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곡 외 2편

정수



환상곡


폭죽에 놀란
광장의 사람들이
작은 탄성을 터트린
밤이었다

길가에는 모자를 쓴 아이들이
볼이 빨개진 채로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검은 개가 짖었다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성당이
불을 밝혔다
사람들은 종소리를 기다렸다
누군가 성호를 그리기도 했다

미래가 희박하게 오는구나
늙은 벽돌공이
성당의 벽을 쓰다듬으며
농담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손을 내밀어
춤을 추자고 했다

악사들이 광장 한쪽에서
찬송가를 연주했다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더 들리지 않도록

새카맣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염려


이번 앨범의 컨셉은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이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는 낯선 감각이에요
늦은 밤 나는 컴퓨터로 노래하는 여자 아이돌을 본다*
사운드를 체크하고
준비되면 말씀해주세요
희고 둥근 이마와 세련된 아이라인
인이어를 빼고 노래하는 모습은
(라라라)

조명이 비추면
입체적인 얼굴이 되는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리허설을 앞둔 그는
숨소리가 불규칙했다
그의 손등에다 손을 얹고
호흡을 같이 세어준 일 있었다

무대에서는 토크도 하고
호응도 유도하는데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땐
무서워
손을 잡아주니까
애인 같다
우리가 둘 다
여자가 아니었다면
실없는 소리

나는 맨 뒷줄 객석에 앉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노래하다 문득
객석을 쳐다본 것 같기도 했다
조명이 꺼졌다
한참이 지나도 눈이 어둠에 적응되지 않았다

지구에 오래 남아 있던 사람은
외계인에게 어떤 인사를 하게 될까
생각했다




* 김사월의 노래 ‘젊은 여자’에 수록된 가사를 변용.


올드시티 소셜 클럽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였다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잠든 소설가에게 욕을 하던 앵무새는 날개를 펴고 자리를 떴다 바텐더가 끈적거리는 애플파이를 입에 털어놓고 손을 털었다 인사말이 우물거리는 소리에 섞여서 잘 들리지 않았다

헤드라이트가 문가에 걸린 포스터를 비추고 지나갔다
시내 극장의 마지막 상영작

배우로군 난 저 이를 작은 도시의 영화제에서 본 적 있어 검은 드레스를 입고 추도사 같은 수상소감을 말했지 위스키 한 잔 더 주시오 팁은 여기, 하고 눈을 게슴츠레 뜬 소설가가 손을 뻗다가 동전을 쏟았다 쏟아진 동전이 뱅글뱅글 돌았다 앞면으로 놓일지 뒷면으로 놓일지 궁금하다고 바텐더는 말했다 앵무새가 듬성듬성한 꽁지깃을 단장했다 가슴 깃이 다 빠져서 살이 보이는 앵무새는 도대체

어디서 욕을 배워온 거지?

잔을 일렬로 놓고 따르는 위스키들
한 방울도 넘치지 않았다

소설가가 손에서 떨어트린 안경은 무척 두꺼운 나머지
안경에 비친 그녀의 왼쪽 얼굴이 둘로 보였다

그녀는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서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아이리시 커피를 주문하고 신문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바텐더는 꽃병을 닦아 신문과 함께 그녀의 앞에 두었다

소설가는 팔짱을 끼고 몸을 떨었다
바텐더가 위스키를 놓아주었다

잔에 남은 커피 가루를 휘젓다가
그녀는 신문을 다음 장으로 펼쳤다
산업 면과 증권 면을 지나서 깨알 같은 글씨의 바로잡습니다 코너까지

홰에 앉은 앵무새가 꾸벅꾸벅 졸았다
도시에는
어둠이 쏟아져 있고
피아노 연주가 전조 되었다

극장에선 마지막 영화의 막이 오르고 있을까
바텐더가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동안





정수
은평구 주민. 무엇이 작가 소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쾌하게 쓰고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인스타 아이디 jeong_shu_
블로그 주소 https://blog.naver.com/chungsy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