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뱀

서희


01.

저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바다였다. 그토록 그리던 푸른 바다였다. 집안일에 치이다 겨우 찾아온 겨울 바다였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바다에 홀리듯 다가가다 한 발짝 내디디면 바로 물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가서야 걸음을 멈췄다. 서늘한 공기가 온몸에 와 닿았다. 숨을 한 번 들이쉬자 비릿한 바다향이 코끝에 닿았다. 들이쉰 숨을 내뱉자 입에서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얀 파도가 발 가까이 맴돌다 저만치 멀어졌다. 푸른 하늘 아래 태양 빛에 부서진 파도가 반짝였다.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고 얼마나 있었을까. 차가운 무언가가 발가락에 닿았다. 한순간 바늘로 살 깊숙한 곳까지 찌르는 통증이 느껴졌다. 이내 바다 저편으로 보냈던 의식이 돌아왔다. 종종 파도에 밀려온 해파리가 사람을 해쳤다는 뉴스를 봤다. 설마 그런 걸까 싶어 고개를 내렸다. 바닷물이 해변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이지만 유독 오늘은 물이 가득 차서 넘치기 직전처럼 보였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한창 물이 밀려들 시간이었다. 또다시 발에 서늘함이 엄습했다. 이번에는 발목까지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서둘러 발을 물에서 빼냈다. 발등이 멍든 것처럼 시퍼렜다. 생각보다 발이 바닷물에 오래 담긴 모양이었다. 바다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차가운 건 질색이었다. 그랬기에 오늘따라 깊숙이 밀려온 파도가 원망스러웠다. 파도가 원망스러우니 바다도 미웠다. 고개를 들었다. 태양은 여전히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파도는 여전히 반짝거렸다. 빛이 깊은 바다까지 길게 이어졌다. 문득 조각조각 빛나는 파도가 생명체의 비늘 같다고 느껴졌다.

급하게 손으로 발을 감쌌다. 발이 많이 녹았다. 그런 와중에도 놀란 가슴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 뼛속까지 서늘한 감각에 온몸이 놀라버렸다. 몸을 둥글게 말았다. 움직이기엔 몸이 굳어 있었다. 고개를 돌려 도움을 구할만한 누군갈 찾았다. 그러나 애초에 겨울 바다는 혼자 올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모두가 일행과 함께였다. 그렇게 크게 비명을 내질렀음에도 관심 한번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 넓은 공간에서 철저히 혼자였다. 바닷물이 여전히 해변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여전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문득 이 파도가 이대로 한도 끝도 없이 밀려오다 그대로 넘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했다. 사람은 의외로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이대로 파도가 나를 덮치면 아마 그대로 바다에 빠지겠지. 그리고 그렇게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게 뻔했다. 두려웠다.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공포심에 마음이 흔들렸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오늘 휴가 간다고 주변에는 다 말했을 텐데,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화면에 띄워진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당혹스러움에 눈을 비볐다. 아버지였다. 잘못 본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제대로 봤다. 의아했다. 그가 나에게 먼저 연락한 적이 없었다. 잘못 전화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진동이 꽤 길게 이어졌다. 불길했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그토록 피하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아버지. 무슨 일로 전화했어?”

“새벽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놀라지 말고 들어라. 네 어머니가 오늘 오전에 갑자기 어지럽다고 바닥에 누워 버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거다. 그래서 이모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정신을 놓았다. 올해 일흔이 되셨기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했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아버지가 뭐라 하던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입으로 하다못해 어머니가 의식이라도 있다는 말이 나오길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온종일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할 기세로 줄줄이 늘어놓았다. 언뜻 듣기로는 딸이 최대한 놀랄까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참모습을 안다. 그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목소리조차 역겨울 정도로 아버지가 미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간신히 목소리를 내어 어머니의 상태에 관해 물었다.

“그래서 엄마는 괜찮은 거야? 의식은?”

“그렇게 말하면 나 말 안 해 버릴 거다. 아버지가 말하는데 끝까지 들어야지. 그게 무슨 싸가지야.”

아버지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그러곤 아무 말 못 들은 마냥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런 상황에도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아버지가 미웠다. 무작정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릴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랬다간 아버지 성격에 또 싸움이 날 것이 뻔했다. 어쩔 수 없이 '참을 인' 자를 가슴에 새겼다, 지금은 어머니의 건강 상태를 보는 게 제일 중요했다. 바로 가겠다고 답하곤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던져 버린 신발을 줍기 위해 급히 뒤돌았다.

