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 사례1)

김미루


알립니다
이 책의 저자인 저는 2019년 9월 14일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조난」에 관한 사과문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금치산자레시피의 김미루입니다. 며칠 전 저는 2018년 10월에 올라온 @B02Bot에 관한 트윗을 읽게 되었습니다. 트윗을 작성한 사용자는 위의 문장에 대해 실제 여성 편의점 노동자의 입장에서 무척 끔찍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지금이 9월이니 거의 1년 만에 그 트윗을 보게된 셈입니다. 이 글은 그 트윗에 대한 응답입니다. 응답이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B02』는 2009년에 종이책으로 100부 이하로 소량 발행되었고, 이후 금치산자레시피를 통해 2016년에 이북으로 배포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운영이 중지된 @B02Bot은 종이책 『B02』 가 발행되고 얼마 안있어 운영이 시작되었고, 제가 위에 언급한 트윗을 읽기 전까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위 캡쳐된 트윗은 @B02bot이 비정기적으로 타임라인에 올리던 트윗 중 하나로 『 B02』에 수록된 「조난」에 포함된 문장입니다.
제가 「조난」의 문장들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큰 상처가 될 것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상처 입히기 위해 쓴 문장이 결코 아니고, 혹시라도 상처를 주게 된다고 해도 그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 감히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악적 표현들이 글의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판단과 입장에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의도니 뭐니 하는 것들은 죄다 헛소리입니다. 저는 이따위로 머리 굴리는 모든 일들이 비열한 개수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조난」에서 쓴 문장들이, 특히 여성 편의점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선 안되었습니다.
좋은 의도는 좋은 방식으로 드러나야만 합니다. 최소한 저는 좋은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악을 자처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제가 작성한 「조난」의 문장들로 인해 상처 받은 분들과 위협을 느낀 분들에게, 특히 여성 편의점 노동자들에게 사과드립니다.
이 시간부터 금치산자레시피를 통해 공개되는 『B02』의 소개, 책의 「조난」이 시작되는 부분에 오늘 공개된 사과문과 「조난」의 독자들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한 트리거워닝이 포함될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공개될 모든 저작물의 공개에 앞서 소수자에 대한 위협의 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금치산자레시피 일동은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항상 안전하길 바라며 이를 위한 가능한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또한 저희 자신을 향한 감시와 의심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에는 소아 강간을 포함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모의에 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돈을 쥔 그는 가장 먼저 편의점에 들어갔다. 담배 두 보루를 샀다. 근처 ATM에서 밀린 전기세를 냈다. 가스비를 낼 돈은 없었다. 하지만 얼마간 간신히 먹을 거리를 살 돈은 남았다. 집으로 향했다. 환한 대낮이었다. 집 안의 모든 조명을 켰다. 방 안에 형광등 울리는 소리가 가득찼다. 꺼진 핸드폰을 충전했다. 잠시 잠들었다. 꿈은 여전히 막막했다. 깜깜했다.
만약 누군가 그들의 위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난 기꺼이 다음 날의 절차를 따르거나 다음 날의 사건들이 일어나길 기다리라고 권할 것이다.

1. 예고되지 않은 평일 오전 일곱 시 삼십 분 서울-수도권의 모든 지하철이 일제히 폭발한다.
2. 아직 열기가 그치지 않은 시커먼 페허에 탄저균 분말이 비밀리에 살포된다.
3. 1주일 뒤 언론과 정부의 주도로 유가족 및 부상자에 대한 모금운동 및 구호활동이 시작된다.
4. 구호활동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급성 탄저병으로 사망한다.
5. 구호활동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친인척 및 이웃이 급성 탄저병으로 사망한다.
6. 그 밖의 모든 친인척 및 이웃이 급성 탄저병으로 사망한다.

6의 순서가 완료되고 한 달 뒤, 남아있는 생존자들을 수소문 하다 보면 이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아침에 괴로웠고 저녁엔 더 괴로웠다 오늘 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그 다음 날이, 그리고 그 다음 해가. 이렇게 우리는 미래를 앞세워 나아갔다
해가 뜨고, ㄴ이 끈적끈적한 얼굴로 모니터를 보고 있다. 인터넷이 끊어졌다. 예상한 일이었다. 그 때가 언제가 되더라도 그는 지금처럼 멍청하게 모니터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컴퓨터가 꺼졌다. 전기가 끊어졌다. 그는 꺼진 모니터를 보다 일어났다. 화장실로 향했다. 이미 그가 모르는 사이 가스가 끊어졌다. 발가벗은 ㄴ이 차가운 샤워기 아래 서 있었다.
그는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여러 차례 이런 일을 겪었다. 그때마다 힘없이 원망했지만 부당한 처사라는 생각은 안했다. 그들의 집행은 정당했고 그는 그 집행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물론 조금만 봐준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들이 조금만 봐준다 하더라도 그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조금만 봐준다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그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그의 원한은 어딜 향하고 있었을까.
내가 너무 주절주절 떠드는 것이 아닌가 겁이 난다.
ㄴ이 매트리스에 누워 천장을 봤다. 만약 그 곳이 천장이었다면 말이다. ㄴ이 몸을 돌려 방문을 봤다. 만약 그 곳이 방문이었다면 말이다. ㄴ이 몸을 일으켜 창문을 봤다. 만약 그 곳이 창문이었다면 말이다. ㄴ이 팔을 뻗는다. 만약 그것이 ㄴ의 팔이었다면 말이다. ㄴ의 방 안이었다면 말이다.
ㄴ의 엠피쓰리 플레이어가 꺼졌다. ㄴ의 핸드폰이 꺼졌다. 이제 완전히 어둠이다. 어둠이 닿는다. ㄴ의 다리 근처에 자리 잡은 어둠은 매트리스와 맞닿은 벽을 타고 천장으로 기어올라간다. 점도 높은 액체는 그를 감싼다. ㄴ이 떠밀려 간다. 언젠가 아침이 오리라는 자명한 일이 아득하다. ㄴ의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만약 그곳이 ㄴ의 좁은 방 안이었다면 말이다.
난 너와의 대화를 모두 내 손톱 밑에 숨겨두었다.
