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연의 성지 외 2편
고시힘
혐연의 성지
마로니에는 연기의 성지
최루탄이 흩날리는 한 봄, 담배를 나눠 피우면 너도나도
예술가처럼 웃을 수 있었다는데
문제는 늘 바깥에 있고 연인들은
영어 가사들로 골목을 수놓았다고.
이제 담배는커녕
관록이 붙은 배우들은 퇴근길을 기다리고
집집마다 한 귀퉁이 빛바랜 객석
문제는 늘 안쪽에 있고 그럼에도
골목을 찾는 연인들의 아지랑이 잘만
피어난다고. 봄의 향수 뒤편에서
연출되는 거리
한때는 모두 배우였지요. 홀로 되는 게 없었어요. 여기저기 눈치들 배우러 다녔지요. 가면을 배우러 다녔어요. 그래도 숨긴다고 다 될까요. 바꾸어야 하거든요. 언젠가, 가면만 벗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가면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삼십 년이 넘도록 거리의 악사는
안 바뀐다는
레퍼토리
(거울을 좀 보여주고 싶고)
불란서는 밥 먹듯이 데모를 벌인답디다. 어디서든 담배를 피워도 된다지요. 관용*이지요! 화란은 또 어떻고요. 청년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바리케이드를 쌓고요. 우리는 고작해야 터널을 뚫고 시멘트를 퍼부은 채겠지요. 이런다고 될까요. 정말 될까요.
그러니까 입에 올리기 거북한
담배 연기 너머
어느 시인들의 풍문으로만 전해오던
낭만,과 혁명,이 분명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나는 듣기만 했고
겪은 적 없고
겪을 일 없는 혜화동
봄밤을 쏘다니는 딜런과 바에즈들. 대학로의 가로등 혹은 쇼윈도. 네온사인 점등하는. 크고 작은 위무. 절연. 손찌검. 분명히. 손찌검.
골목은 성지였고, 그들은 숨을 죽이며
했다고 한다
먹고
대학생을
입에 올렸다고 한다
그들을 받아줄 무대가
있었다고 한다 무대의
마감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모두 배우였다니. 배우러 다녔다니. 어이없지요. 가면밖에 없어요. 배우러들 와요.
혁명의 낭만가든 낭만하는 혁명가든
한때 그들을 따라 담배를 꼬나물고
가면, 가요, 가죽자켓에 몰두한 적 있다
부끄러운 고고학적 사료이다
“실내흡연은 삼가하여 주십시오”
이제 더는 연기를 보러 다니지 않고
헤드윅과 장필순, 오자키 유타카를 듣지 않고
“시퍼렇게 녹음 진 한 봄의 꽃나무” 같이
멍 자국을 몇 자 꾸밀 수 있다
이것을 배우려 했던 걸까
그리고
방구석에는 아직 팔지 못한 소도구
이십 육만 원어치 통기타
곰팡내 풍긴다
잠겨 있다
조증삽화
기쁨을 끌어다 쓰는 일 조,
네게 부치는
법의 테두리 위 페인트칠하는 어린 직공들 태양이 굴절하는 길목에 금테를 두른 담벽이 자리하고 있다. 금세기에는 섞여야 하는 테두리
기름과 냉정은 다른 몸이 아니라네 조,
잘빠진 옷걸이들을 지나온
밤
낭자한 로우파이. 드러누운 채 연무를 받아내고 싶어 한쪽으로 뻗은 뿌리. 담벽이 표백되기 전까지 어른이 되지 않기. 담벽을 넘은 연무는 안온하다는
그림이라네 조,
굴림
조절하는 조, 웃자란 아이들 다가가면 녹아내리는 모양새 조, 지층을 둘러싼 하늘 여태 마르지 않은 교환가치 조, 벗기면 벗길수록 매끄러운 법의 테두리 조, 어떻게 굴절하는 기분일 수 있는지
착즙되지 않기 위하여 조,
까만 속의 분리수거
벽에 난 구멍의 심지
(a.m. 6:42 엑스트라는 서둘러 연무를 빠져나온다)
기쁨을 끌어다 쓰는 일
끌어다 태우는 일
조,
네게 부치는 먼 세기의 무조악곡
히로인 특수
메트로폴리탄 뒷골목 드러그스토어 어김없이 밀수와 착취 소년들의 피부를 가리지 않고 쌓이는 매립지 저것이 골치라,
밤의 연무를 따라 구전되는 발광 다이오드 이것을 어릴 적 읽고 자란다네 소매를 걷으면 거봐, 너도 주삿바늘이지, 책 잡힐 일 만들면 못 써, 여전히 시드 비셔스로 남기에는 건강하단 말인가 낡은 벤치 위 소년들을 위로하는 6인치의 낸시
잠망경에 한 발 걸친 그림자 마천루를 바라보는 일이 늘어났다
우리는 로맨스를 반대한다네. 사랑과 정의 없는 산성비를 꿈꾼다네. 이제 웬만한 화살에는 관통될 수 없지
우리는 선대에 걸쳐 폐품을 걸었다네. 이제 와 저들은 분필로 펜스를 그으려 하고
저것이 골치라, 소년들은
으르렁거리지. 그런 기분도
포장해 팔아버린다네. 바로 그것이
제가 지나온 유년기. 주삿바늘을 타고 흐르는
풋풋한 금단. 그러면
어쩔 수 없는가
제 몸의 캐피탈리즘, 골치라
금단에는 이자가 붙지 이자를
거부할 수 없는가
그런데 저는 맞지 않아도 되었지 않나요? 맞지 않아도...... 따귀의 에코
더없이 윤리적인 잔향, 첨벙인다 골목을 타고
깊고 끈질긴
우리는 로맨스를 반대한다네
매립지 그늘 밑에서
산성비를 꿈꾼다네
고시힘
시를 썼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