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 외 2편
시아
식물원
타들어가는 조각들을 기운
짙은 나무의 냄새
버려진 것이라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거두어들이던 여자가
(여자는 □□□□□□□□였고)
쌓아둔 김밥이 식탁에 있었습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가득해지는 소각장의 연기를 삼키느라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로
영정과 동석하였습니다.
왜곡된 플롯을 은밀히 속삭이며
여자의 습관을 감싸 쥔다
칼질도 하지 않고 내놓은 김밥같이
영원히 기억할 둥근 형상과
재로 속을 채운 나무에서
여름녹색의 체취가 난다
(재가 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 하나가 돋아야 한다)
나무의 갈라진 틈새에 숨은
희미한 녹음을 알아차리기에
부족할 것이라곤 없는
고유하고
지독한 냄새
과분한 빛을 머금어 흘리는 땀과
치솟는 울음을 눌러 터트릴 때의
법칙은 지독하고 아름다우며
조화는 친절하고 냉혹하다
(재가 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육체를 바쳐야 한다)
여름녹색엔
재가 될 재의 지배적인 법칙에 의한
비명소리가 있다
결국은 사랑하고야 말
고유하고
지독한 향(香)
어지럽도록 아름다운
타들어가는 것을 좀처럼 지나치지 못하는
짙은 나무의 습관처럼
사랑에 대해 말해봐
그와 나는 전등갓 아래 이불을 깔았다
비스듬한 선으로 비슷하게 누워
책탑처럼 다리를 겹겹이 쌓아두고
빛이 드는 영역 안으로는
미움도 슬픔도 없기를 축원하며
이불은 버석거리고 나는 미지근하고
그는 물렁하고 바닥은 까끌하고
등불은 일렁이고 하늘도 이지러지고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있어
무지(無知)의 검은 암벽이 솟고
두 심장이 위태로이 흔들린다
혀 밑으로 재앙을 쑤셔넣는 행위
몇 번씩이나, 결벽적으로,
성취해낸다 그와 나는 각각
다른 지평에 세워진 철학같다
무릎을 쌓은 탑처럼 비꼬인
그러나 충분하지 않은 것은
기어이 만나야 할 것들, 인즉
부정(不定)된 위상은 접촉사고다발지역
그는 침몰하고 나는 얼어붙고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있고
부르튼 혀를 서로 만져주면
생물의 최선은 이게 고작인 줄도 모르고
감격에 찬 붕어처럼 뻐끔거린다
다정한 너, 다정한 너,
부르르 떠는 것은 그의 묘기다
검은 암벽 너머 희뿌연 미래가
흔하게 널린 사고를 기다리고 있다
핑퐁
공이 벽에 맞아 날아온다
내게 맞은 공이 날아간다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어떤 쓸쓸함의 위도에서
아이는 집을 찾고 있는지
몸의 구심력이 커지는 순간마다
그만큼 빨라지는 공의 태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니
너를 찾는 소리이길 바랐지
질문할 필요 없는 사랑,
그 따위 것을
바라는 순간 공은 더 높게
튀어올랐고
응연히
맞고 또 맞아서
시뻘겋게 퍼렇게 누렇게
알록달록 멍이 들고
그런 몸이 볼풀장 같다고
아이가 웃는다
깔깔 웃는다
웃다가
스러진다
볼풀장 속을 굴러보기,
그 따위 것을
진심을 다해 바랄 줄 알았기에
속수무책으로 이우는
아이가 발에 박힌 기억을 뺀다
웃음을 뚝뚝 흘리며 걷는다
우는 아이는 집에 갈 수 없으니까
공이 벽에 맞아 날아온다
의당히
내가 맞은 공이 돌아올 것이다
시아
맥박 없는 손등으로 악수합시다. 희망은 언제나 소망을 배반하므로. 어딘가에서 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에서든 어떤 순간이 닥치든 끝내 쓰는 사람으로 살아있기를 매일 기도하며 짧은 잠을 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