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숙씨께

빅피두
김군숙씨께
편지를 시작하기에 앞서 분명히 김군숙씨에게 편지로 전부 전해야 할 ‘그것’이 내 속에 머리 끝까지 가득 차있는데. 쓰려고 의식의 눈을 치켜뜨면 그 것 들은 그새 내장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사라져 도대체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질 않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는 꼴을 저는 지금 계속해서 견디고 있음을 알립니다.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 오로지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만약에 이것이 왜 편지여야만하고, 당신에게 전달되어야만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것’들이 당신을 향해 던져지기 위해서만 내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고립된 사람들을 끄집어내 만나도록 하는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기꺼이 이 편지의 의미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이것은 ‘그것’으로부터 시작해 밖으로 내가 나가는 과정입니다. 여기에 당신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살아서 멀쩡히 숨쉬는 김군숙씨를 지금부터라도 똑바로 보기 위해서 저는 이 편지를 씁니다. 그 말은 제가 김군숙씨를 알고 지내온 지난 8년 간 단 한번도 당신을 똑바로 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은 저의 타고난 근시안과 관련이 깊습니다. 김군숙씨는 언제나 3차원의 지도 상 제 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저는 가까이 있는 것밖에 보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에 대해서 상상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말하면 당신은 분개하며 틀렸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 먼 곳에서 어른거리는 희미한 상, 형태의 번짐으로부터 모두 제가 만들어낸 소설 속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저는 완전히 결백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김군숙씨를 억지로 시야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계략을 짜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부터 저는 김군숙씨가 나오는 꿈을 꾸게 되었고, 당신이 벌이는 일들에는 언제나 저도 모르게 끌어당겨졌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흘린 말들은 줍자마자 그 자리에 얼어붙어 아무 대답도 되보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당신의 고유한 이야기를 말살시키고 그 위에 제 망상을 뒤집어씌운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말 그럴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는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김군숙씨의 작고 어린 애같은 몸과 토마토처럼 못생긴 얼굴에, 트집 잡는 거만한 눈, 그 욕심 많은 입에서 쏘아붙여지는, 너무나도 카나리아처럼 까랑까랑한 여자 목소리에 흥분할 리가 없다는 것을요. 그런 김군숙씨를 원할 리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흥분했던 대상들과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쉽게 몸이 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와 친구가 될 것같지도 않아보이는 이 여자에게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문장을 사실로 정하고 사실을 이불 속에 뒤집어 쓴 채 자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됐거나 저는 8년 전에 멀어져가는 당신을 붙잡을 명분이 없었습니다. 결론이 이렇게 지어진 데에는 당시 김군숙씨의 말도 한 몫을 했습니다. 처음 만난 날 밤 섹스를 하고, 그 뒤 몇 번을 더 만나다가 서로 간에 연락이 없이 몇 달이 지난 후, 당신이 저를 보고싶다며 일하는 술집으로 와줄 수 없겠느냐고 한 날입니다. “제가 당신이랑 이전에 몇 번 만나서 잔 게 다인데, 섹스 말고 다른 일로 보고싶다고 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아요?” 어딘가 거짓스러운 얼굴로 퉁명스럽게 저에게 중얼거린 말입니다. 저는 저보다 열 일곱살이 많은 학교 강사와 동거 중이었고 그 사람은 자신 말고 다른 사람과 섹스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하고 저는 집에 왔습니다. 저는 그 이후 사적인 일로는 먼저 김군숙씨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당신이 나오는 꿈을 계속 꿨습니다.
8년 전 김군숙에 대한 사실 몇 가지 : 섹스를 굉장히 많이 함. 술 중독. 화를 많이 냄. 연인 있음. 못생겼음.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볼려던 사람은 김군숙씨였고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위독한 근시안 나름의 생존방식으로써 무의식 속에 거대하게 키워낸 나침반을 따라 저는 당신이 일하던 그곳에 갔어요. ‘어떻게 해보려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에 아무 효율성 없이, 그저 안가고는 견딜 수 없는 종류의 힘의 법칙을 발휘해서 그냥 갔던 것입니다. 2018년 4월 10일 새벽에는, 잠을 자다가 당신이 ‘살점이 베어물고 베어물리는 파티’에 저를 초대했는데, 파티 장소는 당신이 일하는 곳을 닮은 음침한 폐건물이고 그곳에 속한 제 방이 있었습니다. 즉 초대된 장소가 우리 집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강사의 집에서 빠져나와 우리 집으로 갔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다같이 애더럴을 먹고 살점을 물어뜯어 곳곳에 핏자국과 이빨자국이 난 동그란 살점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제 방에 들어가 잠들었지만 어떤 종교지도자 하나가 잠든 저의 옆에 앉더니 사람들에게 제 몸을 잘못된 예라고 가르쳤고, 모두 나간 후 김군숙씨와 당신의 동료만이 남아 손가락에 악어 그림 문신을 해주었습니다. 그 문신은 금새 10여 년이 더 지난 문신처럼 잉크가 번져 사라졌고 파티가 끝난 후 모두가 떠나고 김군숙씨도 떠났습니다. 어쨌거나 그곳은 우리집이었기 때문에 직접 화장실 샤워기로 핏자국을 흘려보내면서 뒷 일을 책임졌습니다.
