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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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는 말에는 늙은 내가 없다
죽음과 나이 듦 사이에는 다리가 있는가
젊고 창창하게 죽는 나는
고독하고 위태롭게 숨이 끊어지는 내게로
다가가지 못하고

끊어진 곳에서 추락한다

사람은 가보지 못한 섬을 모르지만
연로한 슬픔은 나를 건너봤다
그는 무지개를 건너면 또 다시 무지개가 나온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추락한 곳에 또 추락할 곳이 있었다
내가 더 나아갈 것 같으면 그곳은 또 추락할 곳이고

숨을 오래 참았지만

나는 영영
슬플 수 없는
들리지 않는 곳에서 경적을 울리는
뱀에 더 가까운
그저 젊음이었다




지렁이

나는 백지 위에 썼다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
코고는 대학 동기 옆에서
나침반을 그리다가

처음인 것들을 지워내면
오늘 아침 대자보에 적혀 있던 말들이었다
정의로운 것들
봄밤이 지나면 잊힐 꽃말들
녹색 물감이 번지고

숲이 보인다

지렁이를 찾았지만 없었다
숲에서 나오려고 하자

강사가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 썼는지 읽어보세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




장미

애인과 밤에 갔다 밤에는 별이 내린다
별이 내리는 곳에는 가시가 없다 엄마는 항상 예쁜 꽃이면 가시가 있다고 말했는데

가시가 없는 밤에 축축한 몸을 담그고 잔다
그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서로의 숨 냄새가 섞이기 시작할 때
나는 좋아서 발을 구르지만

조금만 더 놀다 보면
밤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
밤은 나를 잡고 밝은 곳으로 내동댕이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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