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자리

김지수
언니가 죽은 뒤로 엄마는 내내 우울해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엄마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언니는 모두에게 친절했고 엄마에게 특히 살갑게 구는 사람이었지만 선우는 원래도 엄마와 그렇게 많은 말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엄마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처음엔 말수가 좀 줄었나 생각했었다. 그러다 종종 끼니를 거르기 시작하더니 얼마 못 가 끊었던 술을 마시고는 연락처에 있는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 신난 목소리로 뭔가를 잔뜩 떠들곤 했다. 엄마가 술을 마시는 건 탐탁지 않았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동안은 방금까지 우울해했던 게 거짓말이었다는 듯 즐거워했기에 선우는 그런 엄마를 말릴 수 없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고, 점점 술에 취한 엄마의 주사에 가까운 전화를 견뎌줄 사람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는 퇴근길에 소주를 한 병 사 오고, 저녁을 먹거나 안 먹고 나서 선우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면 안주도 없이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또 연락처를 뒤져 받지 않을 게 분명한 누군가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우라고 엄마를 마냥 방치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뭐라도 취미를 가져보는 건 어떻겠냐고, 매일 퇴근하고 TV만 보는 게 지루하면 전에 종종 하던 뜨개질을 하든, 이모처럼 춤을 배워 보든 뭐가 됐든 해보고 싶었던 게 있으면 시작해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계속해서 전화를 붙들고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다 곧이어 들어줄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으면 다시 우울에 잠길 뿐이었다. 하루는 엄마에게 진지하게 병원에 다녀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건 엄마의 싸늘한 눈빛과 이젠 자식까지 나를 미친년 취급한다는 신세 한탄이었다. 선우는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기가 뭘 하는 게 맞긴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또 깊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선우는 이런 상황에 진절머리가 났다. 사실은 선우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엄마의 우울을 걱정하는 척하고 있지만 그게 온전히 걱정만은 아니며 정확히는 귀찮음이라는 감정에 무게추가 더 실려 있다는 것을. 선우와 엄마의 사이가 좋건 나쁘건 둘은 한집에 살고 있었고 그건 각자가 어느 정도만큼은 서로에 대한 의무를 떠안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선우로서는 자기가 신경 쓰지 않을 정도만 된다면 엄마가 우울해하는 건 그렇게 중대한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해하고 있었기에, 그 지긋지긋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게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선우는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 다시 건조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은 집의 모든 물건들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병원 조리원으로 일하는 엄마는 오전 여섯 시에 일어나 선우보다 일찍 출근했고, 오후 한 시면 퇴근해 선우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날은 선우가 엄마보다 먼저 집에 돌아와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엄마에게 선우는 뒤로 숨겨놓았던 양손을 쑥 내밀며 말했다. 선물이야. 선우가 감추고 있던 건 작은 강아지였다. 꼬리를 마구 흔들며 반가운 티를 내지 못해 안달인 어린 개를 보고도 엄마는 묘하게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는데, 선우는 아무 반응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생각하기로 했다.
“뭐해 안 받고, 선물이라니까?” “너 어쩌려고 이런 걸 상의도 안 하고 집에 들여와 들여오긴.” “그냥 집도 휑하고 뭐라도 하나 기르고 싶었던 차에 데려온 거야. 엄마더러 돌보라고 안 할 테니까 좀 좋아하는 척 연기라도 해주지 그래.”
떠넘기듯 강아지를 안겨주는 선우 때문에 엄마는 마지못해 강아지를 받아들고는 돈이 남아돌아서 쓸데없는 걸 사 왔느냐, 귀찮고 집 더럽힐 줄이나 알지 뭐가 좋다고 선물이라고 이런 걸 주고 있느냐 타박을 했는데, 선우는 엄마의 이런 정떨어지는 퉁명스러운 대꾸에 오히려 안심이 되는 걸 느꼈다. 이게 그들의 ‘평소’였다. 한편으론 이런 데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자신에게 약간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수십 년을 함께 산, 그중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를 부양하는 데에 쓴 이제는 낡고 여기저기 닳아빠진 사람을 자신은 정말이지 단지 책임의 대상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선우는 엄마가 이렇게 타박할 기력은 남아있어 다행이라고 느끼면서도 좀 더 확실한 무언가를 원했다.
“돈 주고 사 온 거 아냐. 전에도 몇 번 말했잖아, 보호소에서 한 마리 입양해올까 싶다고.” “얘가 먹는 밥은 하늘에서 떨어진다니? 니가 데려왔으니까 니가 책임져 또 엄마한테 다 떠넘길 생각 하지 말고,” “엄마는 좀 말을 그렇게 안 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어? 뭐가 문제야 대체. 언니 죽고 벌써 몇 달째야, 이게. 걱정 안 하게 좀 하면 안 돼? 엄마가 말했잖아. 서로 신경 쓰일만한 일은 하지 말자고. 내가 오죽하면 겨우 이런 강아지나 들고 와서 이러고 있겠냐고 제발.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병원에 가든가 집에서 이러고 궁상떨면서 소주나 마시지 말고.”
자기가 내뱉고도 선우는 그 냉랭한 말에 조금 놀랄 정도였다. 무슨 문제를 겪고 있는지 서로가 말을 안 할 뿐 뻔히 다 알고 있는데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을까. 선우는 언제나 엄마와 연관된 일에서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취미를 권하니 강아지를 데려오니 하는 모든 행동들도 사실 실패할 것이 자명하지만 뭐라도 시도는 해봤다는 변명이라도 남기고 싶었기 때문에 한 것이라는 걸 선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엄마를 몰아세우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선우는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엄마의 발에 고정한 채로 엄마의 말을 기다렸다. 목이 아파질 만큼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엄마는 입을 열었다.
“너도 내 걱정이란 걸 하긴 하니?”
