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이세카


월요일 밤,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신림의 한 모텔로 들어섰다. 잡은 손은 당당했다. 그러면서 차갑고 축축하게 질려 있어 너도 긴장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괜히 어색해질까 말을 거뒀다. 목구멍에 걸린 것이 뱀인데, 그 뜨거운 뱀이 목구멍을 자근자근 씹고 있다고 생각했다. 객실키에 모텔 이름이 적혀 있어 돈키호텔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키스를 하면서 주인은 돈키호테를 좋아하는 걸까 돈키호테에는 성이 나오지 않는데 이런 성이 거기에는 풍차가 나오는데 생각했다. 미미의 입과 손이 부드러웠는지 거칠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나의 처음이었으니까. 비교군이 없는 손길, 그것은 좋은 손기술이었을까 어수룩한 쓰다듬음이었을까. 아무튼 느꼈던 건 사실이니까. 손이 붉었다. 만지면 뜨겁겠지 만져지면 뜨겁겠지 생각했다. 우리는 다우니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고, 지나치게 바스락거려 횟집 비닐같은 이불 위에서 서로 비비고 핥고 넣었다.


미미를 만난 것은 월요일밤, 신림인데 정확히 말하면 신림의 한 카페에서 열린 페미니즘 스터디에서. 아주 가벼운 비가 내려서 가을답지 않게 물기가 있는 공기 아래였다. 그때 나는 한 차례 반수를 실패하고 경기도의 대학을 다니는 중이었고, 나 자신이 덜떨어졌다는 내용을 말만 바꾼 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멍청함을 중화하려면... 인,간이 되려면... 사람은, 모름지기 서울에... 나는 경기도가 싫었고 아니 지금 여기라는 것이,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서울과 어울리고 싶었고 그러면 좀 살만해질 것 같았다.매일 지하철과 광역버스를 갈아타고 소규모 출판사의 작가 만남, LGBT모임, 전시 오프닝, 인권포럼 같은 곳들을 돌았다. 그것들은 주로 구석지고 별로인 노래가 흐르는 작은 골방에서 벌어졌다. 거기서 만난 힙스터들은 기어 가는 것처럼 걸었다. 내 가방에는 항상 쓰지 않는 수첩과 피지 않는 담배가 들어있었다. 나는 매일 고개만 끄덕였다.
스터디는 한번에 세명 정도가 자신이 발표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발표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는 식이었다. 내가 참여한 적은 그게 두번째였지만 그들의 확고한 의무의식과 순번제를 확인하고는 다음번에는 오지 말아야지 했다. 나는 말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고 고개만 끄덕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총 일곱 명이 있었는데 짧게 친 머리에 흰 점퍼를 입은 미미는 개중 가장 어려보였고 예뻤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도드라져서 추워보이는 귀에 계속 시선이 갔고 미미가 그날 발제를 맡은 사람들 중 한명이어서 그 귀를 마음껏 쳐다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미는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졌지만 아주 비싼 가방에서 아이패드와 프린트 물을 꺼내 사람들에게 돌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발표를 맡은 미미고요, 이번에 폴리티칼 레즈비어니즘이란 것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좀 찾아왔습니다. 종이에는 영어 표기가 아니라 발음 그대로의 폴리티칼 레즈비어니즘이 적혀 있었고 나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려 폴리티칼 레즈비어니즘, 이라고 검색했는데 수정된 검색어로 폴리티컬 레즈비어니즘이 나왔고 다시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으로 번역됐다. 미미가 준 자료는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인터넷 페이지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총 세장의 종이를 들춰가며 무언가를 밑줄 치고 적었다. 나는 아이스 카페라떼를 휘저었고 그러고나자 미미는 이제 말을 시작해도 되겠다는 표정이었으 며 사람들은 모두 미미를 보았다. 아마 아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해, 연대라는 점에서 함의가 있습니다로 끝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난다. 아 누군가가 누구 좋으라고 거기와 거기가 넣고 넣어지는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미미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소매깃을 길게 빼내고 그 손으로 비뚤게 턱을 괬다. 그리고 옷에 볼을 문질렀다. 말을 이을 때면 다시 정자세를 했다. 미미가 말했다. 저는 스무살 되면 제 아다는 제 손으로 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때가 열일곱이었나 그럴걸요. 아 내가 열다섯일 때 미미는 자기 거기를 제일 처음 쑤시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 ‘첫’ 이라는 게 너무 짜증났어요 의미부여하는 것도 존,나게 싫고. 그래 그래서 내가 아 미미는 아다가 아니구나. 네 거기에는 무언가 들어간 적이 있구나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두 명이 퀴어 데이팅앱에서 발견되는 젠더정치와 에이엄에 대해 발표했다. 입을 멈추니 어색해졌고 그래서 술을 마시러 갔다. 아직도 비가 내리네. 이동하는 사이에 두 명이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뵈요 인사를 하고 빠져나갔고 다섯 명인 우리는 역시나 구석지고 별로인 노래가 흐르는 작은 바로 들어갔다. 나는 메뉴판 제일 위의 진토닉을 마셨고 미미는 갓마더를 마셨고 다른 사람들은 뭘 마셨지? 그건 중요하지 않지만 거기에 남은 사람들 중 한명은 미미의 대학선배였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 중에 실은 미미의 본명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아마레또라는 말이 더 생생했다. 아마레또 아마레또, 이것은 어느 나라 말일까. 아마도 아마도. 바 내부는 너무 작아서 아마도 모두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두의 머리가 일자로 또 부담스러운 거리감으로 정렬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미미와 나의 몸이 닿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갓마더가 내 앞으로 다가오면서 물었다.

