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슴지 않고 서있어라 외 2편
이추휴
서슴지 않고 서있어라
세상이 벌의 결과라면 믿을 수 있니?
나는 분명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어
놓친 말이 있을 거야
그걸 찾는 데 시간을 온종일 썼을 거야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아
거짓말
우린 누구보다 기대하고 있어
우린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사람을 알아
분수 앞에 동전을 던지는 이
유성 아래서 입을 여는 이
불쾌한 농담에 침수된 이
끊임없이 수다스러운 이
그들보다 간절하기 전까진 얻을 수 없어
나는 숲의 한가운데서 파란색의 털을 한 영양과 눈을 마주쳤다
정신현상학 강의 중 나타난 신테토케라스가 만드는 아수라장
너는 방화범의 프러포즈를 어떻게 거절하면 좋을까 눈을 굴리며
그리고 우리는 감옥 속으로 도망친다
그 누가 울어도 들키지 않는 곳에서
펑펑 울며 고개를 숙이고 있으려고
사람은 포옹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눈사람만이 오로지 포옹과 죽음이 동의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나는 왜 포옹과 동시에 죽으려 하지?
나의 마술을
가장 아득한 농담을 했던 날 우리는 알고 있지 누가 악한인지
누가 가족이고 누가 친구인지 우리는 알도록 했어야 하지
무엇을 했어야 하고 어디에 눈을 갖다 대야 했는지도
어딜 밟고 어딜 피해야 하는지도 알아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는 그을리는 일을 좋아했어 그건 잘못된 일이 아니야
자국이 많이 남고 또 서로 많이 묻혀댔으니까 오늘은 이만 해산하고
언젠가 집을 태울 자신이 생길 날이 되면 그때 또 보자 우리
할 수 있다고 나랑 약속만 해줘 독백이어도 좋아 그러니까 다음번엔
다음번엔 우리 전부 끝내도록 하자 분신하고 거듭 얼굴을 맞추기 위해서
규칙을 찾고 말을 맞추고 새 놀이를 만들고 꿀을 오래 달여서 먹자
그리고 쓰러지는 거야 누가 먼저 다시 일어나게 될지 아주 긴 내기를 하면서
아주 긴 구절을 외면서 아주 긴 독백을 꺼내면서
가슴께에서 비둘기를 꺼내 보여줄게 몸이 산산조각 나면 다시 맞춰주길 기대할게
내 이름을 멋대로 맞추고 내일 뭘 입고 먹을지도 맞출 수 있다고도 믿을게
오래 앉아있자 다음번엔 더 오래
순애殉愛 교사敎唆
좋은 방향으로 웃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왠지 모를 조악함이 섞여 있는 듯했다
본인이 입학했을 무렵 햇빛이 아주 묽었다 그것은 자주 차창과 차창 사이에 깍지를 끼어 따라왔다
버스는 언제나 날 태우지 않으려는 티를 내며 멈추는 듯했다 난 인조적인 웃음과 적당한 경도의 말더듬으로 대답했다
복도를 지나면 과학실로 들어가길 막는 듯 박제가 거기 서 있었다 그들은 날 사랑했다
불가사리의 뼈와 조개의 뼈와 고래의 턱과 코뿔소의 털과
쇼니사우루스의 척추와 동급생의 비늘들이 주로 내게 고백했다
아주 사랑한다고
너의 모든 것을 먹어 치워서
나의 몸을 채우고 싶을 정도로
아주 사랑한다고
나는 그 요구가 맘에 들어서 그들이 날 먹어주길 기다렸다
나는 손을 내밀어 내가 모아 온 것을 보여줬다
좋아하는 걸 그들이 남김없이 가져갔다 그들도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넘어서 교실로 달려가는 길에 목격하는 불미의 첩보전
나는 그들이 무엇을 숨겼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리 사이로 발목의 아래에서부터 이어지는
목 끝에서 떨어지고 쇄골에서 한 바퀴를 도는 대일점의 별과 매 순간이 신종인 섭식을
나의 손은 아주 새빨갛게 되었다
젊은이의 사랑 아주 아름답다고 그런 통설이 돌곤 했다 그래 그건
통속적인 눈알의 움직임이었다
학교 연못가엔 피부가 하얀 시체가 두둥실 떠올랐다 부패한 냄새도
없이 잉어들이 맴돌았고 학생들이 몰려왔고
어느 이는 간수했던 카메라를 내던지면서 가장 순백의 순애를
빛의 속도로 애도하고 말았다
두 구의 인어는 성공적인 피사체로서 임했다
그들은 입과 입을 열어서 혀를 섞기보다 한 줌의 독약을 옮겼다고
전해 들었다
이추휴
삶을 파괴하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너무 재밌지 않으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