이제 뒤에 따라올 말은 몇 가지로 추려볼 수 있었다. 너는 애가 말하는 싸가지가 그렇게밖에 안 되니? 엄마가 너 그렇게 가르쳤니 넌 꼭 같은 말을 해도 그렇게밖에 못하는 거 같다 너 이러는 거 보니 밖에서도 어떻게 하고 다닐지 훤히 보인다. 그중 무엇이라도 이번에는 기쁘게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얼른 나를 다그치고 모욕주고 힐난하고 뭐라도 좋으니 기력이 왕성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얼른, 이번에는 화도 무엇도 안 내고 그냥 얌전히 들어주다 들어가 버릴 테니까. 선우는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러나 선우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고 돌아온 건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어떤 것이었다. 엄마는 지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남기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죽일 년이다. 내가 잘못했어. 그만하자 이제.”
선우는 망연한 표정이 되어 앞으로가 더 지옥 같겠다는 걸 직감한 듯 욕을 지껄였다. 선우의 발밑에서는 강아지가 열심히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네 직감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 엄마는 대화가 있은 후로 며칠간은 선우를 의식이라도 하듯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하루걸러 하루씩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고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우는 소리로 신세 한탄을 하지도 않았다.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는 걸 표내듯이 선우가 퇴근하고 오면 주방은 방금 설거지 된 그릇들로 반짝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싸늘하게 대하며 ‘이런 거’ 취급이나 하던 강아지를 무릎에 앉혀놓고 선우가 거실에 나올 때마다 보란 듯이 쓰다듬었다. 배배 꼬인 속으로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지금 시위라도 하냐고 비웃고 싶었지만 선우는 거기다 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원한 게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평소의 모습이면서 정작 엄마가 그걸 보란 듯이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났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괜찮은 모습 보이기를, 그것도 진정성 있게 해내기를, 악마 같은 마음으로 순전히 자기를 위해서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다는 말만 머리에 잔뜩 떠올랐다. 정작 대체 무얼 참을 수 없다고 느끼는지 선우는 알지 못했다. 선우는 그냥 그게 연기든 시위든 정말로 괜찮아진 거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신경 쓸 일이 하나 준 셈이니까. 선우가 해야 할 일이라곤 꼬박꼬박 개 사료를 주는 것과 배변 패드를 갈아주는 것뿐이었다.
이 주가 지나고서야 선우는 엄마가 개를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선우가 지은 보리라는 이름이 별로였는지 엄마는 그냥 이 녀석아, 얘 등으로 보리를 불렀는데, 확실히 보리와 함께 있을 때 엄마는 전보다 덜 우울한 것처럼 보였다. 술을 여전히 마시긴 했지만 전보다 적게 마셨고, 마시고서도 전화를 부여잡는 일은 이제 없었다. 엄마는 보리를 귀여워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도 자기가 마음을 다 열진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듯 가끔 방 안에 들어가서는 보리가 열어달라고 방문을 북북 긁어대도 열어주지 않곤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런 정도의 모습은 오히려 쌀쌀맞은 엄마의 성격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럴 때면 선우는 보리를 안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보리를 데려오기까지 그토록 오래 고민한 게 무색하게도 일단은 평화 비슷한 게 집에 찾아온 것 같았다. 언제라도 이 평화가 부서질 수 있으며 그건 엄마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이 선우는 내심 불편했지만, 서른이 넘어서도 마땅히 독립할만한 돈을 모으지 못해 얹혀사는 입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달리 말하면 언제든 돈이 모이기만 하면 선우는 이 지긋지긋한 집과 엄마에게서 벗어날 작정이었다. 그게 서로에게 더 나을 것이다. 적어도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지만 않으면 엄마를 좀 더 ‘진실하게’ 걱정할 수 있겠지, 선우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이 독립하게 되고, 엄마와 적당한 거리감이 생기면 자신이 남들을 걱정하는 만큼은 엄마를 걱정할 수 있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보리를 센터에서 데려올 때 선우는 접종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려 들었고, 입양 공고가 올라온 아이들은 모두 접종이 완료된 상태라는 센터 봉사자의 설명을 듣고도 의심을 거두지 못했었다. 때문에 보리가 집에 적응하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근처의 동물병원을 찾아가 접종 여부를 재확인하고, 보리가 정말로 건강한 개가 맞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선우가 보리를 데려오기로 결정했을 때, 개나 고양이는 어릴 때 예기치 못하게 죽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라 몹시 불안해했는데, 만약 엄마가 깊이 정을 붙인 상황에서 보리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건 엄마의 상태를 더 악화시키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의사는 보리는 매우 건강한 강아지고, 유전병도 마땅히 없어 보이며, 접종도 훌륭히 받은 녀석이라고 말했다. 의사는 보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앞으로 할 일은 주기적으로 접종 시기가 돌아오면 병원에 데리고 오는 일, 간혹 이상 행동을 하면 건강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진료를 보러 오는 일밖에는 없을 것이라며 보호자분이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도 선우가 많이 불안해 보였던 것이리라. 약간의 민망함을 느끼며 선우는 감사하다고 연신 의사의 강아지 털이 붙은 손을 잡고 흔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선우는 드디어 모든 걱정에서 해방이라며,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다시 땅으로 시선을 푹 꺼트리며 한숨을 쉬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보리 건강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말하자 엄마는 관심 없다는 듯 대강 알겠다고만 했다. 이제 정말 불안해할 일은 하나도 남지 않은 듯했다. 선우는 이런 평온함을 원했으면서도, 한편으론 자꾸 모든 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불길함을 느꼈다. 정적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파열음처럼, 하나하나 다 문제없다는 확인을 받을수록 그런 불길함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니었다. 단순히 예민한 걸 넘어서 병적으로 과민한 성격은 오랜 신경증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선우는 이번에도 그냥 그 탓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을 참기 힘들었다.
몇 주가 더 지나고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정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어갈 때쯤, 선우는 겨우 얻은 이 건조하고, 조금 한가롭고, 신경 쓸 일이라곤 배변 패드 가는 것과 사료 부어주는 것밖에 없는 생활이 주는 안정감에 어색해하고 있었다. 엄마와 사소한 말다툼을 하지 않은 지도 꽤 된 것 같았다. 서로 얼마든지 지독한 말을 내뱉으면 싸우곤 했던 둘은 중간에 보리가 끼어든 후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처음 깨달은 사람들처럼 말을 삼키고 방금까지의 일은 없었던 양 행동하곤 했다. 이 작은 털뭉치가 정말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선우는 생각했다.