하나. 검은 색이 아니었다. 둘. 짙은 파랑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 뭔가 있었다. 어둠은 얇은 막 같은 것이었다. 그 막이 나를 얇게 덮었다. 그 막의 바깥에는 멀쩡한 천장이 있었다거나 멀쩡한 책장이 있었다거나, 뭐 그런건 아니다. 그냥 그 얇은 막을 떨쳐낼 수 있을 만한 성질의 무엇이 아니었다. 셋. 내가 너무 주절주절 떠드는 것이 아닌가 싶어 겁이 난다. 넷. 분명한 건, 내 방 안에는 약 백아흔 뼘의 어둠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의 연구진은 전기 전도성의 특정 특성을 높이기 위한 실험에서 알루미늄 포일 표면에서 산화층을 제거하고 그 위에 탄소나노튜브를 도포하는 과정에서 이 탄소 구조물이 더욱 어둡게 보이는 현상을 발견했다. 연구진들은 이 표면의 광학 반사율을 측정하기로 결정했고, 이 결과 이 표면이 99.995%의 가시광선을 흡수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 발견은 브라이언 워들과 케항 쿠이에 의해 정리되어 미국 화학학회(ACS) 회보인 ʻ응용 재료와 계면(Applied Materials and Interfaces)ʼ 2019년 9월호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때 이 땅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내게 전화했고, 전기가 끊어졌지. 고객님 이번에도 돈 안내면 전기가 끊어집니다. 내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니. 남들이 보면 우리 연애하는 줄 알겠다, 그치. 근데 돈이 없는걸 어쩌라고. 너도 알잖아, 씨발 돈이 없는데 내가 무얼 어쩌라고. 그래서 나는 너를 한결같이 사랑한다, 개같은 년아.
밤이 오고, 전기가 끊어져 불도 켜지지 않는 지하 방에 누워서, 내가 보던 곳이 천장이 맞다면, 천장을 보면서 생각했어. 아마 언젠가는 전기가 끊어질 거란 말이지. 한전은 말야, 존나 관대해. 나 같으면 하루만 밀려도 바로 전기를 끊었을거란 말야. 근데 이건 뭐 존나 관대하잖아. 내가 세 달이나 돈을 안 냈는데 전기를 안 끊네. 존나 부처 같은 새끼들이지. 상상해보자고, 그 씨발년도 언젠가는 다른 씨발년에게 전화를 받을거란 말이야. 고객님 이번에도 돈 안내면 전기 끊어진다고. 그리고 그 씨발년도 밤을 맞이하고 전기가 끊어져 불도 켜지지 않는 지하 방에 누워서 천장을 보면서 생각하겠지. 그 씨발년도 다른 씨발년에 대해 상상하겠지2). 씨발년들은 항상 다른 씨발년들에 대해 상상하지.
그가 일어나 계단 위 미니스톱에 들어간다. 못생긴 아르바이트가 카운터에서 자빠져 자고 있다. 그는 가장 안쪽 ATM에 자리를 잡고 서 있다. 다음 날 ㄴ이 미니스톱에 들어간다. 못생긴 아르바이트가 졸린 눈으로 일어나 ㄴ을 쳐다본다. 고개를 돌려 안쪽 ATM에 그가 서 있음을 확인한다. ㄴ이 알바에게 조용히 말한다. 야이, 개같은 년아. 돈 내놔.
우리 둘이 저 앞에 보이는 미니스톱에 쳐들어갔어. 불쌍한 알바년 젖통을 쿡쿡 찌르면서 말했어. 씨발년아, 돈 내놔. 그 년은 우리한테 자기 지갑을 털어서 돈을 줄까? 아니면 돈통을 열어서 돈을 줄까? 어떤 선택이 그 씨발년의 대가리를 돋보이게 만들까? 그 씨발년도 다른 씨발년들에 대해 상상할까?
배고프니? 예. 네 뱃속의 고통을 먹으렴. 모기를 잡아서 피를 빨아먹어라. 내장은 내일을 위해 남겨두어야 해3).
아침이 와야 잠든다. 그때 쯤 되어야 단단한 어둠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밤엔 잠이 안온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다. 별 수 없이 집 밖으로 나간다. 처음엔 가로등 근처 벤치에 앉아 있는다. 숨도 못 쉬다 물에 빠져 죽은 시체처럼 새벽의 끝자락을 따라 벤치에서 떠밀려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아예 어둠과 하나가 된다. ㄴ으로선 그게 어떤 순간인지, 어떤 세계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다만 천장을 뚫어지게 응시하다 누군가의 왼쪽 한켠에 그럴 가능성이 수줍게 앉아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아직도 ㄴ은 자신이 어둠과 하나가 될 수 없었던 것이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산의 중턱에서 그 순간에 직면할 것이다. 다들 그때를 준비해야만 한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산의 중턱이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산의 중턱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당신들에게 내가 말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진실을 일러주겠다. 나는 이미 산의 중턱에 서 있다. 지금 이곳에서 빛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들은 아직 산의 중턱에 도달하지 않은 모양이다.
다시 벤치로 돌아간다. 그 전 처럼 해가 뜰 때까지 거기 앉아 있거나 서 있는다. 가끔 운이 좋으면 근처에 떨어진 장초 몇 개를 발견한다. 게다가 더 운이 좋으면 아직 기름이 남아 있는 라이터를 구할 수도 있다. 점점 요령이 생긴다. 장초를 주워다 핀다. 그의 장초 지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점점 새벽에 나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
우린 둘 다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살아남아야 하고 그것은 바로
나여야만 한다.
그 누구야, 김장훈이는 지가 공연해서 번 돈은 죄다 기부로 때려 박는다지. 근데 난 여태 한 번도 김장훈이 이름으로 백원 한 푼 받아본 적이 없어. 넌, 넌 받아봤어? 아니. 기부, 좆까라 그래, 한국에 그 돈 받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아마 있지 않을까? 왜 우린 안주는데? 왜? 게으른 놈들한테는 안 주나보지. 야 말은 바로 해야지. 넌 씨발놈이다, 개 씨발놈이다. 자, 우린 이걸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린 단 한 번도 게을러 본 적이 없다. 그냥 우리가 한 짓이 돈이 안 되었던거야. 그러니까 뭐야, 그래. 이 산업사회에서 생산성이 없었다는거지. 애초에 생산성이란 말이 왜 생겼겠냐.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촌것들을 소처럼 몰아 공장에 쳐박아 넣기 전에 생산성이란 말이 있었을 것 같냐? 안 썼어. 그딴 말 없었어. 존나 대량생산하면서, 우리의 시간을 칼처럼 나누고, 그 시간과 돈을 저울질 하면서 나온 말이란 말이야. 이런 차원에서 우리가 싸돌아다니면서 장초 줍는 건 절대로 생산성 있는 일이 아니지. 왜냐고? 우린 씨발 석유를 안 쓰거든!
