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맞추기

유지은


아버지가 집에 오게 되었다. 그것도 오늘, 아침에 갑자기. 누나는 새벽 여섯시 즈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이제 막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운 참이었다. 몇 년 전, 아버지와 황혼이혼을 한 뒤부터 혼자 사는 어머니를 모시고 1박 2일 가족여행을 간다고 했다. 용건을 말하던 누나는 조카들에게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이라 호통을 쳤다. 이럴 때 누나는 어머니를 닮았다.
“미안. 어디까지 얘기했지?”
스피커폰 너머의 다시 차분해진 목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넘어왔다. 나는 양손 엄지로 퀭한 눈가를 꾹꾹 눌렀다.
“여덟 시 반까지 우리 집으로 온다고? 승아는.”
“승아는 딸 때문에 응급실. 새벽에 전화 왔어.”
이런.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대답이 없자 누나의 말이 빨라졌다.
“너 당황스러운 거 알아. 근데 승혁아, 집에 아빠 혼자 계시면 또,”
“알았어.”
누나의 말을 잘라냈다. 하룻밤 묵고 가는 손님이라. 방이 있는 집에 살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팔을 뻗어 핸드폰을 더듬었다. 얼마 전 바꾼 이불의 감촉이 팔 전체에 고스란히 닿았다.
“맞다.”
“응?”
“집에 요가 없어.”
하나 있던 손님용 이불과 요는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오면서 버렸다. 누나는 그것도 챙겨가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간략하게 응수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자로 누워 여름 새벽빛에 물든 푸르스름한 천장을 보았다. 불편했다. 연락은 띄엄띄엄 왔어도, 첫째 조카의 UCC 수행 평가를 도와준 답례로 밥을 얻어먹은 후 한동안 보지 못한 누나였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조카는 이제 두 번째 교복을 입고 있을 수도 있다. 다른 가족들을 마지막으로 본 지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 승아 딸의 돌잔치가 그나마 그들의 얼굴을 볼 기회였는데, 그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당시 모 영화 현장 편집 출장으로 바빠 참석하지 못했던 기억만 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손깍지를 끼고 상체를 비틀었다. 신음이 절로 나왔다. 끝으로 코를 훌쩍였다. 와. 그러니까 아저씨 같아요, 기사님. 이번에 같이 작업한 이십 대 조감독은 밤샘 편집 중, 내가 기지개를 켠 후 코를 훌쩍이자 그렇게 까불거렸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흔이면 아저씨죠 뭐. 근데 이거는 습관이에요, 습관. 조감독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릴 때, 그러니까 팬티 차림으로 집안을 헤집고 다녀도 타박 받지 않던 시절, 가족 중 가장 늦게 일어나는 아버지를 깨우러 갔다가 기지개 한번 요란한 그를 따라 하면서 생긴 습관이었다. 요즘은 누나가 아버지를 깨우겠지. 앞으로도 계속 그럴 테고. 나는 다시 코를 훌쩍였다. 냉방병인가, 코가 자꾸 나왔다. 검지로 코를 문지르면서 바닥에 발을 디뎠다. 자고 싶었지만 집을 치워둘 필요가 있었다.




이제 눈 좀 붙일까 하는데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아파트 앞으로 내려갔다. 야외로 나오니 후덥지근한 8월 공기가 온몸을 붙잡았다. 무엇보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통에 귀가 따가웠다. 사람 셋이 회색 경차를 등지고 가로로 주르르 서 있었다. 밀짚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누나. 누나의 부축을 받고 있는, 본인의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아버지. 그 옆에는 누나보다 한 뼘 큰 조카가 이불과 요를 품 안 넘치게 들고 있었다. 쏟아지려는 것을 얼른 받아서 들었다. 비틀거리면서 건너본 회색 차는 운전석이 비어 있었다.
“매형은?”
“회사에. 경주 가서 만나기로 했어. 아빠, 조심하세요.”