동거하던 그 강사나 저나 서로간에 질긴 애정욕구와 인정욕구 외에 다른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섹스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깊은 속마음에 대한 예리한 성찰은 당시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짓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과 동거하기 이전 엄마가 대학병원에서 죽은지 1년이 갓 넘은 때 쯤에, 다니던 학교의 부속병원이 창밖 풍경의 전부인 네 평짜리 자취방에 살았습니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울 때마다 대학 병원 이라는 글자. 그리고 그 아래에 줄줄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진 창문들과 밤 늦게까지 띄엄띄엄 불이 켜진 병실이 눈에 보였는데, 상상 속 풋내를 풍기며 바쁘게 걸어다니는 간호사들이 나를 한없이 편안하게 안심시키는 동시에 곳곳의 켜진 병실에서 은근한 사람 죽어가는 쇳소리가 뒷통수를 날카롭게 후려갈겨 바닥에 쓰러뜨렸기 때문에 그 곳 탈출이 시급했습니다. 하루 종일 쓰러져 있기를 여러 날이었고 아무도 모르지만 그것은 비상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 강사는 체리색 몰딩을 두른 거실과 방 세 개를 가진 오래된 빌라에 살았고, 위 아래 옆 집 곳곳에는 젊은 가족과 초등학생들이 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사람의 부모님은 락스타처럼 늙은 저의 아빠와, 부처가 된 저의 엄마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체리 몰딩 빌라 근처에 살았습니다. 강사의 차를 타고 락스타와 부처의 집에 일주일에도 몇 번을 왔다갔다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탈모가 와서 듬성듬성 분홍색 민몸을 드러낸 채 건방지게 눈을 까뒤집으며 짖어대는 흰 포메라니안까지 있었습니다! 부처는 개를 처진 살집 속에 꼭 안아 보듬고 사과 조각이나 고구마 덩이를 입안에 넣어줬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기꺼이 그 강사에게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 그대로 애정을 줬습니다.
사람들은, 대화란 항상 진실을 쫓는 과정일 뿐 그곳에 정답과 결론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것처럼 굴까요? 사실 좀 다른 말인데, 사람들은 정말 대화를 이상하게 합니다. 대화에는 윤리와 변증법이란 게 있어서는 안됩니다. 대화는 일종의 오지 탐험이고 그 끝에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야만 하는 것이죠. 모르는 것을 향한 부딪힘이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서로의 얼굴에 비로소 가장 찬란한 미소가 지어질 것입니다. 이 당연한 것에 합의와 설득이 필요하다니 저는 가끔 멍청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과거의 저와, 제 조상들에게도, 살점을 물어뜯고 피가 솟구치는 찰나처럼 화가 납니다. 이 분노에는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이유에 대해 어떤 해명도 하고싶지 않습니다. 나는 별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 심각할 만큼 괴로운 수치심을 안고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만큼 나에 대한 태도가 호시절일 수가 없으니까요. 이 편지가 모든 것을 초치고 지금부터 당신이 저를 멀리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대해 저는 책임져야만 합니다. 당신에게 이것이 감당이 될까요? 전부 거짓말인 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인 것이죠. 저는 아무도 보증해주지 않는다해도 배우이고 거짓말로 목숨 건지는 사람이니까요. 눈덩이처럼 몸집이 불어난 7년 간의 망상의 댓가는 제가 치룰 것입니다. 내가 썼으니까요. 방금도 저는 수많은 ‘그것’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잊어버린 것들만이 아마도 진실일 것입니다.
제 뇌 안에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 모든 것 위에서 기능하는 지도가 한개 있습니다. 이 지도의 대략적인 구조는 설명하기에 매우 간단합니다. 그러나 길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도가 아니라, 미래에 내 행동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미리 관측하고 과거에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되짚기 위해 아주 사적으로 만들어진 지도입니다. 저는 이 지도를 만들 때 최초에 태양계의(Orrery)를 만들던 18세기의 순진한 과학자들의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투자를 받았으니까요. 근본적으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지 발견하고 그 위치가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관찰한 기록으로서 3차원의 지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 자신은, 이 태양계의 속에서 비틀어진 타원형 모양의 궤도를 가진 행성임이 얼마전에 밝혀졌고, 궤도에 따라 근 10년 간 급속도로 항성인 엄마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내 지도의 경우 이 ‘무엇 무엇’들은 모두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에 의해서만 궁극적으로 움직이거나 멈추기 때문입니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나를 기준으로한 2차원의 단면 그림을 뽑아낼 수 있는데, 이 그림이 가장 유용하게 참조하기 좋습니다. 소실점에 작고 푸른 블랙홀이 위치한 단순한 1점 투시 원근법에 따르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곧 제 눈에 맺힌 상이며, 소실점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엄마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달려오는 멀리서 달려오는 오토바이나 거대한 고라니들과 같이 잘 보이지 않는 것들만이 나를 치거나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반대로 손을 흔드는 친구나 오아시스, 산이나 집으로 가는 이정표와 같이 멀리 있는 것들만이 궁극적으로 목적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림 상으로는 소실점에 가장 가깝고 또 작아보이는 것들이 사실상 가장 큰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유구한 유전적 문화적 역사를 가진 태생적 근시안입니다. 먼 곳을 보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앞잡이가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기호로 태양계의같은 것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그간 아주 열정적으로 탐사선을 보내 멀리 있는 것들을 성실히 조사하고 연구했습니다. 엄마는 이미 내가 죽고 그가 사는 수중의 돌이킬 수 없는 압박이 있는 블랙홀 가까이에 갔습니다. 반면 지금 이 그림 상 가장 크게 보이는 것, 즉 내 눈 바로 앞에 있는 것으로는 지금이라도 당장 섹스할 수 있는 김진건씨가 있으며, 바로 그 뒤 줄지어 옛 연인의 얼굴들이 있습니다. 함께 동거한 강사는 옛 연인의 얼굴이 아니며 이미 가라앉은 난파선의 선장으로 훈장까지 받은채 전사해서 모랫 속에 겨우 형태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십대 중반이 넘어서야 모든 것을 다 굽혀 내어주고도 충분치 않은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다수의 연애사실에도 불구 그림에 정식 기입된 옛연인은 둘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군숙씨 당신이 엉뚱하게도 엄마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상한 빨간 빛을 내며 뻔뻔하게도 반짝이고 있고, 그 사실이 최근에 제 관심사가 된 것입니다.