우리가 여기 저기 깃발 꽂으면서 최고의 장초를 지퍼백에 담는 것은 절대로 산업사회에서 생산성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없을거야. 그렇다고 우리가 게으르다, 그건 또 다른 문제란 말야. 우리 존나 부지런하게 장초 주우러 다니잖아. 너, 니 인생을 탈탈 털어서 이렇게 부지런해 본 적 있어? 없지? 나도 없어! 니 말대로 백 번 양보해서 만약 김장훈이가 우리와는 달리 부지런한데 돈이 없는 불행한 새끼들한테 기부하는거라면, 그래서 게으르면서 돈도 없는 것들한테는 기부하지 않는거라면 저 씨발놈은 기본적으로 게으른 것이 무엇인지 말할 준비가 되어 있겠지? 그 새끼한테는 기준이 있는거겠지? 그리고 부지런한게 어떤 것인지 말할 준비가 되어 있겠지? 게으른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말할 자신이 있겠지? 부지런한 놈이 어떤 놈들인지 말할 자신도 있겠지? 어떤 새끼가 굶어 죽어도 되는지 말할 수 있는거겠지? 그거 기부한다고 몇 사람이나 살겠니. 오프라 윈프리 그 깜댕이 씨발년이 달러를 그렇게 기부에 때려박았는데도 난 동전 하나 받아본 적이 없어. 그래, 진짜 니 말대로 백 번 양보해서 진짜 지들이, 부지런한데 가난한 사람, 배고픈데 뒤져가는 사람 살리려면, 그게 기부로 될 일이냐?
기부로 될 일이 아니잖아. 이건 뭐 사회를 때려 바꿔야지. 사회에 문제가 없다면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지런한데도 계속 가난하냐고. 왜 씨발 우리 말고도 가난한 새끼들이 있는거냐고? 그건, 돈이 안되는 짓을 하니까 가난한거잖아. 자, 그럼 돈이 되는 짓은 뭐냐? 그건 누가 결정하는데? 그리고 그게 어떤 새끼든, 돈이 안되는 짓 했다고 밥 굶고 다니는게 말이 되냐? 그래도 기부로 이걸 틀어막을 수 있겠니? 근데 김장훈이가 지 입으로 저런걸 고백할까. 못할거야. 결국 그 새끼는 이 좆같은 사회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지. 근데 고생해서 욕 쳐먹어가면서, 좆같은 소리 들으면서 사회운동 안 해도, 기부하면 말야. 타인한테 인정받고 자기만족까지 얻어낼 수 있거든. 뭐 이런 마법같은 일이. 완벽하잖아.
뭐 김장훈이가 지 입으로 그렇게 말하진 않겠지. 왜냐면 가난뱅이들도 자존심이 있거든. 안 가난한 새끼들의 자존심과 달리 가난뱅이들의 자존심에는 값이 매겨져 있다는 것이 좀 특별한 점이지. 암튼 기부한답시고 돈 때려박는 머저리같은 새끼들은 그게 씨발 쇼핑 하는거랑 별 다를게 없다는 것 쯤은 인정할 필요가 있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랑 난 존나 열심히 살고 있어, 돈은 안되지만.
근데 넌 누구니? ㄴ이 말했다. 그는 ㄴ이 들고 있던 장초를 빼앗아 물었다. 나? 응. 나, 그지 새끼지. 넌? 나도. 잠깐 정적이 흐른다. 아직 여름이다. 아 씨발 배고프다. 어쩌다 이러고 있냐? 집에 불이 안들어와. 가스는? 가스도. 넌? 나도. 그들은 나란히 앉아 웃었다. 담배 있냐? ㄴ이 물었다. 그는 얼마간 세계를 지켜보다 대답했다. 아니, 없어.
천둥의 나라인 내가 말했다. 천둥의 나라인 내가 말했다. 너는 살 것이다. 너는 살 것이다. 너는 살 것이다4).
ㄴ이 미니스톱에 들어간다. 못생긴 아르바이트가 졸린 눈으로 일어나 ㄴ을 쳐다본다. 안쪽 ATM에 그가 서 있다. 못생긴 아르바이트의 시점에서 사각에 선 그는 크게 말했다. 야이, 개같은 년아. 돈 내놔.
머리를 좀 굴려보자. 우리가 저 불쌍한 년 지갑을 탈탈 털었어. 아님 돈통을 그냥 통째로 들고 날랐어. 어쨌든 운이 안 좋으면 저 병신 같은 년은 짤릴거야. 돈도 못 지켰다고. 저 년은 다시 좆같은 고시원으로 돌아가서, 그 좆같은 고시원에는 창문도 없어, 아니면 지가 기어 나가겠지. 아니면 돌아버리든가. 저 년은 다시 좆같은 고시원으로 돌아가겠지5)..
『해커스토익 실전 100제』 158페이지를 넘길 때 쯤 알바생ㅁ은 잠시 카운터에서 나와 볼펜을 꺼내들었다. 스스로 바코드를 찍었다. MCM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했다. 거스름돈을 챙겼다. 이제 막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앞으로 살펴봐야 할 문제는 산더미 같다.
뒷모습이 허름한 남자가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 다른 남자가 위태로운 걸음으로 가게에 들어온다. 남자는 눈 아래 잠이 가득 한 알바생ㅁ을 노려보다 그의 가슴으로 눈을 돌린다. 알바생ㅁ은 그 시선을 의식하다 곁눈질하며 가게 앞에서 담배 피는 남자의 동태를 살핀다. 아주 잠시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 가게에 들어온 남자가 가게 안을 한 바퀴 돈다. 남자의 시선이 천장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CCTV를 찾고 있는 중일 것이다.
