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사이 외 2편

지우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는 너를 건드리고
사랑에 빠지게 될 거야

다른 사람은 필요하지 않아
우리는 그저 네 가슴을 풀어헤치지

그러면 거기엔 늘
하나뿐인 심장,
바늘 없는 시계가 있지

나사를 박아넣어도 작동하지는 않고
피만 줄줄 흘리는

어떤 발버둥도
비명도 피 냄새도
너를 멀리 데려다주지 못하고

안쪽에서 바깥으로
시선을 던지는 울타리 속의 가축들

겨울, 나는 춥고
바깥에 눈은 쌓여가
우리와 놀아주던 주인의 발자국은 어디로 갔는지

네게서 빠져나온 피가 눈밭을 적시고 있는데

눈 밟는 소리 들려오지 않고
눈 내리는 소리에만 귀를 내어주는 지금

소리 없이 사라지던 너의 시간처럼
눈이 내리네

가축들은 이유 없이 울기 시작해
우리는 그저 신을 기다리고 있으며

나는 너도 없이 사랑에 빠지지




스물


목구멍에 손을 넣어 구토를 시작해

입가에 묻은 자국을 지워내며, 세면대에 어떤 표정을 남길 수 있을까 고심하지

바닥에 엎질러진 채 이 구멍에서 저 구멍으로 흘러가요

잠에서 깨어나면 일을 가야 하고요

일을 하다가 죽을 거야. 죽을 때도 심장을 가지고 죽어요. 가끔은 사랑을 하고 햇빛을 베고 몰래 잠을 자

심장이 하나쯤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면 “오, 누구든 내 심장을 훔쳐 갔으면!”

죽거나 누군가를 죽이는 일에 실패하고 다시 멀쩡하게 살아가요

승리의 나팔이 불어주는 깨끗한 금속성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비유들은 녹슬어가며 단순해지지

가져본 적 없는 미래처럼

기어 오는

피 웅덩이를 봤어. 웅덩이의 중앙은 지금도 그 속에서 누군가의 피가 샘솟고 있는 듯이 검붉은 벨벳처럼 탐스럽게 빛났고 바닥 없이 깊어 보였지만 웅덩이의 주변은 바싹 마른 채 지면에 연한 붉은색 주름만을 새기며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고 있었어요. 이곳에는 흉기와 주검이, 경악과 슬픔과 추문이 무엇보다 죽음이 함께 있었지만 이젠 웅덩이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에요

웅덩이는 그 모든 흔적을 먹어 치운 폭식증에 빠진 우아한 부르주아일까요?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은, 심장마저 메마른 냉혈한? 어쩌면 웅덩이에 바쳐졌던 꽃들이 웅덩이를 지금까지 뻔뻔하게 살아있게 만든 게 아닐까요? 지금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그 수많은 꽃들 하나하나의 빛깔이(전부 하양이긴 했지만) 눈앞에 생생하다고 좋았던 때를 회상하듯 사건 담당 형사가 말했어요. 그때 자신은 어렸고

스물, 바람은 나쁜 냄새를 풍겨오기 시작해

조금 더 깨끗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아침엔 오줌을 싸고요

가끔은 변기에 앉아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봐. 그리고 “하늘이 파랗다”라고 말하지




비명금지


어젯밤, 이불 밖으로 삐죽빼죽 빠져나와있는 다리들을 보며 생각했다. 다리가 너무 많다고, 도대체 머리통을 어디에 눕혀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 이제 그만 다 끝나버렸으면! 하고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때, 하루 내내 소화불량에 시달렸던 배를 눕히고 싶을 때, 거미들은 어떻게 하지?

거미들은 허공에 집을 짓는다

*

우리는 너무 빨리 늙어버린 개, 곰팡이투성이 혓바닥, 무지개색 침이 묻은 베개, 나무줄기를 닮은 뻣뻣한 수염, 그 수염에 붙은 불, 함무라비식 복수로 인해 죽어버린 여자, 이 모든 것들을 내팽개쳐버리고 도망가려는 모두의 귀를 잡아당기며, 우리는 말한다.

*

변기 위에서 그는 앉는다
변기 위에서 그는 선다

변기 위에서 그는 기필코 싼다

변기 위에서 발명된 자세는 아직 두 가지

우리에게는 다리가 너무 많은데

그래도 싸야지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사용 가능한 변기가 없어도
싼다

우리는 그저 한 번 열린 입이 다시 닫히도록 하지 않을 뿐

그 기쁨 속에서

서로의 입속으로

우리는 싼다.

*

유모차 끌고 싶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멈추지 않는 파티를 열어줄 거야, 매일매일이 생일이도록

유모차 끌고 싶어서 아이를 가졌다

처음으로 유모차 끌고 나온 날, 나는 신이 났고 기뻤어 정말 기뻐서 재잘거렸다

아이야, 봐보렴 네 손등을 지나가는 걸 이게 햇살이라는 거야, 네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열린 창 사이로 들어와 네 눈을 간지럽히던 게 바로 이거야, 네가 자꾸만 눈을 끔벅거리기 시작할 때면 커튼 뒤로 사라지던 게 바로 이거야

아이야, 나는 햇살처럼 너를 두고 가지 않아 나는 어디서든 너를 놓지 않을게 내리막길에서도 오르막길에서도 심지어 구불구불 뻗어가는 나선형 계단 위에서도 나는 네 옆에 있을 거야 유모차를 끌면서

*

저게 하늘이라는 듯, 목을 빼고 봐야 할 정도로 정말 높고 긴 계단이었고 대체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끝이 있긴 한 건지 감이 오지 않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데 계단 위쪽 어딘가 멀리서부터 무언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철저히 부서지고 뒤틀리고 망가지면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실체화되며 딱딱해진 비장을 관통하면서 지나가는 사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끔찍한 무언가가 어느새 발밑에 도착해 있었다. 선물처럼.





지우
199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