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기와 양옥집

일음


여기서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여기는 여기로부터 너무 멀어진다. 여기는 여기가 아니게 된다. 자꾸만 여기가, 여기들이 생겨난다. 여기가 여기를 떠난다. 여기에 여기를 묶어두는 데 실패한다. 어떤 여기도 여기를 지시할 수 없다. 여기가 여기를 여기일 수 없게 하는 일이 자꾸만 반복된다. 반복이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속된다. 무엇이 계속되는가. 되풀이되는 여기들이 자꾸만 나를 문장으로 이끈다. 주어를 쓴다. 서술어를 고민한다. 나는 문장으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끝이 끝으로 이어진다. 끝이 지연되고 끝에 이를 수 없고 끝에서 시작된다. 마침표를 찍고 싶다. 여기가 여기이기 위한 마침표를 찍고 싶다. 문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마침표는 끝이 아니라 호흡으로 자리한다. 마침표가 주변을 끌어들인다. 마침표가 다음 문장을, 그다음 문장을, 끊임없이 문장들을 뱉어낸다. 이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마침표는 점이고 점이란 본래 위치만 있는 것이다. 누구도 점의 형태를 알 수 없다. 그런가? 점은 존재하지만 볼 수 없다. 어쩌면 나는 점을 아주 작은 원으로 둔갑시키고 여기에 점이 있다고 말하는 중이다. 문장은 마침표에서 시작한다. 여기가 여기이기 위해서, 다시 문장이 시작한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시작과 끝을 한 곳으로 모으고 싶다. 마침표를 찍고 싶다. 단 하나의 문장을 남기고 남아 있는 모든 문장을 지우고 싶다. 남아 있는 문장은 모두 지워지고 지워짐으로써 남아 있지 않기를. 남아 있기 이전에 존재하지 않고 그러니 그 문장들은, 어쩌면 문장은, 사실 없고 지우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그렇게 이야기가 불가능해지기를. 모든 문장이 사라지고 사라지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지 않고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로, 아무것도 쓸 수 없음으로써 아무것도 쓸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기를. 그렇게 문장으로부터 소외되고 싶다. 문장으로부터 분리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야기는 끝난다, 고 썼고 이야기는 이미 여기를 떠났고 그러므로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장이 문장을 소환하고 그렇게 문장과 문장이 엮이고. 엮이고 엮여서 이야기가 되려 하고 있다. 아니, 이미 이야기가 되었다. 현재가 과거로 이행하고 과거가 현재로 침입하고 현재가 과거를 투과하고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고 시간이 뒤틀린다. 나는 뒤틀린 시간의 틈을 벌려서, 과거를 과거로 현재를 현재로 고정하고 싶다. 그렇게 이야기가 불가능해지기를.

하지만 현재가 자꾸만 현재를 불러온다. 현재가 사라지고 현재가 나타난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쳤고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다.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기를 반복했고 정말로 늑대가 나타났지만 마을 사람들은 더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나지 않아도 늑대가 나타났다고 말했고 늑대가 나타나도 늑대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늑대가 나타났다고 믿었고 늑대가 나타났을 때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믿었다. 늑대는 여기에 없었고 늑대는 여기에 있었다. 죽은 쥐는 여기에 있었고 여기에 없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있고 여기에도 있었다. 수많은 여기와 죽은 쥐가 있던 여기. 내가 있는 여기와 내가 있던 여기. 나는 여기에 있고 죽은 쥐는 여기 없다. 여기 없는 죽은 쥐는 지하주차장에 있었다. 그 지하주차장은 보문동에 있다. 보문동은 서울 성북구에 있다. 내가 살던 곳은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었다. 내가 살던 곳은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던 붉은 기와 양옥집이다.

과거 시제에 묶여버린 붉은 기와 양옥집.

그 양옥집은 대문이 두 개였다. 하나는 금색 대문, 하나는 은색 대문. 금색 대문과 은색 대문은 집을 공유하거나 공유하지 않았고, 일층에 살았던 사람들과 이층에 살았던 사람들은 항상 금색 대문을 통해 붉은 기와 양옥집으로 들어갔다. 금색 대문 옆에는 일층에 사는 사람들과 금색 대문 밖을 이어주는 초인종과 이층에 사는 사람들과 금색 대문 밖을 이어주는 초인종이 있었다. 일층 초인종은 카키색이었고 중간 왼쪽에 버튼이 있었다. 이층 초인종은 흰색이었고 중앙 아래에 버튼이 있었다. 일층 초인종은 이층 초인종 왼쪽에 있었고 이층 초인종은 일층 초인종 오른쪽에 있었다. 금색 대문을 열면 5평 남짓한 로비가 있었다. 5평 남짓이라고 썼지만 그 정도 넓이를 5평 남짓이라고 해야 할지 6평 남짓이라 해야 할지 그냥 넓지도 좁지도 않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공간이 로비였는지 아닌지도 정확하지 않다. 그 공간은 호텔의 로비 같은 기능을 하지도, 아파트의 로비 같은 기능을 하지도 않았으며 ‘로비’란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절대 아니었다. 다만 금색 대문과 일층 현관 사이에는 5평 남짓인지 6평 남짓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층에 사는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고추를 말리기에 충분한, 그러고도 남는 공간이 있었고, 나는 그 공간을 로비라고 명명한 적이 없었지만, 이 글에서 그 공간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공간을 로비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이 글에서 그 공간을 이야기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그 공간을 로비라는 단어를 통해 지시하는 것이 적절한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문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붉은 기와 양옥집을 위해서.