오늘 발표 어땠어요?
저요?
네 그쪽이요.
아.

저는 잘 모르지만 결연했다고 결연해서 왠지 슬펐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하고 갑자기 반말을 했다.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미는 발표하는 것보다 한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에 더 능숙했고 내 허벅지나 귀를 만졌고 번호를 물어서 알려줬고 그대로.
비 그쳤네. 글쎄 다시 올지도 몰라. .... 따,로 아는 데 있어?
화요일 낮, 13시의 2호선 순환 노선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이 타라고 풀어둔 것들인데 사람이 드물다니 나는 그들이 많은 시간대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면 사람들이 돌아가는 다 풀려 나와서 서울을 순환하는 적정 시간은 언제일까. 순환에 적절한 한가함과 조도와 속도는 어느 정도일까. 아무튼 나는 경기도로 돌아가려고 한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당산에서 합정까지는 공중부양으로, 거기서 멈춰 더 이상 돌지 않고 홍대입구에서 환승. 단절.

이거 타고 가다가 홍대에서 갈아타 버스로 한번 더 갈아타긴 하는데 너는?
어디 사는데?
말해도 몰라.

경의중앙선에서 미미가 준 자료를 다시 읽었다. 거기에는 ‘당신의 침대에서 당신의 머릿속까지 남성을 모두 몰아내도록’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나는 어제 침대 위에서 오히려 넣고 넣어지는 막대기와 구멍을 떠올렸는걸. 거기와 거기. 자지와 보지. 미미 너도, 섹스하는 것에, 네 보지에 넣고 넣어지는 것에, 그것을 네 신체로 받아들여 이렇게 적극적으로 존,나게 적극적으로 쑤시고 땀 흘리는 것을 보면 너도 헤테로 시스젠더, 년. 년이 아니냐? 나는 페미니즘이니 폴리티칼이니 젠더니 하는 것들은 하나도 모르지만 그저 미미가 기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생각이 아니었나 그건 화였나 감정이었나.아래가 아렸고 아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나 생각했다. 언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도 가늠해봤더니 머리가 아팠고 눈알 뒤켠이 뜨거워졌다. 헤어지기 전 해장국을 먹으면서 메신저로 미미가 보내준 링크를 스크롤했다. 여덟개가 있었는데 일곱개는 페미니즘 입문, 이라는 포스팅의 시리즈였고 마지막 하나는 시였다. 김소연의 미래가 쏟아진다면. 아이가 크고 어른이 되고 다시 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 아무튼 그런 내용이었다. 다시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상상하다가 일산 변두리로 향하는, 일산인데 일산은 아닌 다른 곳 말하면 어디야 혹은 거긴 모르겠네 내가 일산은 아는데 하는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말해 뭐해.

