 부여한 고독에 짓눌린 이들에게 도무지 이입하지 못했다. 과장되게 불행을 느끼는 그들이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알아차린 사실 하나: 번역본과 사담에서 수령은 인칭대명사 ‘그녀’로 지칭되었는데, 주인공은 수령과 성별이 같다는 대목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그’, 또는 ‘그 사람’이라고만 쓰였다.
블로그 주인은 주인공과 구묘진을 여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되도록 성별을 지칭해야 하는 순간을 교묘하게 피했다. 그게 그가 고안해낸 존중 방식인 것처럼.
그는 구묘진만을 존중한 걸까? 성별 지칭을 피하는 일이 이 소설을 번역하는 계기와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블로그 주인 라즈’ 본인과 ‘소설 속 라즈’가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라는, 일개 방문자인 나에게 들통난 사실을 인정하기가 부끄러웠던 게 아닐까?
그를 짐작하던 나는 블로그 주인이 재작년 담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블로그 주인이 재작년 담임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학생 자치 신문 인터뷰이가 되어, 왜 머리카락을 기르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길 바랐다.
재작년 담임은 여학교에 인기 많은 선배로 주로 존재한다는 중성적인 미소년 타입이었다. 머리가 남자처럼 짧고 키가 컸으며 가슴이 납작했다. 접은 셔츠 소맷단은 팔목에 남아돌 만큼 적당히 말랐고, 손가락이 길쭉하고 가늘었다. 목소리마저 낮고 나직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말쑥해서 유행하던 시트콤의 인기 많은 남자 배역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난 나이 차이가 적은 교사였다. 나보다 열 살밖에 많지 않았다. 그때 우리 나이 여자애들은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기를 부담스러워했지만, 잘생기고 젊은 데다 남자가 아닌 그의 매력만큼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인터뷰어의 질문은 해맑은 척 보내는 경고가 아니었다. 담임을 알고 싶을 따름으로 넘은 경계였다. 우리는 빠짐 없이 눈치를 봤다. 간혹 성별을 오인당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서 남자친구인 척해달란 부탁을 받기도 했다는, 낯설고 매력적인 사람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다.
미끄러질 만큼 달린 매끈한 답변. ‘스무 살에 길러 보았는데 록커냐는 소리를 들었다.’ 경고라면 이 겸양 넘치는 가벼운 농담이야말로 경고였다.
재작년 나는 담임과 내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도 가슴을 붕대로 감아 압박하고, 가슴을 가슴으로 대우하지 않고, 내가 여자가 아닌 다른 존재로 받아들여지길 바란 적 있어서였다. 브래지어를 착용한 사람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대목이려나.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었다. 미용실 가기에는 실패했다. 키도 마음처럼 크지 않았다.
여자애들이 불편했다. 남자애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그러나 파도 위를 부유하는 스티로폼처럼 자력으로 움직일 깜냥 따위 전무했다.
그런 나와는 달리 거기 머리가 짧고 키가 큰 담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많은 여학생처럼 담임에게 반했다.
어린 나는 나와 담임의 주파수가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수를 기다렸다. 부추기는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교무실만 수시로 드나들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단 명목하에 심부름을 도맡았다.
복도에서 만난 담임이, 친하게 지내던 중국어 선생님에게 갖다 달라고 부탁했던 USB에 적힌 이름이 ‘수령’ 아니었던가?
틀린 이름일 수도 있다. 이름을 보고 ‘닉네임이다’. 생각한 기억만 선명하다.
잊고 싶은 만큼 선명한 기억. ‘신호다. 선생님도 나를 알아본 거야’.
우리 사이에는 어떤 것도 없었지만, 담임에게 문자가 오기를 기대했다. 그는 내 번호를 아니까.
주번을 맡은 오전 조회 시간이었다. 복도 창가에 칠판 지우개를 털고 돌아왔다. 담임이 교탁을 지킨 반은 조용했다. 유령처럼 앞문으로 들어와 칠판을 정리했다. 용케 기척에 반응해 나를 비켜선 담임이 목소리를 냈다. 어! 의아해 멈춰 선 내 손을 붙잡았다. 내 손바닥을 뒤집어 보여준, 미처 닦이지 않은 분필 가루. 그 다정한 아는 체에서 역할극을 하고 싶다는 인상을 받았으니까.
담임은 우리 반을 맡기 바로 직전 해 학교에 부임한 신입이었다. 두 번째 해를 맞이한 그는 학생 내부 권력관계 이용법을 간파했다. 반에서 일 등을 도맡는 학생을 따로 교무실에 불러 전문적으로 사기를 북돋웠다. 그러면서 꼬리빗으로 앞머리를 정리하고 왼손에서 손거울을 떨어뜨리지 않는 애 중 하나와 친해졌다. 사적인 욕망을 숨기지는 못했다. 그들의 셀카에 등장하기를 즐겼다. 생일 케이크를 받고 영상 통화를 걸었다. 단전에 힘을 주어 괄괄하게 말하는 예쁘장한 애들을 연인처럼 행복하게 구박했다.
지난 2년간 나는, (특히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담임보다 나이 차이가 적게 나거나 어린 교사를 여럿 마주쳤다. 학생들 무리에서 성원권을 획득하고 싶은 이들의 공통점도 알아차렸다.
작년 수준별 수업으로 나뉜 수학 A반 선생님이 전형적이었다. 수학 A반 선생님은 목소리가 큰 우두머리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권력을 위임받았다. 반드시 달성되리란 보장이 없는 위험한 방식인데도 거기 이끌린 건 학창 시절 달성하지 못한 욕망이나 관성 때문이리라. 좋아하는 맛이라고 밝힌 블루베리 케이크를 깜짝 선물 받고 그의 얼굴에 불그스름하게 떠오른 부끄러움과 안달, 진심을 보았다.
재작년에는 경험 없이 본능적으로 담임의 행복을 눈치챘다. 탄생과 동시에 획득한 눈으로 담임의 약점까지 지레짐작했다. 인터뷰이가 된 담임은 주먹으로 쥐어도 틈새를 찾아 빠져나가는 미꾸라지처럼 대답했지만, 방황하고 불행했을 것이다. 사랑받고 싶어서 겁에 질렸을 것이다.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알아본 만큼 담임도 나를 알아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단지 내가 그에게 느낀 긴장감을 전도시키고, 욕망에 불을 붙이고 싶었을 뿐이다. 그늘진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내 강간당하고 싶었다. 그가 산불같이 번지는 욕망에 패배해 사제관계의 금기를 깨고 미성년자를 추행한 성인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내 마음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실제 담임을 잘 알지는 못했다. 내가 아는 건 그가 서울 소재 대학교에 다녔다는 소문과 생년월일 정도였다. 그마저도 생년은 계산했고, 생일은 적극적으로 캐물어 주는 목소리 크고 꾸밀 줄 아는 애들 덕에 알았다.