그 일은 별다른 예고 없이 찾아왔다. 선우가 늦게 퇴근하던 날, 엄마는 웬일로 외출을 한 건지 집은 비어있었고 보리는 혀를 축 늘어뜨린 채 좁은 거실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있었다. 보리가 문 여는 소리를 듣고도 반기러 나오지 않은 걸 보니 깊이 잠든 거라고 생각했던 선우는 바닥이 차가워 담요 위로 보리를 옮겨주려 안아 들었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다. 보리의 상태가 나빠 보였다. 선우는 곧장 이전의 그 병원으로 달려갔고, 진료실에서 들려오는 끙끙 앓는 개의 신음을 견디며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날이 추웠던 탓일까, 그런데 개가 감기에 걸리기도 하나, 큰 병은 아니겠지, 의사가 건강에는 문제가 없댔어,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건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반복되는 물음에 지쳐갈 즈음 의사가 선우를 불렀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선우에게 보리의 상태에 대해 말했는데, 그걸 듣고 선우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의사의 말은 몹시 복잡하게 들리는 동시에 아주 간단히 요약할 수도 있었다. 보리가 지독한 병에 걸렸다. 애써 무시해오던 불길함이 그것 보라며 내 말이 맞지 않았냐며 비웃는 듯한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치료받으면 낫기는 하는 병인가요? 선우가 물었고 의사는 그래도 초기에 발견했기에 경우에 따라 예후가 좋으면 발을 좀 절긴 하겠지만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응급진료비에 주사비, 입원비까지 치료비가 어마어마하게 깨지겠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제 막 개에게 정을 붙이기 시작한 듯 보이는 엄마를 생각해서도, 엄마에게 신경을 좀 덜 쓰고 싶은 선우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기가 아픈 줄도 모르고 바보 같이 웃어 보이던 개를 위해서도 치료는 성공적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선우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엄마도 방금 돌아온 건지 둘은 현관에서 마주쳤고, 엄마는 어디 다녀오는 거냐고 물었다. 보리에 대해 설명하자 엄마는 선우가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는데, 그래서 낫는 병이냐고, 그건 다시 말해 안 낫는 병이라면 치료를 할 필요가 있겠냐는 말이었다. 선우는 그게 너무 끔찍하게 싫었는데, 이건 자기혐오일까 아니면 내 안에 있는 엄마 같음을 싫어하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선우가 의사의 말을 앵무새처럼 읊어주자 엄마는 한숨을 쉬며 알았다고 했다. 보리가 없는 집에는 정적만 흘렀다.
다음날 보리를 데리러 병원으로 찾아간 선우는 진료실에서 마주한 보리의 상태가 언제 아팠냐는 듯 건강해보이자 어제 들었던 의사의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의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금 초조해보였고 여전히 우물쭈물하는 듯한 태도로 말을 꺼냈다. 그의 설명은 여전히 복잡한 편이었는데, 이야기를 듣는 선우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파리하게 질려갔다. 선우는 의사의 말을 중간에 끊고 말했다. 선생님 그래서 보리가 나았다는 건가요 안 나았다는 건가요. 의사는 잠깐 멈칫하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선우는 의사의 말을 잠자코 듣다 그가 말을 끝내자 알겠습니다, 라고만 하고 보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내내 의사의 말들이 귀 속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아 선우는 몇 번이고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완치는 없다. 주기적 치료가 필요하다. 적어도 주에 한 번. 치료비가 꽤 나올 거다. 힘드시겠지만 이겨내셔야. 뭘 어떻게 이겨내라는 건지, 선우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보리가 두 번만 더 치료를 받아도 선우의 월급보다 치료비가 더 컸다.
보리의 문제만으로도 선우는 충분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그런 선우를 더 화나게 한 건 늘 그렇듯이 엄마였다. 엄마는 보리가 아프기 시작하고부터 보리라는 개가 집에 있기는 했었냐는 듯 입을 싹 닦고 시선 한 번을 안 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을 닫아 걸은 뒤 아예 보리를 없는 취급했다. 그건 결국 처음 엄마의 말대로 니 개니까 니가 알아서 하라는, 즉 보리의 치료비를 온전히 선우더러 알아서 내라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겨우 며칠 전까지도 자기 손을 타던 작은 개를, 병에 걸려 어마어마한 치료비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취급을 달리하는 그 비정함에 선우는 구역질이 났다. 선우라고 마냥 보리가 안타깝기만 한 건 아니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선우를 반기며 꼬리를 흔드는 보리를 보면 안쓰러운 동시에 어쩌다 이런 병든 개를 받아온 건지 화가 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유기견 센터 번호로 전화를 걸어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다가도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며 진정하기를 반복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보리가 병에 걸린 건 보리의 잘못도 아니고 선우의 잘못도 아니고 엄마의 잘못도 아니며 의사의 잘못도 아니고 센터 직원들의 잘못도 아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이 말을 외워댈수록 선우는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 걸 막기 힘들었다. 그럼 보리는 왜 병에 걸린 건데? 그것도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병에 걸린 건데? 정말 아무의 잘못도 아닌 게 맞나? 이런 질문은 처음부터 해답이 없었기에 선우는 그냥 막막한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그 막막함이 쌓이고 쌓이다 못 참을 만큼 차오르면 선우는 엄마의 방으로 들어가 악다구니를 썼다. 선우가 유일하게 화를 참지 않고 쏟아낼 수 있는 대상은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선우가 소리를 질러대며 화를 낼 때면 항상 네 마음대로 지껄여보라는 건지 찡그린 표정으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선우가 제 풀에 지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다 했으면 나가라는 듯 고개를 휙 돌려버리곤 했다. 시간은 하루하루 착실히 지나가 또 보리의 치료일이 다가왔고 선우는 또 엄마의 방에 들어가 엄마에게 따지듯 화를 풀었다. 그러나 이번엔 엄마도 가만있지 않았다.
