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미김치라이징

한숨자


“선생님, 며칠 전부터 밥도 안 먹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옥자는 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검사부터 해볼께요. 몇 살이에요?”

“몇 살인지는 모르겠어요. 몇 살쯤 되보이시나요?”

옥자는 말을 마치고는 무릎에 앉아 있는 옥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진부하게도, 옥미는 비 오던 어느 날 쪽방촌 골목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옥자 역시 그날따라 발작적인 다정함을 참지 못하고 녀석을 주워오고 말았다. 커다란 몸집에 눈에는 눈물 자국이 지저분하게 붙어 있고, 맥아리도 없어서 도통 귀여운 구석을 찾아보기가 힘든 검정색 푸들 잡종을 아무도 데려가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도 초라하게 생긴 탓에 이름만은 멋지게 지어 주고 싶어서 옥스퍼드 미켈란젤로라고 지어 주었다. 줄여서 옥미라고 불렀다.

옥자가 처음 알바에 참석하기 전날, 주최 측이 집회원들에게 모자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집회원임을 드러내는 빨간색 모자였다. 옥자는 가진 모든 물건을 이름을 쓰고 소중하게 다루었다. 새로 받은 모자도 마찬가지였다. 주황색으로 옥자의 이름을 수 놓았다. 노인들은 모자를 안 쓴 사람이 보이면 몰려들어 발로 짓밟았다. 취재를 위해 시위대 속으로 들어왔다가 고초를 겪은 청년은 그 와중에도 카메라를 꼭 안고 있었다. 폭력의 중심에는 철이 할아버지가 있었다. 철이 할아버지의 얼굴은 의기양양했다.

귀가 찢어질 듯 소란스러운 가운데 한 젊은이가 노인들에게 둘러싸이기 일보직전이었다. 보나마나 험한 꼴을 당할 듯했다. 옥자는 악으로 가득 찬 노인들이 어떻게 분풀이를 하는지 방금 본 터였다. 잽싸게 모자를 벗어서 그에게 씌워줬다. 그 덕분에 그는 집회의 무리에 자연스레 섞일 수 있었다. 그는 누가 자신에게 모자를 씌워주었는지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리에 휩쓸려 옥자와의 거리가 멀어진 후 였다.

옥자의 발 밑에서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가방이 하나 있었다. 한 쪽으로 맬 수 있는 형태의 가방에는 ‘태양태권도’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뭐지?”

옥자는 생전 남의 물건을 주워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줍고 싶었다. 주워서 주인을 찾아주게 된다면 착한 일을 하나 한 셈이니, 하늘에서 상으로 옥미의 죽음을 조금 늦춰주지 않을까 하는 황당하 면서도 간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옥자는 조심스레 가방을 주워 내용물이 뭔지 보았다.

“세상에!”

그 가방에 들어있던 것은 오만원짜리 지폐다발이었다. 얼른 가방의 지퍼를 닫았다. 평소라면 주인을 찾을 노력을 해야 할 것이지만 옥자는 평소의 옥자가 아니었다. 옥자는 오직 옥미만을 생각했다. 순식간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돈이면 당분간 옥미의 진통제도 걱정없이 살 수 있지 싶었다. 옥자는 알바 중인 것도 새까맣게 잊은 채 가방을 품에 안고 집으로 뛰어갔다.

옥자는 쪽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꼭 걸어잠갔다. 그러고는 아무도 없는 방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돈 세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싶어 텔레비전을 켜서 볼륨을 높였다. 그제야 옥자는 겨우 가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돈을 세기 시작했다. 2000만원이었다. 숨이 가빠왔다. 옥자는 한참동안 지폐 다발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시 가방에 돈을 차곡차곡 넣었다. 옥자는 차곡차곡 쌓여가는 돈과 옥미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옥미의 까만 눈동자가 눈에 밟혔다. 뭔가 눈치를 챈 듯 옥미가 웬일로 몸을 일으켜 옥자에게 오려 했다. 그러자 옥자는 작은 방의 구석으로 피해버렸다. 어딘가 풀죽은 듯한 옥미를 뒤로 하고, 돈가방을 들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많이 처먹어.” 텔레비전을 끄려는데 옥자의 귀에 선명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화면에는 옥자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생기있는 표정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화면 하단에는 국밥집으로 빌딩을 세운 욕쟁이 할머니, 라는 자막이 옥자의 눈에 들어왔다.