빨간 빛을 내는 김군숙씨는 최근에 그 정체가 확실히 드러났으며, 그림에도 비교적 늦게 기입되었지만 그 기입 시기와 실재의 역사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실재의 근거로는 제가 꾼 유구한 꿈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빨간 라텍스 점프수트를 입고, 진작에 지도에 기입된 제 연인과 저 앞에서 뒹구는 바람에 제 부러움과 역겨움을 사고는 갑작스럽게 독일인으로 변장하여 택시를 타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떠난 적도 있습니다. 현실에서 저는 연인과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날 침대에서 일어나서 저는 치킨을 먹다가 그 연인과 눈물범벅으로 싸우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그러니까… 살점을 베어무는 파티와, 당신의 국비 전액지원 독일유학에 대해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식인 것입니다. 동시에 저는 당신이 일하는 곳에 계속해서 그저 술을 먹으러 가끔 가고, 하는 말들이나 표정 따위를 잘 담아뒀다가 다음 번 꿈에 멋지게 등장시키고의 반복일 뿐이었지만 그 속에서 어떤 것들은, 결국에 지도에 기입될 만큼, 수면 위로 올라올 만큼,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도록, 실제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술집에 더 이상 당신은 없었습니다. 그 때에 저는 당신의 얼굴을 직접 보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개인적으로도 그림 상 크게 보이는 것들의 위협에 휘말려 연인과 이별하고 일기도 쓰지 않았습니다. 일기라는 단어의 역겨움. 당신은 이 역겨움에 대해서 알고계시나요?
어느 날 난데없이 저는 김군숙씨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독립영화를 찍었는데, 하필이면 그 날이 첫 영화 상영일이라 술에 많이 취해있었습니다. 촬영 중 다른 사람들만 나오는 컷에 저도 모르게 난입하는 등 자꾸 실수를 하고 엔지를 냈습니다. 컷의 중앙에는 오토바이와 노란 천, 그리고 유명한 영화인이 한 명 있었고, 결정적으로 제가 계속 등장해야 하는 소품에 액체를 쏟고 말았습니다. 촬영 후에는 짐을 잃어버려 술에 취한 채로 그것을 찾으러 다니다가 친절한 아저씨가 있는 gs25편의점에서 다행히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발견한 그것을 또 분실하여 아저씨의 신의를 저버렸고, 저는 더욱 정신이 나가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계속 실수를 했습니다. 완전히 늦은 밤이 되자 당신이 일하던 술집에서 봤던 비쩍 마른 남자애와 에이즈가 걸린 남자애가 영어가 적힌 흰 반팔 배꼽티를 입고 벽과 사물이 모두 하얀 클럽에서 키스를 하며 춤을 췄습니다. 발치에서 그 춤을 올려다보는 저를 발견한 두 남자애들이 저에게도 춤을 추라 했지만 전 수치심에 도저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 끝에 김군숙씨를 다시 만나서 내가 다시 보지 않을 만큼 끔찍했느냐고 물었지만 김군숙씨는 그정도로 끔찍하지 않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당신의 아버지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에 당신이 자주 가는 편의점에서, 직원 아저씨를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눌 때, 그것이 그 어떤 김군숙씨의 친구들보다 익숙함에 속하는 편안함을 주는지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당신의 아버지가 무슨 일로 어떻게 죽었는지 하나도 모른 채 저는 소실점을 등에 업고 깨진 유리잔처럼 슬퍼했습니다. 그 후 1년 뒤 저는 실제로 당신이 일하던 술집에서 잠시 일을 했고 이후 같은 동네 다른 술집에서 2년 반째 일하고 있습니다.
지도와 그림 속 당신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레슬링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레슬링이라는게 뭔지 전혀 몰랐고, 몸으로 부딪혀 배우면서 그 특성을 하나씩 다시 배우게 됐습니다. 기본적으로 레슬링은 장난같이 푹신하고 질긴 폼블럭으로 된 원 안에 갇힌 두 원숭이가 서로 바닥에 한껏 납작 업드려 몸싸움을 하는 원색적인 꼴입니다. 촌스러울 만큼 직관적인 몸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손으로 갈고리를 만들어 상대의 목에 걸고 한쪽 팔은 어깨를 단단히 그러쥔 채로 서로 피가 쏠릴 만큼 얽혀서, 몸이 떼이면 그 즉시 머리로 하체를 파고들어 상대를 바닥에 넘어뜨립니다. 기술과 제압의 모양새가 한없이 곡선으로 휘어있습니다. 근육 가닥의 섬세한 쓰임보다도 무식한 밀착, 끈기, 힘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나 쉽게 포르노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김진건은 키가 작고 어린 남자 코치이고, 저를 처음 맡게 되었습니다. 평일 오전 반은 한 수업 당 수강생이 많아봐야 3명이고 오는 수강생이 요일별로 불규칙적으로 계속 바뀌는데 모두 하나같이 키가 크고 몸무게가 배로 나가기 때문에 언제나 김진건이 제 짝이 되어주었습니다. 김진건은 제가 여러모로 편하지 않은 수강생이라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눈에 멸시나 불쾌함이 없이 항상 나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저는 김진건의 단단한 두꺼운 허벅지 뒷쪽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내 머리를 허리에 밀착시키고, 그 자세에서 한참을 거울을 보며 기술과 자세에 대한 대화를 했습니다. 정말로 온갖가지 단순하고 즐거운 상상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 몸을 바닥에 넘어뜨리고, 뒷목을 꽉 쥐고 놓지 않거나, 뒷통수를 어지러울 만큼 조롱하듯 드리블할 수 있게 두 팔을 완전히 벌려 머리 뒤에 숨겨줍니다. 그리고 반대로 나를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실제로 넘어뜨려주고 제압해주었습니다. 아주 안전하고 장난같은 폼블럭 위에서. 손가락 한마디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맞붙어 두 눈빛을 교환하고 밀고 겨루는 감각을 매 시 느낄 줄 압니다. 김진건은 레슬러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생김새도 아주 단순해서 귀 조차도 완전히 부풀어올라 그 복잡한 곡절이 다 사라지고 매끄럽게 동그란 모양입니다.