마음이 앞선 탓인지 신발도 제대로 신지도 못했다. 차도로 걸어가는 동안 제대로 묶이지 않은 신발 끈이 여러 번 풀렸다. 그럴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신발 끈을 몇 번이고 조였다. 고개를 숙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걸어가다 넘어질까 봐 손으로 눈물을 여러 번 닦아냈다. 차도에서 아무 택시나 잡았다. 문을 열고 급하니까 빨리 기차역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택시가 움직였다. 핸드폰으로 가장 빠른 기차를 찾았다. 30여 분 뒤에 출발하는 KTX가 있었다. 아무 좌석이나 예매하곤 그대로 의자에 기댔다. 집에 빨리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호흡을 고르며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잔뜩 긴장한 모양이었는지 몸에서 힘이 완전히 풀렸다.

왠지 당분간은 바다에 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모든 게 괜찮아질 때까지 이 바다를 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멀리서라도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손을 뻗어 창문을 내렸다. 햇빛 차단이 처리된 창문이 내려가자 비릿한 바닷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의자에 기대 그대로 고개만 돌려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는 여전히 생물의 비늘처럼 햇빛에 반짝였다. 택시는 빠르게 바다와 멀어졌다. 바다를 끝까지 보고 싶었다. 잠들면 안 됐다. 그러나 몸은 이미 피곤함에 져버린 모양이었다. 점점 시야가 흐려졌다. 바다가 흐려졌다. 흐릿해진 바다가 바람에 출렁였다. 태양이 여전히 바다를 비췄다. 조각조각 빛나던 윤슬이 이윽고 하나로 길게 연결됐다. 길게 이어진 빛은 바다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실은 저 빛이 살아있어서 우리를 쫓아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02.

집으로 올라가자마자 곧바로 택시를 또 탔다. 택시 기사는 병원 주소를 읊는 내 모습이 급해 보였는지 액셀을 밟아가며 속도를 냈다. 병원에 도착하자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어머니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어지럽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모습에 나는 왈칵 울음을 토해냈다. 그토록 강하던 어머니가 이렇게 쓰러질 줄은 정말 몰랐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어머니 앞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정신을 차리니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휴지를 들고 서 있었다. 의사는 내가 진정하기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우는 소리를 안 내려 휴지로 입을 틀어막았다. 의사의 배려 덕분에 감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곧바로 의사와 대면했다. 의사는 어머니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귀에 염증이 나서 쓰러진 거라 설명했다. 이 병은 휴식만이 해결책이라고, 최근 고민하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라며 휴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걸 들었다고 생각해 자리를 뜨려 하자 의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버님께서 성격이 그리 불같으셔서. 어머님께서 참 고생하셨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사셨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모두가 환영하는 와중에도 나는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그 예민했던 사춘기에 연락 한번 없이 나를 버려둔 사람이었다. 일도 안 하면서 우리 집 돈만 축내서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 맘껏 못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그랬으면서 사과 한마디 없이 기세등등하게 집으로 돌아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만큼 가족이 서로 대화하며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온 후로 우리 집은 단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 집에서 평범한 대화를 들을 수가 없었다. 식사 시간마다 밥상에서 두 분이 말싸움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럴 때마다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숨죽이며 버텨야 했다. 아버지는 종종 화를 내던 중에 쌍욕도 뱉었다. 아버지의 입에서 이년 저년 하는 소리가 나오면 아무도 아버지를 말릴 수 없었다. 언제 또 싸움이 터질까 두려웠다. 당장에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나가면 노쇠하신 어머니가 혼자였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이도 저도 못 했다. 낮에는 집 밖을 전전하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길 반복했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어머니가 약해진 모습을 보자 내 마음이 집을 나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 쪽으로 확 기울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며칠간 집에서 가만히 머무르며 어머니를 돌봤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건강이었다. 무조건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따라 집에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나의 분노를 억눌렀다. 아버지가 나에게 뭐라 하던 반응하지 않았다, 이런 나의 노력이 통한 것인지 어머니의 상태는 차도를 보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일어나 걸어 다니더니, 어느 날부터는 평소처럼 집안일까지 하셨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환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드러누워 티브이만 봤다. 아버지가 오신 후로 온종일 거실에서는 티브이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뭘 하시던 아버지는 그저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셨다. 그랬으면서 싸울 때는 오히려 어머니보다 더 큰 소리로 화를 내셨다. 어머니는 연세 때문에 안정을 찾아도 완치가 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이 집에서는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매일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버지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러나 아버지와 싸우는 게 무조건 답은 아니었다. 집에서 큰 소리가 날 때마다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미운 거지 집 전체를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아버지가 화를 내도 그저 참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집안일을 제대로 하라고, 그러게 왜 아프냐고 화내는 걸 보자 참아왔던 분노가 터져버렸다. 분노를 누르던 이성도 사라졌다. 그동안 참아왔던 화들이 마구 튀어나오며 온몸을 달궜다. 전신에서 열이 치솟았다. 이 열을 분출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몸이 절로 움직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아버지를 때리고 있었다. 유독 거대한 뱃살이 내 주먹을 단단하게 감쌌다. 덕분에 나름 강하게 때렸음에도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패륜이라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동안에 쌓아왔던 모든 말이 한순간 터져 나왔다. 아버지가 오시고 우리 집 망가지는 것을 느끼지 못 했냐고. 그런데도 왜 아버지는 변하지 않았느냐고. 사춘기 때에 나를 버려둔 것에도 모자라 왜 또 괴롭히는 거냐고. 마구 쏘아붙였다. 아버지는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내가 숨을 고르는 틈에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나의 뺨을 갈겼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뺨이 얼얼했다. 손으로 얼얼한 뺨을 감쌌다. 내가 무슨 짓을 당한 거지 곱씹었다. 그러다 이내 현실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아버지를 온몸으로 막아섰다. 힘겨운 목소리로 경찰을 부르라고 소리치셨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눈빛이 싸늘하고 차가웠다. 또 나를 때리려 손을 들고 있었다. 저년이 사탄이네. 아버지의 입에서 나를 지칭하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내 감정이 거부당했다고 느껴지자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마음을 침식시켰다. 눈물이 절로 흘렀다. 슬픔을 참을 수 없어서 울부짖었다. 집안의 모든 소리가 울음소리에 덮일 정도로 정신없이 울부짖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싸늘한 시선을 유지했다. 그는 나를 한참 동안 조용히 내려 보다 이내 한마디 내뱉었다.