아버지가 현관 계단에 발을 올리자 누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는 아버지처럼 허리를 굽히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두 사람은 무척 굼떴다. 맨 뒤에서 깔짝깔짝 뒤따르는데 팔이 저려왔다. 나는 막힌 코를 들이켰다.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조카가 나를 보고 인사해왔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나는 그제야 조카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저 애가 첫째인지 둘째인지 모른다는 것도. 나는 검은 화면의 작아지는 붉은 숫자만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문이 닫혔다.
“몇 층이니?”
“6층.”
누나가 묻고 내가 답하고 조카가 눌렀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아무것도 안 했다. 누나는 벽면 거울을 보고 모자를 고쳐 썼다. 나는 이불과 요를 무릎으로 받쳤다. 조카는 그새 핸드폰을 했다. 아버지는 눈만 끔뻑거렸다. 6층에 도착했다. 이불과 요를 조카에게 맡기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문이 열리자, 아버지가 짐을 든 조카를 제치고 집 안에 몸을 들였다. 순간 휘청한 조카는 이불과 요를 현관 앞에 쏠리듯 내려놓았다. 곁눈질한 누나의 얼굴은 살짝 뻣뻣해져 있었다.
“안 들어가?”
“됐어. 바로 가봐야 해.”
조카가 길을 비켜주었다. 슬리퍼를 벗은 나는, 문턱에 서있는 누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조금만 있다 가지.”
“다음에. 나도 아쉽다. 아빠! 저희 다녀올게요. 장재민, 인사해야지.”
“다녀오겠습니다.”
형식적인 대화는 영혼 한 방울 없이 무미건조했고, 나는 그녀와 내가 아버지의 피가 섞인 남매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몇 발자국 걸어 들어온 누나가 인사하자, 어느새 거실 소파에 자리 잡은 아버지가 리모컨을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 잘 가렴.”
조카가 상체를 꾸벅 숙였다. 누나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잘 지내고. 나중에 연락할게. 너, 엄마랑은 연락하니?”
누나는 한숨을 쉬고 자기 아들과 떠났다. 집에는 아버지와 내가 남았다.




이불과 요는 침실에 가져다 놓았다. 집에 방이 하나고 그마저도 좁으니 오늘 밤 둘 중 한 명은 에어컨 없는 거실에서 자야 했다. 누가 거실에서 자야할지 고민되었다. 아버지가 침대에서 자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부부와 삼 남매, 다섯 식구가 모여 살던 집도 방이 하나였으니까. 아버지는 누나 집에서 침대 생활을 하려나. 누나가 등을 굽히던 모습을 떠올리다, 나중 일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거실로 나가니 아버지가 소파 한 가운데 앉아서 아침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수백 년간 그러고 있었던 사람처럼. 나는 텔레비전 화면 맨 위 오른쪽을 보았다. 8시 36분. 평소라면 한창 자고 있을 때였다. 하품이 나왔다.
“아버지, 아침은 드셨어요?”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시선은 여전히 텔레비전에 고정한 채였다. 아버지는 목을 긁더니 딱 한 마디 했다.
“배 안 고프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잠 좀 잘게요. 저 일어나면 밥 먹어요.”
끄덕.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웠다. 대자로 누우니 코가 답답해 몸을 옆으로 틀었다. 꽉 찬 콧물이 한쪽으로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뚫린 쪽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잘 자기는 글렀군. 나는 침대 모서리에 걸쳐진 손으로 침대 옆면을 쓰다듬었다. 방 안 공기는 두터운데 침대 틀 만큼은 매끈하고 시원했다. 눈꺼풀이 슬슬 무거워졌다. 몸을 움직여 팔꿈치까지 가져다 대었다. 이 침대를 쓴 지도 꽤 오래되었다. 이십 대 초반 의도치 않은 독립 후, 서른에 처음으로 마련한 중고 아닌 가구였다.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십 년 전, 내 인생 첫 원룸을 방문한 유일한 가족인 누나는, 홀로 번쩍거리는 침대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온 직후였다. 물론 주제를 꺼낸 쪽은 누나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남이랍시고 대학 보내 놓았더니 한다는 게 영화판 시다 짓이냐며, 몇 날 며칠을 일갈하던 어머니. 틀린 말이 아니었으므로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어머니의 분노로 이어지던 일방적인 싸움은 입대 날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군대를 갔다 오니, 이십 년 넘게 집을 차지하고 있던 나의 짐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천륜이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줄 아니.
