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구름이 녹아있다. 그렇다는 것은 곧 비가 내린다는 것. 우산을 펼치기도 전에 가로등에 불빛이 꺼진다는 것. 어둠이 몰려오면 색깔들은 하늘로 치솟고 얼굴의 형태는 사라지는 법. 원망만 미움만이 남아있다는 것. 비가 내리고 입가가 끈적해진다. 물방울 속에 빠져 산책하는 자들. 목줄을 찬 채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자들. 더 이상 볼 수 없는 자들.
한 폭의 밤은 미래의 무덤. 새의 날개를 빌려 공중으로, 달빛도 가려지는 밤. 축축하고 시린 곳. 짧고 가벼운 이별. 어딘지도 모르는 골목에서 들려오는 소리. 컹컹, 그 소리에 사라질 것 같다.
꿈.
꿈속 네 울음. 올가미에 질질 끌려 죽어가는 울음. 너의 등은 불타고 있다. 너는 고개를 홱 돌려 가자, 물거품 같은 네 얼굴. 우산을 펼친다. 우산 속에 묻힌 내가 너는 무덤이라고 착각한다. 곧 태풍이 올 거야. 별들이 떨어져 땅에 박힌다. 무너지는 나무들. 나는 우산을 단단히 붙잡고. 바람에 찢기는 네 등. 붉은빛의 살점이 꼭 운명 같다. 천천히 다가가 우산을 씌운다. 가자.
안갯속에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나뭇잎을 손에 쥐고 있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는 하루 속에 갇힌다. 그럼에도 우리는 밥을 먹어야지, 그런다.
작은 꿈을 꾸었다. 하얀 스타킹을 신고 어울리지 않는 구두를 신었다. 거울 속에 노란 고양이 한 마리 있다. 거울을 열자 밤이 있었다. 뒤돌아보니 우는 고양이. 누군가를 버리는 것은 의외로 아주 쉬운 일이다. 회색 계단을 내려가며 아이들이 뛰어놀던 잔디밭을 떠올렸다. 잔디가 짓이겨지고 쓰러졌다. 아이들은 지나가던 이를 자주 팼고 쓰러진 사람들은 꽃 속에 묻혔다. 아름다움은 두 번 접힌 양말을 신고 계단을 오르는 여자다. 빨강의 이름표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메아리.
머리를 박고 죽은 새가 강에 떠다닌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물결은 물고기를 영원히 구할 수 없다. 유리창에 비친 것은 검은 머리칼이었다. 기차가 강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는 모두 한 몸이 되었다. 강에선 눈물이 보이지 않았고. 축축한 얼굴을 잊지 않기. 지하에는 계단이 없다. 반복 그리고 반복. 해초는 누구도 감싸지 않고 춤을 추는 것이다. 언제 도착할지 모를 기계들의 사랑. 헤엄친다는 것은 머리칼을 휘감는 바람과의 싸움이다. 수면 위로 망명인들이 흘러간다. 동생은 단발머리. 아버지의 하얀 머리칼과 양절모. 베개를 움켜쥐고 눈을 뜬다.
집에 돌아왔을 땐 식사가 한창이었다. 직접 재배한 채소의 뒷다리를 잘라 자신의 다리에 꿰매기 시작한 어린 엄마. 자신은 평생 늙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식탁에 앉아 엄마의 다리를 썰어 먹던 미래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자 꿈을 꾸는 창들.
식사가 끝났다. 동생은 서랍 속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반쯤 열린 거울의 틈새에서 동생이 보였다.
아버지는 거울을 깨뜨리고 텅 빈 침대에 앉아 서럽게 운다.
다시,
얼굴들,
쏟아진다.
눈이 내리고 속눈썹에 눈이 맺힌다 그게 녹으면 눈물이지 뭐, 그렇게 말하던 너는 울지 않는다 구름이 낮게 깔리는 날이면 날개를 다듬던 너 계획이 있다는 건 무서운 것 같아
네가 없는 빈방에서 불을 켜고 있으면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듯 뜨거워서 견딜 수 없었다 생명이라곤 모조리 죽어버리고 바짝 마른 창틀만이 존재했다 그 틈으로 언젠간 홀연히 사라진 너 내 눈에서 흐르는 나의 그림자
눈보라가 치는 날이면 나는 아무렇게나 흔들렸다 외롭게 죽는다는 것 그런 걸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라서 버려진 화분을 끌어안으며 굴러다녔다 모든 것은 내가 만든 것일까 구별할 줄도 모르는 내가 나를 버리기 시작할 때 새 한 마리 창에 부딪혀 죽는다 단조롭게도
눈이 그치자 집이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