부스러기 같은 정보를 조합해 구글링했다. 그가 가입한 사이트 아이디가 나왔다. 아이디를 검색했더니 몇 년 전 그가 중고 거래 사이트를 이용한 내용이 떴다. 2년 하고도 몇 년 전 그는 책상과 의자를 판매했다. 서울에서 사는 집을 정리하며 올린 글이었다. 블로그를 통해 그가 가입한 카페를 살폈다. 중고 거래 카페가 끝이었다. 취미도 알 수 없었다. 비밀을 숨기고 있어서겠지. 심증으로 결론 내렸다. 그에게는 다른 아이디가 있을 것이다. 다른 아이디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블로그 주인과 재작년 담임의 유사성을 발견하려 담임의 인적 사항을 검색했다. 그러나 담임의 아이디는 나오지 않았다. 힌트를 준 글이 지워졌다. 그게 아니라면 보안 정책이 강화된 덕에 더는 이름으로는 정보를 얻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확신했다. 재작년 담임이 라즈가 되어 내게 왔다. 그는 시대적인 물살에 휩쓸린 불운한 대만 청년을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블로그 주인이 비공개 처리해둔 일기를 공개로 전환하면서부터, 재작년 담임은 그곳에서 싱겁게 분리되었다. 블로그 주인이 대학에 재학 중이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이웃과 교류하는 덧글을 보고서야 그가 담임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와 담임은 다른 사람이다. ‘라즈’는 소설 번역에 슬럼프가 왔다며 쉬었다 가겠다는 글을 올리며, K가 부탁한 일기만 공개로 전환하려다가, 내친김에 전부 바꿨다고 했다. 변덕 덕에 500여 개가 되는 글이 새로 생겼다. 휴식기 선언을 기점으로 블로그의 성격은 바뀌었다. 이전 글을 드러낸 셈이니 가면을 벗고 원래 얼굴로 돌아왔다는 게 맞았다. 취미 번역가인 줄만 알았던 ‘라즈’는 성실한 기록자였고, 정리에는 재능이 없었다. 과제 참고용 자료, 스크랩한 옛날 노래, 외국 시…. 어떤 포스트는 사진으로만 마구잡이로 차 있었다. 사진 종류를 구분해보자면 이러했다: 핸드폰으로 캡처한 화면(상단 바를 잘라내지 않은 검색 결과, 지인과 나눈 메신저 대화), 아마도 텀블러에서 주운 듯한 이미지(영어로 적힌 인터넷 밈이 합성되어 있거나, 밈의 원본 격이 되는 출발점), 유명한 그림이거나 유명 인물 사진(또는 그렇게 보이는 것, 내게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유명할 것), 낯선 이를 피사체로 한 인물 사진(직접 찍은 걸까?), 영문 모르게 불쾌함을 자아내는 사진(김칫국물이 흐른 식탁보, 딱정벌레, 장판 사이 먼지, 폐건물 등). 사진 배열이나 출처를 통해 그가 올리는 사진의 규칙을 찾고자 했으나 방대한 양에 눌려 실패했다. 그는 자기 배설물이든 공들여 한 세공품이든 간에 자기 몸을 통해 빚었다면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이길 원하는 쑥스러움 많고 자신감 적은 사람이거나, 정돈에 별다른 생각도 관심도 없는 사람 같았다. 어쨌든 당황스러울 만큼 유별난 평등주의였다. 한순간에 쓰레기통을 뒤집어쓴 듯해진 블로그는 낯선 만큼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만 같아 짜릿했다. 틈날 때마다 즐겨찾기 해둔 그곳을 방문해 그가 소설을 번역하기 전에 남긴 기록을 살펴보았다. 한 달 동안 그 블로그에 빠져 살았다. 다음은 그에 대해 파악한 사실이다: 그는 서울 4년제 대학 중문학과에 다니고, 대만의 원주민어를 연구하고 싶어 하며, 휴학 중이었다. 사람 만나기와 술자리를 좋아했다. 종종 합주도 했다는 문장이 있는 걸 보면 밴드를 하는 것 같았다. 영화에도 애정을 보였다.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영화의 특정 장면에 꽂혀 지인과 그 장면을 재현하거나 그걸 가지고 농담했다. 최근 다섯 번 이상 농담에 쓰인 영화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었다. 그 영화는 긴 영화의 기준점이기도, 긴 시간을 보냈을 때 사용하는 관용어구이기도 했다. 중화권 문화에만 관심을 둔 건 아니었다. 영국 록 밴드에도 조예가 깊어 보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아시스는 진짜 맨체스터 음악이 아니었다. 매드체스터의 본질은 스톤 로지스와 더 스미스에 있고, 스미스의 얼굴은 모리세이지만 음악의 핵심은 쟈니 마였다. 섹스 피스톨즈를 좋아한다는 인간은 패션만 쫒는 것이다. 현대 한국 시인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처럼 헐뜯었다. 한국 시인에게 실망한 궁극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럴싸하게 욕만 했다. 이를테면 심보선의 <눈앞에 없는 사람>을 느끼하다고 욕했지만 <슬픔이 없는 십오 초>는 추켜세웠다. 그동안 내가 접한 한국 시는 교과서에 실렸거나 누군가 블로그에 올린 것뿐으로, 심보선의 것은 딱 두 편만 읽었다. 시집을 두고 비교하는 사람 앞에서는 설득당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생리대, 생리통, PMS 같은 단어로 검색하면 종일 앓아누운 날의 일기가 나오는 여자였고, 애인도 여자였다. 처음에 보고 넘긴 사진 포스트에 그의 애인과 나눈 채팅 로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애인은 ‘여자친구’라고 저장했다. 채팅 속에서 그들은 <악어 노트>에서 현실에서 만난 적 있는 캐릭터를 골랐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에 또다시 놀란 나는 그들이 나눈 다른 대화도 보고 싶었다. 등한시했던 사진 포스트를 뒤졌다. 그러다가 블로그 주인과 연애하는, 혹은 잠자리만을 같이하는 여자가 ‘여자친구’뿐만이 아니란 사실을 눈치챘다. 그는 다르게 저장된 인물에게 애정을 표시했다. 지난밤 잘 들어갔는지 근황을 물었다. ‘여자친구’는 이 블로그를 알까? 다른 블로그에 단 덧글을 찾기 위해 이웃 블로그도 염탐한 나는 답변이 가능해졌다: ‘여자친구’는 이 블로그를 알았다. 서로 이웃 관계고, 다른 이웃과도 친목을 다졌다. 다른 여자들이 일기에 어떻게 적혔을지도 궁금했다. 눈이 빠져라 찾았다. 이니셜로만 적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사람. 여자들. 그는 어떻게 이 많은 여자를 만나게 된 걸까? 이름도, 생김새도 모르는 그는 나를 적지 않게 흥분시켰다. 파편만 훑던 지난 방식과는 다르게, 정보를 대조해가며 3년 전 포스트까지 살펴 동이 틀 즈음엔 이름쯤이야 내 몫으로 떨어졌다. 일기에는 신상 명세며 비밀이 줄줄 흘러넘쳤다. 누군가 자길 알아주길 바라고 쓴 것처럼 상세했다: ‘여자친구’는 고등학생 동창이었다. 나머지 여자들은 교내 밴드를 하며 만났다. 각각 선배와 동기다. 그는 밴드부 입성과 동시에 여러 여자와 얽혀서 신경증에 걸렸다. 그런데도 최근엔 앱으로 연락하는 여자가 따로 있었다. 어쩌면 나도 이 예술가에게 새로운 여자로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 동시에 그 생각에 매혹되었는데, 블로그 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날이 평생 바라마지않던 날처럼 느껴져서였다. 겨우 블로그나 본 주제에, 나만큼 그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라즈’가 도망치고 다니는 소설 속 라즈에 이입했다면 내가 그에게 개입할 만한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걸 원하는 방식으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를 배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욕하던 심보선의 시구와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고 (<청춘>), ‘너는 날아갈 것이다.’ (<새>) 그리워하므로. 이렇게 벌써 심기를 거스르는 해석을 함으로써 나는 수령이 될 수 있다. ‘그녀’가 될 수 있다. 학교 복도를 지나갈 때 침이 마른 입 안으로 입술이 말려 들어갔더라도. 올백 머리를 하고 체육 시간에 남자애들과 축구를 하던 여자애가 내 입술 모양을 마녀 같다고 비웃었더라도. 번개처럼 나를 급습한 노파의 이미지. 주름진 피부와 몽땅 빠진 치아 덕에 잇몸으로 말려 들어간 입술, 덜덜 떨리는 목소리와 부자유스럽게 움직이는 손가락 관절이 내 뺨을 뜨겁게 덥혔다. 그 애는 아무에게나 몸을 부딪쳐 가며 놀았지. 교무실에서 그 애를 불러 이유를 물으면, 우유 급식 때문이라고 했다. 나 기초수급자잖아. 그 애는 나를 위축시켰다. 그 애가 나를 한 수 아래로 여기기 때문에, 밀치고도 사과 없이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스레를 떨면서 그 애와 융화되었어야 했다. 망가지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더라면, 나보다 재미있거나 세련된 친구를 찾고 싶어 안달이 난 애들 사이에 있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와 어울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를 화풀이로 대신하던 애들. 쥐 파먹은 것처럼 짧게 자른 앞머리를 트집 잡고, 줄무늬 옷을 입고 오면 그 디자인은 촌스럽고 찌질하다고 꺄르륵거리는 애들. 그 애들이 차라리 나를 때렸더라면. 내 소매를 들치거나 옷깃을 젖혔을 때 폭행 흔적이 아찔하게 남아 있었다면. 걸레 물을 뒤집어쓰고, 청소도구함에 갇혀서 작은 벌레들과 남았더라면. 그러나 누구도 티 나게 잔인하지 않았다. 나를 공격하는 건 서늘한 시선과 코웃음, 무시였다. 고작 그것들이 나를 무너뜨린다는 게 슬펐다. 일찍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 빈 매점을 점유해 나를 원하지 않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이들 사이에서 번호순대로 이어지는 험담을 들었다. 허리 굵은 은행나무 아래에서는 험담을 듣는 일원이 되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좁아서 그래. 얘네들은 좁은 곳에 살아서 멍청한 거야. 멍청해서 나를 모르는 거고. 전시든 공연이든 행사든 죄다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만 열리니까. 놀 땐 충장로만 찾으니까. 독립서점이 따로 없고, 교보문고에도 찾는 시집이 없어 따로 발주를 넣어야 하는 곳에 살아서.