알바생ㅁ은 카운터 아래 버튼을 향해 손을 뻗는다. 남자가 다가간다. 알바생ㅁ은 눈을 아래로 내린다. 들키지 않게 남자의 손을 감시한다. 항상 문제는 손이다. 바깥의 남자가 가게 안을 지켜본다. 두 남자가 유리판 사이로 신호를 주고 받는 것 같다. 안 쪽의 남자가 알바생ㅁ에게 말한다. 에쎄 하나 주세요. 이어진 계산. 안 쪽의 남자가 담배를 들고 나간다. 바깥의 남자는 한동안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 다른 남자가 간 반대편 길로 걸어간다.
분명 그들은 신호를 주고 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나눈 시선에 어떤 의미가 있었을지 복기해 본다. 또 다른 신호는 없었을지, 날 어쩌려했던 건지. 그들은 왜 담배만 사서 돌아갔는지. 내가 받은 돈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돈을 적게 받았거나 위조지폐이거나 일련번호가 이어져 있거나. 알바생ㅁ은 아까 받은 돈을 꺼내 확인해 본다. 어떤 문제도 없다. 그러면 다른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건물 뒤편에서, 그 전에 약속한 곳에서 만나 다른 곳에서 강도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시 돌아와 그들의 일을 치를 지도 모른다. 카운터 아래 작은 버튼을 누르면 경찰이 바로 올 것인지, 그 동안 그들이 날 죽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냥 돈만 가져간다고 해도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날 죽이기 전에 추행하려 하거나, 그냥 추행만 하고 돌아갈지도 모른다, 돈도 가져가지 않고. 난 분명 돈을 꺼냈는데.
그가 산 담배는 일종의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어떤 신호였을까. 혹시 가게를 돌며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내 동태를 살필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들이 다시 돌아와 그들의 일을 치를 지도 모른다. 카운터 아래 작은 버튼을 누르면 경찰이 바로 올 것인지, 그 동안 그들이 날 죽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냥 돈만 가져간다고 해도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날 죽이기 전에 추행하려 하거나, 그냥 추행만 하고 돌아갈지도 모른다, 돈도 가져가지 않고.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난 분명 돈을 꺼냈는데.
그들이 도청장치로 내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소문을 내는 건 아닌지. 날 추행하고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점장은 내가 돈도 지키지 못한 갈보년이라며 그들과 합세해 인터넷에 나쁜 소문을 낼 지도 모른다. 난 그런 여자 아닌데. 난 그런 적 없는데. 난 돈을 꺼냈는데. 그나저나 그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알바생ㅁ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다른 남자가 가게에 들어온다. 저 남자는 아까 가게 앞에서 담배 피우던 남자가 분명하다.
난 분명 돈을 꺼냈는데.
차라리: 우리가 기어이 이 말을 택하기 까지 바친 긴 불면의 새벽들
그가 편의점에서 나와 말했다. 그의 배에서 소리가 난다. 암튼 왠만해선 도둑질은 안 하는게 좋아. 그래도 도둑질을 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이 있지. 그 바닥의? 도둑놈의? 아니, 인간으로서. 무슨? 인간으로서, 최소한 이 도둑질이 인류 최후의 도둑질이어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거지. 그가 걷다 장초 하나를 주워 주머니의 지퍼백에 담는다. 꽤 많은 장초가 모여있다. 돈을 훔치면 말야, 좆되는 새끼가 분명히 있단 말이야. 그렇지. 우리가 뭐 프린터에서 돈을 뽑아내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돈을 낼름 가져 오는거란 말이지? 그 새끼는 그 돈으로 적금을 들든 마누라 백을 사주든 카드빚을 갚든 내연녀의 집세를 대신 내주든 애새끼 학원비를 내주든 뭐든 할거란 말야. 근데 우리가 그 돈을 훔쳐왔어! 그럼 어떻게 되겠어? 그 새끼는 당분간 그 돈으로 해야 할 짓들을 못하게 되는거란 말야! 적금은 펑크나고 마누라는 백을 못 갖고 빚은 이자를 낳고 내연녀는 날 떠난다고 하고 애새끼는 씨발 무능한 아빠 때문에 대학 못 간다고 지랄할 것이고. 그러니까. 이왕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좆될 것 같으면 말이지. 조금 덜 좆되게 하는 편이 좋지 않나 하는거지. 그렇지. 인본적으로다가. 이게 힘들지. 그렇지. 힘들지. 아니, 또 인본적이고 나발이고, 인간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더라도 그냥 깔끔하게 돈만 훔쳐 오는 게 우리한테도 더 낫단 말이지. 지속 가능한 절도를 위해선 말야 되도록 살살 하는게 좋다고. 요즘 유행하잖냐 지속가능한! 아 씨발, 이 말이 여기 오기까지 존나 오래 걸렸다. 암튼 살살해야 한다고. 그래야 오래 헤쳐 먹는다고. 인류 최후의 도둑질은 어떻게 하고? 그건 좆까라고, 만약에 우리의 일이 깔끔하지 못해서 들켰어,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죽여버려야 돼. 답이 없어. 강도 새끼들이 그냥 인정사정 없어서 사람들 죽이겠니? 아니거든! 들켜서 그런거라고. 죽여본 놈은 또 죽이게 되어 있어,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 성장한 것이지. 돌이킬 수 없는 성장이지. 또 어떤 새끼들은 꼭 여자 집만 들어가, 돈도 훔치고 몸도 훔치는거지. 그 년들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니. 돈 있는 년들이 그렇게 털릴 집에서 살고 있겠니? 그 새끼들은 어차피 돈 떨어지면 다시 돌아갈텐데, 이런 생각인거야. 그러니 좆질이라도 해보자는 것이지. 이런 길로 가지 않을거라면, 좀 멀리 봐야 한단 말이지. 괜한 원망 살 필요가 있겠어? 그나저나 성폭행을 발명한 새끼는 존나 위대한 새끼야. 뒤돌아 나가면서 죽이는 것 보단 낫잖아 이런 변명도 늘어놓을 수 있는 훌륭한 파생상품이라고, 존나 효과적이잖냐. 게다가 사용자 친화적이고, 환경 친화적인데다가 괜히 고달픈 인생론 논하지 않더라도 상관 없단 말이지. 왜? 살았으니까. 여기서는 그냥 살아 있으면 그만이야. 숨만 붙이고 있으면 아~ 그나마 다행이다, 고마운 강간범 님. 피해자는 어서 가해자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셔요, 살려줬으니까. 이런게 가능한 나라라니까. 완벽하다. 이런 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다가 편의점에서도 팔아야 된다니까. 근데 난 뭐 훔칠 생각도 없고, 누굴 강간할 생각은 더 없어.