어제 잠깐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며 레즈비언 소설집을 읽고 있는데 시야에 파란색 운동복의 짱짱한 다리가 단단하게 걸어와 제 책 앞 끄트머리에 박히는 것을 느끼고 위를 올려다보니 김진건이었습니다.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받은 김진건과 우연히 마주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정말 귀엽고 또 오만하지 않은 방식으로 내 옆에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하는 표정을 내비쳤습니다. 그 사람은 완벽히 근시안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만 저의 근시안과는 완전히다른, 제가 추측하기에 수영하는 자의 눈이 가진 특유의 근시안에 더 가까운, 그런 눈을 가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어차피 먼 곳을 볼 필요도 이유도 없이, 그 너머에 위험도 기대도 없을 것이며, 어쩌면 그만큼의 공간이라는게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주변이 그렇게 순진하고 안전할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체육관 사이트에서 김진건의 에스엔에스 페이지를 찾아냈는데, 정말 잘생기고 훤칠한 눈매의 정직한 증명사진 아래에 자기소개로 “레슬링하고 노래하는 삶”이라는 문구를 적어놓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의 노래에는 작고 귀여운 바다가 있었고 흥미를 자극할 만큼 위협적인 산호초가 무성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당신은 최근에 난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마도 저는 지금 김군숙씨의 남자친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만나고 있는 그 남자친구는, 똑똑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그 친구는, 당신과 이렇게나 흥분될 만큼 가까워서 레슬링까지 즐길 수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무한히 깊어서 소실점과 같은 깊은 곳까지 직접 탐색할 수 있나요? 그리고 그 사이를 거슬러 오르거나 미끄러져 내려가며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나요?
당신과 저는 그 때 섹스를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김군숙씨가 옷을 벗었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납니다. 우리는 각자 경험을 쌓고 열심히 그것들을 모을 때였고 개 중에 만난 사이였습니다. 각자가 모은 것과 경험한 것은 한 침대에서 일어나 완전한 별개의 다른 것으로 그 즉시 갈라져 각자 주먹에 쥐어졌습니다. 당시에 저나 당신이나 모으기에 상당히 열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 이상한 것은, 그 때 저는 여자를 찾았기 때문에 당신을 만난 것이면서도, 왜 당신이 여자인지 몰랐던 것일까요? 이런 이야기에서 말장난과도 같이 쓰여지는 여자 라는 단어의 징그러움과 경악스러움을 저는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그 때는 제가 여자고 당신이 남자인 줄 깜빡 착각했습니다. 아마도 김군숙씨가 당시 계획하던 것들이 다 그런 류의 여자를 때리거나 싸게 하는 것들이고 저는 거기에 속아 넘어간거에요. 그 때까지만 해도 여자가 누굴 때린다는 소릴 전 어디서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그러니 남잔 줄 알았던거죠. 어쨌거나 바로 그 착각때문에 저와 김군숙씨 사이에서 저 혼자, 양 쪽 면이 분자부터 다르게 이루어 진 채로 맞붙은 하나의 벽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벽이 저를 8년 간 당신에게 제대로 된 질문조차 입으로 흘려보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지도에 기입하고 보니 당신이 완전히 여자였습니다.
당신도 저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를 겪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도 물건으로 착각하고, 본인도 물건으로 착각하고, 가끔은 어떤 것을 봤는지 안봤는지 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문제였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 잡다한 것들을 모두 모아놓은 수집장 만이 모든 희미한 것들을 지탱하는 유일한 의미가 되어버린 당신의 존재 위기상황에 대해서 저는 상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감당 못할 수납장에 대해서 저는 제 마음대로 그림그려 본 적이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사람에 대해 상습적으로 착각합니다. 최근들어 부쩍 저희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바로 어제, 이 비상 상황에 대해서 이미 아주 구체적이고 아찔한 결말을 쿠키도 안내고 미리 빼내어 은밀히 봤습니다. 그 결말은 착각의 공이 터져 수치심과 희열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저 먼 곳, 8년 전의 만남에서부터 꾸준히 불어나 이제 터질 만큼 팽창한 김군숙 공 덩어리가, 지도에 기입된 순간 산 윗등성이에서부터 빠르게 굴러져 내려와 지금에야 단단한 땅에서 마주한 당신의 실재와 부딪혀 한없이 하릴 없이 터져내리는 것입니다. 무너진 조각들에 시선이 머무는 끔찍한 수치. 그렇게 빼돌린 결말 속에서 저는 필연적으로 당신의 신체를 잃습니다. 이미 이 편지가 김군숙씨에게 가 닿게 두는 순간 저는 그렇게 선택한 것입니다. 신체와 글 중에서 제 글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제 근본적인 생존에 관련된 것으로 스스로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8년 간의 시간 동안에 김군숙씨는 실질적으로 저와 아무런 결탁도 맺지 않고 제 일부가 되었고 점점 그 입지를 넓혀갔습니다. 좌시한 저는 구태여 제가 좌절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하고 있는 모든 말은 결국에 김군숙씨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오게 된 말들임을 저는 이제는 쓸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그림 상 어디에 위치하며, 지도 상 역학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는 게 이렇게나 어려울 만큼 저는 그렇게 김군숙씨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김군숙씨와 레슬링 하기를 원하고, 당신의 질 속에 손가락을 넣기를 원합니다. 저는 글로밖에 말을 못합니다. 지금으로서 이상 편지에 더 적을 말은 없습니다. 2022년 12월 27일
빅피두가.