중요하다고 말해지는 시험이 몇 개 지나갔다.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 시간은 멈췄다고 봐도 무방했다. 블로그 속 ‘라즈’의 일상에 형체 없는 똬리를 틀어, ‘라즈’가 자주 교류하는 이웃의 얼굴과 닉네임을 매치하는 재주가 생겼지만, 시간 흐름을 느끼기엔 형편없는 능력이었다. 중얼거리기밖에 더 할까: ‘라즈’의 이웃은 유명하지 않은 밴드 노래를 번역하고 탐미적인 생각을 써 내려갔다. ‘라즈’만큼 블로그를 쓰레기통으로 쓰는 사람은 없었다. 어지럽혔다가도 금세 정리했다. 내가 본 이웃의 사색이 사라지면 안달이 났다. 꿈에서 본 글과 사라진 글이 구분되지 않았다. 시간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만나야 했다. 중학생인 나는 내가 행동하지 않는데도 염력과 <시크릿>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를 바랐지만,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나서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였다. 내가 보고 느끼는 만큼 사람들도 보고 느끼기를 바라면 안 됐다. 나를 알아봐 주길 바란다면 먼저 다가가야 했다. 입시에 성공해서 서울권 대학에 가는 수밖에 없을까?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여길, 네이버 블로그를,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입버릇이 유행했다. 대학에 간다고 해도 그들을 만나리란 보장은 없었다. 내 성적은 현역으로 서울 소재 대학에 가기에 애매했다. 게다가 나는 당장 이들에게 개입하고 싶었다. 미룰 수 없었다. 사사롭게만 느껴지는 다른 일에 집중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들을 만난 뒤에야 진정한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이들의 인생에 쳐들어가는 상상을 하면 몸이 터질 만큼 환희에 찼다. 이 사람이 미성년자인 나를 욕망해서 인생을 망쳤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해야 했다. 어떻게? 점치듯 눈을 감고 들어간 아무 포스트에 힌트가 있었다. 밴드 뒤풀이에 고등학생 팬이 온 날 기록이었다. ‘라즈’는 초대하지 않은 낯선 팬을 보고서 당황했지만, 나중에 가선 불쾌하지만은 않았다고 밝혔다. 내심 뿌듯해서 학생에게 줄 오렌지 주스를 따로 주문했다. 연락처도 교환했다. 알고 보니 그 애는 베이스를 치는 C의 친동생이었다. 덧글에서 자지러지게 웃는 C. 상상 속에서 나는 단숨에 그 고등학생이 됐다. 저녁에 3-7 (1)이 올라왔다가 지워졌다. 다음으로 올라온 글은 하늘에서 내려온 빛으로 쓰였다. 글 제목은 ‘번역 촉구 파티’로, ‘라즈’의 <악어 노트> 번역을 촉구하는 파티를 연다는 글이었다. 파티가 슬럼프 돌파구가 되어주길 바란단 내용 뒤에는 일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일시는 명확했으나 장소는 ‘저희 집’이었다. ‘(저희 집 주소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합니다)’ 집 주소를 아느냐고? 그는 알아 달라고 애원하고 다녔다. 거의 전단을 배포했다. 안다. 날 염두에 둔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아닐까? 아니겠지, 상식적으로. 단지 운명이 우리를 엮었다. 이것도 아니야? 아니라는 걸 안다. 우연에 지나지 않은 슬럼프 돌파 파티다. 나는 초대 받지 않은 파티에 가겠단 결심을 차갑게 일갈했다. 무정한 자조는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했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채찍질을 맞아 후끈해진 몸이 그와 연결만 된다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속삭였다. 새벽에 화장실에 들어가 고데기 전원을 켰다. 인터넷 쇼핑몰로 주문한 랩 원피스는 걱정하던 기장치고 잘 맞았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화장했다. 매무새가 흐트러질까 무서워 눕지도 않았다. 시내버스 첫 차가 운행하는 시각에 맞춰 집을 나섰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길은 막 동이 터서인지 먹먹했다. 안개 너머에서 승차권을 사는 나를 봤다. 대기 의자에 앉아 도넛 냄새를 맡았다. 입가심거리를 살지 고민하다 그대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잠들었다. 엔진이 멎자 휴게소였다.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파운데이션이 고르게 발라졌는지, 머리가 엉망이 되지 않았는지를 점검했다. 양호한 상태에 한숨을 돌렸다. 마이크를 든 사람 셋이 버스에 올라왔다. 셋은 경품 추천을 하겠다며 자리를 지킨 이들에게 종이쪽지를 나눠주었다. 내 무릎에도 16이라고 적힌 쪽지가 올라왔다. 고속버스와 연계하는 이벤트 같았다. 다른 사람이 볼 새라 숫자를 감췄다. 돌아올 때, 내가 원한 걸 이루지 못하더라도 경품 하나를 품에 안은 채라면 외롭지 않을 듯했다. 사람들은 이처럼 돌발적인 이벤트를 맞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왔다. 행사 진행자는 당첨자에게 고가 상품을 드리겠다며, 상자 속에서 꺼낸 숫자를 불렀다. 11. 김이 빠졌다. 옆 좌석에 앉은 아저씨가 손을 들었다. 진행자가 박수를 유도하기에 손뼉 치는 시늉을 했다. 그들은 아저씨에게 몇백만 원 상당의 경품 시계를 단돈 오만 원에 주겠다고 말하며, 케이스에서 시계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유리창을 넘어 타고 흐르는 빛이 번뜩거렸다. 그들은 돈을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허리를 숙여 바지춤에 든 지갑을 꺼냈다. 돈을 건넸다. 돈과 시계를 맞바꾼 진행자는 연신 축하한다며, 악수까지 청한 뒤 버스를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고요했다. 경품 시계를 햇빛에 비춰 보는 아저씨를 곁눈질했다. 부럽지 않았다. 곧 기사님이 탑승해 승객 머릿수를 셌다. 버스 문이 닫혔다. 시계는 다시 보니 볼품없어 보였다. 그들이 돈을 받기 전, 누가 강압적인 공기를 살포하기라도 했나? 졸다 깨어나니 센트럴파크 터미널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잠이 부족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긴장으로 심장이 조여들었다. 자기 직전 떠올렸던 시계와 아저씨의 시선을 복구하려 노력했다. 흐릿하고 희미했다. 연민과 애달픔은 벌써 아스라해져서, 온 감각을 동원해도 실제로 존재했던 건지가 아리송했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지도 캡처에 의존해 전철로 이동했다. 차창에 비춰 보던 희끄무레한 내 실루엣은 에스컬레이터 옆 거울, 대로변에 줄지어 선 통유리 건물을 통해 뚜렷해졌다. 내가 보일 때마다 몰골을 의식했다. 화장은 어색했고, 입은 옷은 지나가는 여자에게 비하면 통나무를 두른 듯했다. 차라리 교복을 입은 게 나았을 거다. 건너편 옷 가게에서 새 옷을 사고 싶었으나, 입을 여는 순간 나는 서울 출신이 아니란 게 들통나고 점원은 내 행선지를 물은 뒤 추궁할 것이다. 몽땅 내 기분과 생각 문제다. 그들은 내 외양에 관심이 없었다. 나를 공격하는 건 나뿐이다. ‘라즈’ 집은 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예상 시간보다 15분을 더 헤맸다. 그마저도 내가 맞는 주소에 와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근접한 곳을 서성거리다가 전봇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역사와 달리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먼저 파티를 시작한 걸 거야. 내가 잘못 도착했을 리 없어. 겁먹은 채로 나를 안도시킬 주문을 외웠다. 코너에 있는 편의점 앞으로 사람 둘이 나왔다. 하나는 전화 중이었고, 나머지는 주머니를 손에 찔러 넣은 채였다. 둘 다 걸음걸이가 껄렁하고 턱이 갸름했다. 주머니 쪽을 알아보았다. J다. J는 블로그 인물 사진 속 피사체로 자주 등장했다. 코트 깃에 가려져 보이진 않지만, 목덜미에 제비와 닻 모양 타투를 했다. 