왼쪽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다보면 좁은 공간이 나왔다. 로비 넓이의 절반 정도인. 이층 복도 밑에 자리한 좁은 공간은 항상 어둡고 서늘했으며, 개집이 하나 있었다. 파란 벽 네 개가 빨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개집. 그 집 안에는 하얀 털을 가진 진돗개가 살았다. 진돗개의 이름은 백구였다. (어떤 이름은 과거 시제에 묶여있다. 백구란 이름도 그럴까?) 백구의 이빨은 굉장히 크고 날카로웠다. 백구를 기르던─2층에 살던 집주인─아저씨는 백구에게 물리면 큰일이 난다며 내게 주의를 주고는 했다. 백구에게 물리거나 백구가 누군가를 무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또한 없다). 하지만 ‘백구에게 물리면 큰일이 날 것이다’, 그 말을 믿었음은 분명하다. 백구를 쓰다듬어 본 적도, 백구와 놀아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또한 없기 때문이다). 백구는 항상 목줄을 차고 있었다. 목줄은 쇠사슬에 연결되어 있었다. 쇠사슬은 말뚝에 묶여있었다. 누군가 금색 대문을 열고 로비에 들어서면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 백구가 개집에서 나왔거나 누워있다 일어났거나 그늘진 곳에서 계단 쪽으로 걸어왔기 때문이다. 백구는 훌륭한 파수꾼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백구는 대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백구는 항상 목줄을 차고 있었고, 목줄은 쇠사슬에 연결되어 있었으며, 쇠사슬은 말뚝에 묶여있었기 때문에 백구가 계단으로 가려 할 때 마다 목줄이 백구의 목을 조여 왔다. 백구는 이층 복도 밑에 자리한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백구에게 물려본 적이 없었다(또한 없다). 백구의 활동 반경은 쇠사슬을 반지름으로 하는 원 안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나는 그 원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또한 없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누런 진돗개가 난간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런 진돗개, 이름은 새미, 혹은 세미, 혹은 어느 날 새끼들을 두고 집을 나간 어미 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누런 진돗개는 내 팔뚝보다도 작았다. 내 팔뚝보다도 작은 개가 좁은 보폭으로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았을 때 작은 개의 이름을 불러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개의 이름은 새미 혹은 세미였지만 새미였는지 세미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 개의 이름을 불러본 경험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 개의 이름을 적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또한 없기 때문이다). 새미가 세미였는지 혹은 세미가 새미였는지……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개는 꼬리를 흔들며 내게 왔다. 우리는 같이 자랐다. 서로 다른 속도로. 내 팔뚝만 했던 개는 어느새 내 키만큼 자랐고 새끼들을 낳았다. 새미가 낳은 새끼들은 새미가 내 팔뚝만 했던 때를 쏙 빼닮았었다. 새미가 새끼를 네 마리 낳았던가, 다섯 마리 낳았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새미가 낳은 새끼들이 한 마리, 한 마리 사라지더니 결국 한 마리만 새미 곁에 남아 있었다. 새미가 낳은 새끼들은 공놀이를 좋아했다. 내가 별모양 공을 던지면 공을 따라 아장아장 뛰어가서는 입으로 공을 물어 나에게 가지고 왔었다. 새미가 집을 나가기 전날에도 새미 새끼들과 공놀이를 했던가? 새미가 집을 나갔을 때,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집은 언제나 같은 곳에 있었으므로.

하지만 집이 없다면…….