리포터는 물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할머니가 욕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세요?”

“몰라. 미친놈들이여”

옥자는 열려던 문을 살며시 닫았다.

오랜 세월 고립된 생활을 해왔던 탓에 사람들을 대하는 게 어색한 옥자로서는 장사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옥미를 살릴 수 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랄 건 없었다. 옥미는 빨리 수술을 해야 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욕쟁이 할머니처럼 된다면 옥미의 진통제는 물론 수술비까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옥자는 2000만원을 밑천으로 요식업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옥자는 요리도 못하고 맛도 잘 모르는 것이었다. 이혼한 후로 김치찌개 한번 제대로 끓여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옥자는 태어나서 한번도 욕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옥자는 요리와 욕, 두 가지를 배워야 했다.

옥자는 책으로 요리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다독왕’이라는 글씨가 쓰인 에코백을 메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요리책을 한 권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저히 적당량의 양념을 넣는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유튜브에 동영상 강의가 있다는 책의 설명을 보고는 2층 컴퓨터실로 향했다. 수없이 다독왕이 되었던 옥자였지만 컴퓨터실은 처음이었다. 손글씨의 시대가 가고 워드프로세서의 시대가 오자 가장 먼저 타자를 배운 옥자였지만 인터넷은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유튜브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옥자가 컴퓨터 앞에서 쩔쩔 매다 옆에 앉아 졸고 있는 청년을 살짝 흔들었다. 모니터에서는 공무원 시험 1타 강사가 열렬히 강의를 하고 있었다.

옥자가 용이를 흔들며 개미만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네?”

졸고 있던 용이가 깜짝 놀라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저기 뭐 좀...”

옥자는 용이의 눈을 못 마주치며 자꾸 자판만 쳐다봤다.

“말씀하세요. 뭐 좀 도와드릴까요?”

그제야 옥자는 용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화색을 띄었다.

“제가 저기 유튜브에 좀 들어가 보려고 하는데...”

“으음? 네? 네이버에 들어가서 유튜브라고 치세요.”

“네이버요?”

“아니, 그냥 제가 해드릴께요!”

청년은 친절하게 유튜브를 검색해주고 창을 켜주었다. 청년이 가르쳐준 대로 유튜브에 들어간 옥자는 요리를 검색했다. 많은 요리 유튜버들이 있었다. 가장 조회수가 높은 백종원 유튜브의 김치찌개 영상을 클릭했다.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자 멈춤버튼을 누르고 옥자는 청년에게 인사를 했다.

“총각 정말 고마워요! 고마워..”

옥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옥자는 그가 벗어둔 모자에 ‘태양태권도’라고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었다. 옥자는 순식간에 며칠전 자신이 주웠던 가방에 적혀 있는 이름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갑자기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총각... 되게 피곤해보여요. 늦게까지 공부하나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야간 알바도 하고 있어서...”

“공부도 해야하는데 밤에는 알바까지 하는 거예요? 그런데 태권도장까지 다니고?”

옥자는 은근슬쩍 태양태권도와의 관계를 물어보았다.

“태권도는 지금은 안하고...아무튼 돈이 너무 급해서요...”

돈이 왜 급한 걸까. 옥자는 왜 이렇게 초조한 마음이 드는 건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급적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옥자는 슈퍼에 가서 장을 봐왔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식칼을 꺼내 재료를 숭덩숭덩 잘랐다. 그러나 안 그래도 서툰 칼질에 잘 들지 않는 칼 때문에 나중에는 대체로 손으로 찢는 수준이었다. 끈질긴 사투 끝에 어쨌든 김치찌개 같은 모양이 만들어졌다. 옥자는 평소 오신채를 입에 대지 않던 불자였다. 옥자는 문득 자주 음식을 나누어 주던 옆방 할머니 미애가 생각이 났다. 타인에게 곁을 주지 않던 옥자에게 언제나 다정하게 눈인사를 건네던 사람이었다. 옥자는 조심스레 옆방 방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미애씨. 저는 옆방에 사는 옥자예요.”

“알지라. 그런데...뭔일로? 큰일이 생겼는가? 어디 아프기라도 한겨?”

생전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던 옥자가 자신을 찾자 미애는 불길한 생각부터 들었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혹시... 음식맛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제가 불자라 오신채를 먹지 않아서...”