당시 서른 중반을 바라보던 누나의 말투는 못 본 새 많이 변해 있었다. 점집 순례라도 다녔어? 너절한 농담을 하자 눈을 감고 한숨을 쉬는 습관에서만 예전의 내가 아는 누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날, 내가 느낀 것만큼이나, 나도 누나에게 낯선 사람이었겠지. 누나는 나의 어떤 부분에서 누나가 알고 있던 나를 발견했던 걸까. “승혁아, 집에 술 없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를 수면과 의식 사이에서 반쯤 끌어올렸다. 아침부터 웬 술이에요, 아버지.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한 것 같다. 떠지려고 애쓰는 눈알이 영사기처럼 돌아갔다. 영상 하나가 눈앞에 펼쳐졌다. 싱크대 배수구로 콸콸 쏟아지는 누런 물줄기에서, 베란다 분리수거 통 속 구겨진 맥주 캔으로 장면이 바뀌었다. 청소할 때 미리 버려두어서 망정이지, 라는 잠결의 중얼거림 후 모든 것이 꺼졌다. 소리도, 장면도, 잡념도.




숨이 막혀 깼다. 양손에 침대 주름이 잡혔다. 언제부터 엎드려 자고 있었던 건지, 가슴을 젖히니 목과 어깨가 뻐근했다. 앉아서 고개를 젖혔다. 코가 제대로 막혀 뒤로 넘어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입으로 호흡하는데, 자면서 위장이 눌렸는지 속이 더부룩했다. 에어컨을 끄고 잤지만 으슬으슬한 것 같기도 하고. 팔을 문지르면서 창밖을 보니 이미 훤한 대낮이었다. 창문에 막혀도 따가운 매미 소리가 뒤늦게 신경을 자극했다. 문지방 넘어오는 소리가 선명해졌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홈쇼핑 채널 소리, ……코 고는 소리? 맹했던 머리가 작동했다. 아버지가 집에 있었다.
소파 위 벽시계는 한시를 가리켰다. 나를 닮은, 다만 더 쭈글쭈글하고 희끄무레한 얼굴이 그 아래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염색을 하지 않은 회색 머리는 숱이 듬성듬성했고, 중키였던 몸은 쪼그라들어 빗자루 같았다. 쌍까풀로 오해받곤 하던 눈주름은 예전보다 진해져 눈두덩까지 번진 검버섯에 파묻혀 있었다. 조금 거북했다. 단절된 세월이 만들어낸 낯섦이 이십여 년 간의 익숙함을 장악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러거나 말거나, 팔짱을 낀 아버지는 쿠션을 관자놀이로 짓누르며 입을 쩝쩝 다셨다. 나름의 규칙을 가진 코골이가 거실을 울렸다. 누가 보면 집주인인 줄 알겠군. 그래, 이 자기 혼자만 속 편한 모습만큼은 내가 알던 아버지가 맞았다. 아버지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버지, 일어나세요.”
“승주냐?”
“승혁이요. 점심 드셔야죠.”
아버지가 몸을 일으키자 숱 없는 뒷머리가 부스스 일어났다. 나는 일순 십 대 때로 돌아간 착각이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정신없이 자고 있는 아버지를 깨우던 그때로. 잠이 덜 깬 아버지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냐.”
“예. 금방 차릴게요. 잠시 기다리세요.”
말을 하는데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인상을 찌푸렸다. 아버지는 못 본 듯했다. 나는 명치 깨를 엄지로 꾹꾹 누르며 뒤돌아섰다.