편지를 시작하기에 앞서 분명히 김군숙씨에게 편지로 전부 전해야 할 ‘그것’이 내 속에 머리 끝까지 가득 차있는데. 쓰려고 의식의 눈을 치켜뜨면 그 것 들은 그새 내장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사라져 도대체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질 않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는 꼴을 저는 지금 계속해서 견디고 있음을 알립니다.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 오로지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만약에 이것이 왜 편지여야만하고, 당신에게 전달되어야만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것’들이 당신을 향해 던져지기 위해서만 내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고립된 사람들을 끄집어내 만나도록 하는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기꺼이 이 편지의 의미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이것은 ‘그것’으로부터 시작해 밖으로 내가 나가는 과정입니다. 여기에 당신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살아서 멀쩡히 숨쉬는 김군숙씨를 지금부터라도 똑바로 보기 위해서 저는 이 편지를 씁니다. 그 말은 제가 김군숙씨를 알고 지내온 지난 8년 간 단 한번도 당신을 똑바로 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은 저의 타고난 근시안과 관련이 깊습니다. 김군숙씨는 언제나 3차원의 지도 상 제 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저는 가까이 있는 것밖에 보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에 대해서 상상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말하면 당신은 분개하며 틀렸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 먼 곳에서 어른거리는 희미한 상, 형태의 번짐으로부터 모두 제가 만들어낸 소설 속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저는 완전히 결백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김군숙씨를 억지로 시야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계략을 짜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부터 저는 김군숙씨가 나오는 꿈을 꾸게 되었고, 당신이 벌이는 일들에는 언제나 저도 모르게 끌어당겨졌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흘린 말들은 줍자마자 그 자리에 얼어붙어 아무 대답도 되보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당신의 고유한 이야기를 말살시키고 그 위에 제 망상을 뒤집어씌운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말 그럴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는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김군숙씨의 작고 어린 애같은 몸과 토마토처럼 못생긴 얼굴에, 트집 잡는 거만한 눈, 그 욕심 많은 입에서 쏘아붙여지는, 너무나도 카나리아처럼 까랑까랑한 여자 목소리에 흥분할 리가 없다는 것을요. 그런 김군숙씨를 원할 리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흥분했던 대상들과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쉽게 몸이 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와 친구가 될 것같지도 않아보이는 이 여자에게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문장을 사실로 정하고 사실을 이불 속에 뒤집어 쓴 채 자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됐거나 저는 8년 전에 멀어져가는 당신을 붙잡을 명분이 없었습니다. 결론이 이렇게 지어진 데에는 당시 김군숙씨의 말도 한 몫을 했습니다. 처음 만난 날 밤 섹스를 하고, 그 뒤 몇 번을 더 만나다가 서로 간에 연락이 없이 몇 달이 지난 후, 당신이 저를 보고싶다며 일하는 술집으로 와줄 수 없겠느냐고 한 날입니다. “제가 당신이랑 이전에 몇 번 만나서 잔 게 다인데, 섹스 말고 다른 일로 보고싶다고 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아요?” 어딘가 거짓스러운 얼굴로 퉁명스럽게 저에게 중얼거린 말입니다. 저는 저보다 열 일곱살이 많은 학교 강사와 동거 중이었고 그 사람은 자신 말고 다른 사람과 섹스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하고 저는 집에 왔습니다. 저는 그 이후 사적인 일로는 먼저 김군숙씨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당신이 나오는 꿈을 계속 꿨습니다.
8년 전 김군숙에 대한 사실 몇 가지 : 섹스를 굉장히 많이 함. 술 중독. 화를 많이 냄. 연인 있음. 못생겼음.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볼려던 사람은 김군숙씨였고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위독한 근시안 나름의 생존방식으로써 무의식 속에 거대하게 키워낸 나침반을 따라 저는 당신이 일하던 그곳에 갔어요. ‘어떻게 해보려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에 아무 효율성 없이, 그저 안가고는 견딜 수 없는 종류의 힘의 법칙을 발휘해서 그냥 갔던 것입니다. 2018년 4월 10일 새벽에는, 잠을 자다가 당신이 ‘살점이 베어물고 베어물리는 파티’에 저를 초대했는데, 파티 장소는 당신이 일하는 곳을 닮은 음침한 폐건물이고 그곳에 속한 제 방이 있었습니다. 즉 초대된 장소가 우리 집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강사의 집에서 빠져나와 우리 집으로 갔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다같이 애더럴을 먹고 살점을 물어뜯어 곳곳에 핏자국과 이빨자국이 난 동그란 살점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제 방에 들어가 잠들었지만 어떤 종교지도자 하나가 잠든 저의 옆에 앉더니 사람들에게 제 몸을 잘못된 예라고 가르쳤고, 모두 나간 후 김군숙씨와 당신의 동료만이 남아 손가락에 악어 그림 문신을 해주었습니다. 그 문신은 금새 10여 년이 더 지난 문신처럼 잉크가 번져 사라졌고 파티가 끝난 후 모두가 떠나고 김군숙씨도 떠났습니다. 어쨌거나 그곳은 우리집이었기 때문에 직접 화장실 샤워기로 핏자국을 흘려보내면서 뒷 일을 책임졌습니다.