“내가 그동안 너를 잘못 보고 있었구나. 너를 착한 딸이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어.”

“아빠 대체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왜 그러는 거야. 아빠.”

“아빠라고 부르지도 마. 내 핏줄도 아닌 주제에.”

그는 그 거대한 몸을 이끌어 자신의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숨을 잠시 고르곤 고개를 돌려 나를 벌레처럼 경멸스럽게 쳐다봤다. 한참을 시선을 유지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너는 괴물이야. 네 눈에는 독사가 들어있어.”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절대 안정을 취하게 해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까지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숨을 고르다 곧바로 일어났다. 정신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이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아니면 내가 죽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커다란 가방을 꺼내 잡히는 대로 옷가지를 마구 쑤셔 넣었다. 한참을 그러던 중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봤다. 어머니였다.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힘없이 들어와선 침대에 간신히 기댔다.

“새벽아, 진정하고. 응? 나가서 공기 좀 쐬고 맛있는 거 사 먹고 와.”

“엄마, 난 이 집에서 못 살겠어. 엄마도 나가자 응?”

어머니는 내 말을 듣자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고 울었다. 아픈 어머니에게 이런 추태를 보였기에 죄책감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보다는 어머니가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어머니는 평생을 아버지에게 붙들려서 산 사람이었다. 자신의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평생을 가정에 희생한 사람이었다. 당장에 아버지의 면상에 이혼장을 던져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어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내 안위가 우선이었다. 눈물이 흐르려고 하는 걸 간신히 참으며 그대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날로 나는 고시원을 잡았다. 한 평 정도의 좁은 방에 침대와 책상밖에 없었지만 혼자 살기에는 충분했다. 이렇게 살다가 개강하면 기숙사를 신청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때에는 학교에서 주는 밥 먹으면서 학교 잘 다니면 됐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가족 따윈 필요 없었다. 애초에 부모가 없을 팔자였다. 앞으로 가족들 얼굴 안 보고 살리라 마음먹었다.