그래 널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바로 우리였어

만약 우리가 이 근처에 있는 귀금속 가게를 턴다고 생각해보자. 뭘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단 말이야. 뭐 그래도 마약이나 총 같은건 안 훔치는게 더 나아 그런건 좀 먹고 살만한 애들이 하는거거든? 워낙 창업비용이 많이 들어요. 예를 들어서 지금 니 손에 마약 삼백 그램이 있어. 그럼 니가 그 봉다리 들고 쫄랑쫄랑 이태원 가서 요 가이즈, 드럭~ 이러면 팔리겠냐고. 그 바닥에는 자격증 같은거 없어. 기출문제집 없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는 놈은 평생가도 모른다고. 우리가 여기 탁 모여서 보석들을 늘어놓고 나눈다고 생각해봐. 그럼 얼마나 떨어질 것 같냐? 보석 그거 훔쳐다가 막 아무데나 팔 것 같니? 아니거든, 장물이잖아. 그것만 사는 놈들이 있어. 좆같은 새끼들이 수수료를 존나 뜯어먹는다고. 근데 경찰에선 이런 거 늘어놓고 시가 오천만 원 어치라고 지랄하잖아? 병신들아, 장물이잖아! 그거 팔아야 수수료 떼고 나면 얼마 안 남는다고요. 그게 싯가로 팔리겠냐고요. 좆도 모르는 새끼들이 절도범더러 무위도식 한다고 그러는데. 좆까라 그래. 개 등신같은 새끼들. 그러니까. 그러니까? 괜히 맘고생 하지 말고. 국가 재산을 훔쳐. 응? 공공재를 훔치는거지. 가드레일 같은거? 에라이 바보야, 그런거 말고. 경제적으로다가 생각해보라고, 그런 건 존나 리스크가 크다니까? 대체로 감당할 수 있다면, 리스크가 큰 것도 괜찮은데. 넌 아예 안전망이 없잖냐. 친구가 있니, 애미애비가 있니. 없잖아? 그니까, 도서관을 털어. 도서관 좋다. 지식의 전당이지. 게다가 훔친다고 피해볼 사람이 있느냐? 그렇지도 않거든. 시민들. 이 세상에는 시민들이 존재해본 적이 없다. 그냥 가능성만 있는거야. 공무원들. 아냐, 공무원은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라면 공무원일 수 없지. 걔네는 무시해도 괜찮아. 만약 네가 성공적으로 책을 훔쳐서, 언젠가 그 책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그때 비로소 그들은 공무원에서 사람이 될 수 있는거야. 공무원들은 실수를 하면 욕을 먹지. 그리고 시말서를 써, 아니면 경위서 뭐 비슷한 것들 말야.
이때야 말로 그들은 그들이 공무원이 되기 전에 기억하고 있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내면화된 인간적인 미덕들을 끌어내는 성스러운 순간이야.
책은 널 생존으로 몰아세울 수 있을거다. 그렇다고 책을 읽으면 네가 생존할 수 있느냐? 그렇진 않아. 책과 생존의 관계는 말하자면 이런거지. 네가 만약 생존을 등에 업고 내일을 맞이하고, 그 다음 날 주를 맞이하고, 그 다음 날달을 맞이하고, 그 다음 날해를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책과 만나야 할 거야. 이런거야. 단순해. 넌 배가 고프다. 넌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지. 네가 밥을 먹지 않은 건 집에 쌀이 없기 때문이지. 이 순간 넌 밥을 먹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밥을 못 먹은 것이 되지. 넌 쌀을 살 수 없었어, 돈이 없으니까. 내일도 돈이 없을거야. 내일 모레도. 만약 내가 내일 부터 배고프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당장 옆집 이혼녀의 어린 딸아이를 강간하는 것 밖에 없다면 예순 번이라도 그 짓을 반복할 수 있을거야. 지금 넌 배가 무지 고프니까. 단순해. 하지만 넌 돈이 없지. 그렇지. 넌 돈이 필요하지? 그렇지. 그럼 돈을 훔쳐. 단순하네. 너의 생존은 오로지 너의 문제야.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지나가는 어느 누굴 붙잡고, 저기요, 저의 생존은 저의 문제이지요? 댁의 문제는 절대로 아닐테지요? 라고 물어본다면, 열에 아홉은 그냥 널 피해 지나갈 것이고, 열에 하나는 너의 질문에 친절히 ʻ그렇지요, 저의 문제는 아니지요ʼ 라고 대답해 줄거야. 야이 씨발놈아 니가 이 불행에 대해 뭘 알아, 이 개새끼야. 난 씨발 아구창을 말려 널 때려눕힐거다. 난 니 혀를 뽑아 잘근잘근 씹어먹을거야, 니 이빨도 빠짐없이 먹어치울거야, 널 갈기갈기 찢어서 며칠에 걸쳐 집어 삼킬거야, 니 비명은 우리 함성이 될거고, 니가 질질 싼 오줌은 내 피가 될거야. 넌 씨발 내 살과 뼈가 될거야, 이 개새끼야. 넌 내가 될거야. 니 부모는 내 부모가 되고, 니 애새끼들은 내 자식들이 될거야, 니 애미는 시퍼런 허벌창으로 나를 낳았고, 니 애비는 그 허벌창에 자지를 담그자 마자 날 쌌지, 니 자식은 내 걸레같은 보지로 낳았고, 난 씨발 니 자지를 꼭꼭 씹어 삼켰어. 야이 씨벌놈아. 이 개같은 새끼야. 이래도 내 불행이 너와는 상관 없는 문제야? 근데 넌 돈이 필요하지? 그렇지. 그래야 쌀을 살 수 있지? 그렇지. 그럼 돈을 훔쳐. 괜찮네. 단순하네.