“그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제. 이웃끼리 도와야 되고 말고.”

옥자는 미애를 방으로 초대했다.

“방이 엄청 넓구만이라 내 방보다 큰가?”

“그럴 리가 없지요”

미애는 자꾸 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물건이 거의 없어 네 사람도 누울 수 있을 만큼 넓어보였다. 미애의 방은 빼곡히 물건을 쌓아놓아 딱 한 사람만 누울 수밖에 없었다. 탁 트인 옥자의 방을 보자 미애는 속이 시원했다.

“맛이 어떤가요?”

옥자의 물음에 미애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냥 그런가보군요.”

옥자는 당황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김치찌개여? 오신채 안 드신다고 내가 음식 갖다주면 늘 거절하시더만...”

미애는 옥자에게 내심 서운해 하고 있었다.

“제가 사실...김치찌개집을 해볼 생각이거든요.”

어린아이가 꿈이 대통령이라고 말하듯이 천진한 얼굴로 옥자는 말했다.

“아서라! 이 김치찌개로는 안돼야...나가 전라도 사람아니여? 사실 이거 별로... 아니 그게 아니라...” 미애는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옥자는 기죽어 보이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무튼 내가 좀 도와줄까? 김치찌개는 내가 또 잘 끓이는 구먼.”

“도와주시면 고맙죠. 그런데 저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어요”.

비장한 표정의 옥자가 말했다.

“그게 뭐라?”

미애는 옥자의 터무니없는 계획을 다 듣고 나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몰랐다.

욕만 잘한다고 성공할 수 있을까? 그 가게들도 기본적으로 맛은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미애는 이미 옥자를 응원하고 있었다. 방음이 전혀 안되는 쪽방에 나란히 살면서도 작은 소음조차 난 적이 없었다. 텔레비전은 전혀 안보는 모양이었다. 어쩌다 한번씩 열려진 방문 사이로 옥자가 살짝 보일 때마다 늘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산책했다. 그녀가 산책하는 것을 보면 몇시인지 알 수 있었다. 계절마다 정해진 옷을 매일 입었지만 늘 단정하고 깔끔했다. 옥자의 곧은 자세와 반듯한 생활은 미애가 야만과 가난에 시달리는 동안 잊어버린, 모든 것을 잃기 전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유튜븐가 뭔가에도 욕을 가르쳐주는 영상은 없을 거여. 집회 알바에 가면 욕이란 욕은 다 들을 수 있을껴.”

미애의 말에 옥자는 집회에 다시 한번 참가하기로 했다. 광화문에서 울려퍼지는 다양한 욕을 귀동냥할 요량이었다.

“헛소리하는 것들 아가리는 다 찢어버려야 해!”

큰 소리가 들려왔다. 저렇게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내비치는 이들이 옥자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녀는 오랜 세월 감정을 삼키며 살아왔다. 세상은 그녀에게 감정을 내비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입을 다무는 게 습관이 되었다. 큰 소리를 듣기도 싫고 하기는 더 싫었다. 남편이 바람핀 것을 알게되었을 때도 대차게 욕지거리 한번 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위자료 달라는 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그쪽도 줄 생각이 없었던 건 물론이었다. 그렇다고 화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뿐. 이제 그녀의 방식을 버릴 차례였다.

그때 생전 안 하던 집회 알바에 참여한 옥자를 심상치 않게 지켜보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철이 할아버지였다.

“어쩐 일로 나왔누?”

철이가 말했다.

“알 거 없으세요.”

“초짜니까 도와줄라 그라지.”

철이가 더 가까이 다가오자 옥자는 팔을 내저으며 뒷걸음치고 있었다. 모자를 받으러 갔던 미애가 달려오며 심한 욕으로 철이를 물리쳤다.

“사지를 다 절단 내기 전에 절로 가부러, 이 육시럴놈아!”

미애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철이는 놀라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옥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굴이 빨개진 미애는 자꾸만 바닥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옥자는 미애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옥자는 미애에게 갑작스레 제안했다.

“제게 필요한 분이셨어요! 저를 제자로 삼아주세요!”