은색 대문 옆에는 초인종이 없었다. 초인종이 있었던 흔적만 있었다. 초인종이 있었던 자리에 잘린 전선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은색 대문을 열면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계단이 보였다. 오른쪽에는 화단이 있었다. 화단에는 아카시아 꽃이 있었다 혹은 없었다. 봄이면 화단에는 붉은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다. 계단은 꿀을 빨아먹고 버린 아카시아 꽃잎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겨울이면 화단에는 마른 가지와 모래만이 쌓여있었다. 때때로 흰 눈이 그 위를 덮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장갑을 끼고 나와 계단에서 눈싸움을 벌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계단의 끝에 다다르면 주황색 천막이 보였다. 주황색 천막 밑으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이층 부엌 환기창이 있었고 앞에는 작은 문이 있었다. 작은 문을 열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좁은 공간이 드러났다. 작은 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면 천장에 있는 백열등이 켜졌다. 좁은 공간에는 보일러 두 대가 있었고 정면에 있는 보일러는 삼층, 우측 벽에 있는 보일러는 이층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 좁은 공간은 보일러실이라고 불렸다. 보일러실에서 나오면 왼쪽에 내 허리 높이의 단 혹은 내 무릎 높이의 단이 있었다. 다시 단을 하나, 둘, 셋, 계단을 오르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단을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혹은 일곱, 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커다란 창과 회색 현관문이 보였고 현관문 옆에는 성북구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현관문 앞에는 슬리퍼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은색 대문은 닫혀있었고, 대문 너머에 있는 풍경은 가려져 있었다. 금색 대문, 은색 대문, 붉은 기와 양옥집. 그 집 삼층에 내가 살았다.

삼층에 살았던 나는 은색 대문을 통해 붉은 기와 양옥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날, 살인적인 더위가 계속되던 여름 어느 날, 은색 대문은 닫혀있었고 나는 문 밖에 서있었다. 문 안과 문 밖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되는가? 삼층에 사는 사람들과 은색 문 밖을 이어주는 초인종. (없는 혹은 없어진) 초인종. 잘린 전선은 초인종이 존재했었음을 입증하는가? 잘린 전선은 그곳에 있던 초인종을 상상하게 하는가? 나는 은색 대문 옆에 있었던 초인종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삼층에 살았던 나는 “주로” 은색 대문을 통해 붉은 기와 양옥집으로 들어갔다. 주로란 말은 예외가 존재함을 뜻한다. 그 예외적 상황, 혹은 예외적 상황들은 초인종 때문에 발생했다. 아니, 초인종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는 지어진 지 이십 년이 넘은 붉은 기와 양옥집이 있었고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으로 통하는 은색 대문 옆에는 초인종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게 하는 전선만이 잘린 채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삼층에 살았던 나는 가끔 금색 대문을 통해 삼층에 가야 했다. 그 연립주택 삼층 초인종만 사라져버린 이유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궁금했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었고 언젠가부터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초인종이 있었던 흔적으로서 전선만 남아있는 삼층에 살았다고 해서 가끔 금색 현관문을 통해 삼층에 가야 하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던 연립주택은 대문이 두 개였고, 하나는 금색 대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은색 대문이었으며, 금색 대문을 열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했고 은색 대문을 열기 위해서도 열쇠가 필요했다. 금색 대문을 열기 위해 필요했던 열쇠와 은색 대문을 열기 위해 필요했던 열쇠는 같지 않았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었던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에 가기 위해서는 금색 대문을 열 수 있는 열쇠나 은색 대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필요했지만 나는 금색 대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은색 대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거나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은색 대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항상 가지고 있으려 했었으나 가끔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삼층에는 초인종이 없었다.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한가? 이제 필연적 상황이 성립하는가?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었던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에서 살 때 나는 한 살이었다. 혹은 세 살이었고, 어쩌면 초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었으며 고등학생이었지만 고등학교 3학년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기종은 iPhone 12 Pro이다. 내가 사용했던 스마트폰들 중 가장 처음으로 사용했던 스마트폰의 기종은 iPhone 5였다. iPhone 5를 사용하기 전에는 피처폰을 사용했다. 그 피처폰의 기종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피처폰을 샀을 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틀림없이. 신설동에 있었던 SK텔레콤 대리점에서 그 피처폰을 샀다. 대리점 직원은 나를 보고 학생이시냐고 물었고 난 그렇다고 답했다. 대리점 직원은 나를 보고 대학생이시냐고 물었고 나는 중학생이라고 답했다. 대리점 직원이 나에게 대학생이냐고 물었던 날 대리점 직원이 내게 건네고 내가 받은 피처폰은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사용했던 피처폰과 같은 기종이었지만 그 피처폰은 아니었다. 그날 대리점 직원이 건네고 내가 받은 피처폰 메모리에서 내가 찍지 않은 사진 몇 장이 발견되었고 내가 그 사진들을 발견한 건 대리점 영업시간이 지난 시각이었으므로 그다음 날 나는 대리점을 다시 방문해 내가 갖고 있던 피처폰을 내가 갖고 있을 피처폰으로 교환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iPhone 5로 바꾸기 전까지 내가 갖고 있을 피처폰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찍지 않은 사진 몇 장, 어쩌면 내가 찍지 않은 이미지 파일 몇 개. 내가 찍지 않은 이미지 파일이 하나도 없는 피처폰과 그 피처폰을 가지게 된 날, 그로부터 몇 년 전. 오 년 혹은 사 년 아니면 육 년.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고 내가 집이라고 부르던, 그리고 부르고 있는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은색 대문 앞에서, 닫혀있는 은색 대문 앞에서 은색 대문을 열기 위해 필요한 열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게는 그 피처폰이 없었다. 나는 은색 현관문을 지나치고 금색 현관문도 지나쳐 공중전화 부스로 향했다.