“엄마는 쟤가 불쌍하지도 않아? 어떻게 어제까지 끌어안고 쓰다듬고 했던 애를 치료비 하나 많이 든다고 그렇게 태도를 싹 바꿀 수가 있어.” “얘가 지금 누굴 돈에 미친년 취급을 해? 내 태도가 바뀌면 뭐 얼마나 바뀌었다고 너 이렇게 싸가지 없이 엄마 앞에서 악을 써, 악을 쓰긴.” “엄마는 이 와중에도 내가 공손하게 굴길 바라는 거야? 최악이야. 엄마는 진짜 최악이라고.” “너 나더러 태도 바뀌었다고 말할 자격이나 있니? 당장 너부터가 지금 저 개 병원에 데려가려니까 치료비 생각나서 또 나한테 대신 화풀이 하고 있는 거 아냐.”
선우는 더는 말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일방적으로 방을 나왔다. 거실에는 오가는 고성에 보리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선우는 보리를 안아들고 병원으로 갔다. 치료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선우는 카드 몇 개로 보리의 병원비를 나눠서 결제했다. 의사에게 혹시 치료 주기를 조금 느슨하게 할 순 없는지 물어봤는데 의사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다 이내 선우의 난감하다는 얼굴에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 깊이 걱정하는 표정을 다시 꾸며냈다. 의사가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곤란해하는 사이 선우는 알겠다는 듯 보리를 품에 안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바람이 쌀쌀했는데, 품으로 파고드는 보리를 데리고 어디로 가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가 몇 번 바뀌고서야 선우는 길을 건넜다.
몇 주가 더 지나고, 보리의 치료도 몇 번 더 이어지고, 보리는 좀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건강해보였고, 선우는 부어놓은 적금을 깨면서까지 치료비를 대고 있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이걸 갖고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계산이 서질 않았다. 엄마의 말이 맞았다는 걸 인정하기는 정말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우는 보리가 부담스러웠고 이내 밉기까지 했다. 엄마의 말대로 선우는 보리에게 내지 못할 화를 엄마에게 대신 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선우는 엄마에게 찾아가 악다구니를 쓰는 걸 관뒀다. 넋을 빼놓고 다닌 탓에 회사에서도 핀잔을 듣기 시작했을 무렵, 선우는 거실에서 졸고 있는 보리를 보고 지긋지긋하다는 듯 소리를 빽 질렀다. 차라리 다른 개들처럼 문 열어놓은 새에 도망이라도 가버리던가, 시름시름 앓을 게 아니라 차라리 단번에 죽어버려서 눈물 흘리며 추모하는 신세가 더 낫겠다며 독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개는 도망도 안 가고 죽지도 않은 채 풀썩 주저앉은 자기 앞에서 순진한 눈망울로 꼬리를 흔들고 헥헥댈 뿐이었다. 선우는 그런 개가 밉다가도 어쩔 도리 없이 껴안아주게 되었다. 선우는 보리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보리가 건강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를 위해 필요한 치료비는 선우로 하여금 둘을 놓고 망설이게 만들었고, 선우는 그게 너무 징그럽게 느껴졌다.
결국 선우는 이대로는 지속할 수 없다고, 개의 치료든 무엇이든, 엄마와 결정을 짓는 수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선우의 생활은 파탄에 가까웠다. 생활비는 줄일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최소한도로 쪼그라들어 있었고, 더는 깰 수 있는 적금도 없었으며 사채라도 끌어다 쓰지 않는 한, 치료비를 낼 방법이 없었다. 엄마도 많은 돈을 버는 게 아닌 걸 알지만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빌 작정이었다. 엄마는 선우가 자기를 불러내는 게 귀찮아보였다. 한동안 안 하더니 또 화풀이라도 하러 온 거냐며 비꼬는 엄마에게 선우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말을 꺼냈다.
“보리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어.”
엄마는 그래서 뭘 어떡하라는 거냐는 눈빛이었다.
“엄마가 정말 사람이라면, 보리 치료비에 얼마라도 보태줘야 한다는 말이야. 이대로 나 혼자서 내다가는 당장 다음 달부터 병원에 못 가.” “너 엄마가 얼마 버는지 뻔히 아는 애가 그거 보태달라는 말이 나오니 지금?” “많이 달라고 하는 거 아냐. 얼마라도, 그냥 줄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보태달라고. 그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엄마.” “어차피 치료 계속 한다고 개가 사는 것도 아니고 뭐 하러 헛돈을 써. 너 내가 처음에도 물어봤지. 그래서 낫는 병이냐고. 낫는 병도 아닌데 괜히 네가 애쓴다고 바뀔 거 없어. 나도 어차피 거기다 보탤 여력 없으니 그렇게 알아라.”
엄마 나름대로의 위로였을까. 선우도 자기가 애쓴다고 바뀔 게 없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개가 죽어가는 걸 곁을 지키며 볼 자신이 없었기에 이렇게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하고 있는 건데, 엄마의 말은 전과 마찬가지로 옳은 듯 보였으나 비정했다. 선우는 엄마가 아무리 모진 말을 해도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엄마와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돈을 보태라는 구걸을 하러 온 거였으니까. 그러나 엄마의 말은 마음을 굳게 먹은 선우에게도 견디기 힘들었다. 선우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말했고 엄마도 지지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나 혼자 좋자고 보리 데려왔어? 엄마가 하도 지랄맞게 우울해하니까 내가 뭐라도 해보려고 개까지 갖다 바치면서 아양 떤 거 아냐.” “개 데려와달라고 부탁한 사람 여기 아무도 없다. 니 개 하나 니가 알아서 하지 못할 거면서 애초에 데려오길 왜 데려와!”
선우는 정말 더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었다. 엄마가 끝까지 보리를 ‘니 개’라고 부르는 게 정말 엄마답다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방을 나가려는 선우에게 엄마는 끝까지 한마디를 더 보태며 비웃었다.
“그러게 그만한 각오도 돈도 없었으면서 무슨 순진한 생각으로 덜컥 개부터 데려온 거니?”