옆은 누굴까? N? N이 맞는 것 같았다! 그들을 알아보자 무릎이 꺾이고 발바닥이 저리는 듯했다. 공동현관 인터폰을 이용한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등장한 몇 사람은 이니셜을 가늠할 만한 인물이기도, 전혀 짐작 가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못 알아본 이들을 끝없이 유추했다. 반면 K! K가 존재만으로 나를 압도하며 걸어 들어왔을 때 나는 주저앉을 뻔했다. 사기를 당해 어디론가 도착했을 아저씨는 내 곁을 떠나간 지 오래였다. 집에 들어가는 그들이 전봇대 앞에 쪼그려 앉은 나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혹시 내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인터넷상에서는 이해하겠다. 나는 블로그에 덧글 하나 달지 않은 인물이니까. 그래도 여기에는 이렇게 존재하는데…. 시린 손을 주머니 속에 파묻은 채,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웃으면서도 의아했다. 더는 파티에 새로 참여하는 이가 없을 것만큼 어둑해지자, 결정해야 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핸드폰 번호는 모르잖아. 모를 리가 있겠나? 저장하지 않았을 뿐이지. 마지막 양심으로. 무슨 양심? 우연에 기대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일어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왜 이렇게 떨리지? 이 자리에 나왔다는 수치스러움으로? 줄곧 만나길 희망했던 사람들 앞이라서? 조금 있자,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줄줄이 나왔다. 바짝 긴장한 나는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기대어 섰다. 그들은 바람이 들지 않는 곳으로 갔다. 담배를 피우러 나온 듯했다. 흡연자들을 힐끗거리며 다른 우연을 기대했다. 한 곳을 서성대는 어린 여자애로서 이목을 집중 받는 우연. 다리 아프고 갈 데 없는 여자애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주겠다는 호의. 그들은 오히려 나를 슬슬 피했다. 정반대로 이루어진 염원에 잠깐 슬퍼하고, 그들을 보지 않는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척, 경유지에 그들이 있는 척 관찰했다. 그래도 그들이 빠르게 담배를 태우고서 안으로 들어가자, 마음이 갈린 것처럼 선뜩했다. 그들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려고 배려한 것일 테다. 술에 취해 의협심이 강해지면, 외로워 보이는 여자애한테 말을 걸자는 마음이 커질 테다.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술과 물을 사러, 또 흡연하러,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왔다. 나올 때마다 목소리가 커졌고 (특히나 J가 그랬다. 기타 치는 시늉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볼이 발개지다 못해 목까지 터질 듯했으며 (반대로 K는 새하얗게 질렸다) 휘청거렸다. (밖에 나온 이들 모두가 그랬다) 그동안 나는 뭘 기다린 걸까. 체념할 즈음이었다. 돌연 공동현관을 가로막은 자동문이 열렸다. 장신의 사람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낯선 얼굴이라 같은 건물에 사는 주민인 줄 알았다. 그에게서 익숙한 술 냄새를 맡고서야 그가 블로그 일당과 인상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은 주차장에 불이 들어오자, 탈색해야만 낼 수 있는 남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가 지나치게 취했거나, 등 뒤 벽에 용건이 있는 듯해 자리를 비켜 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향해 왔다. 내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놀란 내가 되물었다. 네? 그가 도로 물었다. 계속 여기 계시는 거 같길래, 무슨 일 있나 해서요. 괜찮으세요? 그는 취한 사람치고는 안색이 멀쩡했다. (K 유형인가….)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이 근처 사는 거예요? 모호하게 답했다. 아뇨, 그냥…. 어디 살아요? 멀어요…. 누구지. 파티에 참석했다면 블로그 속에 등장하는 사람일 텐데. 내가 아는 사람일 텐데.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을 붙잡아둘 수 있을까? 이니셜 모를 그는 확신이 서지 않는 얼굴로 나이를 물었다. 벌벌 떨면서 스무 살이라고 거짓말했다. 스무 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소리 내어 말하고 행동하는지 몰라 두려웠다. 불편하시면 어디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할래요? 그가 내게 권유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사람은 어떻게 저 매력적인 파티를 두고 나올 생각을 했지. 나를 알아봤나? 그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 나는 그의 모습과 잠깐 블로그 주인의 글투를 비추어 보았다. 오 대 오 가르마와 단정하게 깎인 구레나룻, 휑한 뒷덜미, 열린 어깨, 거침없는 몸짓으로 보아 블로그 주인인 것 같았다…. 기대는 금세 배반되었다. 근처 카페로 나를 데려간 그는 내가 입을 다물고 눈치만 살피자,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갑자기 말 걸어서 놀랐죠? 고개를 저었다. 그가 계속 말했다. 친구네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골목을 떠나지 않는 내가 눈에 밟혀 내 사정을 보고 와주기로 약속했다고. 저 때문에 노는데 괜히…. 말끝을 흐리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안 친해서 괜찮아요. ‘안 친하다’라. 음료 잔을 손가락으로 긁는 그는 블로그 주인이 아니었다. 내가 물었다. 안 가보셔도 괜찮아요? 그가 느끼하게 회피했다. 갔으면 좋겠어요? 부디 제삼자가 내게 이 상황을 설명해주기를 바랐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가 안 친한 사람의 파티에 나를 데려가는 것도 그려지지 않았고, 우리가 수다를 떠는 장면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동성 연장자의 선의로 카페에 나를 데려온 건가? 설마 나와 어떤 걸 해보고 싶은 걸까? 그도 돌발적인 이벤트를 바라는 걸까? 그에게 파티가 짧은 여행이라면, 따라가고 싶었다. 되도록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어른은 어떻게 처음 만난 상대와 섹스하는 거지? 점점이 말이 이어졌다. 허수아비처럼 굳은 내가 그에게 재차 돌아가지 않아도 되느냐고 질문하자, 곧 다른 사람이 수급될 것이라고 했다. 수급이요? 하하하. 그리고는 집주인과 파국을 맞았다고 고백했다. 원래도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주변 인간관계를 신경 쓰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집 주인의 성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목소리를 죽이고 읊조렸다. 걔는 마음에 들면 아무하고 사귀고, 자요. 뒷일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못 쓰는 거죠. 자극적인 폭로에서 질투심이 엿보였다. ‘라즈’를 향한 애정 때문인지, 떨리는 와중에도 초면인 상대에게 험담하는 그가 한심했다. ‘라즈’가 만나는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의 전 애인이라는, 블로그에서 읽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듣고 나서는 한심함이 배가됐다. 긴장과 한심함이 어우러지자 한순간에 그가 귀엽게 느껴졌다. 그가 내 손가락 끄트머리를 건드렸을 때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진짜 일어날 것 같아서 놀랐다. 