동거하던 그 강사나 저나 서로간에 질긴 애정욕구와 인정욕구 외에 다른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섹스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깊은 속마음에 대한 예리한 성찰은 당시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짓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과 동거하기 이전 엄마가 대학병원에서 죽은지 1년이 갓 넘은 때 쯤에, 다니던 학교의 부속병원이 창밖 풍경의 전부인 네 평짜리 자취방에 살았습니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울 때마다 대학 병원 이라는 글자. 그리고 그 아래에 줄줄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진 창문들과 밤 늦게까지 띄엄띄엄 불이 켜진 병실이 눈에 보였는데, 상상 속 풋내를 풍기며 바쁘게 걸어다니는 간호사들이 나를 한없이 편안하게 안심시키는 동시에 곳곳의 켜진 병실에서 은근한 사람 죽어가는 쇳소리가 뒷통수를 날카롭게 후려갈겨 바닥에 쓰러뜨렸기 때문에 그 곳 탈출이 시급했습니다. 하루 종일 쓰러져 있기를 여러 날이었고 아무도 모르지만 그것은 비상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 강사는 체리색 몰딩을 두른 거실과 방 세 개를 가진 오래된 빌라에 살았고, 위 아래 옆 집 곳곳에는 젊은 가족과 초등학생들이 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사람의 부모님은 락스타처럼 늙은 저의 아빠와, 부처가 된 저의 엄마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체리 몰딩 빌라 근처에 살았습니다. 강사의 차를 타고 락스타와 부처의 집에 일주일에도 몇 번을 왔다갔다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탈모가 와서 듬성듬성 분홍색 민몸을 드러낸 채 건방지게 눈을 까뒤집으며 짖어대는 흰 포메라니안까지 있었습니다! 부처는 개를 처진 살집 속에 꼭 안아 보듬고 사과 조각이나 고구마 덩이를 입안에 넣어줬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기꺼이 그 강사에게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 그대로 애정을 줬습니다.
사람들은, 대화란 항상 진실을 쫓는 과정일 뿐 그곳에 정답과 결론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것처럼 굴까요? 사실 좀 다른 말인데, 사람들은 정말 대화를 이상하게 합니다. 대화에는 윤리와 변증법이란 게 있어서는 안됩니다. 대화는 일종의 오지 탐험이고 그 끝에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야만 하는 것이죠. 모르는 것을 향한 부딪힘이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서로의 얼굴에 비로소 가장 찬란한 미소가 지어질 것입니다. 이 당연한 것에 합의와 설득이 필요하다니 저는 가끔 멍청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과거의 저와, 제 조상들에게도, 살점을 물어뜯고 피가 솟구치는 찰나처럼 화가 납니다. 이 분노에는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이유에 대해 어떤 해명도 하고싶지 않습니다. 나는 별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 심각할 만큼 괴로운 수치심을 안고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만큼 나에 대한 태도가 호시절일 수가 없으니까요. 이 편지가 모든 것을 초치고 지금부터 당신이 저를 멀리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대해 저는 책임져야만 합니다. 당신에게 이것이 감당이 될까요? 전부 거짓말인 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인 것이죠. 저는 아무도 보증해주지 않는다해도 배우이고 거짓말로 목숨 건지는 사람이니까요. 눈덩이처럼 몸집이 불어난 7년 간의 망상의 댓가는 제가 치룰 것입니다. 내가 썼으니까요. 방금도 저는 수많은 ‘그것’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잊어버린 것들만이 아마도 진실일 것입니다.
제 뇌 안에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 모든 것 위에서 기능하는 지도가 한개 있습니다. 이 지도의 대략적인 구조는 설명하기에 매우 간단합니다. 그러나 길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도가 아니라, 미래에 내 행동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미리 관측하고 과거에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되짚기 위해 아주 사적으로 만들어진 지도입니다. 저는 이 지도를 만들 때 최초에 태양계의(Orrery)를 만들던 18세기의 순진한 과학자들의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투자를 받았으니까요. 근본적으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지 발견하고 그 위치가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관찰한 기록으로서 3차원의 지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 자신은, 이 태양계의 속에서 비틀어진 타원형 모양의 궤도를 가진 행성임이 얼마전에 밝혀졌고, 궤도에 따라 근 10년 간 급속도로 항성인 엄마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내 지도의 경우 이 ‘무엇 무엇’들은 모두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에 의해서만 궁극적으로 움직이거나 멈추기 때문입니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나를 기준으로한 2차원의 단면 그림을 뽑아낼 수 있는데, 이 그림이 가장 유용하게 참조하기 좋습니다. 소실점에 작고 푸른 블랙홀이 위치한 단순한 1점 투시 원근법에 따르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곧 제 눈에 맺힌 상이며, 소실점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엄마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달려오는 멀리서 달려오는 오토바이나 거대한 고라니들과 같이 잘 보이지 않는 것들만이 나를 치거나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반대로 손을 흔드는 친구나 오아시스, 산이나 집으로 가는 이정표와 같이 멀리 있는 것들만이 궁극적으로 목적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림 상으로는 소실점에 가장 가깝고 또 작아보이는 것들이 사실상 가장 큰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유구한 유전적 문화적 역사를 가진 태생적 근시안입니다. 먼 곳을 보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앞잡이가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기호로 태양계의같은 것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그간 아주 열정적으로 탐사선을 보내 멀리 있는 것들을 성실히 조사하고 연구했습니다. 엄마는 이미 내가 죽고 그가 사는 수중의 돌이킬 수 없는 압박이 있는 블랙홀 가까이에 갔습니다. 반면 지금 이 그림 상 가장 크게 보이는 것, 즉 내 눈 바로 앞에 있는 것으로는 지금이라도 당장 섹스할 수 있는 김진건씨가 있으며, 바로 그 뒤 줄지어 옛 연인의 얼굴들이 있습니다. 함께 동거한 강사는 옛 연인의 얼굴이 아니며 이미 가라앉은 난파선의 선장으로 훈장까지 받은채 전사해서 모랫 속에 겨우 형태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십대 중반이 넘어서야 모든 것을 다 굽혀 내어주고도 충분치 않은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다수의 연애사실에도 불구 그림에 정식 기입된 옛연인은 둘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군숙씨 당신이 엉뚱하게도 엄마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상한 빨간 빛을 내며 뻔뻔하게도 반짝이고 있고, 그 사실이 최근에 제 관심사가 된 것입니다.