섹스를 하든 연애를 하든 혹은 밥만 먹고 오든 한강을 건넜다 다시 건너는 일은 돈이 많이 들었다. 막차가 끊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의 할증 붙은 택시비는 전부 엄마의 카드로 결제했다. 알림 문자의 불빛이 잠을 깨울 만큼 밝을 텐데도 엄마는 절대 깨지 않았다. 그래서 성석동의 밤은 온전히 내 것이었고 서울의 것과 온전히 이어질 수 있었다. 엄마는 아침에서야 깨어나 야밤의 결이 뭍은 머리를 쓸어주다 나갔다. 몰래 하고 까먹어버린 등 뒤의 문신도 별말 않고 만져주었다. 간질거렸다. 아침이면, 감은 눈 앞으로 두 번씩은 엄마가 지나갔지만 항상 너무 졸렸다.
미선. 미미는 미선. 실은 미선. 그렇지만 미미는 모든 만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미미라고 소개했고 나는 그게 퍽 깜찍한, 자기가 주창하는 그 결연하고 슬픈 무엇무엇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 곤잘레스가 아닌 게 어디야. 어찌됐건 이상한 건 내가 그 이름을 미미와 사귀기로 한지 한달이 되고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카드를 깜빡한 날 먹었던 곱창값을 계좌이체 하느라 알았다. 미선은 내 엄마의 이름이기도 하다. 개명한. 엄마의 원래 이름은 성미진이다.
미선의 연애를 상상했다. 엄마는 아빠를 만나러 당산철교를 건너던 이야기를 자주 했다. 유튜브에 당산철교를 검색했다.


당산철교 철거 마지막 열차(1996) 조회수 40,753회

HOT전성기 시절.
97년 말에 IMF가 터졌는데도 공사 및 철거가 취소돼지 않고, 계속했네요.
(37) 당산 Tangsan / 생생하네요ᄏᄏᄏᄏᄏᄏ
MBC 최일구 기자 아니였으면 계속운행하다 진짜 사람 여럿 죽어났을듯
47초 전광판 거기에 라도로고... 캬 추뽕 취한다

대부분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알고 확인하고 느낄 방법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댓글을 단 사람들에게 그걸 다 어떻게 알아요? 하고 묻고 싶었다. 어떻게 알아요? 뭐를? 다요 지금 말하고 웃고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요. 아 당연한 걸 물어 그때 거기에 살았으니까 알지. 그때 아이였다가 지금 어른이 됐고 어른이었다 더 어른이 됐으니 알지. 아직까지 살아있으니 말하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럼 한번 무너졌던 교각의 이야기도 아세요? 알고 말고, 너도 많이 건넜고 너희 엄마도 많이 건넜던 것이다. 그러니 너도 충분히 아는 것이다. 너도 자신 있게 안다고 말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옛날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할 줄 아는 이야기는 이것 뿐인데. 누가 아이였다가 어른이 된 이야기.
성미진은 1997년 3월 31일 월요일 낮,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이전에 한번 해본 적 있다는 듯이 한 번에 태어났다. 부드러울 유(柔)에 선할 선(善). 작명소에서 미리 받아둔 이름처럼 부드럽고 순하게 자궁을 빠져나왔다. 발목에는 황유선이 아니라 성미진이 적힌 발찌가 채워졌다. 성미진의 남편 황대곤은 곁에 없었다. 황대곤은 영등포에서 합정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있을 테였다. 아마 급하고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러분 제가 아빠가 됐습니다 기사님 조금만 빨리 가주세요 외쳤을지도 모른다. 황대곤과 성미진이 연애할 적에 성미진은 그곳을 자주 건넜다. 황대곤은 영등포에 살면서 영등포구청 근처의 치과 기공사로 일했고 성미진은 강 건너 대조동에 살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둘은 1992년 불 광동의 동사무소에서 만났다. 그때부터 만나 1994년에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1995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것을 부둥켜안고 지켜보았다. 한강 교량 정밀 검사에서 당산철교의 붕괴위험성이 진단되었고 뉴스가 그걸 보도하고 그 위를 지날 때면 전동차는 30km/h로 서행 운전했지만 그럼에도 성미진은 철골구조물답지 않은 흐늘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육중하고 위협적인 흔들림에는 낭만적인 면이 있었다. 1996년 2월에 성미진은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5월에 임신을 했고 11월에는 식을 올렸다.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강을 여러 번 건너고는 다시 불광동으로 돌아와 살림을 꾸렸다. 당산철교는 1996년 12월 31일의 막차를 끝으로 철거되고 철거 도중 붕괴된다. 1999년 말까지 예정된 재시공 기간 동안 합정역과 당산역을 잇는 셔틀 버스가 운행됐고 성미진이 당산철교를 건널 일은 뜸해져 황대곤만 양화대교를 건너 치과로 출근했다. 황대곤과 성미진과 황유선은 2000년 경기도로 이사했고 성미진은 2009년에 불용 한 자 참 진(眞)을 옷깃 선(船)으로 바꿔 성미선이 됐다. 황대곤과 성미선은 2018년 2월29일에 이혼한다.