그는 나 같은 처음 보는 일반-스무 살-학생과 잔 뒤 으스대려는 걸지도 모른다! 그가 헤테로 여자에게 고백받은 이야기를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하는 블로그 일당이라면, 나는 사기꾼에게 강매당하듯이 넘어가지만, 실제로 사기를 당한 건 그일 것이다. 미약한 쾌재! 아침에 그는 가겠다는 내게 택시비를 줬다. 비몽사몽간에도 코트 안에서 지갑을 꺼내는 그의 태도에 당혹을 금치 못했다. 그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카페 음료와 모텔 비용을 지불했다. 과연 그가 나를 연소자로 대우한 건지 긴 머리 여자로 여긴 건지 궁금해하며,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택시비를 하라고 준 돈으로 표를 예매했다. 메시지가 왔다. 들어가면 연락해. 현이라고 저장한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연락이 이어질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현에게 나이도, 사는 곳도 거짓말했다. 많이 경험해본 척했지만, 첫 경험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현이 내게 털어놓은 이런저런 일을 회고하며, 새로이 짚어나가게 된 ‘라즈’ 블로그 맥락을 따라 현의 블로그를 추적했다. 주의 깊게 보던 이웃을 제외하고 나니, 현 같은 블로그가 있었다. 말투나 감정 굴곡을 보건대 현이 분명했다. 현은 ‘라즈’와는 달랐다. 우선 나보다는 시와 소설을 적게 읽는 듯했다. 하지만 전시회 다니기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일기를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성실하게 썼다. 어제 만나서 좋았어요. 기쁘게 답신을 보냈다. 집에 도착하고도 현은 답장이 없었다. 며칠 뒤에는 ‘라즈’가 3-7 전편과 일기를 함께 올렸다. ‘라즈’는 그날을 한 줄로 요약했다. 11월 5일. ‘정신없이 마시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몇 명인가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나는 ‘라즈’ 작법에 익숙한 독자였다. ‘라즈’는 일부러 뭉뚱그려 써서, 빠지거나 들어온 사람이 많다고 추측하게끔 만들었다. 익숙한 독자인 나는 그에게 속아서 생각했다. 그날 나간 사람이 현 말고 더 있을까? ‘라즈’의 일기는 그간 기다림을 헛수고라고 느끼게 했지만, 나는 현의 블로그에 등장할 테니 상관없었다. 드디어 현의 블로그에 새로운 포스트를 알리는 아이콘이 떴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달려갔다. 풍광 좋은 카페 공간과, 초점 흔들린 술자리 사진이 보였다. 사람들은 흐릿한 이목구비로도 신난 듯했다. 거기엔 누가 쓴 건지 모를 비밀 덧글이 달렸다. 다른 포스트로 작성된 일기는 한 줄로 마무리됐다. ‘그동안 여러 명과 잤다.’ 허망하고 기가 차서 콧방귀를 뀌었지만, 문장에 깃든 매력을 인정했다. 내가 현과 연락하지 않은 건 우리 중 누구도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년이 바뀌고 재작년 담임이 내게 먼저 인사했을 때 그를 모르는 체하지 않았나? 우월하고 싶을 때 목 뒤편에 돋은 닭살 때문에 나는 과장되게 글 쓰는 이들에게 분노했다. 화가 난 채로, 알맹이랄 게 없어 집게손가락으로 누르면 저항 없이 파삭 부서질 그들의 실체를, 내가 성인이 되고 서울에 올라가면 모조리 까발려 주리라 다짐했다. 글로 확장된 윤곽을 비천한 몸으로 되돌리고, 영혼은 몸에 속박되어 있다고 폭로하고, 손가락질하며 저주를 내릴 것이다. 나는 그들을 고발하고 뒤흔들고 모욕을 주고 싶었다가, 별안간 지나친 수치스러움으로 블로그 보기를 그만두었다. <끝>
블로그 주인이 비공개 처리해둔 일기를 공개로 전환하면서부터, 재작년 담임은 그곳에서 싱겁게 분리되었다. 블로그 주인이 대학에 재학 중이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이웃과 교류하는 덧글을 보고서야 그가 담임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와 담임은 다른 사람이다. ‘라즈’는 소설 번역에 슬럼프가 왔다며 쉬었다 가겠다는 글을 올리며, K가 부탁한 일기만 공개로 전환하려다가, 내친김에 전부 바꿨다고 했다. 변덕 덕에 500여 개가 되는 글이 새로 생겼다. 휴식기 선언을 기점으로 블로그의 성격은 바뀌었다. 이전 글을 드러낸 셈이니 가면을 벗고 원래 얼굴로 돌아왔다는 게 맞았다. 취미 번역가인 줄만 알았던 ‘라즈’는 성실한 기록자였고, 정리에는 재능이 없었다. 과제 참고용 자료, 스크랩한 옛날 노래, 외국 시…. 어떤 포스트는 사진으로만 마구잡이로 차 있었다. 사진 종류를 구분해보자면 이러했다: 핸드폰으로 캡처한 화면(상단 바를 잘라내지 않은 검색 결과, 지인과 나눈 메신저 대화), 아마도 텀블러에서 주운 듯한 이미지(영어로 적힌 인터넷 밈이 합성되어 있거나, 밈의 원본 격이 되는 출발점), 유명한 그림이거나 유명 인물 사진(또는 그렇게 보이는 것, 내게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유명할 것), 낯선 이를 피사체로 한 인물 사진(직접 찍은 걸까?), 영문 모르게 불쾌함을 자아내는 사진(김칫국물이 흐른 식탁보, 딱정벌레, 장판 사이 먼지, 폐건물 등). 사진 배열이나 출처를 통해 그가 올리는 사진의 규칙을 찾고자 했으나 방대한 양에 눌려 실패했다. 그는 자기 배설물이든 공들여 한 세공품이든 간에 자기 몸을 통해 빚었다면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이길 원하는 쑥스러움 많고 자신감 적은 사람이거나, 정돈에 별다른 생각도 관심도 없는 사람 같았다. 어쨌든 당황스러울 만큼 유별난 평등주의였다. 한순간에 쓰레기통을 뒤집어쓴 듯해진 블로그는 낯선 만큼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만 같아 짜릿했다. 틈날 때마다 즐겨찾기 해둔 그곳을 방문해 그가 소설을 번역하기 전에 남긴 기록을 살펴보았다. 한 달 동안 그 블로그에 빠져 살았다. 다음은 그에 대해 파악한 사실이다: 그는 서울 4년제 대학 중문학과에 다니고, 대만의 원주민어를 연구하고 싶어 하며, 휴학 중이었다. 사람 만나기와 술자리를 좋아했다. 종종 합주도 했다는 문장이 있는 걸 보면 밴드를 하는 것 같았다. 영화에도 애정을 보였다.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영화의 특정 장면에 꽂혀 지인과 그 장면을 재현하거나 그걸 가지고 농담했다. 최근 다섯 번 이상 농담에 쓰인 영화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었다. 그 영화는 긴 영화의 기준점이기도, 긴 시간을 보냈을 때 사용하는 관용어구이기도 했다. 중화권 문화에만 관심을 둔 건 아니었다. 영국 록 밴드에도 조예가 깊어 보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아시스는 진짜 맨체스터 음악이 아니었다. 매드체스터의 본질은 스톤 로지스와 더 스미스에 있고, 스미스의 얼굴은 모리세이지만 음악의 핵심은 쟈니 마였다. 섹스 피스톨즈를 좋아한다는 인간은 패션만 쫒는 것이다. 현대 한국 시인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처럼 헐뜯었다. 한국 시인에게 실망한 궁극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럴싸하게 욕만 했다. 이를테면 심보선의 <눈앞에 없는 사람>을 느끼하다고 욕했지만 <슬픔이 없는 십오 초>는 추켜세웠다. 그동안 내가 접한 한국 시는 교과서에 실렸거나 누군가 블로그에 올린 것뿐으로, 심보선의 것은 딱 두 편만 읽었다. 시집을 두고 비교하는 사람 앞에서는 설득당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생리대, 생리통, PMS 같은 단어로 검색하면 종일 앓아누운 날의 일기가 나오는 여자였고, 애인도 여자였다. 처음에 보고 넘긴 사진 포스트에 그의 애인과 나눈 채팅 로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애인은 ‘여자친구’라고 저장했다. 채팅 속에서 그들은 <악어 노트>에서 현실에서 만난 적 있는 캐릭터를 골랐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에 또다시 놀란 나는 그들이 나눈 다른 대화도 보고 싶었다. 등한시했던 사진 포스트를 뒤졌다. 그러다가 블로그 주인과 연애하는, 혹은 잠자리만을 같이하는 여자가 ‘여자친구’뿐만이 아니란 사실을 눈치챘다. 그는 다르게 저장된 인물에게 애정을 표시했다. 