제자라니, 미애에게는 생소한 단어였다. 미애는 사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평생 배울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겨우 다닌 국민학교의 멋쟁이 담임선생님을 미애는 이날 이때까지 동경해왔던 것이다. 누군가를 가르쳐보는 것이 소원이 아니었던가! 미애는 욕설을 가르친다는 게 조금 쑥스럽긴 했지만 유년시절하던 학교놀이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선생님 역할을 가장 잘했던 만큼 자신감 있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빠진 철이가 일어나려하자 미애는 눈살을 찌뿌리며 옥자와 황급히 집으로 향했다.

진지한 표정과 명료한 발음으로 미애는 강의를 시작했다.

“욕의 시작은 씨발로 시작혀. 일단 씨발씨발 거리는겨, 씨를 강하게 발음하고. 따라해봐 씨발새꺄”

“시발.. 새꺄...”

옥자는 볼펜을 야무지게 쥐고서 공책에 시발새꺄를 한 글자씩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변형버전으로는 시부랄!”

“시부랄”

“비슷한 말로 씨뱅!”

“시뱅”

“시가 아니라 씨여 알파벳 씨이이!”

미애는 욕이 아직 트이지 않은 옥자가 답답했다. 옥자는 특히 씨들어간 욕들을 힘들어했다. 일단 옥자에게 발음이 어렵지 않은 것부터 알려주기로 했다.

“그러다 욕이 안 떠오를 땐 염병할”

“염병할!”

“그래 그건 잘하네잉”

옥자는 미애에게 처음 칭찬을 들었다. 그것도 염병할로.

옥자는 밤잠을 아껴가며 배운 욕을 밑천 삼아 드디어 식당을 열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첫 손님으로 아가씨 둘이 재잘거리며 들어왔다. 옥자는 숨이 가빠왔다. 연습해본 욕들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쌓여 있었다. 옥자는 미애가 끊임없이 반복해서 가르쳐 준 쌍시옷부터 내뱉어버렸다.

“씨...씨씨 씨발 것들아, 우라질 많이 처먹어.”

“저 할머니 왜 저래?”

불쾌함이 가득한 대화가 들려왔다. 옥자는 아무리 센 척해도 소심하기 짝이 없는 샌님이었다. 손님들에게 폴더처럼 허리를 굽히고 사과를 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옥자는 주방으로 가서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혹시나 손님들이 먹지도 않고 나갈까 무서워 서두르느라 손이 자꾸 미끌어졌다. 다행히 손님들은 여전히 있었고, 옥자는 김치찌개를 내어갔다. 그 모습은 비굴해보일 정도로 공손했다.

욕쟁이 할머니가 하는 욕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애정을 듬뿍 담아서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태생적으로 타고 나는 것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손님의 목소리, 표정에서 나타나는 기분, 외양에서 드러나는 성격들이 본능적으로 통계화되고 수치화되어 뼈에 새겨진, 말하자면 어느 정도 실력 있는 관상가의 경지에 도달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옥자처럼 사람한테 관심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한낱 배움로 익힐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갑자기 전략을 바꿀 수는 없었다. 옥자는 욕을 먹더라도 다시 욕을 더 열심히 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두 번째 손님으로는 커플이 들어왔다.

“미...미친년놈들아, 퍽퍽 먹어!”

퍽퍽 먹어, 는 옥자가 생각해도 정겨운 말 같았다. 배불리 먹으라는 것이니까.

“할머니. 언제 봤다고 욕이세요?”

남자는 여자친구 앞에서 사뭇 근엄한 표정으로 옥자를 꾸짖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옥자는 또 한번 심장이 쪼그라져 빛의 속도로 사과를 했다.

“할머니 이렇게 금방 사과할 거, 욕은 왜 합니까?”

남자는 바짝 수그러든 옥자의 모습에 짠해져서 한결 누그러졌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옥자는 손자뻘 되는 남자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할머니 컨셉 잘못 잡으셨나봐, 자기가 참아...”

미애는 신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실내를 둘러보자 손님이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옥자는 열지도 않은 깡소주 한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집회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며칠 전에 봐두었던 새로 생긴 김치찌개집이 보였다. 아무래도 번듯한 데는 기가 죽고 허름한 데가 만만했다. 나름 단골이던 김치찌개집들에는 술먹고 진상치는 바람에 주폭으로 선정되어 출입금지가 된 참이었다. 그런데 옥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장사를 시작했는데 왜 개업턱을 안 내누? 김치찌개 하나랑 소주 2병 주게.”

“네 알겠습니다.”