선우는 돌아서서 엄마에게 그만하자고, 이제 됐다며, 인간말종과는 더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는 그러는 너도 저 개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고 선우는 선뜻 아니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이것 보라고, 나만 쓰레기로 만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곤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병든 개는 거실 바닥에 배를 대고 색색거리는 소리를 내며 누워있었다. 선우는 보리가 아파서 그런 건지 그냥 깊이 잠에 든 건지 구분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선우는 몇 주 만에 깊은 잠에 든다. 선명하지 않은 기억들이 이어지다 선우는 실로 간만에 꿈을 꾼다. 꿈에서 선우는 여전히 방에 잠든 채 누워있는데, 미세하게 열린 문틈으로 거실에 서있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조금 놀라있었나,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쓰레기봉투에 개를 담아 집 밖으로 나간다. 선우는 벌떡 일어나 숨을 헐떡인다. 깨어난 후에도 한동안 방금 본 광경이 꿈인지 현실인지 어지럽지만 그걸 확인하는 게 두렵다. 방 밖에는 개가 자고 있을 것이다. 색색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선우는 다시 눈을 감는다.
김지수
선우는 이런 상황에 진절머리가 났다. 사실은 선우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엄마의 우울을 걱정하는 척하고 있지만 그게 온전히 걱정만은 아니며 정확히는 귀찮음이라는 감정에 무게추가 더 실려 있다는 것을. 선우와 엄마의 사이가 좋건 나쁘건 둘은 한집에 살고 있었고 그건 각자가 어느 정도만큼은 서로에 대한 의무를 떠안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선우로서는 자기가 신경 쓰지 않을 정도만 된다면 엄마가 우울해하는 건 그렇게 중대한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해하고 있었기에, 그 지긋지긋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게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선우는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 다시 건조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은 집의 모든 물건들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병원 조리원으로 일하는 엄마는 오전 여섯 시에 일어나 선우보다 일찍 출근했고, 오후 한 시면 퇴근해 선우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날은 선우가 엄마보다 먼저 집에 돌아와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엄마에게 선우는 뒤로 숨겨놓았던 양손을 쑥 내밀며 말했다. 선물이야. 선우가 감추고 있던 건 작은 강아지였다. 꼬리를 마구 흔들며 반가운 티를 내지 못해 안달인 어린 개를 보고도 엄마는 묘하게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는데, 선우는 아무 반응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생각하기로 했다.
“뭐해 안 받고, 선물이라니까?” “너 어쩌려고 이런 걸 상의도 안 하고 집에 들여와 들여오긴.” “그냥 집도 휑하고 뭐라도 하나 기르고 싶었던 차에 데려온 거야. 엄마더러 돌보라고 안 할 테니까 좀 좋아하는 척 연기라도 해주지 그래.”
떠넘기듯 강아지를 안겨주는 선우 때문에 엄마는 마지못해 강아지를 받아들고는 돈이 남아돌아서 쓸데없는 걸 사 왔느냐, 귀찮고 집 더럽힐 줄이나 알지 뭐가 좋다고 선물이라고 이런 걸 주고 있느냐 타박을 했는데, 선우는 엄마의 이런 정떨어지는 퉁명스러운 대꾸에 오히려 안심이 되는 걸 느꼈다. 이게 그들의 ‘평소’였다. 한편으론 이런 데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자신에게 약간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수십 년을 함께 산, 그중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를 부양하는 데에 쓴 이제는 낡고 여기저기 닳아빠진 사람을 자신은 정말이지 단지 책임의 대상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선우는 엄마가 이렇게 타박할 기력은 남아있어 다행이라고 느끼면서도 좀 더 확실한 무언가를 원했다.
“돈 주고 사 온 거 아냐. 전에도 몇 번 말했잖아, 보호소에서 한 마리 입양해올까 싶다고.” “얘가 먹는 밥은 하늘에서 떨어진다니? 니가 데려왔으니까 니가 책임져 또 엄마한테 다 떠넘길 생각 하지 말고,” “엄마는 좀 말을 그렇게 안 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어? 뭐가 문제야 대체. 언니 죽고 벌써 몇 달째야, 이게. 걱정 안 하게 좀 하면 안 돼? 엄마가 말했잖아. 서로 신경 쓰일만한 일은 하지 말자고. 내가 오죽하면 겨우 이런 강아지나 들고 와서 이러고 있겠냐고 제발.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병원에 가든가 집에서 이러고 궁상떨면서 소주나 마시지 말고.”
자기가 내뱉고도 선우는 그 냉랭한 말에 조금 놀랄 정도였다. 무슨 문제를 겪고 있는지 서로가 말을 안 할 뿐 뻔히 다 알고 있는데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을까. 선우는 언제나 엄마와 연관된 일에서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취미를 권하니 강아지를 데려오니 하는 모든 행동들도 사실 실패할 것이 자명하지만 뭐라도 시도는 해봤다는 변명이라도 남기고 싶었기 때문에 한 것이라는 걸 선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엄마를 몰아세우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선우는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엄마의 발에 고정한 채로 엄마의 말을 기다렸다. 목이 아파질 만큼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엄마는 입을 열었다.
“너도 내 걱정이란 걸 하긴 하니?”
이제 뒤에 따라올 말은 몇 가지로 추려볼 수 있었다. 너는 애가 말하는 싸가지가 그렇게밖에 안 되니? 엄마가 너 그렇게 가르쳤니 넌 꼭 같은 말을 해도 그렇게밖에 못하는 거 같다 너 이러는 거 보니 밖에서도 어떻게 하고 다닐지 훤히 보인다. 그중 무엇이라도 이번에는 기쁘게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얼른 나를 다그치고 모욕주고 힐난하고 뭐라도 좋으니 기력이 왕성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얼른, 이번에는 화도 무엇도 안 내고 그냥 얌전히 들어주다 들어가 버릴 테니까. 선우는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러나 선우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고 돌아온 건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어떤 것이었다. 엄마는 지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남기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죽일 년이다. 내가 잘못했어. 그만하자 이제.”