그날 밤, 침대에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커튼을 쳤기에 방에 빛 한 점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방이 컴컴했다. 문득 어머니가 우시던 모습이 천장에 그려졌다. 어머니는 괜찮으실까 걱정됐다. 전화라도 한 통 할까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의 모습을 지우려 애썼다.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아버지의 말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너는 괴물이라는 말이, 네 눈에는 독사 한 마리가 들어있다는 말이 마음에 맺혀버렸다. 아버지와 싸웠던 기억을 찬찬히 되짚었다. 그러다 자기 핏줄이 아닌 이를 데려와 이 정도로 키운 거면 아버지가 화를 내도 내가 참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시, 어머니가 우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나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던 어머니를 버린 불효자였다. 못난 사람. 내가 너무 미웠다. 사라지고 싶었다. 이 어둠이 이런 못된 나를 데리고 가길 빌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얼굴까지 이불을 완전히 덮었다. 어떻게든 잠을 자려 애썼다. 그러나 여러 감정으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그렇게 독립 첫날부터 잠을 완전히 설쳐버렸다.





03.

집을 나간 후로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연락이 왔다. 내용은 언제나 같았다. 그래도 너에겐 아버지인데 아버지 대우를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고리타분한 말뿐이었다. 연락받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기억을 떠올렸다. 분노하며 난 절대 아버지 얼굴 안 볼 거라고 답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는 어머니이셨는지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걱정하는 말도 했다. 반면 아버지는 내게 연락 한 번을 하지 않았다.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가 주변인들에게 하신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연락하는 친척이 많아졌다. 그들의 말은 어머니의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네가 착하지 않으냐, 네 아버지가 너를 입양해서 키운 걸 알지 않느냐, 그러니까 착하게 행동하라는 말이 다였다. 차마 친척에게까지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허허 웃으며 알겠다고 말은 했다. 전화가 끊기면 그제야 전화기를 집어 던지곤 이빨을 으득 갈았다. 그들 중에 내가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들 중 누구도 내 마음을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나는 태어나 몇 주 동안 시설에서 자랐다. 그러다 지금의 부모에게 입양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들이 결혼은 일찍 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입양을 선택했다 말해줬다. 처음에는 내가 입양되었다는 말이 선택받았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랬기에 자연스레 내가 사랑받는 만큼 가족에게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특히 어머니의 말에는 절대 토를 달지 않았다. 주변 모두가 그런 나에게 착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지금의 내 마음을 물어봐 주지 않았다. 집을 나온 순간부터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착해야 한다는 족쇄로 변했다.

가족들은 아니어도 친구들은 내 마음을 알아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면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느 날은 어머니와 이렇게 통화했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이렇게 행동했었다.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분노가 털어졌다. 그러면 그날은 편안하게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편안함에만 취해 가족을 씹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에게 가정사를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정말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보통이면 친구들이 뭐라고 말이라도 해줬다. 그러나 오늘따라 친구들이 말을 아끼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이야기할 때마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잠시 정적을 유지하다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순간 욱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힘들다고 말하는데도 위로해주지 않는 친구들이 미웠다. 대인관계라던가 연애라던가 다른 주제들은 잘만 공감하면서 왜 내 주제만 공감해주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서 친척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 이야기에 관심을 달라 요구할까 생각했다. 그러자 내가 참 역겨워졌다. 사소한 일에 욱하고 분노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분노는 다른 친척들에게 향하는 때가 많았다. 아버지와 한 번 싸우면 그 누구도 우리 집에 오는 걸 꺼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꼴이었다. 혈연으로 엮이지도 않았으면서 어느새 그 미워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한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가장 닮기 싫은 모습을 닮아간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어머니를 괴롭히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그러나 오늘 나에게서 아버지를 닮은 모습을 보았다. 그 소동을 만든 것은 나였다. 아버지의 말처럼 내 안에는 독사가 있는 걸까.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만드는 걸까. 내 안의 독사가 있다면 남을 다치게 하기 전에 먼저 나를 죽여줬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고 보니 그날의 바다는 유독 살아있는 생명체 같았다. 수평선 너머로 길게 뻗은 빛이 윤기 나는 비늘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고 난 후로 나는 공부가 답답하다는 핑계로 여러 차례 여행을 떠나곤 했다. 사실 아버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대로라면 미칠 것 같았던 게 여행을 떠났던 진짜 이유였다. 어쩌면 그날에 내가 여행을 가지 않고 꾹 참고 자리를 지켰다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날의 빛나는 파도는 거대한 생명체가 되었다가 이내 뱀의 모습이 되어 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것은 기다란 붉은 혀를 내밀고 번뜩이는 눈으로 나를 지켜봤다.