개업턱은 무슨... 옥자는 장사가 안 돼서 파리만 날리는 와중인데 철이의 말본새 하나 하나가 다 싫었다. 그래도 손님이니 친절하게 대해야했다. 옥자의 원칙주의자다운 면모는 이상한 상황에서도 발현되었다.

“자네, 만나는 사람은 있나?”

철이는 얌전한 옥자에게 만나는 남자가 없을거라고 짐작했지만 그래도 수작부리는 데 이 정도는 물어줘야 했다.

“그런 거 없어요.”

헛소리를 하는 철이에게 김치찌개 한상을 내주었다.

“맛있게 드세요.”

고되고 거친 쪽방촌 생활은 철이에게 식사예절 같은 건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철이는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한 그릇을 비웠다. 음식 맛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옥자는 그 모습도 꼴보기 싫었다.

“잘먹었네.”

“계산은 안 하는 건가요?”

“나한테 돈까지 받으려고 이 미친년이? 나한테는 평생 꽁으로 밥줘야지. 서방 될 사람한테!”

옥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해석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귀가 먹을 나이가 되긴 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옥자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분명 서방이란 단어를 쓴 것 같았다.

“누구 마음대로 서방이 되는 건가요?”

처음에는 밥값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이웃이니까. 그런데 철이가 자신한테 관심있는 눈치를 보이자 돈을 받음으로써 관계를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평생 나한테 붙을 생각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 놀라 대거리도 못하고 철이를 보내버렸다.

다음날이었다. 자고 일어난 옥자는 어제의 철이가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그건 그렇고 가게를 열려고 나가려는데 옥미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어차피 가게에 가도 옥미는 구석에 가만히 앉아만 있을테고, 무엇보다 손님도 없을 것 같아서 옥자는 옥미를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오늘도 손님은 없었고 옥자는 옥미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을 지났을까? 또 철이가 왔다. 이번에는 미애에게 배운 욕을 총동원해 쫓아내기로 옥자는 결심했다.

“이 씨발새꺄 나가”

확실히 배운 씨발새꺄 하나만 이용했는데 철이의 충격은 커보였다. 감히 내가 저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철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철이는 있는 힘껏 옥자의 뺨을 후려치려고 팔을 들었다. 그러나 옥자는 오랜 생식으로 건강한 몸을 지녔고 반사신경도 빨랐다. 순간 철이의 머리를 냅다 밀어버렸다. 철이가 옥자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힘으로도 철이는 옥자에게 당해낼 수 없었다. 철이는 오랜 세월 술에 절어 근육도 다 녹아 내렸기 때문이다. 철이의 뒤로 발라당 넘어진 모습이 개구리 같았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쪽팔려서 눈물이 핑 돌려고 했다. 그래도 휘청거리며 일어나 씩씩대며 애먼 의자를 발로 찼다. 가게의 모든 의자를 발로 찰 기세로 실내를 돌아다니다가 힘없이 누워있는 옥미를 발견했다.

“밥집에 개새끼나 있고 말이야. 이래가지고 무슨 장사를 한다고! 씨발!”

철이는 가뜩이나 메가리 없던 옥미를 발로 뻥 차버렸다. 옥미의 속에서 올라온 신음에 가까운 비명이 들렸다. 놀란 옥자가 옥미에게로 부리나케 가는 사이, 철이는 가게 문을 부술듯이 열고 나갔다.

옥자가 옥미를 안아들었지만 쌕쌕거리던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의사의 진단을 받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옥미는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옥자는 옥미가 딱딱해질 때까지 하염없이 안고만 있었다.

미애는 집회알바를 끝내고 받은 일당으로 요구르트를 사서 옥자네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가게에 들어선 순간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옥자를 크게 불러도 옥자는 없었다. 미애는 옥자네 집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방문을 거칠게 여는 순간, 천장에 매달려 있는 옥자를 발견했다. 신발도 벗지 않고 옥자의 방에 달려들어갔다. 옥자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온힘을 다해 옥자를 들었다. 그러자 옥자의 숨이 돌아오는게 느껴졌다. 부엌에서 가위를 가져와 탁상 위로 올라갔다. 옥자와 미애가 마주앉아 욕을 공부하던 탁상이었다. 빨랫줄을 끊고 옥자를 끌어내리며 미애는 울부짖었다. 숨이 넘어가는 옥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켁켁거리는 옥자에게 미애는 한탄하듯 말했다.

