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도단 외 2편
송윤슬
언어도단
희망은 어디서 날아올까
나는 오늘부터 죽지 말기로 하자
어너도단 어나더단 ?언어도단?
길은 이어진다 지구는 둥그니까
오늘을 물고 간 뱁새가 무리지어 일군 배설더미
순간이 발아한다.
나는 순간부터 죽지 말기로 하자
순간은 깊고 깊어 손을 뻗는다
맞잡은 손을 따라 나가면
눈이 내린다.
-
그곳 물맛은 어떤가요
한 구렁텅이는 고요한가요
이끼가 고통을 흡수하나요
엉킨 소리를 풀어 곱게 한 타래로 감으면
당신은 무얼 떠줄 건가요
어떤 동물의 털로 만든 실인가요
향을 타고 흩어진다
이유를 향한 두려움, 눈삽 같은
사람들은 자꾸 이유를 물어
그럴수록 세차게 내젓는 언어도단
어디로부터 날아왔는지 묻지 않는다
두 손으로 샘물을 떠 이내 흘리듯
남은 물방울방울들
싹튼 순간 위로 흩뿌리고
틈새는 엉성하다 그 사이 소리의 길이 흐른다
나는 소리로 죽지 말기로 하자
끝없는 다짐과 함께, 붉은 장화를 신은 무른 아이처럼
눈을 맞는다.
눈사람 가위바위보
나는 네가 나라고 생각했어
네 시가 태곳적부터 내 귓속을 울리고 다녔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
너는 그걸 종이에 옮긴 것뿐이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종이를 찢어도 핏속을 떠다니는 외부생명 공생의 역사를 되짚을 수 없는 시
네게 유일한 선물을 줄게:
나를 떠나 널 집어삼키는 나를 떼 내어버리고 네 종이를 움켜쥔 채 자랑하렴 그걸 가장 높은 곳에 붙여 그럼 나는 저 시는 내 시인데 되뇌면서 중얼거리면서 영영 너를 증오하려 애쓰겠지 네게 그 얽힘을 보여준 건 난데
이 모든 건 너를 위한 전체적 선물
이건 만남을 삭제하는 합일
눈덩이가 불어난다
몸통이 세워졌다.
반짝이는 칼날 그 앞에 저며지는 언어들
네 시 끝에는 어둠이, 그림자가, 산뜻한 그늘이, 서늘한 보자기가
너를 위해 기도했지 네가 내가 아니기를
그렇게 기도하며 밤새 밤톨 코를 찾고
빌면서 언 손끝을 벼리면서 눈 한 쪽을
단추를 쪼개는 손으로 다른 한 쪽을
벌하듯 먹는 너를 벌하는 마음으로
동물을 먹으면 우는 너를 눈에 담으면, 그러면 동물로 우는 나의 음성으로
내가 나를 벌하는 목소리로
번갯불에 콩을 구워 입을 만든다
여기 얼굴이 있다.
그러나 귀를 만들 수 있을까.
소리는 눈 속을 소리 없이 헤치고 도달할 수 있을까.
그럼 소리의 길이 보일까.
네가 나인지 확인할 수 있을까.
미쳐버린 입술에 입 맞출 수 있을까.
이 세계에서 표표히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므로.
개가 콩알을 뜯어먹는다.
개는 입술을 잊으라 한다.
개를 안고 눈사람을 녹인다.
아직 손을 만들지 않았는데.
네게도 내게도 아직 잡을 만한 것이 없는데.
어떤 기계는 눈사람을 먹는대. 눈보라처럼 까만 밤 고유한 별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대. 아직 빛나고 있대.
손을 만들어주지 못했는데.
단추들, 콩 부스러기, 밤톨이 여기 남았다
다시 눈덩이를 굴리며 거기 있는 나를-너를 부르며 들판은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구르기 좋은 곳으로
나 역시 눈덩이로
내가 언제는 눈사람이 아니었다는 듯
끝내 둘 다 무얼 냈는지 알지 못한다 둘이 아니기에.
뒤 돌아보면
내 배꼽을 꿰뚫어 전리품 삼으려
긴 창을 들고 누군가 달려오고 있다
유리 성 같은 사랑이 찾아올 거라네,
돌림노래가 적힌
편지를 흔들며 성큼 쫓아온다.
문을 잠그니 밖은 불 속으로 멀어진다
네게 주려고 사 왔어, 겨울잠-49$
메아리 둘레 배꼽이 꿰인 채 축 늘어져
너의 창에 의지해 흔들린다.
창은 깊다
깊고 반짝인다
너는 매일 창을 닦았나보다
무한히 긴 너의 머리칼이 문질린 내 곱슬머리와 만날 때
매듭이 생긴다 견고해진다
배꼽을 관통하는 머리칼
너는 나를 창에서 내리고 눕히고
머리칼은 상처를 휘젓고 덮고 아물게 하고
마취를 위해 매니큐어를 발라주었다.
내 잠꼬대는 얘들아, 내일이 기대돼
그럼 너는 창을 닦으며 거짓말, 속삭인다
우리 같은 편이 되어 승리한 꿈속의 아침
너는 내게 전화를 걸어 골무나 양동이 같은 이야기를 실컷 하고
송충이처럼 욕을 퍼붓는 나, 가을하늘을 쓰는 빗자루를 보며 웃는다
웃음소리가 겹치는 순간 나는 얼음장에 맨발이 붙은 듯 서서
너를 기다리며 온 땅의 노래를 부를 건데
얼음은 녹았고 이건 꿈이 아니어서
너는 내 머리맡에서 또다시 창을 닦는다.
내일은 네게 무얼 내줄까 포도 같은 눈물 흘리는 밤
너는 언젠가 오지 않았다.
송윤슬
"포스트휴먼융합인문학협동과정"이라는 요상한 이름을 가진 전공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글을 계속 쓰려 한다. 조금씩 더 시를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