엄마는 그럼 그 당산 다리 무너지는 거 다 봤어?
응 아마 뉴스로 봤지.
그럼 성수대교나 그 백화점 무너지는 것도 봤어?
그것도 뉴스로 봤지 서울집서. 무서워서 아빠랑 같이 봤다.
위험한 시대에 살았네.
그때?
응. 다 부서지잖아.
그러게. 그래도 잘 살아있제 지금도.

그럼 엄마는 언제 어른이 됐어? 스무살 된 거 말고, 다 컸다 생각했을 때.
그건.. 나는, 너 낳았을 때지.
널 보고 아 이제 세상에 책임져야 할 게 생겼구나, 했지.
그럼 한참 남은거네.
뭐가?

그럼 애는 여자가 되는 게 먼저야 어른이 되는 게 먼저야?

미미는 94년에 태어났다. 97년에는 거의 매일 혼이 났다. 아무 때나 아무데나 오줌을 쌌기 때문이다. 실은 방광염에 걸렸던 건데 외할머니는 그걸 몰랐고 4살인데도 기저귀를 채웠다. 미미의 엄마가 산부인과에 데려갔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오줌을 싸서 할머니가 어린이집 사물함에 바지를 여러 벌 넣어줬다고 했다. 아니면 오빠가 서서 오줌 싸는 게 너무 부러웠는지도 몰라. 멀리 쌀 수도 있고 가까이 쌀 수도 있고 조준도 되잖아. 아님 한번 해보니까 너무 시원해서 자꾸 그랬는지도 몰라. 나는 그래 그럴지도 몰라 했다.

우리는 대실 시간을 꽉 채워서 방 안에서 하고 밥도 먹었고 나가기 전에는 꼭 같이 샤워를 했다. 나는 따뜻함에 물을 맞추고 있었는데 미미가 장난스럽게 등을 만져서 레버가 너무 뜨거움까지 돌아갔다. 물을 껐다. 소리가 웅웅 등골을 따라가다 목뼈에서 멎고, 나서야 들렸다. 미미가 물었다. 나 쉬 싸도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응.
싼다.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도 싸.
아주 방금 뜨겁게 끓여졌다 밖으로 나온 김에 따뜻해져서 몸을 데워주는 짜르르한 찻물. 그런데 컵이 없네. 그것을 나를 조준해서 쏘아진다. 다리를 타고 물길이 나고 또 다른 두 다리에 옮겨 흐르고 발가락 스무개 사이사이를 뜨겁게 데웠다. 하이에나, 하이에나가 떠올랐다.
고대, 그러니까 아주 옛날에 살던 사람들은 하이에나를 양성구유인 악마의 동물로 여겼다고 한다. 암컷의 클리토리스가 수컷의 음경처럼 나와 있어 생식기만으로는 암수의 구분이 어려웠고 그들이 섹스를 하면 암수가 아닌 수컷과 수컷이 붙어먹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새끼를 베고 배를 불리니 기이하고 사악해 보였던 것이다. 암컷은 그 가짜 음경 (pseudo-penis)으로 소변도 보고 애도 낳을 수 있다. 발기도 한다. 하이에나 무리의 알파는 이들 암컷이다. 그 하이에나들의 점박이 무늬를 세어보고 싶다.
우리는 을지로4가역에 내려, 부러 세운상가 골목 쪽으로 조금 더 둘러 걸었다. 낮인데도 조명 가게가 눈에 부셨고 청계천이 나오자 천변으로 내려갔다. 하얀 국수 가닥같은 이팝 나무들이 봄을 맞아 필까 말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부처님이 오시겠구나아 알 수 있었다. 동십자각 앞의 어느 타워 앞에 서있는 경찰들 앞을 지나갈 때 미미는 신지가 아스카를 보면서 딸딸이를 치는지, 아야나미 레이를 보면서 딸딸이를 치는지 기억이 안난다며 내게 물었다. 딸딸이, 라고 했다.