“자네, 왜 이러는겨. 우리 같이 살아 보기로 했잖수.”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요... 옥미가 죽으면 다 의미 없어요.”

숨을 고른 옥자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씩 내뱉었다. 미애는 그제야 죽어있는 옥미가 보였다.

“아니, 갑자기 죽은 거여? 그럼 생명을 다한 거니께...”

“그게 아니에요. 철이 할배가 뻥 차버렸어요... 철이 할배가 죽인 거예요.”

옥자는 미애의 말을 끊고 분노에 차서 숨을 헐떡여가며 신음처럼 외쳤다.

“그럼... 옥자네가 죽을 께 아니구먼...”

미애는 어느 때보다 단호한 태도로 옥자의 눈을 보며 말했다.

“옥미 묻어주러 갈까?”

미애는옥자의손을잡아끌었다.원칙대로라면개의 사체는 종량제봉투에 넣어 처리해야 하지만 옥미를 차마 그렇게 버릴 순 없었다. 옥자는 다독왕 에코백에 옥미를 조심스레 넣었다. 두 사람은 뒷산으로 불법 투기를 하러갔다. 한참을 산을 오른 뒤 평평한 곳을 찾고 조용히 흙을 팠다. 침묵을 깬 건 미애였다.

“철이 할배를 쪼까 어쩌면 좋컸어? 아무래도 숨통을 끊어놔야 쓰것제?”

미애는 진지한 목소리로 옥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살인을 하겠어요? 하더라도 저혼자 해요.”

옥자는 미애에게 더 큰 짐을 줄 수는 없었다.

“자네... 완전 범죄라고 아는가? 내가 죽으려고 구해 둔 독약이 하나 있어. 쥐도새도 모르게 사람을 죽일 수가 있는겨.”

그날 저녁 철이네 집을 찾아갔다.

“할아버지. 내일 옥자네 가게로 김치찌개 먹으러 오셔라. 옥자가 할아버지랑 다시 잘 지내고 싶나보잉.”

“그럼 그렇지. 나를 서방으로 모실 준비가 되었나보군.”

미애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철이는 몹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은 오랜 세월 잊고 있던 권력의 맛이었다. 온갖 굴욕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굽신거리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자신에게 굴복한 옥자를 보러갈 생각을 하니 설레여서 그냥 잘 수가 없었다. 세탁도 하지 않은 옷들을 입었다 벗었다 했다. 냄새가 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한숨도 제대로 못잤지만 아침은 왔다. 오랜만에 세수를 했다. 철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옥자네 가게로 갔다.

“어서오세요.”

“잘 있었는가?”

으레 손님에게 하듯이 깍듯이 인사를 하는 옥자를 보자 철이는 입꼬리가 절로 실룩거렸다. 여자는 자고로 저래야 맛이지. 철이의 두껍게 패인 주름 위로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김치찌개 하나 내오게. 소주도 일단 두병만.”

옥자는 주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애와 눈을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옥자는 주방으로 향했다. 기지개를 펴고 미리 준비해둔 재료를 뚝배기에 담아 가스불 위에 올렸다. 옥자는 김치찌개가 끓는 모양을 보며 미애에게 물었다.

“약이 이렇게 뜨거운 데 있어도 되려나.”

“아... 그랑께...”

미애는 독약의 끓는 점은 몰랐다.

“소주에 타서 주면 안 되려나?”

옥자는 다급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철이의 아가리를 벌리고 약두병을 콸콸 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양반이 소주 뚜껑 따면서 먹던 건 줄 알고 난리를 칠 끼라서... 일단 다 끓으면 넣어봐. 죽지는 않아도 병신 정도는 되겄지.”

“김치찌개에도 넣고 소주에도 넣고. 옆에서 내가 따라 주면서 약을 살짝 섞어 볼께요.”

옥자는 끓고 있는 김치찌개에 미애가 건네주는 한병의 독약을 섞었다. 김치찌개와 소주 2병을 쟁반에 담아 철이에게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미애는 비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와서 같이 먹지?”

철이는 이번에도 괜히 옥자를 옆에 앉히고 싶었다.

“그럼 그럴까요?”

옥자도 순순히 철이의 옆에 앉았다.