빨간 빛을 내는 김군숙씨는 최근에 그 정체가 확실히 드러났으며, 그림에도 비교적 늦게 기입되었지만 그 기입 시기와 실재의 역사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실재의 근거로는 제가 꾼 유구한 꿈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빨간 라텍스 점프수트를 입고, 진작에 지도에 기입된 제 연인과 저 앞에서 뒹구는 바람에 제 부러움과 역겨움을 사고는 갑작스럽게 독일인으로 변장하여 택시를 타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떠난 적도 있습니다. 현실에서 저는 연인과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날 침대에서 일어나서 저는 치킨을 먹다가 그 연인과 눈물범벅으로 싸우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그러니까… 살점을 베어무는 파티와, 당신의 국비 전액지원 독일유학에 대해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식인 것입니다. 동시에 저는 당신이 일하는 곳에 계속해서 그저 술을 먹으러 가끔 가고, 하는 말들이나 표정 따위를 잘 담아뒀다가 다음 번 꿈에 멋지게 등장시키고의 반복일 뿐이었지만 그 속에서 어떤 것들은, 결국에 지도에 기입될 만큼, 수면 위로 올라올 만큼,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도록, 실제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술집에 더 이상 당신은 없었습니다. 그 때에 저는 당신의 얼굴을 직접 보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개인적으로도 그림 상 크게 보이는 것들의 위협에 휘말려 연인과 이별하고 일기도 쓰지 않았습니다. 일기라는 단어의 역겨움. 당신은 이 역겨움에 대해서 알고계시나요?
어느 날 난데없이 저는 김군숙씨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독립영화를 찍었는데, 하필이면 그 날이 첫 영화 상영일이라 술에 많이 취해있었습니다. 촬영 중 다른 사람들만 나오는 컷에 저도 모르게 난입하는 등 자꾸 실수를 하고 엔지를 냈습니다. 컷의 중앙에는 오토바이와 노란 천, 그리고 유명한 영화인이 한 명 있었고, 결정적으로 제가 계속 등장해야 하는 소품에 액체를 쏟고 말았습니다. 촬영 후에는 짐을 잃어버려 술에 취한 채로 그것을 찾으러 다니다가 친절한 아저씨가 있는 gs25편의점에서 다행히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발견한 그것을 또 분실하여 아저씨의 신의를 저버렸고, 저는 더욱 정신이 나가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계속 실수를 했습니다. 완전히 늦은 밤이 되자 당신이 일하던 술집에서 봤던 비쩍 마른 남자애와 에이즈가 걸린 남자애가 영어가 적힌 흰 반팔 배꼽티를 입고 벽과 사물이 모두 하얀 클럽에서 키스를 하며 춤을 췄습니다. 발치에서 그 춤을 올려다보는 저를 발견한 두 남자애들이 저에게도 춤을 추라 했지만 전 수치심에 도저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 끝에 김군숙씨를 다시 만나서 내가 다시 보지 않을 만큼 끔찍했느냐고 물었지만 김군숙씨는 그정도로 끔찍하지 않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당신의 아버지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에 당신이 자주 가는 편의점에서, 직원 아저씨를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눌 때, 그것이 그 어떤 김군숙씨의 친구들보다 익숙함에 속하는 편안함을 주는지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당신의 아버지가 무슨 일로 어떻게 죽었는지 하나도 모른 채 저는 소실점을 등에 업고 깨진 유리잔처럼 슬퍼했습니다. 그 후 1년 뒤 저는 실제로 당신이 일하던 술집에서 잠시 일을 했고 이후 같은 동네 다른 술집에서 2년 반째 일하고 있습니다.
지도와 그림 속 당신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레슬링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레슬링이라는게 뭔지 전혀 몰랐고, 몸으로 부딪혀 배우면서 그 특성을 하나씩 다시 배우게 됐습니다. 기본적으로 레슬링은 장난같이 푹신하고 질긴 폼블럭으로 된 원 안에 갇힌 두 원숭이가 서로 바닥에 한껏 납작 업드려 몸싸움을 하는 원색적인 꼴입니다. 촌스러울 만큼 직관적인 몸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손으로 갈고리를 만들어 상대의 목에 걸고 한쪽 팔은 어깨를 단단히 그러쥔 채로 서로 피가 쏠릴 만큼 얽혀서, 몸이 떼이면 그 즉시 머리로 하체를 파고들어 상대를 바닥에 넘어뜨립니다. 기술과 제압의 모양새가 한없이 곡선으로 휘어있습니다. 근육 가닥의 섬세한 쓰임보다도 무식한 밀착, 끈기, 힘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나 쉽게 포르노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김진건은 키가 작고 어린 남자 코치이고, 저를 처음 맡게 되었습니다. 평일 오전 반은 한 수업 당 수강생이 많아봐야 3명이고 오는 수강생이 요일별로 불규칙적으로 계속 바뀌는데 모두 하나같이 키가 크고 몸무게가 배로 나가기 때문에 언제나 김진건이 제 짝이 되어주었습니다. 김진건은 제가 여러모로 편하지 않은 수강생이라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눈에 멸시나 불쾌함이 없이 항상 나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저는 김진건의 단단한 두꺼운 허벅지 뒷쪽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내 머리를 허리에 밀착시키고, 그 자세에서 한참을 거울을 보며 기술과 자세에 대한 대화를 했습니다. 정말로 온갖가지 단순하고 즐거운 상상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 몸을 바닥에 넘어뜨리고, 뒷목을 꽉 쥐고 놓지 않거나, 뒷통수를 어지러울 만큼 조롱하듯 드리블할 수 있게 두 팔을 완전히 벌려 머리 뒤에 숨겨줍니다. 그리고 반대로 나를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실제로 넘어뜨려주고 제압해주었습니다. 아주 안전하고 장난같은 폼블럭 위에서. 손가락 한마디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맞붙어 두 눈빛을 교환하고 밀고 겨루는 감각을 매 시 느낄 줄 압니다. 김진건은 레슬러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생김새도 아주 단순해서 귀 조차도 완전히 부풀어올라 그 복잡한 곡절이 다 사라지고 매끄럽게 동그란 모양입니다.