내가 살았던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에는 내 방이라고 불리던 공간─그 공간이 내 방이라 불리지 않았을 때 그 공간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다─이 있었다. 내 방이라고 불리던 공간에는 책장과 책상과 의자와 옷장과 서랍장과 오래된 라디오가 있었다. 내 방이라 불리던 공간은 직사각형, 아니 직육면체 어쩌면 반듯한 직육면체 공간이었고 방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섰을 때 정면에 보이는 벽과 왼쪽 측면에 보이는 벽에 창이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벽에 난 창 두 개는 세로로 길쭉한 형태였고 두 개의 창은 1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었다. 내 방 벽에 1m 정도 간격을 두고 있던 두 창은 유리창 위에 창살이 물고돌림 모양으로 붙어있었고 이는 한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창살 형태이지만 내가 살았던 붉은 기와 양옥집은 한옥은 아니었다. 왼쪽 측면 벽에 있는 창은 가로로 길쭉한 형태였다. 불투명한 유리를 목재로 만들어진 창틀이 감싸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창문 세 개가 열고 닫을 수 있는 형태로 연결되어 있으며 연결된 창문 중 하나를 오른쪽으로 밀거나 왼쪽으로 밀면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커다란 통창을 볼 수 있었다. 불투명한 유리로 제작된 창문 세 개는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가리거나 밖으로부터 내 방을 가리거나 내 방으로부터 밖을 가리거나 아무튼 무언가를 가렸다. 아니,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 있었던 것 같다. 현재에서 과거를 판단할 때, 과거가 현재가 되는……. 불투명한 유리로 제작된 창문 세 개는 밖으로부터 내 방을 가리거나 내 방으로부터 밖을 가리기에는 충분했으나 햇빛을 가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고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는 커튼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내가 그 공간을 내 방이라고 부르던 동안 그 공간에는 커튼이 없었는데 아마도 햇빛을 가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햇빛을 가리고 싶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 방이었던 공간에 커튼이 없었던 이유를 모르겠다. 아니, 알 수 없다. 언제부터 알 수 없었는지 알 수 없고, 이유가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나는 일곱 살 무렵─그전까지는 내가 살았던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에 나를 위한 독립된 공간이 없었다─부터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이월까지 그 공간을 내 방이라고 부르며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내 방이었던 공간에 커다란 라디오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커튼으로 가리지 않았던 창문 세 개 아래에 있었던 라디오. 라디오는 검은색이었다. CD 플레이어 위에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있었고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위에 주파수를 검색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 양옆으로 스피커가 있었다. 그 라디오에 관해서라면 한 번 보고서는 알아챌 수 없는, 아주 세부적인 부분 몇 개를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베이지색으로 인쇄된 라디오 제조사 로고 ‘Anam’이 ‘Anain’이 되어갔던 과정을 기억한다. 또, 라디오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 있던 두 개의 드라이버 중 오른쪽 드라이버에는 주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마지막 앨범 가 있었고 어떤 주말 오후에 그 앨범을 반복 재생하며 듣다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는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관해서는 그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는 것만을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라디오에 관해서라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방에 있던 그 라디오를 좀 더 정확하게, 좀 더 섬세하게 묘사하고 싶지만, 그 라디오를 그 라디오로 그려내는 데 실패한다. 독일어로는 ‘저 멀리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독일어를 안다면, 독일어로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다면, 그 라디오를 그 라디오로 그려낼 수 있을까. 나는 독일어를 모르고, 독일어로는 그 라디오를 그 라디오라고 지칭하지 않고 좀 더 구체적으로 혹은 좀 더 사실적으로 그러니까, 좀 더 그 라디오처럼 표현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제 내 방에는 그 라디오가 없다.