핸드폰을 켜고 바다뱀 사진들을 둘러봤다. 바다뱀은 코브라 계열이라 독을 가진 종들이 대부분이었다. 인터넷 창을 내리다 노란색 윤기 나는 비늘을 가진 바다뱀의 사진을 발견했다. 금방이라도 사진을 뚫고 나올 것처럼 생동감 있는 것 같았다. 사진 속 뱀과 마주쳤다. 시커먼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 볼 듯 노려봤다. 저 앞에 서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저것에도 내가 괴물로 보일까. 사진을 한참 쳐다봤다. 핸드폰 불빛에 눈이 아파졌다. 눈을 깜빡였다. 어느새 새벽이었다. 이대로 가면 정말 잠을 못 잘 게 뻔했다. 당장 오늘 할 일이 많다. 핸드폰을 끄고 이불 속에 파묻혔다. 망막에 새겨진 뱀의 형상이 흐릿하게 움직이다 이내 스르륵 사라졌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쉭쉭 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피부에 서늘한 공기가 닿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창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한겨울에 문을 열고 잘 뻔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창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집 안이 고요해졌다.





04.

다음 날 나는 또 그 소리에 잠을 깼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인가 싶은 정도로 애매하게 들리더니 어느 날부턴가는 생물체의 숨소리라는 걸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히 들렸다. 급기야는 잠을 자지 않을 때도 그 소리가 들렸다.

그날의 노란 뱀은 나를 사로잡은 것이 분명했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자 그것은 꿈에서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기나긴 꼬리로 나를 옭아매곤 그대로 깊은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수면 밖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면 밖으로 나가려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강했다. 숨이 막힐 대로 막혀 결국 거품을 토해낼 때쯤에야 꿈에서 깰 수 있었다.

그것은 매일 밤 나를 옭아매고 심해로 내려갔다. 꿈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날의 나를 책망하는 것처럼 나를 더 강하게 압박했다. 어느 날부터는 입을 열어 나에게 직접 말을 걸었다. 어느 날은 어머니를 버린 나를 책망했고, 또 어느 날은 아버지를 미워하는 나를 다그쳤다. 그때쯤 나는 그것에 완전히 져버렸다. 그것이 내뱉는 말에 반박할 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밤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이러니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자다 깨기를 매번 반복했다.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점점 몸이 무거워졌다.

점차 삶이 피폐해졌다. 피로 때문에 낮에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책을 보다가도, 강의를 듣다가도 졸기 일쑤였다. 계획만 장황하게 세우고 아무것도 못 하는 꼴이었다. 이따위 뱀에게 져버리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리터 단위로 커피를 마시며 감기는 눈꺼풀을 이겨냈다. 주변에서 몸이 망가질 거라고 우려했지만 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여느 때처럼 커피를 들이켰다.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뒤이어 무언가가 내 안을 휘젓는 감각을 느꼈다. 감각은 곧 고통으로 이어졌다. 배를 부여잡았다. 내가 뭘 잘못 먹은 건가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째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아끼겠다고 며칠째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이 너무 쓰렸다. 자리에 누워 잠이라도 자면 편할까 싶었지만, 또 그 녀석을 봐야 했다. 배를 휘젓던 그것은 목을 타고 올라왔다. 이 기분 나쁜 것을 얼른 뱉어내고 싶었다.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통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리를 잡자마자 속에 있는 모든 걸 게워냈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코끝에 비릿한 냄새가 느껴졌다. 샛노란 토사물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다. 얼른 눈을 감아버리고 레버를 당겼다. 변기 물이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변기에 기대었다. 한참 숨을 골랐다. 목구멍이 쓰라렸다. 억지로 다리에 힘을 줘서 자리에서 일어나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발견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피로에 찌든 채로 퀭하니 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디 아픈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세면대를 붙들고 거울에 내 얼굴을 자세히 비췄다. 경악했다. 이건 내가 아니었다. 그제야 내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걸 이해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내 증상을 듣더니 곧바로 몇 차례의 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몸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나에게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망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곤 혹시 잠을 제대로 못 잘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냐고 물었다. 나는 최근 반복되는 어떤 꿈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내 말을 듣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꿈은 흔히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내적인 문제가 꿈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죠. 지금 환자분께서 어떤 문제로 계속 갈등을 겪고 있어서 같은 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곤 혹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면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아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말을 덧붙였다. 나를 괴롭히는 그 녀석을 없앨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의사는 나에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명함을 받아 앞뒤로 돌려봤다. 마치 그날의 바다처럼 맑은 푸른색 종이였다. 명함 앞면에 하얀색 글씨로 상담가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진료실을 나서기 직전에 의사가 나를 불렀다. 그러곤 무조건 자신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05.