어제 잠깐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며 레즈비언 소설집을 읽고 있는데 시야에 파란색 운동복의 짱짱한 다리가 단단하게 걸어와 제 책 앞 끄트머리에 박히는 것을 느끼고 위를 올려다보니 김진건이었습니다.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받은 김진건과 우연히 마주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정말 귀엽고 또 오만하지 않은 방식으로 내 옆에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하는 표정을 내비쳤습니다. 그 사람은 완벽히 근시안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만 저의 근시안과는 완전히다른, 제가 추측하기에 수영하는 자의 눈이 가진 특유의 근시안에 더 가까운, 그런 눈을 가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어차피 먼 곳을 볼 필요도 이유도 없이, 그 너머에 위험도 기대도 없을 것이며, 어쩌면 그만큼의 공간이라는게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주변이 그렇게 순진하고 안전할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체육관 사이트에서 김진건의 에스엔에스 페이지를 찾아냈는데, 정말 잘생기고 훤칠한 눈매의 정직한 증명사진 아래에 자기소개로 “레슬링하고 노래하는 삶”이라는 문구를 적어놓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의 노래에는 작고 귀여운 바다가 있었고 흥미를 자극할 만큼 위협적인 산호초가 무성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당신은 최근에 난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마도 저는 지금 김군숙씨의 남자친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만나고 있는 그 남자친구는, 똑똑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그 친구는, 당신과 이렇게나 흥분될 만큼 가까워서 레슬링까지 즐길 수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무한히 깊어서 소실점과 같은 깊은 곳까지 직접 탐색할 수 있나요? 그리고 그 사이를 거슬러 오르거나 미끄러져 내려가며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나요?
당신과 저는 그 때 섹스를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김군숙씨가 옷을 벗었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납니다. 우리는 각자 경험을 쌓고 열심히 그것들을 모을 때였고 개 중에 만난 사이였습니다. 각자가 모은 것과 경험한 것은 한 침대에서 일어나 완전한 별개의 다른 것으로 그 즉시 갈라져 각자 주먹에 쥐어졌습니다. 당시에 저나 당신이나 모으기에 상당히 열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 이상한 것은, 그 때 저는 여자를 찾았기 때문에 당신을 만난 것이면서도, 왜 당신이 여자인지 몰랐던 것일까요? 이런 이야기에서 말장난과도 같이 쓰여지는 여자 라는 단어의 징그러움과 경악스러움을 저는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그 때는 제가 여자고 당신이 남자인 줄 깜빡 착각했습니다. 아마도 김군숙씨가 당시 계획하던 것들이 다 그런 류의 여자를 때리거나 싸게 하는 것들이고 저는 거기에 속아 넘어간거에요. 그 때까지만 해도 여자가 누굴 때린다는 소릴 전 어디서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그러니 남잔 줄 알았던거죠. 어쨌거나 바로 그 착각때문에 저와 김군숙씨 사이에서 저 혼자, 양 쪽 면이 분자부터 다르게 이루어 진 채로 맞붙은 하나의 벽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벽이 저를 8년 간 당신에게 제대로 된 질문조차 입으로 흘려보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지도에 기입하고 보니 당신이 완전히 여자였습니다.
당신도 저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를 겪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도 물건으로 착각하고, 본인도 물건으로 착각하고, 가끔은 어떤 것을 봤는지 안봤는지 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문제였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 잡다한 것들을 모두 모아놓은 수집장 만이 모든 희미한 것들을 지탱하는 유일한 의미가 되어버린 당신의 존재 위기상황에 대해서 저는 상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감당 못할 수납장에 대해서 저는 제 마음대로 그림그려 본 적이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사람에 대해 상습적으로 착각합니다. 최근들어 부쩍 저희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바로 어제, 이 비상 상황에 대해서 이미 아주 구체적이고 아찔한 결말을 쿠키도 안내고 미리 빼내어 은밀히 봤습니다. 그 결말은 착각의 공이 터져 수치심과 희열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저 먼 곳, 8년 전의 만남에서부터 꾸준히 불어나 이제 터질 만큼 팽창한 김군숙 공 덩어리가, 지도에 기입된 순간 산 윗등성이에서부터 빠르게 굴러져 내려와 지금에야 단단한 땅에서 마주한 당신의 실재와 부딪혀 한없이 하릴 없이 터져내리는 것입니다. 무너진 조각들에 시선이 머무는 끔찍한 수치. 그렇게 빼돌린 결말 속에서 저는 필연적으로 당신의 신체를 잃습니다. 이미 이 편지가 김군숙씨에게 가 닿게 두는 순간 저는 그렇게 선택한 것입니다. 신체와 글 중에서 제 글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제 근본적인 생존에 관련된 것으로 스스로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8년 간의 시간 동안에 김군숙씨는 실질적으로 저와 아무런 결탁도 맺지 않고 제 일부가 되었고 점점 그 입지를 넓혀갔습니다. 좌시한 저는 구태여 제가 좌절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하고 있는 모든 말은 결국에 김군숙씨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오게 된 말들임을 저는 이제는 쓸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그림 상 어디에 위치하며, 지도 상 역학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는 게 이렇게나 어려울 만큼 저는 그렇게 김군숙씨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김군숙씨와 레슬링 하기를 원하고, 당신의 질 속에 손가락을 넣기를 원합니다. 저는 글로밖에 말을 못합니다. 지금으로서 이상 편지에 더 적을 말은 없습니다. 2022년 12월 27일
빅피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