라디오가 놓여 있던 곳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왼쪽에 있는 벽에는 책장과 책상과 서랍장이 있었다. 책장과 책상과 서랍장은 창 두 개가 1m 간격을 두고 있는 벽면에 붙어있었다. 닿아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까. 다시 시작해보자. 내 방이었던 공간은 갈색 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목재로 만들어진 갈색 문. 갈색 문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홈이 여섯 개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홈은 3행 2열로 나열되어 있었다. 거실에서 내 방문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2행 2열에 있는 직사각형 홈 왼쪽에 원형 문고리가 있었다. 내 방문에 있던 원형 문고리는 열쇠로 열고 잠글 수 있는 종류였지만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그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 방문을 열고 잠글 수 있는 열쇠가 없었으므로 내 방문은 내 방 안에 있는 사람만이 열고 잠글 수 있었다. 내가 보문동에 있던 붉은 기와 양옥집에 사는 동안 나는 가끔 배를 걷어차였고 배를 걷어차인 날이면 내 방에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동안은 배를 걷어차이지 않을 수 있었지만, 배를 걷어차이지 않는 동안 방문이 부서졌다. 내 방이었던 공간은 갈색 문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갈색 문은 목재로 만들어졌으며 목재로 만들어진 갈색 문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홈 여섯 개가 3행 2열로 나열되어 있었지만 내가 배를 걷어차이지 않기 위해 방문을 걸어 잠갔던 날 2행 2열에 있던 직사각형은 부서졌다. 2행 2열에 있던 직사각형이 커다란 구멍으로 바뀌었고 문짝 안이 텅 비어있다는 것을, 얇은 나무판자와 나무판자 사이에는 그저 텅 빈 공간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꺼운 문짝 안은 텅 비어있었고 발길질 몇 번에 부서질 정도로 형편없이, 취약했다.

계단을 내려와 은색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 앞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있었고 아스팔트 도로는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였으며 그 도로를 따라─현관문을 열고 나갔을 때 왼쪽으로─가다 보면 왼쪽에 아남 아파트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오른쪽에는 정육점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있었다. 정육점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란 표현은 정육점 간판은 그대로 두고 옷 공장으로 바뀐 곳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일 수도 있었다. 내리막길이 갈림길과 만나면 그 내리막길은 끝나고, 아니 끝나지 않고 오른쪽으로 이어지며 왼쪽으로 꺾어 오르막길을 오르면 개미문방구가 있었고 개미문방구 앞에는 동신초등학교가 있었다. 나는 동신초등학교 학생이었고 개미문방구에서는 동신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위해 구매해야 할 다양한 준비물을 판매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준비물을 사기 위해 개미문방구를 자주 이용했었다. 사야 할 준비물이 없는 날에도 개미문방구에 갔는데 개미문방구에서는 동신초등학교 학생들이 사야 할 준비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불량식품 또한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가끔 개미문방구에서 차카니, 아폴로와 같은 불량식품을 사 먹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개미문방구를 지나 정육점을 지나 오르막길인 내리막길을 오르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은색 대문 앞까지 걸었다. 혹은 개미문방구를 지나 정육점 간판을 걸고 있는 옷 공장을 지나 오르막길인 내리막길을 오르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은색 대문 앞까지 걸었다. 혹은 동신초등학교 정문을 나서자마자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도보를 따라 오르막길을 올랐다. 도보를 따라 계속 오르다가 길 건너편에 카센터가 보이면 2차선 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고 카센터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서 계단이 나오면, 등교할 때는 언제나 아남 아파트로 방향으로 올라야했던 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도로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도로를 따라 은색 대문 앞까지 걸었다. 은색 대문 앞에서 바지 주머니에 있는 열쇠를 꺼냈다. 바지 주머니에 열쇠가 없으면 가방 앞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았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부터 4학년이었을 때까지 같은 가방을 메고 다녔다. 그 가방은 분홍색이었고 FILA에서 나온 제품이었다. FILA에서 출시했던 분홍색 가방은 책을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 앞에 또 다른 수납공간이 붙어있었는데 나는 이것을 앞주머니라고 불렀고 앞주머니에는 내가 가지고 다니던 물건 중 책이 아닌 것들을 넣고 다녔다. 나는 책 말고도 어떤 물건들을 들고 다녔는데, 그것들을 어떤 물건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다지 사실적이지 않지만 나는 어떤 물건들을 어떤 물건들만큼 어떤 물건들처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가 없다. 나는 주로 바지 주머니에 은색 대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넣고 다녔지만, 가끔 바지 주머니가 아니라 FILA에서 출시한 분홍색 가방 앞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그 안에는 은색 대문을 열 수 있는 열쇠 이외에 다른 물건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혹은 4학년이었던 나는 책과 열쇠 이외에 무엇을 가지고 있었나? 나는 동신초등학교 3학년 5반 학생이었고 3학년 2학기까지도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다. 당시 구구단이 초등학교 2학년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3학년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3학년 2학기가 되도록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서 수학 수업 시간에는 수업 내내 의자에 앉지 못한 채로 수업을 들어야 했던 것을 기억한다. 