에반게리온?
응. TV판.
음 나도 기억 안나는데.
생각해보니까 레이였던 것 같아. 아들이 엄마에 대고 발기하는 건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정신 분석 이론이잖아.
그리고 레이가 실은 신지 엄마잖아. 나는 그러냐는 눈빛으로 그 흐릿한 만화를 떠올렸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와서 에반게리온 딸딸이를 검색했다. 신지는 의식불명인 아스카의 웃옷을 젖히고 드러난 가슴을 보면서 자위했다. 저걸 딸딸이라고 자위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도 좋아보이지 않는데 결벽증 환자가 남의 손으로 고간을 쥐어짜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다시 에반게리온 정신분석을 검색했고 아들은 엄마에게 발기하고 딸은 아빠에게 발정하는 정신분석 이론을 토대로 한 논문을 발견했다....반면 여자아이는 어머니 때문에 자신에게 남근이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어머니에 대해 적대감을 느끼고, 남근에 대한 열망을 아버지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대체한다. 그래서 여자아이는 아버지의 사랑(남근)에 대해서 어머니와 경쟁관계에 빠진다.... 고작 만화영화에 왜 이렇게 진지한가 신지나 아야나미 레이나 아스카나 이야기 속 인물들일 뿐인데. 부모가 겁나서 성장을 거부하는 애새끼들 이야기일 뿐인데. 지 입으로는 할 말이 아무것도 없어서 휘둘리기만 하는.
나는 이 만화의 마지막 장면이, 지구 위에서 주인공 이카리 신지의 주변인들이 그를 둘러싼 채 ‘오메데또오!’ 혹은 ‘오메데토오!’ 하며 박수치는 장면이 역겹다고 생각했지만 나머지 부분들에서는 기꺼이 감동받았다. 미미에게 메신저로 아스카다. 라고 보냈더니 속이 다 허름해지고 잠이 왔다.

그해 여름은 기록적이란 말을 다들 쓸 만큼 더웠고 다들 기록을 외쳤으니 정말로 어딘가 기록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관리비에 전기세까지 포함된 미미의 자취방으로 숨어들었다. 미미의 방은 북향이라 그래도 서늘했다. 그래도 너무 더웠고 우리는 해를 피해서 밤낮을 바꾸기로 했다. 낮잠을 많이, 밤잠을 줄이고 점점점점 점점 잠과 잠을 교환하다 보면 그렇게 될 거라고. 첫날을 피씨방에서 꼬박 새우고 각자 알람을 열 개씩 맞췄다. 나는 2분 간격으로, 미미는 3분 간격으로. 오후 7시에는 두 개가 동시에, 오후 7시 2분에 하나, 7시 3분에 하나, 4분, 6분, 다 시 6분, 8분.... 우리는 저녁 7시에서 오전 11시 사이에만 만났다.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만나 유이타오나 전병같은 것들을 사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가끔은 여름 낮의 한가운데에서 미미를 볼 때도 있었다. 나 혼자만 깨어있었다. 창으로 새는 해에 닿은 미미의 피부가 너무 하얗고 적나라했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여름인데도 점점 하얘졌다. 물놀이는 목욕탕에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에 닿으면 무엇이든 보이는구나 먼지가 하나하나, 쌓이네 저기에도 실은 뭔가 있었네. 실은 볼에 점이 있었네 눈썹은 실은 창백하네 이대로라면 너의 솜털도 셀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미미의 머리를 쓸었고 등 뒤의 라틴어 문신도 만져주었다. 미미의 감은 눈 앞으로 두 번은 내가 지나갔을 텐데. 깨지 않네.
지금 생각해보니 가끔 너도 이랬던 것 같아. 이렇게, 내 앞을, 슥 지나가기만 했어. 만지지는 않았어.

미미와는 그렇게 몇 개월을 더 만났다. 예전에는 손깍지를 끼고 낙산공원이나 한강 둔치를 걸어도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내가 머리를 짧게 친 이후로는 몇몇이 지나치는 것에 간격을 두고 뒤를 돌아봤다. 아무튼 그게 이유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 그 서사는 그다지 로맨틱하지도, 문란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폴리티칼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아마 아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으로 시작해 우리는 젊고 생생한 밤, 실은 덜 큰 밤들을 함께 보냈다는 점에서 함의가 있습니다, 로 끝난다.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지만 이제 서울에 갈일이 한강을 건널 일이, 빛과 미세먼지 분말과 물살이 부닥치는 차창을 볼 일이 뜸해질 걸 알아 얼굴을 했다. 어떤 얼굴이었지 그건, 아 근데 한낮이라 창에 아무도 비치지 않았다. 강, 물만 그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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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다. 그래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를 만나러 당산철교를 건너던 시절을 순정이라 했다. 나의 연애도 순정일까. 눈앞에 밤이 있다. 새벽 도로 앞의 맥도날드DT점. 실은 엄마에게 전부 다 불어버리고 싶어 이건 직접 한 일이니 실제 이야기니까 문장을 의문형으로 끝내지 않을 수 있겠지. 순정(純情)은 무슨 사랑은 무슨. 엄마 나도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 막 건물이 부서지고 누가 수류탄에 맞고 고문당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이세카
우주에서 두 조각의 금속이 만나면 그대로 붙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