전기밥솥에는 두 사람이 먹을 양의 밥이 남아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자 찬기가 훅 끼쳤다. 냉장고가 허연 속을 드러냈다. 종가집 맛김치, 계란 두 개, 반찬가게 장조림이 층별로 들어 있었다. 흠. 맨 밑 채소 칸을 열었다. 어제 배달시켜 먹다 남은 닭갈비가 상추 봉지를 깔고 있었다. 장조림 옆에 두었던 게 왜 여기에? 아버지가 기어코 냉장고를 열었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발견하는 족족 술을 버리는 것을 알면서도, 미련을 못 버려 냉장고를 엉망으로 만들던 그 버릇 그대로. 나는 계란 두 개를 한 손에 쥐고 쭈그렸던 다리를 폈다. 점심은 계란찜을 해서 닭갈비와 먹고, 더위가 좀 수그러들면 저녁 장을 보러 갈 계획이었다. 내일 아침도 아버지와 먹어야 하나. 식사 후 누나에게 전화해봐야겠다.
뚝배기에 물을 넣고 가스레인지 불을 올렸다. 물이 끓는점에 도달할 동안 그릇을 꺼내 계란을 풀었다. 알끈은 젓가락으로 걷어냈다. 계속 저으니 제법 예쁜 노란색이 올라왔다.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소금 간을 하고 계란 물을 뚝배기에 부었다. 그리고 다시 젓기의 시간이었다. 뚝배기에서 김이 올라왔다. 촉촉해진 콧속으로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가 스몄다.
뚝배기 안쪽 가장자리 계란 거품 자국이 완전히 제 형체를 갖췄을 때였다. 아까부터 불안하던 위장에서 신물이 와락 솟구쳤다. 젓가락이 튕겨 나갔다.
“아버지, 계란찜 좀 봐주세요!”
나는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비데를 올릴 틈도 없이 변기를 틀어잡고 모든 것을 쏟아냈다. 웩. 웩. 위산이 식도를 가르는 동시에 또 한 번 위장이 쥐어짜졌다. 몇 번 반복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과 코와 귀와 목이 얼얼했다. 짜일 대로 짜인 위장은 여전히 불편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변기 물을 내리고, 떨리는 손으로 휴지를 뜯었다. 지저분해진 입가를 닦았다. 냉방병이 오긴 왔나 보다. 나는 멍하니 주저앉아있었다. 그런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것은 막힌 코도 비집고 들어오는 지독한 탄내였다.

“불!”
나는 부엌으로 뛰쳐나갔다. 계란찜이 활활 타고 있었다. 허겁지겁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시꺼멓게 눌어붙은 계란찜에 물을 부었다. 불길한 소리와 함께 연기가 잦아들었다. 기운이 쭉 빠졌다.
“무슨 일이냐.”
발을 질질 끌며 나타나 한다는 말이 그거였다. 주방 상황을 파악한 아버지는 목을 뒤로 뺐다. 골이 지끈거렸다.
“아버지. 아무 냄새 못 맡으셨어요?”
침묵.
“부탁드렸는데, 계란찜.”
침묵.
“냄새 못 맡은 지 좀 됐다.”
아.
“환기부터 시키자. 근데 너 어디 아프냐?”
“별거 아니에요. 그냥, 냉방병.”
“쉬어라. 밥은 내가 알아서 먹으마.”
나는 주방 창문을 여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침실로 향했다. 팔다리가 헐렁거렸다. 그대로 방문을 등지고 침대에 쓰러졌다. 등 뒤로 아버지가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 방금 전 침묵을 깨트렸던 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목덜미를 들쑤셨다. 목을 주무르며 누나와의 아침 통화를 생각했다. 길어지려던 누나의 말을 자른 것이,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전에 누나는 아버지를 걱정하는 전화를 여럿 걸어왔다. 아빠가 또 신발을 잃어버리고 집에 오셨다. 아빠가 집 동호수를 기억 못 하신다. 아빠가 승혁이 너랑 우리 집 둘째를 헷갈리신다. 아빠가, 아빠가, 아빠가. 전화는 대개 내가 촬영 현장에 있을 때 걸려 왔고, 나는 작업하러 빨리 들어가야 했다. 나는 아버지가 요즘도 술을 드시냐고 물었다. 누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나는 말했다. 내버려 둬. 그러다 마시겠지.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지 싶다. 어찌해야 하나. 나는 엄지와 검지로 코를 집어 마구 움직였다. 어느새 코가 다시 막혀 있었다. 머릿속도 덩달아 막힌 것인지 생각이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좋지 않아. 나는 생각했다. 정말로 좋지 않아. 그게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기도 잠시, 몸을 일으켰다.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이 말똥했고, 망할 놈의 코 때문에 편하게 눕는 것도 어려웠다. 쉬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돼. 침대와 협탁 틈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감독과 아직 상의가 안 된 영화 후반부를 내 방식으로 러프하게나마 편집해둘 심산이었다. 그냥 쉬엄쉬엄, 침대에서 편하게.