일어서서 수업을 듣는 것과 의자에 앉지 못한 채로 수업을 듣는 것은 분명 다르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내가 의자에 앉아서 수학 수업을 들을 수 있기를 정말로 원했었다는 것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또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에게 불면증이 있었다는 것을 흐릿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잠이 들어도 곧 잠에서 깨어났고 깨어난 후에는 다시 잠들지 못했고 서둘러 내 방 형광등을 켜고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향했다. 잠겨있는 안방 문을 필사적으로 두드렸다. 그러니까 나는 무서웠는데, 무엇이 무서웠나? 하루는 잠들었다 깨어났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눈도 감지 못했는데, 눈을 감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계속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내 방에는 옷장이 있었는데, 옷장 높이는 천장보다 30cm 정도 낮았다. 그러니까 옷장과 천장 사이에는 약 30cm 높이의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있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불면증으로 인해 좀처럼 잠들지 못했고 힘겹게 잠든 후에도 자꾸 잠에서 깨어났고 하루는 잠에서 깨어났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날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있을 수 없는 옷장과 천장 사이 약 30cm 공간에 아이 형체를 가진 무엇이 있었다. 아이 형체를 가진 무언가는 좁고 낮은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었나? 웃고 있었나? 그 무엇에게는 눈이 있었나? 코가 있었나? 입이 있었나? 표정이란 게, 그 무엇이 웃는다는 게 가능했나? 나는 왜 그 무엇이 아이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을까? 아무튼 그 무엇은 옷장과 천장 사이 약 30cm 공간에, 아무것도 없어야 하고 아무도 없어야 하는 곳에 있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그런데 사실이라고 할 수 있나? 그 무엇에 대해서 나는 무엇을 더 기억하고 있는가? 좁고 낮은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것은 팔이 있었다. 손도 있었고 손에는 수리검을 들고 있었다. 그 무엇은 자신이 들고 있던 수리검을 내 발 쪽으로 계속해서 던졌고,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움직이려고 하지만 움직이지 못한 채로 꽤 긴 시간을 보내고 나는 겨우 엄지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는데, 구부렸는데, 엄지손가락을 구부리고 난 다음에는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가능했고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가는 것이 가능했고 안방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때도 무엇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나? 그때 당시 나는 그 무엇이 여전히 옷장 위에 있는지 아니면 사라졌는지 확인하지 않았는데 그런 것보다는 무서움이,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근데 무엇이 무서웠을까?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난 후에도 한동안 나는, 여전히 불면증으로 힘들어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방에서 자고 일어나는 것이, 한밤중에 안방 문을 두드리지 않는 일이, 어두울 때 잠들어 동이 튼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자는 동안 꿈을 꾸는 일은 가끔 있었다. 아니,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꿈을 기억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혹은 서너 번 정도. 그마저도 꿈을 꾸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꿈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 무엇이 있던 밤에, 어쩌면 나는 단지 잠시 잠에 들었고 잠든 사이에 꾼 꿈을 기억한 것뿐일까? 꿈을 기억한다는 건, 꿈에서 일어난 구체적 사건을 기억한다는 건, 내게 흔하지 않은 일이라 꿈을 꾼 것인지 꿈을 꾼 것이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고, 꿈 안과 밖을 여전히 판단할 수 없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어쩌면 그날 꾼 꿈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 상황을 최대한 그대로 전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느꼈던 공포를 이해받고 싶어서. 한 번은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웃었다. 옷장 위에 있던 것이 내 발 쪽으로 수리검을 던지는 상황을 상상해버렸다면서.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아주 아주 큰 소리로, 웃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방문 학습지를 통해 한자를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학습지 선생님이 집에 방문해서 내가 일주일 동안 학습한 내용을 확인했다. 하루에 공부해야 하는 분량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습지 다섯 장, 한자 다섯 개, 정확한 분량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그 정도. 어린 내가 삼십 분 안팎으로 해낼 수 있었던 난이도와 분량. 어린 나는 한자에 관심이 없었고 매일 해야 하는 숙제를 매일 미뤘고 학습지 선생님이 방문하기 하루 전날 혹은 그 당일에 미뤄왔던 것을 해결해야 했는데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을 하루 만에 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미룬 숙제는 계속 미뤄지고 새로운 과제도 계속 미뤄지고 그렇게 숙제 양이 엄청나게 불어났는데 어린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지 고민했으므로 몇 주간 쌓인 학습지를 모조리 버릴 계획을 세웠다. 쓰레기통에 버리면 가족 중 누군가 알아챌 것이므로 어린 나는 쓰레기통이 아닌 쓰레기통을 찾아야 했다. 보문동에 있던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에는 부엌과 방 세 개와 거실과 화장실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부엌이 있고 부엌을 지나면 거실이 나오고 정면에 방 두 개, 좌측에 화장실, 뒤쪽에 방 한 개가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짧은 복도가 있고 오른쪽에 낮은 계단이 있고 계단을 내려가면 오른쪽에 다시 낮은 계단이 있고 그 계단 옆에는 붉은 기와 양옥집 이층 부엌에 난 창문이 있었으며 그 창문을 마주한 상태에서 바닥을 보면 깊게 파인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은 일층에 난 창문과 벽 사이 간격을 벌려서 일조량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였다. 