병원에서 돌아오자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니께서 먼저 연락이 왔다. 연락을 안 받아야지 다짐했었지만 정작 내가 아프니 마음이 약해진 모양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어머니는 어디 아픈 곳은 없냐고 걱정부터 했다. 어머니를 걱정시키긴 싫어서 없다고 답했다. 어머니는 그날 이후로 나에게 마음이 쓰였다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곤 집에 한 번쯤은 와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집에 들어간다면 아버지의 얼굴을 봐야 했지만 돈 걱정 안 하고 세 끼를 제대로 먹을 수는 있었다. 그동안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 편의점에서 매 끼니를 때웠다. 그러면서 정신 차리려고 매일 커피까지 마셔댔다. 이렇게 했으니 탈이 나는 건 당연했다. 당장은 내 몸을 회복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이렇게 몸을 망친 거냐며 나를 다그쳤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특히나 어머니가 속상해할 게 뻔했다. 안 그래도 어머니 본인 몸도 힘든데 더 마음고생시키기는 싫었다. 그래서 공부하다가 몸이 상했다고만 대답했다. 어머니는 나를 걱정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덕분에 집에 돌아온 후로 나를 돌보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대로였다. 집에 들어온 당일에만 나를 조금 걱정하곤 다시 티브이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마 아버지의 방에 티브이가 생겨 다행이었다. 거실로 나올 때마다 아버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이전에는 방을 나설 때마다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집안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전원일기나 야인시대 같은 옛날 드라마를 볼 때면 어머니가 불러도 대답을 못 하기 일쑤였다. 아버지의 그런 꼴이 너무 싫었다. 편안해야 할 집이 나에게는 전혀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매번 가족 구성원의 눈치를 보는 게 고통스러웠다. 어떨 때는 그날처럼 화 한번 내고 집을 나설까 하는 충동도 일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화를 낸 대가를 받았다. 그랬기에 이번에는 치솟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저 나를 돌보는 일에만 충실했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조금 더 집안일을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딸이 집에 왔으면서 내내 티브이만 보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투였다.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는 거친 욕을 입에 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욕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맞불을 놓았다. 순식간에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전쟁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집구석은 내가 집을 나가는 강수를 뒀음에도 뭐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가장 큰 지원군이 되어도 모자란 가족이 나에게는 가장 큰 적이었다. 이 집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또 속이 울렁거렸다. 병자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이 이 집구석에서는 이뤄질 수 없었다. 모두 아버지 탓이었다. 나는 방에서 걸어 나와 또다시 아버지의 앞에 섰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던 그때와 똑같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것은 절대 딸을 사랑스럽게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덤벼드는 먹잇감을 고깝게 쳐다보는 짐승의 눈빛이었다. 한참을 조용히 나를 쳐다보던 아버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내가 너를 정말 잘못 보고 있었구나. 너를 착한 딸이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어.”

“아빠가 상처 줘서 그런 거잖아. 그럼 아빠는 뭘 잘하고 와서 우리 집을 이렇게 망쳐놨어?”

“시끄러워. 아빠 말도 안 들으면서. 너는 괴물이야. 교사는 무슨, 상담이나 받아.”