철이는 김치찌개가 나오자 소주병을 따고 찌개 한 입에 소주 한 입을 연거푸 들이켰다.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다니, 이게 얼마만인가. 철이는 몹시 흡족했다. 여자는 고사하고 어느 누구도 철이와 술을 마셔주지 않았다. 철이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런데 여자가, 그것도 어엿한 사장님이씩이나 되는 옥자가 내 옆에 앉다니. 소싯적 잘 나가던 시절 기백이 남아있는 모양이라고 철이는 생각했다. 그때 그 시절 부르던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옆에서 옥자는 적당히 추임새를 해가며 소주병에 나머지 한 병의 독약을 조금씩 채워놓았다. 철이는 자신이 얼마나 잘 나갔는지에 대해 주구장창 떠들었다. 스스로에게 푹 빠져서 한 편의 1인극을 하는 동안 옥자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소주 2병과 김치찌개를 해치웠다.

“소주가 오늘따라 참 다네. 아직 두 병밖에 안먹었는데 왜 이렇게 어지럽지?”

말이 점차 느려지고 조금씩 꼬여갔다. 아직 술기운인지 약기운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많이 취하셨나봐요?”

옥자는 철이의 동공이 정신없이 커졌다 작아졌다하는 것을 관찰하며 주방에 있는 미애와 눈빛을 주고 받았다.

“취하기는... 소주2병에... 그럴리가 있나... 나가 옛날에 시바스리갈을...속이 울렁거리네... 화장실을... “

철이가 일어서려는데 온몸이 후들거리다가는 비틀거리다가 고꾸라졌다. 그 순간 용이가 들어왔다. 용이는 달려가 철이를 부축했다.

“어?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옥자도 철이를 부축하는 척 옆에 다가갔다. 그러고는 철이의 코밑에 손가락을 대고 완전히 죽었는지 살폈다.

“정신을 잃으신 것 같은데요. 아니 돌아가셨나?”

용이는 기겁해서 철이에게서 물러났다.

“죽은거 같혀.”

미애가 주방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진짜 죽었나?”

용이가 철이를 번쩍 들었다.

“병원에 데려가야죠!”

“응... 그건 그렇지...”

옥자는 예상못한 전개에 미애만 쳐다보았다. 미애도 쓸데없이 훌륭한 청년 용이 때문에 난처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을 나서려는 순간 용이에게 안긴 철이의 머리가 가게문을 지지하고 있던 벽돌에 쾅 부딪혔다. 철이는 갑자기 거품을 물었다.

“어? 이게 뭐지? 진짜 돌아가셨나? 나 때문에? 아 어떡하지?”

옥자와 미애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미애는 가게 문을 닫고 옥자는 셔터를 내렸다. 어리둥절한 용이는 옥자와 미애를 번갈아보았다. 용이와 눈이 마주친 옥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용이 총각때문이 아니야.”

옥자는 용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자네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르게 넘어갈 수 있어라. 시체도 아무도 모르게 치워버리면 되제.”

용이는 미애의 말에 뭔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떨결에 자신이 깊게 관여된 것도.

“마땅히 치우실 곳이 있으세요?”

“아... 그건 고민을 좀 해봐야...”

옥자도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그저 미애만 쳐다봤다.

“산에다 저기하면 되지 않을까?”

미애는 강아지처럼 사람도 묻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시체가 발견되면요? 잡히는 건 시간 문제예요.”

용이의 머릿속에 텔레비전에서 들어봤던 사체유기죄가 떠올랐다.

“어쩐댜... 솥에 끓여서 셋이서 나눠 먹는건 워뗘?”

“그럼 뼈는 어떡해요.”

그때 자신의 손을 간절하게 잡은 옥자의 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용이는 옥자의 쪼글거리는 손가락을 보다 말고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용이의 전 직장 사장은 새끼손가락이 없었다. 그는 군대에 가기 싫어서 새끼손가락을 잘랐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관차 소금에 넣어두었는데 남들이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 손톱만한 젓갈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저... 좋은 방법을 아는데... 소금 좀 구해다 주실수 있으세요? 많이요.”

철이가 사라졌으나 쪽방촌에서의 흔한 일일뿐이었다.

옥자는 용이를 입양하고 가게를 전적으로 맡기게 되었다. 용이는 삐까번쩍한 건물로 출근을 했다. 옥자의 건물에서는 1층은 김치찌개 2층은 김치볶음밥 3층은 김치찜 4층 김치전을 팔았다.

이것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옥미 김치빌딩의 기원이다.






한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