이번에 작업 중인 영화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십대 청년이 주인공인 독립영화였다. 영화인들의 영화 이야기. 정말이지 신물 나는 주제였지만 작품 배경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라는 점 때문에 의뢰를 거절하기가 망설여졌다. 대학 동아리 한참 후배인 조감독도 그걸 알고 연락을 취했을 테다. 저희 주인공이 딱, 선배님 영화 일 시작하실 때. 그때 사람이거든요. 나이도 그렇고요. 선배님, 열정 넘치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신답시고, 불쌍한 후배들 한번만 도와주세요, 예? 듣고 계시죠?
작년 말, 그 전화를 받았다. 그러니까 불혹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시기 나는 전에 없던 아쉬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이 만들어낸 별칭 하나에 휘둘리는 스스로가 우스우면서도 그랬다. 집안 불화의 주축 중 한 사람으로서, 가정을 꾸릴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으니 독신인 것이 외롭지 않았다. 이미 몇 년 전 작게나마 업계에 자리를 잡았고, 내 한 몸 건사하기에는 전혀 문제없는 집도 있다. 사람이 지금 생활에 만족하니 배가 불렀는지, 꼴에 곧 불혹이라고 잃어버린 열정, 그게 아쉬웠다.
대학 새내기 시절, 영화 감상 동아리인 줄 알고 들어갔던 영화 제작 동아리. 그곳에서 얼결에 배운 영상 편집 기술.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장남에게 올인한 어머니, 효녀 강박에 시달리는 누나와 엇나가는 여동생, 이도저도 아닌데 집안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나 자신. 그 모두가 지긋지긋했던 스무 살 이승혁은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재단하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일종의 대리 만족이었다. 그 일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는, 흔하디흔한 이야기.
아무튼 어린 날의 열정을 조금이나마 되살릴 수 있으리라, 불혹 버프로 예술의 힘을 믿고 이번 영화에 참여했건만. 이 순간 나는, 열 번은 넘게 보았던 장면을 동태눈으로 들여다보면서 편집 구간을 가늠해보고 있다. 중간 중간 코를 훌쩍거려 추임새를 넣어주면서. 화면 속에서는, 아들을 대기업 임원으로 키우고자 했던 아버지가 영화를 찍다 걸린 아들에게 길길이 화를 내고 있다. 진부하다. 아버지는 이십년 전 어땠더라. 맨발로 비틀비틀 집에 돌아와서는, 나를 혼내는 중이었던 어머니의 가슴에 기름을 들이붓곤 했던 기억밖엔.




까무룩 졸았던 것 같다. 침대 작업의 단점이다. 핸드폰을 켜보니 다섯 시 반, 부재중전화가 네 통 와있었다. 한 통은 조감독에게서 온 일 전화였고, 나머지 세 통은 누나에게서 온 전화였다. 조감독이 남겨둔 문자를 확인하니 큰일은 아닌듯했다. 조감독에게 답장한 뒤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잤어. 아파서.”
누나의 목소리가 커졌다.
“뭐? 아버지가? 지금은 괜찮으셔?”
대화에도 편집이 필요하다.
“내가 아팠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다행이네. 아버지는 뭐 하시니?”
모른다고 답하려다 소파에서 주무신다고 했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여행은 어때?”
“괜찮아. 다들 좋아하네.”
“보니까 애가 한 명 안보이던데.”