아버지는 자신에게 빌빌 기며 비위를 맞추는 사람만을 좋아했다. 그 이외에는 모두 자신이 잡아 죽여야 할 적이었다. 가족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그랬다. 그러니 나도 아버지에겐 죽여도 모자란 적이었다. 문득 꿈에서 나를 괴롭히던 그 녀석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눈이 세로 동공으로 길게 찢어졌다. 어느 순간 나는 거대한 뱀과 눈을 마주쳤다. 그것의 검은 눈이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췄다. 저것의 눈에도 내가 괴물로 보이진 않을까 두려웠다. 아버지가 입을 열 때마다 뱀은 거친 숨소리를 뱉었다. 집에서 머물며 그것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말이 거칠어질수록 그것도 거칠게 날뛰었다. 이젠 그것의 숨소리가 귀에 거슬릴 지경이었다. 귀를 틀어막았다. 화를 내는 아버지도 그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머니도 보기 싫었다. 가슴에 불덩이라도 들은 마냥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대로라면 내가 죽든지 미치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게 분명했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라는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살고 싶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덮어버릴 만큼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리곤 그대로 가슴에 쌓아둔 화를 쏟아냈다.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다른 아빠들 딸한테 그렇게 말 안 해. 나를 딸이라고 생각하긴 하는 거야?”

“그럼. 너는 내 딸이야. 그러니까 내 말 들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정말 비겁했다. 언제는 말 안 들었다고 자기 딸이 아니라더니 이번에는 자기 딸이랬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을 바꿀 뿐이었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 나를 자기 딸이라는 이유로 본인의 틀에 가둬놓으려고 하는 아버지가 괴물이었다. 어머니의 인생을 망친 것도 모자라 내 인생마저 자신에게 종속시키려는 아버지가 괴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머니처럼 긴 시간을 함께 산 것도 아니었다. 나와 아버지가 함께 한 추억 따위 잊힌 지 오래였다. 따지자면 나와 아버지는 완전히 남남이었다. 그러니 나는 아버지와 남남인 셈이었다. 나는 괴물도 독사도 아니었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성적으로 보였다. 눈에서 미친 듯이 흐르던 눈물이 멎었다. 어이가 없었다. 저 사람에게 분노도 슬픔도 느낄 가치도 없었다. 소리 내어 마구 웃어버렸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 당한 나 자신을 비웃었다. 정말 바보 멍청이였다. 한편으론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었다. 처음으로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세로 동공 너머로 알코올에 찌든 노란 눈이 보였다. 시선을 밑으로 옮겼다. 배만 불룩 나온 상체가 눈에 띄었다. 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유달리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알코올 중독 상노인일 뿐이었다. 내가 뭣 때문에 저 남자에게 이렇게 묶여 살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글쎄. 나는 아빠를 아빠로 생각한 적이 없어서 말이야.”

“뭐?”

“아버지가 자기 핏줄도 아니라며. 그리고 내 인생에서 몇 년이나 같이 있었어? 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아무것도 없는데.”

나를 그동안 묶어두었던 가족이라는 틀이 깨지기 시작했다. 단단히 자리하던 죄책감이 사라졌다. 그러자 한결 홀가분해졌다. 반면 그는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러더니 단단히 화가 났음을 표현하듯이 씩씩대며 욕을 뱉었다. 그의 입에서 온갖 년이란 년은 다 튀어나왔다. 이렇게 하면 내가 겁을 먹어서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리라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그런 수법은 더 이상 나에게 먹히지 않았다. 나는 그와 남남이었다. 남남인 주제에 나를 해하려 한다면 내가 연을 끊으면 그만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자 어느새 뱀의 모습이 스르르 사라졌다. 쉭쉭 거리던 숨소리도 사라졌다. 순식간에 집 안이 고요해졌다.

숨을 가다듬었다. 목소리에 힘을 주곤 나는 당신의 딸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처음부터 나와 당신은 남남이었으니 나는 아버지를 처음부터 없던 사람으로 취급할 거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을 당황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순식간에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소리 내며 펑펑 울었다. 살면서 그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안쓰러웠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게 고생하고 외국에서 돌아왔으니 호사를 누려도 충분했다. 그러나 자기 고집대로 행동하다 결국 자신의 노년을 망쳐 버렸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자기 손으로 망쳤으니, 더 이상 내가 그를 봐줄 필요는 없었다.





06.

내가 그에게 절연을 선언한 후로 그는 나에게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집에 있는 동안 내 눈치를 계속 살폈다. 짐을 싸는 동안 이것저것 훈수를 두더니, 짐을 들고 대문을 나서자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를 배웅하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제야 나에게 잘해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모양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잘했으면 애초에 이런 일도 없었었다. 참 한심하고 역겨웠다.