선우는 망연한 표정이 되어 앞으로가 더 지옥 같겠다는 걸 직감한 듯 욕을 지껄였다. 선우의 발밑에서는 강아지가 열심히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네 직감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 엄마는 대화가 있은 후로 며칠간은 선우를 의식이라도 하듯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하루걸러 하루씩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고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우는 소리로 신세 한탄을 하지도 않았다.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는 걸 표내듯이 선우가 퇴근하고 오면 주방은 방금 설거지 된 그릇들로 반짝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싸늘하게 대하며 ‘이런 거’ 취급이나 하던 강아지를 무릎에 앉혀놓고 선우가 거실에 나올 때마다 보란 듯이 쓰다듬었다. 배배 꼬인 속으로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지금 시위라도 하냐고 비웃고 싶었지만 선우는 거기다 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원한 게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평소의 모습이면서 정작 엄마가 그걸 보란 듯이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났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괜찮은 모습 보이기를, 그것도 진정성 있게 해내기를, 악마 같은 마음으로 순전히 자기를 위해서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다는 말만 머리에 잔뜩 떠올랐다. 정작 대체 무얼 참을 수 없다고 느끼는지 선우는 알지 못했다. 선우는 그냥 그게 연기든 시위든 정말로 괜찮아진 거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신경 쓸 일이 하나 준 셈이니까. 선우가 해야 할 일이라곤 꼬박꼬박 개 사료를 주는 것과 배변 패드를 갈아주는 것뿐이었다.
이 주가 지나고서야 선우는 엄마가 개를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선우가 지은 보리라는 이름이 별로였는지 엄마는 그냥 이 녀석아, 얘 등으로 보리를 불렀는데, 확실히 보리와 함께 있을 때 엄마는 전보다 덜 우울한 것처럼 보였다. 술을 여전히 마시긴 했지만 전보다 적게 마셨고, 마시고서도 전화를 부여잡는 일은 이제 없었다. 엄마는 보리를 귀여워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도 자기가 마음을 다 열진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듯 가끔 방 안에 들어가서는 보리가 열어달라고 방문을 북북 긁어대도 열어주지 않곤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런 정도의 모습은 오히려 쌀쌀맞은 엄마의 성격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럴 때면 선우는 보리를 안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보리를 데려오기까지 그토록 오래 고민한 게 무색하게도 일단은 평화 비슷한 게 집에 찾아온 것 같았다. 언제라도 이 평화가 부서질 수 있으며 그건 엄마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이 선우는 내심 불편했지만, 서른이 넘어서도 마땅히 독립할만한 돈을 모으지 못해 얹혀사는 입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달리 말하면 언제든 돈이 모이기만 하면 선우는 이 지긋지긋한 집과 엄마에게서 벗어날 작정이었다. 그게 서로에게 더 나을 것이다. 적어도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지만 않으면 엄마를 좀 더 ‘진실하게’ 걱정할 수 있겠지, 선우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이 독립하게 되고, 엄마와 적당한 거리감이 생기면 자신이 남들을 걱정하는 만큼은 엄마를 걱정할 수 있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보리를 센터에서 데려올 때 선우는 접종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려 들었고, 입양 공고가 올라온 아이들은 모두 접종이 완료된 상태라는 센터 봉사자의 설명을 듣고도 의심을 거두지 못했었다. 때문에 보리가 집에 적응하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근처의 동물병원을 찾아가 접종 여부를 재확인하고, 보리가 정말로 건강한 개가 맞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선우가 보리를 데려오기로 결정했을 때, 개나 고양이는 어릴 때 예기치 못하게 죽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라 몹시 불안해했는데, 만약 엄마가 깊이 정을 붙인 상황에서 보리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건 엄마의 상태를 더 악화시키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의사는 보리는 매우 건강한 강아지고, 유전병도 마땅히 없어 보이며, 접종도 훌륭히 받은 녀석이라고 말했다. 의사는 보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앞으로 할 일은 주기적으로 접종 시기가 돌아오면 병원에 데리고 오는 일, 간혹 이상 행동을 하면 건강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진료를 보러 오는 일밖에는 없을 것이라며 보호자분이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도 선우가 많이 불안해 보였던 것이리라. 약간의 민망함을 느끼며 선우는 감사하다고 연신 의사의 강아지 털이 붙은 손을 잡고 흔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선우는 드디어 모든 걱정에서 해방이라며,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다시 땅으로 시선을 푹 꺼트리며 한숨을 쉬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보리 건강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말하자 엄마는 관심 없다는 듯 대강 알겠다고만 했다. 이제 정말 불안해할 일은 하나도 남지 않은 듯했다. 선우는 이런 평온함을 원했으면서도, 한편으론 자꾸 모든 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불길함을 느꼈다. 정적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파열음처럼, 하나하나 다 문제없다는 확인을 받을수록 그런 불길함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니었다. 단순히 예민한 걸 넘어서 병적으로 과민한 성격은 오랜 신경증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선우는 이번에도 그냥 그 탓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을 참기 힘들었다.
몇 주가 더 지나고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정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어갈 때쯤, 선우는 겨우 얻은 이 건조하고, 조금 한가롭고, 신경 쓸 일이라곤 배변 패드 가는 것과 사료 부어주는 것밖에 없는 생활이 주는 안정감에 어색해하고 있었다. 엄마와 사소한 말다툼을 하지 않은 지도 꽤 된 것 같았다. 서로 얼마든지 지독한 말을 내뱉으면 싸우곤 했던 둘은 중간에 보리가 끼어든 후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처음 깨달은 사람들처럼 말을 삼키고 방금까지의 일은 없었던 양 행동하곤 했다. 이 작은 털뭉치가 정말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선우는 생각했다.