“첫째는 입시 학원. 내년에 고삼이잖아.”
몰랐다. 입을 열고 다음 할 말을 고르는 찰나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누구랑 통화하니? 고기 다 됐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와라, 고기 식는다.”
목소리가 멀어졌다. 탕, 미닫이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누나가 말했다. “할 말 없니?”
뭐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없어.”
누나는 잠시 말이 없다, 다시 물었다.
“내 말은, 엄마 바꿔줄까?”
“됐어.”
나는 누나의 한숨소리가 들리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걸터앉아 있다가 묵직한 코를 찡그렸다. 누나에게 내일 언제 올 예정인지 묻는 걸 잊었다. 침대에서 일어섰다. 아까 빈속을 게워냈더니 위가 허했다. 지갑을 챙겨 방을 나왔다. 아버지가 소파 발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양손 가득 책을 쥐고만 있는 채였다. 인기척을 느낀 아버지가 내 쪽을 봤다.
“어디 가냐.”
“예. 장 좀 봐오려고요.”
“그 몸으로?”
“자고 일어났더니 좋아졌어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난 아버지가 내게 다가왔다. 눈길이 자동적으로 아버지 손에 들린 책으로 갔다. 책을 베개 삼아 잤는지, 표지 반이 축축했고 모서리가 우그러져 있었다. 책 제목을 확인하자 말문이 턱 막혔다. 내가 전리품처럼 여기는 책이었다. 인생 영화의 감독과 원작 소설가의 친필 사인본이 담긴.
“어이쿠, 혹시 아끼는 책이냐? 이것 참. 미안하구나.”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나보다. 아버지가 사과를 건넸다. 내가, 내가 말이다, 요즘 승주 부탁으로 책을 읽는데, 그게 참, 이 나이에 책 읽는 게 쉽지 않아서 말이다, 그러다 잠드는 게……. 아버지의 말이 횡설수설 길어졌다. 나는 그 말들을 흘려들으며, 몇 시간 전 냄새를 맡지 못했던 아버지와 누나에게 전해들은 아버지의 여러 기행들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괜찮아요. 마트 다녀올게요.”
겨우 한 마디 한 뒤, 아버지를 외면하며 신발장을 열어 샌들을 꺼냈다. 샌들에 발을 집어넣는데 옆에 있는 아버지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중저가 브랜드 운동화였는데, 새것으로 보였다. 현관문을 열다가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혼이 난 어린아이처럼 당신의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이상하고, 안쓰럽고, 불쾌하고, 서글퍼서. 뜨거운 것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사라졌다. 턱에 바짝 힘을 주고 문을 밀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주차장 옆 경사진 길을 내려갔다. 길을 쭉 내려가다 보면 그 끝에 동네 마트가 있다. 내가 사는 단지는 뒷동이어서 마트에 도착하기까지 5분쯤 걸린다. 나무 그늘 속에 있으려고 애쓰면서 계속해서 내려갔다. 매미 시체를 밟은 후에는 땅만 보고 걸었다. 매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합창했다. 맴맴. 찌르르르. 스피오 스피오.
길을 반쯤 내려갔을 때, 웃는 소리가 귓가를 건드렸다. 까르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아파트 놀이터였다.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아이가 빨간색 미끄럼틀 꼭대기에서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의 팔뚝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의 허리를 잡고 흥분한 아이를 진정시켰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고 있는 부모와 자식의 얼굴이 미끄럼틀에 반사된 빛에 물들어 불그스름했다. 익숙한 색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낯빛이 항상 저랬다.
붉은 얼굴의 아버지는 말도 많고, 웃음도 많고, 사랑도 많았다. 키가 자신의 허리춤까지 오는 누나와 나를 번갈아 발등에 태우고 하나둘, 하나둘, 전진하곤 했다. 삼 남매 중 웃는 모습이 아버지와 가장 비슷했던 누나는, 아버지의 발등을 졸업한 후 급속도로 어머니의 표정을 닮아갔다. 나도 머지않아 발등에서 내려왔다. 나와 여덟 살 터울인 승아는 아버지의 발등에 올라갈 기회조차 없었다. 그 애의 머리가 아버지의 배꼽에 닿았던 시기에, 아버지는 친척들의 손에 이끌려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을 들락날락하고 있었으므로.