일층에 난 창문과 벽 사이 벌어진 간격이 넓진 않아서 그곳은 한낮에도 어두웠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고 어린 내가 그런 사실을 발견했다. 어린 나는 그곳이 쓰레기통이 아닌 쓰레기통으로 적절하리라 생각했고 그곳에 몇 주간 쌓인 학습지를 모조리 버렸고 학습지 선생님이 집에 방문했을 때 그동안 못했던 숙제를 다 했는데 학습지가 모조리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못했던 숙제를 다 하지 않았으므로 숙제를 다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모조리 버렸으므로 모조리 사라졌다는 것은 거짓말인가? 버린 것과 사라진 것은 같나? 버리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을까?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말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고 늑대는 없었다.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말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늑대가 있었으며 늑대가 양들을 먹었다. 양들이, 사라졌다. 숙제를 다 했지만, 학습지가 모조리 사라졌다는 거짓말은 내게만 참인 거짓이었으므로 거짓말이 거짓말임은 곧 탄로 났고 어린 나는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혼이 났다. 무엇이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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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는 죽은 쥐를 발견했다. 그때 나는 일곱 살 어쩌면 다섯 살이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분홍색 FILA 가방을 메고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을 수도 있고 열 살이었을 수도 있다. 가방을 메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 확실히 기억할 수 없지만 내가 죽은 생명을 목격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은 생명을 봤다. 죽은 생명이란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죽음과 생명이 긴 하나의 축 양 끝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이런 모순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어린 내가 본 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본 것은 죽은 쥐의 사체뿐이었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쥐와 똑같은 형체를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쥐가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므로, 내가 죽은 쥐를 발견했다. 다시 말해서 쥐는 살아있었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죽어있어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쥐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는데 나는 멀리서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인 죽은 쥐의 사체만을 보고도 쥐가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쥐의 육체를 만지지 않고도 나는 그 사실을, 쥐의 털이, 몸이, 모든 것이 빳빳하게 굳어버렸다는 점을, 쥐가 더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내가 죽은 쥐를 발견한 건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던 어느 여름날 어두운 지하주차장에서였다. 그런 더위 속에서는 인간뿐 아니라 다른 동물도, 심지어 대부분 식물까지도 말라죽을 거 같았지만, 그 더위는 ‘살생적인’이란 표현으로 수식되진 않았는데, 내가 어려서 그랬는지 관심이 없었는지 아니면 ‘살인적인’이란 단어를 이해하기에 충분한 어휘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런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그렇게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주차장 앞을 지날 때면 차갑고 시원한 공기가 느껴진다는 점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생각이라기보다는 느낌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보다는 ‘이상하다고 느꼈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하주차장 앞을 지나다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그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러한 기운이 아스팔트 위로 솟아오르는 아지랑이에서 비롯된 것인지, 한낮에도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지하주차장에서 비롯된 것이지, 아니면 내가 끓는 듯한 더위에 지쳐있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지하주차장 안으로 걸어갔고 죽은 쥐를 발견했다. 내가 죽은 쥐를 발견한 곳은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던 어느 지하주차장에서였다. 그 지하주차장은 여전히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던 붉은 기와 양옥집에서 은색 대문을 열고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가다가 제일 먼저 나오는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은하세탁소가 보였다. 나는 은하세탁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려고 한 적이 있다. 쓰려고 한 적이 있다는 것은 쓰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내가 쓰지 않은 소설 속 주인공은 은하이고 은하는 재개발이 예정된 서울의 한 동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내가 쓰지 않은 소설 속 은하는 지난달 말에 가게를 비울 계획이었지만, 아직 세탁물을 찾아가지 않은 손님이 있어 가게를 2주 더 운영하기로 한다.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 은하는 세탁물 보관증에 기록된 고객의 연락처를 확인하고 세탁물을 찾아가지 않은 고객에게 세탁물을 찾아갈 것을 요청한다.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에서 2주가 지나고,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에 존재하는 동네 주민들은 재개발 때문에 동네를 떠나가고, 재개발이 진행되고,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에 존재하던 동네가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에 더는 존재하지 않고, 소설 속에서 5년이 흐르고, 존재했던 동네를 떠난 은하가 재개발이 완료된 동네를 찾고, 존재했던 동네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고, TV에서는 평행우주를 발견했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이 소설 제목은 은하세탁소이고 은하세탁소는 내가 살았던 붉은 기와 양옥집에서 은색 대문을 열고 나와 오른쪽에 보이는 오르막길인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왼쪽에 있었지만, 여기에 없고 평행우주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 없는 은하세탁소가 있던 곳에서 좀 더 걸어가면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좀 더 걸어가면 전화국이 있었다. 