우린 둘 다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살아남아야 하고 그것은 바로
나여야만 한다.


책은 널 살릴 수 있어. 그렇다고 책이 없으면 네가 죽느냐? 그런 건 아니라고. 책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종자들은 일단 사람이 아니거나, 거짓말쟁이들이거나, 진짜로 책이 없으면 뒤지는 불쌍한 새끼들이거나, 심각한 허언증에 걸린 사람들이지. 지금 당장 너에게 필요한 건 책이 아니잖아? 한 끼 밥이잖아. 그리고 나서 넌 또다른 한 끼의 밥이 필요하겠지. 굳이 이런 문제 때문에 네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순간, 최소한 네가 다음 날 주 밥까지는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순간이 오면, 그 때 넌 다른 곳에 눈 돌릴 수 있겠지. 생존을 위한 독서, 조금이나마 올바른 삶, 더 맛있는 음식, 핸드드립 커피, 훌륭한 음악, 좀 더 유려한 자살 방법, 품위있는 말투, 특별한 데이트, 훌륭한 어른이 되는 방법, 형용사 가득한 위로, 도덕의 파수꾼, 상식의 대변자 같은 것들 말야. 굳이 생존을 입에 담을 필요가 없는, 돌이켜 보아 낯 뜨겁지만 그래도 보듬어 줄 수 있고, 약간의 애정도 담아줄 만한 그런 삶 말야. 하지만 넌 당장 한 끼의 밥이 필요하지. 그리고 많이 털 것도 없어, 니가 돈이 많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아냐 돈 많이 필요해. 에라이, 그래봤자 이삼십이면 되는거잖아? 뭐 그렇지. 그러니까 한 서너 권만 훔치면 돼. 서너 권 가지고 되나? 응. 화집, 도록. 자고로 비싼 책은 만져보면 안다. 그리고 펼쳐보면 바로 알지. 일단 글자가 별로 없어, 그리고 존나 무거워. 도서관에도 보안시설이 되어 있긴 한데, 별거 없어. 잘해봐6).
패배한 비폭력, 천박한 변명, 불가피성, 불필요한 배려, 시도 - 단지 시도, 실험: 보고서가 없는, 진정성, 스스로가 어른이 아니라 주장하는 40대, 부코스키같은 주정뱅이를 좋아하는 남자들7, 가난을 정당화 하려는 수사적 시도들, 부모탓 하는 멍청이들. 맛없는 공정무역 커피, 지가 예술가인지 거진지 구분 못하는 거지 새끼들, 안일한 자기비하, 정당에 자아를 탕진한 등신들. 분명치 않은 모든 것들, 옳은 문장의 옳지 않은 배치, 옳지 않은 법으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 '상황의 어려움', 모두에게 선할 수 있다는 믿음, 거의 모든 믿음, 선량한 씨발것들, 새로운 시도가 무언갈 보장할 것이라 말하는 스테이트먼트들, 새로운 것은 없다는 천박한 신념들, 거의 모든 신념들, 기술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순진한 착각, 엔지니어링과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텍스트들, 씁쓸하다는 비열한 논평, 구호와 호소로 시작해 또 다른 세기마저 구호와 호소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노조들, 정당들, 정치인들, 정치적 결단을 내릴 줄 모르는 진보정당들, 정치적 결단만을 내리는 모든 정당들, 손에 피 한 방울 묻힐 줄 모르는 책임자들, 퇴근 후의 자기위안 - 오늘도 무척 힘든 하루였어. 인내와 노력, 그것이 미덕이라 말하는 사람들, 세계의 불행과 개인의 불행이 온전히 떨어져 있다 말하는 낭만종자들, 그것이 완전히 붙어있다 말하는 인문학 좌파들, 주정뱅이들. 죽음으로 진실을 증명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들, 결국 죽고 나서야 밝혀지는 진실들,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 모든 상황들, 도취된 모든 예술가들, 자신이 옳다 믿는 사람들, 사장의 말을 잘 듣는 관리인들, 여전히 자본가가 특정될 수 있다 말하는 무식쟁이들, 상황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솔루션, 정치적 옳음. 예술과 음란을 가르는 논리: 여기 숨어서 거유로리나 빨고 자빠진 비열한 새끼들. 정당한 폭력이 있다는 믿음. 이 모든 것들이 영원할 것인 양 현실에 도취된 게으름뱅이들, 믿음, 전체를 말하는 단 하나의 언어가 있을거라 말하는 믿음, 어쩔 수 없었다는 호소, 플랜b, 수사학적 개수작, 할인행사, 1+1, 열심히 하는 모든 이들, 진심, 말해지는 모든 진심,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알아주길 바라는 안일함,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등신들, 세계의 복잡성에 좌절한 지식인 들, 좌절한 모든 지식인들. 그럼에도 지식인을 자처하는 모든 이들.

그것은 바로
나여야만 한다.
이거 세 권 해서 십오만 원 쳐줄게. 헌책방 주인이 말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청계천에는 헌책방이 많았다. ㄴ이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자세히 살펴보는 통에 바짝 긴장해 있었다. 실은 ㄴ은 자기가 들고 온 책이 원래 얼마인지도 잘 몰랐다. 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상관 없었다. 저 돈이면 충분했다. 더 바라면 큰일날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돈을 훔쳐 지하철을 타고 헌책방까지 가는 과정에서 ㄴ이 했던 일련의 수상한 행동들이 경고했다. 돈을 챙겨 나서는 ㄴ에게 책방 주인이 말한다. 워낙 도둑놈들이 많아서 말야.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난 일을 구했다. 항상 쪼들리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나아지긴 했다. 그 동안 전기도, 가스도 끊어지지 않았다. 다행인 일이다. 그냥 인터넷 요금은 내지 않기로 했다. 핸드폰 요금도 낼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내 주머니엔 차가운 핸드폰이 들어 있지만, 며칠 째 이걸 꺼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의 전화번호가 궁금해졌다. 그 이후로 그 곳에 가본 적은 없다. 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장초가 필요할 만큼 쪼들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다행인 일이다.