서 있는 맞은편에서 더위를 실은 바람이 불어왔다.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멀지 않은 곳에 마트 표지판이 보였다.
마트는 저녁거리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이 그리 넓지 않은 매장 안을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나는 아이들을 비껴가며 시식 행사 중인 두부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 옆 계란 코너에서 15구 계란판을 샀다. 중앙 매대에서 레토르트 식품 할인을 하고 있었다. 사골곰탕과 육개장을 골랐다. 과일 코너와 채소 코너는 그냥 지나쳤다. 이틀 뒤, 몇 주간 숙박을 해야 하는 촬영지에 가야 했다. 그전까지 과일과 채소를 다 먹을 자신이 없었다. 축산 코너 앞에서는 살짝 고민했다. 저녁으로 고기를 구워 먹을까? 게워낸 속이 느글거리는 것 같아 관두었다. 원래 계획대로 저녁은 두부를 부쳐서 사골곰탕과 담백하게 먹어야겠다. 저쪽 반찬 가게로 방향을 트는데 알뜰 코너가 보였다. 알뜰 코너에는 신선도가 살짝 떨어지는 과일과 채소들이 무작위로 쌓여 있었다. 죽 훑어보기만 하려는데 끝에 놓인 봉지 하나가 시선을 잡아챘다. 가지. 아버지가 좋아하는 안주다.
술 마시는 아버지, 하면 달밤에 생가지를 숭덩숭덩 잘라 술에 곁들여 먹던 아버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 옆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인 나도 있다. 아빠, 그거 맛있어? 그럼 이미 취한 아버지는 이리 오너라, 하며 내 입에 가지 조각을 넣어주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풋내에, 나는 가지를 아버지 손에 그대로 뱉어냈다. 맛없어. 내가 투정하자 아버지는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이놈아, 코 잡고 눈 감고 먹어봐라. 사과 맛이 나지. 나는 코를 잡고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다시 가지를 넣어주었다. 가지 조각은 내 입에 비해 무식하게 컸다. 그래도 꿋꿋이 우물거렸다. 감은 눈 사이로 달빛이 새들어왔다. 아버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런 기억들.
나는 가지를 집어 들었다.




장 보는 시간보다 계산하는 줄에 서 있는 시간이 길었다. 마트를 빠져나오니 건물들이 노을에 물들어 있었다. 답답한 콧속을 밀고 들어오는 공기도 마트에 들어가기 전보다 가벼웠다. 왔던 길을 도로 올랐다. 이번에는 위를 보면서 걸었다. 허공에 희미한 달이 찍혀있었다. 휘어진 달이었다.
생가지에서 정말 사과 맛이 나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나는 가지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성인으로 컸다. 무엇보다도, 그날 내가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귀가한 어머니에게 끌려갔다. 달빛이 참 예쁜 밤이었다. 나는 부엌 쓰레기통 앞에 쪼그려 앉아 가지를 토해냈다. 궁금했다. 왜 어머니는 저렇게 아버지한테 화를 내면서도 장을 볼 때마다 가지를 사 올까. 어머니는 그 후로도 그 짓을 수십 년간 반복했다. 그리고 포기했다.
불룩한 종량제 봉투를 낀 팔이 쓰라려 길 중턱에서 잠시 멈췄다. 반대 팔로 봉투를 옮기면서 놀이터를 보았다. 놀이터는 텅 비어 있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분명 누나일 테다. 나는 받지 않았다. 가지를 사 오던 어머니와 지금의 누나가 오버랩 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일곱 시였다. 집 안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해가 아직 떠 있어서 형체는 모두 파악되었다. 거실 바닥에 누워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드르렁 소리는 덤이었다. 부엌 전등을 켰다. 짐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싱크대로 갔다. 손을 씻었다. 싱크대 안은 수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등을 돌렸다. 아버지는 양손을 모으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물을 껐다.