전화국이 있던 도로를 따라가면, 오르막길을 오르면, 빨간 벽돌로 지어진 빌라가 있었다(~있다). 어릴 적 빨간 벽돌로 지어진 빌라 지하주차장에서 죽은 쥐를 보았고 죽은 쥐를 보았을 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죽은 쥐에 관한 기억이 내가 가진 첫 기억이며 내가 기억하는 것들은 죽은 쥐에서부터 시작하고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나열하다 보면 그 시작에 언제나 죽은 쥐가 있다. 죽은 쥐는 보문동에 있던 어느 지하주차장에 있었고 보문동에 있던 어떤 지하주차장에는 없었으며 이제 거기에도 여기에도 없다. 내가 보문동에 있는 어느 지하주차장에서 죽은 쥐를 발견했던 날, 나는 죽은 쥐를 보고서는 도망쳤다. 만약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죽은 쥐를 좀 더 오래 보았더라면, 죽은 쥐를 세밀하게, 털 한 올과 털 한 올 사이에 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죽은 쥐를 기억하지만, 죽은 쥐를 기억하진 않는다. 나는 은하세탁소를 배경으로 은하세탁소란 제목의 소설을 쓰려 했지만 쓰지 않았고, 쓰지 않은 소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쓰지 않은 소설은 존재하지 않는가? 누군가 내게 은하세탁소란 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은하세탁소란 소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는 붉은 기와 양옥집이 있었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하던 날 아침까지 그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에서 살았다. 그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에는 내가 내 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에는 내가 내 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내가 내 방이라고 부르던 공간에는 책장과 책상과 서랍장과 옷장과 라디오가 있었고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없었다가 있었으며 있었다가 없어졌다. 내가 내 방이라고 부르던 공간에는 책장과 책상과 서랍장과 옷장이 있었고 그것들은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내 방이라고 부르는 공간에 있지만 내 방이었던 곳에 있던 그 라디오는 내 방인 곳에는 없다. 내가 죽은 쥐를 발견했던 지하주차장 멀지 않은 곳에 높은 벽이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떠받치고 있는 높은 벽을 따라 걷다 보면,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었던 붉은 기와 양옥집을 발견할 수 없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3월 2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던 붉은 기와 양옥집 삼층에서 현관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고 은색 대문을 열고, 그곳에서 나왔다. 3월 2일이었지만 기온은 여전히 낮았고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는 지난겨울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3월 2일에는 개학식이 있었고 새 학년이 시작되었고 나는 한성여자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되었고 1반에 배정되었다. 한성여자고등학교에는 한 학년에 11개 반이 있었고 각 반 교실 앞쪽 좌측 상단에는 수업 및 교내 방송을 위해 설치된 모니터가 있었다. 한성여자고등학교는 칠층 건물이고 일층에는 교실이 없었고, 이층과 삼층에는 1학년 교실이, 사층과 오층에는 3학년 교실이, 육층과 칠층에는 2학년 교실이 있었다. 혹은 일층에는 교실이 없었고, 이층과 삼층에는 1학년 교실이, 사층과 오층에는 2학년 교실이, 육층과 칠층에는 3학년 교실이 있었다. 나는 육층과 칠층에 2학년 교실이 있을 때 2학년이었고 육층과 칠층에 3학년 교실이 있을 때 3학년이었다. 한성여자고등학교에는 승강기가 없었지만, 육층 이상으로서 전체면적이 2천 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2013년 개정된 건축법 제64조 제1항에 따라 승강기를 설치했다. 등교 시간에는 승강기를 타려는 학생들이 많았으므로 나는 주로 계단을 이용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육층에 있던 2학년 1반 교실로 등교한 첫날, 나는 2학년 1반 교실에서 모니터로 중계되고 있는 개학식 방송을 봤다. 개학식이 끝난 이후에는 점심 급식도 없이 일찍 하교했다. 확실하지는 않다. 한성여자고등학교에서 붉은 기와 양옥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문을 나섰을 때 왼쪽에 보이는 길을 올라야 했지만, 그날 나는 한성여자고등학교 정문을 나선 다음 오른쪽에 있는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다. 다음 날에는 그 내리막길을 오르며 등교했다. 정문 왼쪽에 있는 길을 오르며 등교하고 정문 오른쪽에 있는 길을 내려가며 하교했으며, 고등학교 2학년을 보냈고, 3학년을 보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내가 살았던, 붉은 기와 양옥집이 있던 자리를 찾으려 했던 적이 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보문동에는, 그 붉은 기와 양옥집이 있던 곳에는,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고 이 아파트 단지 어디쯤이 그 붉은 기와 양옥집이 있던 자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전봇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기와 양옥집에 살 때 한 주간 배출된 재활용 쓰레기를 지자체에서 수거해갈 수 있도록 봉지에 담아 그 전봇대 옆에 두었다. 그 전봇대를 기준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며 내가 살았던 붉은 기와 양옥집의 위치를, 내가 드나들었던 은색 대문의 위치를 가늠해본 적이 있다.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은색 대문에서 나와 전봇대 옆에 놓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수십 번, 아니 그보다 더 많을 텐데, 발걸음을 아무리 옮겨보아도 정확한 위치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기억을 더듬으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왔다가 가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붉은 기와 양옥집은 여기에 있다.






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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