월급날이 되었고, 난 담배 두 보루를 샀다. 오랫만에 찾아간 그곳엔 역시 그가 쭈그려 앉아 장초를 주워피고 있었다. 그에게 담배 한 보루를 건냈다.




그가 말했다. 너와 나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 너와 나의 시간은 달라. 너와 나의 시간은 항상 달랐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우린 알잖아. 이게 단순히 속도가 다르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
너와 나는 다른 시간을 갖고 있다는거야. 너와 나는 다른 시간 위에 서 있다는 것이고, 너와 나에겐 다른 시간이 몰아치고 있는거야. 보다 정확히 말하면 너와 나의 시간은 질이 달라8). 그가 ㄴ이 피던 장초를 들어 물었다. 조금이나마 더 분명해졌으면 좋겠다.
응, 나 요즘 일해. ㄴ이 말했다. 그가 잠시 바닥을 살펴본다. 멋진데? 그가 말했다. ㄴ의 집이 가로로 열 다섯개는 놓일 법한 고가도로가 머리 위에 떠 있다. 그 아래 ㄴ이 걸어왔을 다리가 흔들리며 덤프트럭을 뱉어낸다. ㄴ은 어쩌면 다리 건너의 시간이 이곳과 질적으로 다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너나 나나. 우린. 그가 말했다. 응. 그래, 우린, 우린 알잖아. 응. 뭐 사실은. 그가 한동안 텅 빈 도로를 지켜본다. ㄴ은 그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나 요즘 일해.
하늘은 뿌옇고 별이 쏟아진 바닥엔 폭우의 흔적이 남았지 부서진 별빛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지 별도 하늘도 태양도 믿지 않는 우리는 굵은 밧줄을 메어 미래를 끌어내렸지 시커먼 그것을 그때 네가 그랬잖아: 우리가 일렬로 마주섰던 때 넌 웃으며 너는 내가 될 거라 그랬잖아 난 웃으며 나는 내가 될 거라 답했잖아 넌 웃으며 나는 네가 될 거라 말했잖아9) . 망가진 버스 정류장은 결국 하수종말처리장을 멈췄지 하수종말처리장만이 우리에게 응답했지 낮게 우는 별빛이 거기서 악취를 풍기며 빛났지. 우린 썩은 오니 위를 떠다니는 표지판이 기다란 팔로 인사하는 걸 보고 왔지.
그래, 멋있다 씨발 근데 진짜 좆같은게 존나 구차하잖아, 항상 이, 이 아가리로 생존이니 뭐니 궁시렁 거리는게 얼마나 쪽팔리고, 구차하고, 씨발 존나 짜증나지 않냐? 응. 그가 ㄴ을 보며 말한다. 난 잘 모르겠다, 우린 내일도, 어쩌면 내년에도 이런 구차하고 좆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게 아닐까, 우린 평생 이러는 건 아닐까. 뭐 그냥 씨발 좆같잖아, 지금도. 응. 나 요즘 일해.
우리가 목소릴 따라 걷던 새벽의 거리는 동이 틀 무렵 곧게 일어섰지 네가 일출을 따라 수직으로 선 도로를 우주에서 봤다면 넌 금빛 창문을 짚고 우릴 가리킬 수 있었을까 우린 누워 긴 대로의 끝을 걷는 한 무리의 소년 소녀를 보았어 이제 막 일 년이 지났다.
흔들리던 가로등이 쓰러지고, 죽은 바이크를 토해낸다. 죽은 바이크의 사체 위로 물기 어린 나트륨등이 깨어진다. ㄴ이 기억하는 그 가로등의 역사상 가장 밝은 빛이었다. 네 손등의 빛에 대해 상상한다. 네 정수리와 손톱 밑의 빛에 대해서 상상한다. 이 빛이 각각의 광원으로 비롯되었다면, 이 빛의 첨단을 빛의 시작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언젠가 이 빛의 말단이 결국 내게 닿을 것이라면 그걸 보증할 수 있다면 내 정수리의 시간대와 네 손톱 밑의 시간대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그런 상상이 허용된다고 볼 수 있진 않을까. 그 빛들이 날 관통하던 순간에 내 정수리는 수억 광년 전에, 네 손톱 밑은 수백 광년 전에 있기도 했다 상상할 수 있진 않을까. 그 모든 시간들이 동시에 너와 날 관통했다고, 결국 우리가 이미 그 모든 시간들을 종단했다고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ㄴ과 그는 아주 잠시동안 망막 한켠엔 죽은 바이크와 가로등의 마지막 빛의 자리를 마련하고 고개를 돌린다. ㄴ이 담배를 끄고 텅 빈 8차선 도로 중앙선을 향해 걸어간다. 우아한 걸음걸이였다. ㄴ의 집이 가로로 열 다섯개는 놓일 법한 고가 도로가 머리 위에 떠 있다. 그 아래 ㄴ이 걸어왔을 다리가 흔들리며 또 한번 덤프트럭을 뱉어낸다. 덤프트럭 한 쪽 네 바퀴가 ㄴ을 밟고 지나간다.
건너편 건널목은 이미 텅 비어 있다. 게슴츠레 내장을 보이는 보도블록 쓰러진 빨간 가로등 청부폭력의 희생양 뿌리내린 깃발 화면에 금이 간 브라운관 바깥쪽으로 휘어진 가드레일 제자리로 돌아가는 횡단보도 내 뒤를 따라붙던 청소년 등 준비된 위기가 몸서리친다. 우리의 지표면은 지금껏 맘껏 쌓인 지표면으로부터 높이 떨어져 있다. 매일 아침 투신자살을 기도하는 여자와 매일 저녁 껍질을 드러낸 여자의 시간이 교차한다 어느 날 새벽은 그녀가 내 발목을 붙잡고 이곳으로 기어오르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이곳의 대기는 중력마저 외면한다 어떤 것의 개입도 없이 교차점도 찍히지 않은 채 보는 그대로 불가능해왔다 지표면은 규칙적인 수직운동을 한다 이곳에 허락된 유일한 운동일 것이다 이따금 정지한 너를 본다 넌 지금껏 그 자리를 유지해왔다 나 또한 그래왔다 지표면은 규칙적인 수직운동을 한다 이곳에 허락된 유일한 운동일 것이다 그때의 시간을 기억한다 정지된 시간이 우리를 휘감았다 이후 우리의 정지된 시간은 이곳에 허락된 수직운동과 함께 해 왔다. 모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다.