지난밤 잘 들어갔는지 근황을 물었다. ‘여자친구’는 이 블로그를 알까? 다른 블로그에 단 덧글을 찾기 위해 이웃 블로그도 염탐한 나는 답변이 가능해졌다: ‘여자친구’는 이 블로그를 알았다. 서로 이웃 관계고, 다른 이웃과도 친목을 다졌다. 다른 여자들이 일기에 어떻게 적혔을지도 궁금했다. 눈이 빠져라 찾았다. 이니셜로만 적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사람. 여자들. 그는 어떻게 이 많은 여자를 만나게 된 걸까? 이름도, 생김새도 모르는 그는 나를 적지 않게 흥분시켰다. 파편만 훑던 지난 방식과는 다르게, 정보를 대조해가며 3년 전 포스트까지 살펴 동이 틀 즈음엔 이름쯤이야 내 몫으로 떨어졌다. 일기에는 신상 명세며 비밀이 줄줄 흘러넘쳤다. 누군가 자길 알아주길 바라고 쓴 것처럼 상세했다: ‘여자친구’는 고등학생 동창이었다. 나머지 여자들은 교내 밴드를 하며 만났다. 각각 선배와 동기다. 그는 밴드부 입성과 동시에 여러 여자와 얽혀서 신경증에 걸렸다. 그런데도 최근엔 앱으로 연락하는 여자가 따로 있었다. 어쩌면 나도 이 예술가에게 새로운 여자로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 동시에 그 생각에 매혹되었는데, 블로그 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날이 평생 바라마지않던 날처럼 느껴져서였다. 겨우 블로그나 본 주제에, 나만큼 그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라즈’가 도망치고 다니는 소설 속 라즈에 이입했다면 내가 그에게 개입할 만한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걸 원하는 방식으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를 배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욕하던 심보선의 시구와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고 (<청춘>), ‘너는 날아갈 것이다.’ (<새>) 그리워하므로. 이렇게 벌써 심기를 거스르는 해석을 함으로써 나는 수령이 될 수 있다. ‘그녀’가 될 수 있다. 학교 복도를 지나갈 때 침이 마른 입 안으로 입술이 말려 들어갔더라도. 올백 머리를 하고 체육 시간에 남자애들과 축구를 하던 여자애가 내 입술 모양을 마녀 같다고 비웃었더라도. 번개처럼 나를 급습한 노파의 이미지. 주름진 피부와 몽땅 빠진 치아 덕에 잇몸으로 말려 들어간 입술, 덜덜 떨리는 목소리와 부자유스럽게 움직이는 손가락 관절이 내 뺨을 뜨겁게 덥혔다. 그 애는 아무에게나 몸을 부딪쳐 가며 놀았지. 교무실에서 그 애를 불러 이유를 물으면, 우유 급식 때문이라고 했다. 나 기초수급자잖아. 그 애는 나를 위축시켰다. 그 애가 나를 한 수 아래로 여기기 때문에, 밀치고도 사과 없이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스레를 떨면서 그 애와 융화되었어야 했다. 망가지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더라면, 나보다 재미있거나 세련된 친구를 찾고 싶어 안달이 난 애들 사이에 있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와 어울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를 화풀이로 대신하던 애들. 쥐 파먹은 것처럼 짧게 자른 앞머리를 트집 잡고, 줄무늬 옷을 입고 오면 그 디자인은 촌스럽고 찌질하다고 꺄르륵거리는 애들. 그 애들이 차라리 나를 때렸더라면. 내 소매를 들치거나 옷깃을 젖혔을 때 폭행 흔적이 아찔하게 남아 있었다면. 걸레 물을 뒤집어쓰고, 청소도구함에 갇혀서 작은 벌레들과 남았더라면. 그러나 누구도 티 나게 잔인하지 않았다. 나를 공격하는 건 서늘한 시선과 코웃음, 무시였다. 고작 그것들이 나를 무너뜨린다는 게 슬펐다. 일찍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 빈 매점을 점유해 나를 원하지 않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이들 사이에서 번호순대로 이어지는 험담을 들었다. 허리 굵은 은행나무 아래에서는 험담을 듣는 일원이 되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좁아서 그래. 얘네들은 좁은 곳에 살아서 멍청한 거야. 멍청해서 나를 모르는 거고. 전시든 공연이든 행사든 죄다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만 열리니까. 놀 땐 충장로만 찾으니까. 독립서점이 따로 없고, 교보문고에도 찾는 시집이 없어 따로 발주를 넣어야 하는 곳에 살아서.
중요하다고 말해지는 시험이 몇 개 지나갔다.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 시간은 멈췄다고 봐도 무방했다. 블로그 속 ‘라즈’의 일상에 형체 없는 똬리를 틀어, ‘라즈’가 자주 교류하는 이웃의 얼굴과 닉네임을 매치하는 재주가 생겼지만, 시간 흐름을 느끼기엔 형편없는 능력이었다. 중얼거리기밖에 더 할까: ‘라즈’의 이웃은 유명하지 않은 밴드 노래를 번역하고 탐미적인 생각을 써 내려갔다. ‘라즈’만큼 블로그를 쓰레기통으로 쓰는 사람은 없었다. 어지럽혔다가도 금세 정리했다. 내가 본 이웃의 사색이 사라지면 안달이 났다. 꿈에서 본 글과 사라진 글이 구분되지 않았다. 시간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만나야 했다. 중학생인 나는 내가 행동하지 않는데도 염력과 <시크릿>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를 바랐지만,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나서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였다. 내가 보고 느끼는 만큼 사람들도 보고 느끼기를 바라면 안 됐다. 나를 알아봐 주길 바란다면 먼저 다가가야 했다. 입시에 성공해서 서울권 대학에 가는 수밖에 없을까?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여길, 네이버 블로그를,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입버릇이 유행했다. 대학에 간다고 해도 그들을 만나리란 보장은 없었다. 내 성적은 현역으로 서울 소재 대학에 가기에 애매했다. 게다가 나는 당장 이들에게 개입하고 싶었다. 미룰 수 없었다. 사사롭게만 느껴지는 다른 일에 집중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들을 만난 뒤에야 진정한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이들의 인생에 쳐들어가는 상상을 하면 몸이 터질 만큼 환희에 찼다. 이 사람이 미성년자인 나를 욕망해서 인생을 망쳤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해야 했다. 어떻게? 점치듯 눈을 감고 들어간 아무 포스트에 힌트가 있었다. 밴드 뒤풀이에 고등학생 팬이 온 날 기록이었다. ‘라즈’는 초대하지 않은 낯선 팬을 보고서 당황했지만, 나중에 가선 불쾌하지만은 않았다고 밝혔다. 내심 뿌듯해서 학생에게 줄 오렌지 주스를 따로 주문했다. 연락처도 교환했다. 알고 보니 그 애는 베이스를 치는 C의 친동생이었다. 덧글에서 자지러지게 웃는 C. 상상 속에서 나는 단숨에 그 고등학생이 됐다. 저녁에 3-7 (1)이 올라왔다가 지워졌다. 다음으로 올라온 글은 하늘에서 내려온 빛으로 쓰였다. 글 제목은 ‘번역 촉구 파티’로, ‘라즈’의 <악어 노트> 번역을 촉구하는 파티를 연다는 글이었다. 파티가 슬럼프 돌파구가 되어주길 바란단 내용 뒤에는 일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일시는 명확했으나 장소는 ‘저희 집’이었다. ‘(저희 집 주소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합니다)’ 집 주소를 아느냐고? 그는 알아 달라고 애원하고 다녔다. 거의 전단을 배포했다. 안다. 날 염두에 둔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아닐까? 아니겠지, 상식적으로. 단지 운명이 우리를 엮었다. 이것도 아니야? 아니라는 걸 안다. 우연에 지나지 않은 슬럼프 돌파 파티다. 나는 초대 받지 않은 파티에 가겠단 결심을 차갑게 일갈했다. 무정한 자조는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했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채찍질을 맞아 후끈해진 몸이 그와 연결만 된다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속삭였다. 