이전의 고시원으로 돌아가면 또 돈 걱정을 할 것이 뻔했다. 더 이상 그런 걱정에 파묻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모로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알아봤다. 다행히 어머니의 실직과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길로 지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기숙사에 들어갔다는 말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저번처럼 걱정할 필요 없겠다며 우스갯소리도 하셨다. 고시원에 들어가 있는 동안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신 모양이었다.

기숙사에 들어가고 나는 의사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내 마음에 집중하며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다. 몇 달 전과는 다르게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삶이 편안해지자 마음도 편안해졌다. 종종 내가 이래도 되나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죄책감은 더 이상 나를 그 깊은 심해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바다뱀에게 끌려가는 꿈을 꾸지 않았다.

문득 그날의 바다가 떠올랐다. 푸른 하늘 아래 태양 빛에 부서지던 파도가 그리워졌다. 핸드폰을 켜 주말 날씨를 확인했다. 기상 예보관은 주말 내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예정되어 있다며 여행을 가기에 딱 좋은 날씨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장 KTX를 끊었다.

주말이 되자 나는 짐을 챙겨 바다로 떠났다. 택시 문을 열자 바닷바람이 온몸에 스쳤다. 봄이라서 그런지 겨울에 왔을 때보다는 공기가 덜 차가웠다. 황량하던 주변의 풍경들도 막 생기가 돌던 참이었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파란 새잎이 돋았다. 평소에는 기상청이 자주 틀린다고 욕했지만, 오늘은 예보가 딱 들어맞았다. 여행을 가기에 딱 좋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저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파도 소리가 이렇게 반가워질 줄은 몰랐다. 다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만조가 가까워져 바닷물이 해변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비릿한 바다향이 코끝에 닿았다. 태양 빛에 부서진 파도가 반짝였다. 그때의 모습 그대로 바다는 나를 반겼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바다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파도가 맨발에 닿았다. 바닷물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때의 서늘함과는 다른 감각을 느꼈다. 시원했다. 더 오래 있고 싶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로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가 일행이 있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공포에 질리지 않았다. 이 바다는 나를 해할 생각이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을 휘적거리며 주머니를 뒤지다 금속이 아닌 이질적인 감촉을 느꼈다. 두꺼운 종이 감촉이었다. 무엇인지 보려고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냈다. 푸른색 명함이었다. 가까이 보니 하얀색 글씨로 심리상담가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이런 걸 언제 받았을까.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다 내 몸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 의사에게 명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핸드폰을 꺼내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상대편이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친절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자신을 상담센터 소속의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언제 병원에 방문해도 되는지 물었다. 직원은 오늘은 주말이라 상담받기 어렵다고, 대신 상담 예약을 잡는 게 어떻겠냐고 나에게 권유했다. 몇 번의 의논 끝에 다음 주 중으로 상담을 잡았다. 직원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발등에 닿는 물결을 즐기다 문득 파도에 내 몸을 실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 물에 젖으면 안 되는 물건들을 꺼냈다. 웃옷도 벗었다. 몸에 걸친 파란색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만이 남았다. 깊게 숨을 쉬고 수평선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몸이 천천히 잠겼다. 옷이 바닷물에 젖어갔다. 물에 발만 담글 때와는 또 다른 감각을 느꼈다. 몸이 거의 잠길 때까지 들어가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바닷물에 몸을 온전히 맡겼다.

이렇게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건 처음이었다. 빠질까 두려웠는데 조금 있으니 금방 몸이 적응했다. 몸에 힘을 빼자 바다는 나를 온전히 받아줬다. 귀가 바닷물에 잠겼다. 모든 소리가 한 층의 필터를 거친 듯 약하게 들렸다. 수면 위에서 천천히 떠다니다 몸에 힘을 줬다. 순식간에 몸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사방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바닷물이 참 맑아서 하늘이 그대로 푸르게 보였다. 햇살이 바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고요한 바다에 따뜻한 햇볕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런 편안한 시간이 또 언제 올까 생각했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어머니가 쓰러지고 시간이 멈출 줄 알았는데 내가 힘들어하던 순간에도 시간은 흘렀다. 절망하여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나는 내 손으로 변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앞으로 살다 보면 오늘보다 더 좋은 날도 찾아오지 않을까. 평화로운 푸른 바다 밑에서 나는 그 어떤 힘든 일이 인생에 닥쳐도 굳건히 버텨내겠다고 다짐했다.






김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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