부디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단 한 번도 널 지나친 적이 없다 내게 허락된 유일한 해명일 것이다
ㄴ이 그의 자리를 지켜보는 동안 서너 대의 덤프트럭이 더 지나갔다10). ㄴ은 한쪽 주머니에 쑤셔놓은 지퍼백을 꺼낸다. 반투명한 지퍼백에는 ㄴ의 입술을 거친 수 백명의 타액이 새까맣게 뭉게져 있다. 아직 밟히지 않은 그의 창자 한 쪽을 뚫고 회충이 기어나온다. ㄴ은 그의 구겨진 창자와 망가진 턱과 늘어진 혀와 아직 남아있는 안구 한쪽과 깨진 가슴뼈와 아직 소화되지 않은 은박지와 찢어진 가죽을 지퍼백에 담았다. ㄴ은 아직 길게 늘어져 있는 그의 잔해를 내버려두고 이 곳으로 왔던 다리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리 아래 낡은 개천을 따라 그가 담긴 지퍼백이 흘러간다.



각주

1) 이 책은 2009년에 출간된 「조난」을 다시 작성한 것이다.
2) 그 돈을 만들기 위해 팔, 다리, 눈과 귀. 몸 곳곳을 팔았고, 그가 내놓을 수 있는 모든 것에 값을 매기기 시작했다. 가난은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의 가치를 분명하게 해준다. 모두 합해봐야 알량한 금액이었다. 3)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불의 기억 2』
4)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불의 기억 2』
5) 그곳은 어떤 계절이니? 여긴 열 세 번째 계절이야. 그곳은 어떤 계절이니? 이곳은 낮은 두 번째 계절이지. 한 세기 전을 기억하는 유일한 인류가 이번 세기를 버티고 있다 빌딩 옥상까지 닿은 이 땅의 계절은 유리창을 두드리며 죽은 여자의 음성을 전했다 이 계절의 쓸모가 드러나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유리창이 박살나 정수리에 피를 흘리는 여자를 두고 땀을 질질 흘리던 우리는 너 때문이라 탓했다 이 행성의 껍데기가 떨리며 우리 음성을 전 세계에 전했다 우주는 우리와 한편이었어 적어도 이 행성만큼은 그 여자는 죽고 나서야 제 편을 가질 수 있었다

여자들은 모두 계절의 가장 낮은 곳에서 마주쳐 우리가 되었고, 계절에 밀려 행성 밖으로 밀려났다 우리가 넘어서지 못한 해안선의 바깥으로
6) 누구도 서로를 지옥으로 떠밀진 않았다. 다만 누군가는 결국 지옥으로 떠밀려 들어간다. 이런 일들은 항상 아무 말 없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7) 존나 싫은 작가를 꼽으라면 너무 많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만큼 존나 싫은 것들에 대해 애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툭 하고 나오는 건 별로 없는데, 난 찰스 부코스키가 존나 싫음. 나는 찰스 부코스키가 존나 싫다. 나는 찰스부코스키가 존나 싫음. 찰스 부코스키는 일단 글을 개못쓴다. 부코스키의 글은 진짜 후지다고! 눈뜨고 읽기 힘들 정도로 난삽하기 그지 없다. 나는 난삽한 걸 아주 좋아하고 눈뜨고 보기 힘든 다른 몇몇 작가들을 사랑하는데, 글을 존나 못쓰는 찰스 부코스키가 왜 싫으냐면. 부코스키는 보통 좋은 글을 쓰는 작가로서 유통된다기보다는 가끔 빛나는 말을 하는 광인으로서 유통됨. 살면서 책을 60권을 싸질렀는데 그 문장 중에 빛나는 문장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능력일 것이다. 심지어 부코스키 글 존나 길고 장황해!!!! 그렇다고 율리시스급으로 장황하냐? 것도 아녀!! 여기서 또 문제가, 이 사람이 한 대부분의 발언들이 술에 떨어서 한 발언이라는거임. 찰스부코스키를 스타덤에 올려준 건 알콜! 찰스 부코스키는 삼류새끼다. 이 새끼가 진짜 일류였으면 여전히 희자되는 미친 짓을 맨정신에 했겠지. 나약하고 어설퍼 빠져가지고 술기운에 냄새나는 아가리 들이대는 대학 신입생보다 부코스키가 나을게 뭐가 있냐고. 그가 용기있었다면 맨정신에 그 모든 짓을 해야만 했다. 그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거든. 나는 부코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단 거르고 보는데, 다들 나약해 빠졌고, 어설픔을 찬양하고, 용기있는 자들을 구경만 하고 있는 씨발 새끼들이다. 부코스키는 자기가 나뒹굴고 있는 지옥에서 재롱을 존나 잘 떠는 재주가 있는데, 이를테면 그의 책은 지옥 어트렉션 같은거다. 그의 팬들은 지옥에서 나뒹구는 나약한 멍청이를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새끼들이다. 씨발 지옥 어트랙션에 들어온 모두가 알지. 저 악마는 내 눈 앞에서 사라질거라는걸. 그저 푼돈이나 던져주고 어깨나 토닥토닥 해주겠지. 이 지옥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이 지옥은 그대로 내버려두고!8) 넌 죽은 나를 발목에서 떼어내며 말할 거야 그때 내 유언을 너는 기억할거야 내가 입을 다시 열 때가 되어서야 네 유언이 기억나겠지 그러니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우리 절대 다시 만나지 말자 그러지 말자 널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바로 나야.
9) 그러니까
너만큼은 내가 잊기 전에 나의 부고를 써 보내주렴
10) 그의 팔 한 쪽은 경기도 모처에 떨어졌고, 나머지 팔 한쪽은 강남 한복판에, 무릎 한 쪽은 영등포 쪽방촌 골목에 떨어졌다. 한쪽 무릎은 내 눈 앞에 떨어져 지름 약 2미터의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김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