그 일은 별다른 예고 없이 찾아왔다. 선우가 늦게 퇴근하던 날, 엄마는 웬일로 외출을 한 건지 집은 비어있었고 보리는 혀를 축 늘어뜨린 채 좁은 거실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있었다. 보리가 문 여는 소리를 듣고도 반기러 나오지 않은 걸 보니 깊이 잠든 거라고 생각했던 선우는 바닥이 차가워 담요 위로 보리를 옮겨주려 안아 들었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다. 보리의 상태가 나빠 보였다. 선우는 곧장 이전의 그 병원으로 달려갔고, 진료실에서 들려오는 끙끙 앓는 개의 신음을 견디며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날이 추웠던 탓일까, 그런데 개가 감기에 걸리기도 하나, 큰 병은 아니겠지, 의사가 건강에는 문제가 없댔어,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건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반복되는 물음에 지쳐갈 즈음 의사가 선우를 불렀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선우에게 보리의 상태에 대해 말했는데, 그걸 듣고 선우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의사의 말은 몹시 복잡하게 들리는 동시에 아주 간단히 요약할 수도 있었다. 보리가 지독한 병에 걸렸다. 애써 무시해오던 불길함이 그것 보라며 내 말이 맞지 않았냐며 비웃는 듯한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치료받으면 낫기는 하는 병인가요? 선우가 물었고 의사는 그래도 초기에 발견했기에 경우에 따라 예후가 좋으면 발을 좀 절긴 하겠지만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응급진료비에 주사비, 입원비까지 치료비가 어마어마하게 깨지겠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제 막 개에게 정을 붙이기 시작한 듯 보이는 엄마를 생각해서도, 엄마에게 신경을 좀 덜 쓰고 싶은 선우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기가 아픈 줄도 모르고 바보 같이 웃어 보이던 개를 위해서도 치료는 성공적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선우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엄마도 방금 돌아온 건지 둘은 현관에서 마주쳤고, 엄마는 어디 다녀오는 거냐고 물었다. 보리에 대해 설명하자 엄마는 선우가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는데, 그래서 낫는 병이냐고, 그건 다시 말해 안 낫는 병이라면 치료를 할 필요가 있겠냐는 말이었다. 선우는 그게 너무 끔찍하게 싫었는데, 이건 자기혐오일까 아니면 내 안에 있는 엄마 같음을 싫어하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선우가 의사의 말을 앵무새처럼 읊어주자 엄마는 한숨을 쉬며 알았다고 했다. 보리가 없는 집에는 정적만 흘렀다.
다음날 보리를 데리러 병원으로 찾아간 선우는 진료실에서 마주한 보리의 상태가 언제 아팠냐는 듯 건강해보이자 어제 들었던 의사의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의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금 초조해보였고 여전히 우물쭈물하는 듯한 태도로 말을 꺼냈다. 그의 설명은 여전히 복잡한 편이었는데, 이야기를 듣는 선우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파리하게 질려갔다. 선우는 의사의 말을 중간에 끊고 말했다. 선생님 그래서 보리가 나았다는 건가요 안 나았다는 건가요. 의사는 잠깐 멈칫하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선우는 의사의 말을 잠자코 듣다 그가 말을 끝내자 알겠습니다, 라고만 하고 보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내내 의사의 말들이 귀 속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아 선우는 몇 번이고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완치는 없다. 주기적 치료가 필요하다. 적어도 주에 한 번. 치료비가 꽤 나올 거다. 힘드시겠지만 이겨내셔야. 뭘 어떻게 이겨내라는 건지, 선우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보리가 두 번만 더 치료를 받아도 선우의 월급보다 치료비가 더 컸다.
보리의 문제만으로도 선우는 충분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그런 선우를 더 화나게 한 건 늘 그렇듯이 엄마였다. 엄마는 보리가 아프기 시작하고부터 보리라는 개가 집에 있기는 했었냐는 듯 입을 싹 닦고 시선 한 번을 안 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을 닫아 걸은 뒤 아예 보리를 없는 취급했다. 그건 결국 처음 엄마의 말대로 니 개니까 니가 알아서 하라는, 즉 보리의 치료비를 온전히 선우더러 알아서 내라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겨우 며칠 전까지도 자기 손을 타던 작은 개를, 병에 걸려 어마어마한 치료비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취급을 달리하는 그 비정함에 선우는 구역질이 났다. 선우라고 마냥 보리가 안타깝기만 한 건 아니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선우를 반기며 꼬리를 흔드는 보리를 보면 안쓰러운 동시에 어쩌다 이런 병든 개를 받아온 건지 화가 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유기견 센터 번호로 전화를 걸어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다가도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며 진정하기를 반복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보리가 병에 걸린 건 보리의 잘못도 아니고 선우의 잘못도 아니고 엄마의 잘못도 아니며 의사의 잘못도 아니고 센터 직원들의 잘못도 아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이 말을 외워댈수록 선우는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 걸 막기 힘들었다. 그럼 보리는 왜 병에 걸린 건데? 그것도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병에 걸린 건데? 정말 아무의 잘못도 아닌 게 맞나? 이런 질문은 처음부터 해답이 없었기에 선우는 그냥 막막한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그 막막함이 쌓이고 쌓이다 못 참을 만큼 차오르면 선우는 엄마의 방으로 들어가 악다구니를 썼다. 선우가 유일하게 화를 참지 않고 쏟아낼 수 있는 대상은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선우가 소리를 질러대며 화를 낼 때면 항상 네 마음대로 지껄여보라는 건지 찡그린 표정으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선우가 제 풀에 지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다 했으면 나가라는 듯 고개를 휙 돌려버리곤 했다. 시간은 하루하루 착실히 지나가 또 보리의 치료일이 다가왔고 선우는 또 엄마의 방에 들어가 엄마에게 따지듯 화를 풀었다. 그러나 이번엔 엄마도 가만있지 않았다.
“엄마는 쟤가 불쌍하지도 않아? 어떻게 어제까지 끌어안고 쓰다듬고 했던 애를 치료비 하나 많이 든다고 그렇게 태도를 싹 바꿀 수가 있어.” “얘가 지금 누굴 돈에 미친년 취급을 해? 내 태도가 바뀌면 뭐 얼마나 바뀌었다고 너 이렇게 싸가지 없이 엄마 앞에서 악을 써, 악을 쓰긴.” “엄마는 이 와중에도 내가 공손하게 굴길 바라는 거야? 최악이야. 엄마는 진짜 최악이라고.” “너 나더러 태도 바뀌었다고 말할 자격이나 있니? 당장 너부터가 지금 저 개 병원에 데려가려니까 치료비 생각나서 또 나한테 대신 화풀이 하고 있는 거 아냐.”