새벽에 화장실에 들어가 고데기 전원을 켰다. 인터넷 쇼핑몰로 주문한 랩 원피스는 걱정하던 기장치고 잘 맞았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화장했다. 매무새가 흐트러질까 무서워 눕지도 않았다. 시내버스 첫 차가 운행하는 시각에 맞춰 집을 나섰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길은 막 동이 터서인지 먹먹했다. 안개 너머에서 승차권을 사는 나를 봤다. 대기 의자에 앉아 도넛 냄새를 맡았다. 입가심거리를 살지 고민하다 그대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잠들었다. 엔진이 멎자 휴게소였다.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파운데이션이 고르게 발라졌는지, 머리가 엉망이 되지 않았는지를 점검했다. 양호한 상태에 한숨을 돌렸다. 마이크를 든 사람 셋이 버스에 올라왔다. 셋은 경품 추천을 하겠다며 자리를 지킨 이들에게 종이쪽지를 나눠주었다. 내 무릎에도 16이라고 적힌 쪽지가 올라왔다. 고속버스와 연계하는 이벤트 같았다. 다른 사람이 볼 새라 숫자를 감췄다. 돌아올 때, 내가 원한 걸 이루지 못하더라도 경품 하나를 품에 안은 채라면 외롭지 않을 듯했다. 사람들은 이처럼 돌발적인 이벤트를 맞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왔다. 행사 진행자는 당첨자에게 고가 상품을 드리겠다며, 상자 속에서 꺼낸 숫자를 불렀다. 11. 김이 빠졌다. 옆 좌석에 앉은 아저씨가 손을 들었다. 진행자가 박수를 유도하기에 손뼉 치는 시늉을 했다. 그들은 아저씨에게 몇백만 원 상당의 경품 시계를 단돈 오만 원에 주겠다고 말하며, 케이스에서 시계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유리창을 넘어 타고 흐르는 빛이 번뜩거렸다. 그들은 돈을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허리를 숙여 바지춤에 든 지갑을 꺼냈다. 돈을 건넸다. 돈과 시계를 맞바꾼 진행자는 연신 축하한다며, 악수까지 청한 뒤 버스를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고요했다. 경품 시계를 햇빛에 비춰 보는 아저씨를 곁눈질했다. 부럽지 않았다. 곧 기사님이 탑승해 승객 머릿수를 셌다. 버스 문이 닫혔다. 시계는 다시 보니 볼품없어 보였다. 그들이 돈을 받기 전, 누가 강압적인 공기를 살포하기라도 했나? 졸다 깨어나니 센트럴파크 터미널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잠이 부족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긴장으로 심장이 조여들었다. 자기 직전 떠올렸던 시계와 아저씨의 시선을 복구하려 노력했다. 흐릿하고 희미했다. 연민과 애달픔은 벌써 아스라해져서, 온 감각을 동원해도 실제로 존재했던 건지가 아리송했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지도 캡처에 의존해 전철로 이동했다. 차창에 비춰 보던 희끄무레한 내 실루엣은 에스컬레이터 옆 거울, 대로변에 줄지어 선 통유리 건물을 통해 뚜렷해졌다. 내가 보일 때마다 몰골을 의식했다. 화장은 어색했고, 입은 옷은 지나가는 여자에게 비하면 통나무를 두른 듯했다. 차라리 교복을 입은 게 나았을 거다. 건너편 옷 가게에서 새 옷을 사고 싶었으나, 입을 여는 순간 나는 서울 출신이 아니란 게 들통나고 점원은 내 행선지를 물은 뒤 추궁할 것이다. 몽땅 내 기분과 생각 문제다. 그들은 내 외양에 관심이 없었다. 나를 공격하는 건 나뿐이다. ‘라즈’ 집은 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예상 시간보다 15분을 더 헤맸다. 그마저도 내가 맞는 주소에 와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근접한 곳을 서성거리다가 전봇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역사와 달리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먼저 파티를 시작한 걸 거야. 내가 잘못 도착했을 리 없어. 겁먹은 채로 나를 안도시킬 주문을 외웠다. 코너에 있는 편의점 앞으로 사람 둘이 나왔다. 하나는 전화 중이었고, 나머지는 주머니를 손에 찔러 넣은 채였다. 둘 다 걸음걸이가 껄렁하고 턱이 갸름했다. 주머니 쪽을 알아보았다. J다. J는 블로그 인물 사진 속 피사체로 자주 등장했다. 코트 깃에 가려져 보이진 않지만, 목덜미에 제비와 닻 모양 타투를 했다. 옆은 누굴까? N? N이 맞는 것 같았다! 그들을 알아보자 무릎이 꺾이고 발바닥이 저리는 듯했다. 공동현관 인터폰을 이용한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등장한 몇 사람은 이니셜을 가늠할 만한 인물이기도, 전혀 짐작 가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못 알아본 이들을 끝없이 유추했다. 반면 K! K가 존재만으로 나를 압도하며 걸어 들어왔을 때 나는 주저앉을 뻔했다. 사기를 당해 어디론가 도착했을 아저씨는 내 곁을 떠나간 지 오래였다. 집에 들어가는 그들이 전봇대 앞에 쪼그려 앉은 나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혹시 내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인터넷상에서는 이해하겠다. 나는 블로그에 덧글 하나 달지 않은 인물이니까. 그래도 여기에는 이렇게 존재하는데…. 시린 손을 주머니 속에 파묻은 채,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웃으면서도 의아했다. 더는 파티에 새로 참여하는 이가 없을 것만큼 어둑해지자, 결정해야 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핸드폰 번호는 모르잖아. 모를 리가 있겠나? 저장하지 않았을 뿐이지. 마지막 양심으로. 무슨 양심? 우연에 기대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일어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왜 이렇게 떨리지? 이 자리에 나왔다는 수치스러움으로? 줄곧 만나길 희망했던 사람들 앞이라서? 조금 있자,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줄줄이 나왔다. 바짝 긴장한 나는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기대어 섰다. 그들은 바람이 들지 않는 곳으로 갔다. 담배를 피우러 나온 듯했다. 흡연자들을 힐끗거리며 다른 우연을 기대했다. 한 곳을 서성대는 어린 여자애로서 이목을 집중 받는 우연. 다리 아프고 갈 데 없는 여자애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주겠다는 호의. 그들은 오히려 나를 슬슬 피했다. 정반대로 이루어진 염원에 잠깐 슬퍼하고, 그들을 보지 않는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척, 경유지에 그들이 있는 척 관찰했다. 그래도 그들이 빠르게 담배를 태우고서 안으로 들어가자, 마음이 갈린 것처럼 선뜩했다. 그들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려고 배려한 것일 테다. 술에 취해 의협심이 강해지면, 외로워 보이는 여자애한테 말을 걸자는 마음이 커질 테다.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술과 물을 사러, 또 흡연하러,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왔다. 나올 때마다 목소리가 커졌고 (특히나 J가 그랬다. 기타 치는 시늉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볼이 발개지다 못해 목까지 터질 듯했으며 (반대로 K는 새하얗게 질렸다) 휘청거렸다. (밖에 나온 이들 모두가 그랬다) 그동안 나는 뭘 기다린 걸까. 체념할 즈음이었다. 돌연 공동현관을 가로막은 자동문이 열렸다. 장신의 사람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낯선 얼굴이라 같은 건물에 사는 주민인 줄 알았다. 