건조대 위의 식기들은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다들 새하얀 가운데 저 혼자 시커먼 뚝배기를 들어 살펴보았다. 뚝배기는 탄 자국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설거지를 해놓은 건 고맙지만 뚝배기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복잡했다. 아버지의 이런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화를 내면서도 매번 가지를 사 왔던 이유. 어머니가 끝내 당신의 인생에서 아버지를 끊어낸 이유. 고무장갑을 끼고 뚝배기를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는데 코가 나와 애를 먹었다. 자국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저녁에 먹을 것들만 빼놓고 나머지 장 봐온 것들을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 속이 조금 알록달록해졌다. 쌀을 안치고 백미 쾌속을 눌렀다. 밥솥에 숫자 15가 떴다. 도마와 칼을 꺼냈다. 두부를 씻고 먹기 좋게 잘랐다.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두부를 얹었다. 두부가 구워지는 동안 국을 끓이고 가지를 헹궜다. 두부를 뒤집었다. 고소한 냄새가 나나? 코가 막혀서 모르겠다. 노릇노릇해진 두부를 접시에 담았다. 끓고 있는 냄비의 가스 불도 껐다. 흐르는 물에 칼을 잠깐 대었다가 키친타월로 닦았다. 가지를 썰 차례였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연둣빛이 도는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오동통한 몸통을 칼질하자 도마 한쪽에 보라색 테를 두른 보름달이 쌓였다. 그중 하나를 집어 코를 킁킁거렸다.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다. 지금 내 코는 저기 불 꺼진 거실에서 자는 아버지의 코와 다를 게 없었다. 나는 가지를 입에 집어넣었다. 가지를 씹자 단물이 배어 나왔다. 계속 씹었다. 가지는 금방 물 빠진 덩어리가 됐다.
덩어리를 삼키고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입에는 여전히 단맛이 남아있었다. 아버지는 아마 이걸 사과 맛이라고 부른 것 같다. 그런데 사과는 무슨 맛이 나더라. 혼자 살면 과일 먹을 일이 별로 없다. 아무튼, 맛있었나? 딱히. 실망했나? 딱히. 기대했나? 뭐를.
그러니까. 나는 뭐를.
식탁에 가지 접시를 탁 내려놓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반응했다. 깨어난 아버지는 비몽사몽간에 어두운 바닥을 더듬거렸다. 나는 아버지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아주 나쁜 짓을 저지른 것 같았고, 무언가를 해결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다만 해결해야 한다는 감각만 있었다.
“아버지, 식사하세요.”
그래서 고작 나온 저런 말을 했다.
아버지와 나는 좁은 식탁에서 머리를 맞대고 저녁을 먹었다.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수저가 그릇과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 밥과 반찬을 우적거리는 소리, 국물을 후루룩거리는 소리만 이어질 뿐이었다. 코가 막혀 냄새를 못 맡으니, 음식이 전체적으로 밍밍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어떠려나. 김치를 풀은 곰국에 밥을 말아먹다 말고 아버지를 흘끔 보니, 아버지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식사 중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먹는 걸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웠다. 반면 어린 승아는 벌게진 국물을 쳐다보는 것조차 싫어했다. 오빠랑 아빠는 곰국을 왜 그렇게 먹어? 그럼 아버지는 와하하 웃었었고. 어머니와 누나는 한숨 쉬며 고개를 돌렸고. 나는,
“아까 그 책 말이다.”
나도, 웃었던 것 같다.
“이제 기억났는데 너 어릴 때 좋아하던 영화랑 제목이 똑같더라.”
갑자기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미안하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떨리는 젓가락으로 가지를 집었다. 요동치는 가지가 아버지의 입에 들어가는 과정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곰국 김에 살짝 녹았던 코가 다시 갑갑해졌다. 아버지는 항상 이런 상태인걸까. 가지를 우물거리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다. 아버지, 가지에서 무슨 맛이 나나요?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 나는 조금 슬플 것 같았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유지은
99년생. 글을 씁니다. 정확한 문장으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 E-mail 주소 : ronnan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