선우는 더는 말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일방적으로 방을 나왔다. 거실에는 오가는 고성에 보리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선우는 보리를 안아들고 병원으로 갔다. 치료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선우는 카드 몇 개로 보리의 병원비를 나눠서 결제했다. 의사에게 혹시 치료 주기를 조금 느슨하게 할 순 없는지 물어봤는데 의사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다 이내 선우의 난감하다는 얼굴에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 깊이 걱정하는 표정을 다시 꾸며냈다. 의사가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곤란해하는 사이 선우는 알겠다는 듯 보리를 품에 안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바람이 쌀쌀했는데, 품으로 파고드는 보리를 데리고 어디로 가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가 몇 번 바뀌고서야 선우는 길을 건넜다.
몇 주가 더 지나고, 보리의 치료도 몇 번 더 이어지고, 보리는 좀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건강해보였고, 선우는 부어놓은 적금을 깨면서까지 치료비를 대고 있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이걸 갖고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계산이 서질 않았다. 엄마의 말이 맞았다는 걸 인정하기는 정말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우는 보리가 부담스러웠고 이내 밉기까지 했다. 엄마의 말대로 선우는 보리에게 내지 못할 화를 엄마에게 대신 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선우는 엄마에게 찾아가 악다구니를 쓰는 걸 관뒀다. 넋을 빼놓고 다닌 탓에 회사에서도 핀잔을 듣기 시작했을 무렵, 선우는 거실에서 졸고 있는 보리를 보고 지긋지긋하다는 듯 소리를 빽 질렀다. 차라리 다른 개들처럼 문 열어놓은 새에 도망이라도 가버리던가, 시름시름 앓을 게 아니라 차라리 단번에 죽어버려서 눈물 흘리며 추모하는 신세가 더 낫겠다며 독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개는 도망도 안 가고 죽지도 않은 채 풀썩 주저앉은 자기 앞에서 순진한 눈망울로 꼬리를 흔들고 헥헥댈 뿐이었다. 선우는 그런 개가 밉다가도 어쩔 도리 없이 껴안아주게 되었다. 선우는 보리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보리가 건강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를 위해 필요한 치료비는 선우로 하여금 둘을 놓고 망설이게 만들었고, 선우는 그게 너무 징그럽게 느껴졌다.
결국 선우는 이대로는 지속할 수 없다고, 개의 치료든 무엇이든, 엄마와 결정을 짓는 수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선우의 생활은 파탄에 가까웠다. 생활비는 줄일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최소한도로 쪼그라들어 있었고, 더는 깰 수 있는 적금도 없었으며 사채라도 끌어다 쓰지 않는 한, 치료비를 낼 방법이 없었다. 엄마도 많은 돈을 버는 게 아닌 걸 알지만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빌 작정이었다. 엄마는 선우가 자기를 불러내는 게 귀찮아보였다. 한동안 안 하더니 또 화풀이라도 하러 온 거냐며 비꼬는 엄마에게 선우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말을 꺼냈다.
“보리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어.”
엄마는 그래서 뭘 어떡하라는 거냐는 눈빛이었다.
“엄마가 정말 사람이라면, 보리 치료비에 얼마라도 보태줘야 한다는 말이야. 이대로 나 혼자서 내다가는 당장 다음 달부터 병원에 못 가.” “너 엄마가 얼마 버는지 뻔히 아는 애가 그거 보태달라는 말이 나오니 지금?” “많이 달라고 하는 거 아냐. 얼마라도, 그냥 줄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보태달라고. 그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엄마.” “어차피 치료 계속 한다고 개가 사는 것도 아니고 뭐 하러 헛돈을 써. 너 내가 처음에도 물어봤지. 그래서 낫는 병이냐고. 낫는 병도 아닌데 괜히 네가 애쓴다고 바뀔 거 없어. 나도 어차피 거기다 보탤 여력 없으니 그렇게 알아라.”
엄마 나름대로의 위로였을까. 선우도 자기가 애쓴다고 바뀔 게 없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개가 죽어가는 걸 곁을 지키며 볼 자신이 없었기에 이렇게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하고 있는 건데, 엄마의 말은 전과 마찬가지로 옳은 듯 보였으나 비정했다. 선우는 엄마가 아무리 모진 말을 해도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엄마와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돈을 보태라는 구걸을 하러 온 거였으니까. 그러나 엄마의 말은 마음을 굳게 먹은 선우에게도 견디기 힘들었다. 선우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말했고 엄마도 지지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나 혼자 좋자고 보리 데려왔어? 엄마가 하도 지랄맞게 우울해하니까 내가 뭐라도 해보려고 개까지 갖다 바치면서 아양 떤 거 아냐.” “개 데려와달라고 부탁한 사람 여기 아무도 없다. 니 개 하나 니가 알아서 하지 못할 거면서 애초에 데려오길 왜 데려와!”
선우는 정말 더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었다. 엄마가 끝까지 보리를 ‘니 개’라고 부르는 게 정말 엄마답다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방을 나가려는 선우에게 엄마는 끝까지 한마디를 더 보태며 비웃었다.
“그러게 그만한 각오도 돈도 없었으면서 무슨 순진한 생각으로 덜컥 개부터 데려온 거니?”
선우는 돌아서서 엄마에게 그만하자고, 이제 됐다며, 인간말종과는 더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는 그러는 너도 저 개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고 선우는 선뜻 아니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이것 보라고, 나만 쓰레기로 만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곤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병든 개는 거실 바닥에 배를 대고 색색거리는 소리를 내며 누워있었다. 선우는 보리가 아파서 그런 건지 그냥 깊이 잠에 든 건지 구분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선우는 몇 주 만에 깊은 잠에 든다. 선명하지 않은 기억들이 이어지다 선우는 실로 간만에 꿈을 꾼다. 꿈에서 선우는 여전히 방에 잠든 채 누워있는데, 미세하게 열린 문틈으로 거실에 서있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조금 놀라있었나,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쓰레기봉투에 개를 담아 집 밖으로 나간다. 선우는 벌떡 일어나 숨을 헐떡인다. 깨어난 후에도 한동안 방금 본 광경이 꿈인지 현실인지 어지럽지만 그걸 확인하는 게 두렵다. 방 밖에는 개가 자고 있을 것이다. 색색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선우는 다시 눈을 감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