그에게서 익숙한 술 냄새를 맡고서야 그가 블로그 일당과 인상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은 주차장에 불이 들어오자, 탈색해야만 낼 수 있는 남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가 지나치게 취했거나, 등 뒤 벽에 용건이 있는 듯해 자리를 비켜 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향해 왔다. 내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놀란 내가 되물었다. 네? 그가 도로 물었다. 계속 여기 계시는 거 같길래, 무슨 일 있나 해서요. 괜찮으세요? 그는 취한 사람치고는 안색이 멀쩡했다. (K 유형인가….)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이 근처 사는 거예요? 모호하게 답했다. 아뇨, 그냥…. 어디 살아요? 멀어요…. 누구지. 파티에 참석했다면 블로그 속에 등장하는 사람일 텐데. 내가 아는 사람일 텐데.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을 붙잡아둘 수 있을까? 이니셜 모를 그는 확신이 서지 않는 얼굴로 나이를 물었다. 벌벌 떨면서 스무 살이라고 거짓말했다. 스무 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소리 내어 말하고 행동하는지 몰라 두려웠다. 불편하시면 어디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할래요? 그가 내게 권유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사람은 어떻게 저 매력적인 파티를 두고 나올 생각을 했지. 나를 알아봤나? 그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 나는 그의 모습과 잠깐 블로그 주인의 글투를 비추어 보았다. 오 대 오 가르마와 단정하게 깎인 구레나룻, 휑한 뒷덜미, 열린 어깨, 거침없는 몸짓으로 보아 블로그 주인인 것 같았다…. 기대는 금세 배반되었다. 근처 카페로 나를 데려간 그는 내가 입을 다물고 눈치만 살피자,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갑자기 말 걸어서 놀랐죠? 고개를 저었다. 그가 계속 말했다. 친구네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골목을 떠나지 않는 내가 눈에 밟혀 내 사정을 보고 와주기로 약속했다고. 저 때문에 노는데 괜히…. 말끝을 흐리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안 친해서 괜찮아요. ‘안 친하다’라. 음료 잔을 손가락으로 긁는 그는 블로그 주인이 아니었다. 내가 물었다. 안 가보셔도 괜찮아요? 그가 느끼하게 회피했다. 갔으면 좋겠어요? 부디 제삼자가 내게 이 상황을 설명해주기를 바랐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가 안 친한 사람의 파티에 나를 데려가는 것도 그려지지 않았고, 우리가 수다를 떠는 장면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동성 연장자의 선의로 카페에 나를 데려온 건가? 설마 나와 어떤 걸 해보고 싶은 걸까? 그도 돌발적인 이벤트를 바라는 걸까? 그에게 파티가 짧은 여행이라면, 따라가고 싶었다. 되도록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어른은 어떻게 처음 만난 상대와 섹스하는 거지? 점점이 말이 이어졌다. 허수아비처럼 굳은 내가 그에게 재차 돌아가지 않아도 되느냐고 질문하자, 곧 다른 사람이 수급될 것이라고 했다. 수급이요? 하하하. 그리고는 집주인과 파국을 맞았다고 고백했다. 원래도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주변 인간관계를 신경 쓰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집 주인의 성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목소리를 죽이고 읊조렸다. 걔는 마음에 들면 아무하고 사귀고, 자요. 뒷일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못 쓰는 거죠. 자극적인 폭로에서 질투심이 엿보였다. ‘라즈’를 향한 애정 때문인지, 떨리는 와중에도 초면인 상대에게 험담하는 그가 한심했다. ‘라즈’가 만나는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의 전 애인이라는, 블로그에서 읽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듣고 나서는 한심함이 배가됐다. 긴장과 한심함이 어우러지자 한순간에 그가 귀엽게 느껴졌다. 그가 내 손가락 끄트머리를 건드렸을 때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진짜 일어날 것 같아서 놀랐다. 그는 나 같은 처음 보는 일반-스무 살-학생과 잔 뒤 으스대려는 걸지도 모른다! 그가 헤테로 여자에게 고백받은 이야기를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하는 블로그 일당이라면, 나는 사기꾼에게 강매당하듯이 넘어가지만, 실제로 사기를 당한 건 그일 것이다. 미약한 쾌재! 아침에 그는 가겠다는 내게 택시비를 줬다. 비몽사몽간에도 코트 안에서 지갑을 꺼내는 그의 태도에 당혹을 금치 못했다. 그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카페 음료와 모텔 비용을 지불했다. 과연 그가 나를 연소자로 대우한 건지 긴 머리 여자로 여긴 건지 궁금해하며,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택시비를 하라고 준 돈으로 표를 예매했다. 메시지가 왔다. 들어가면 연락해. 현이라고 저장한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연락이 이어질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현에게 나이도, 사는 곳도 거짓말했다. 많이 경험해본 척했지만, 첫 경험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현이 내게 털어놓은 이런저런 일을 회고하며, 새로이 짚어나가게 된 ‘라즈’ 블로그 맥락을 따라 현의 블로그를 추적했다. 주의 깊게 보던 이웃을 제외하고 나니, 현 같은 블로그가 있었다. 말투나 감정 굴곡을 보건대 현이 분명했다. 현은 ‘라즈’와는 달랐다. 우선 나보다는 시와 소설을 적게 읽는 듯했다. 하지만 전시회 다니기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일기를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성실하게 썼다. 어제 만나서 좋았어요. 기쁘게 답신을 보냈다. 집에 도착하고도 현은 답장이 없었다. 며칠 뒤에는 ‘라즈’가 3-7 전편과 일기를 함께 올렸다. ‘라즈’는 그날을 한 줄로 요약했다. 11월 5일. ‘정신없이 마시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몇 명인가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나는 ‘라즈’ 작법에 익숙한 독자였다. ‘라즈’는 일부러 뭉뚱그려 써서, 빠지거나 들어온 사람이 많다고 추측하게끔 만들었다. 익숙한 독자인 나는 그에게 속아서 생각했다. 그날 나간 사람이 현 말고 더 있을까? ‘라즈’의 일기는 그간 기다림을 헛수고라고 느끼게 했지만, 나는 현의 블로그에 등장할 테니 상관없었다. 드디어 현의 블로그에 새로운 포스트를 알리는 아이콘이 떴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달려갔다. 풍광 좋은 카페 공간과, 초점 흔들린 술자리 사진이 보였다. 사람들은 흐릿한 이목구비로도 신난 듯했다. 거기엔 누가 쓴 건지 모를 비밀 덧글이 달렸다. 다른 포스트로 작성된 일기는 한 줄로 마무리됐다. ‘그동안 여러 명과 잤다.’ 허망하고 기가 차서 콧방귀를 뀌었지만, 문장에 깃든 매력을 인정했다. 내가 현과 연락하지 않은 건 우리 중 누구도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년이 바뀌고 재작년 담임이 내게 먼저 인사했을 때 그를 모르는 체하지 않았나? 우월하고 싶을 때 목 뒤편에 돋은 닭살 때문에 나는 과장되게 글 쓰는 이들에게 분노했다. 화가 난 채로, 알맹이랄 게 없어 집게손가락으로 누르면 저항 없이 파삭 부서질 그들의 실체를, 내가 성인이 되고 서울에 올라가면 모조리 까발려 주리라 다짐했다. 글로 확장된 윤곽을 비천한 몸으로 되돌리고, 영혼은 몸에 속박되어 있다고 폭로하고, 손가락질하며 저주를 내릴 것이다. 나는 그들을 고발하고 뒤흔들고 모욕을 주고 싶었다가, 별안간 지나친 수치스러움으로 블로그 보기를 그만두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