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배우를 찬양하는 말들에 어지럽다 외 2편

지영서




위대한 배우를 찬양하는 말들에 어지럽다


그가 준비한 네 가지 연기 톤에는
결코 떠나보낼 수 없는 네 번의 그만이
들어갔다 나왔을까

말로만 듣고 상상해야 하는 나에게는
아름다운 그의 얼굴이 계속 네 가지의
화난, 엄숙한, 연약한, 무뚝뚝한 연기들을
잡아먹어 머릿속은 어지럽혀지고

동경하고 존경하는 수많은 얼굴들은
투영이었을지 선망이었을지 모르는 모습들로 일그러진다

그들의 발하는 조각으로만 나의 상상을 채우고
나도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노라 생각한다

바람 부는 머릿결의 아름다움은
그만 가진 것이 아니어서
바라볼 수 있는 황홀함은 여러 개다

되고 싶은 혹은 옆에서 바라보고 싶은 그 얼굴들은
넘치는 사랑을 떨쳐버리고 싶은 그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이 연기하는 환상에 또 나를 투영하고
나는 반짝이는 껍데기를 핥고 쓰다듬고 싶어
투영되어 보고 싶은 눈먼 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본 사진과 영상만으로 마치
그들을 내 기억 속에서 본 것처럼 입체로 재구성한다

그럴 테면 나는 1초씩 재생되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속도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관람하는 사람이 된다




두 개의 얼굴


Blasé* 된 두 연인의 얼굴
Les ailes sont les elles**
날개 접힌 부분이 고무줄로 묶여 있다
언젠가 펼쳤던 날개
삼계탕에 곧 들어갈 몸뚱아리 발가벗긴 채로 묶여있다

속살을 가리고 싶어도
드러나는 건 털들뿐
쌀알을 꽉꽉 채워
머리 어깨 무릎 발
지그시 눌러 몸을 지져
봉합된 부분은 절대 터지지 않게 접힌 날개
접힌 날갯죽지
하염없이 타성에 젖은 얼굴
엇갈리는 시선
그(il)***는 그의 몸으로 몸보신을 했는데
그(elle)****에게 남는 건 빠져나간 속들뿐 타성에 젖은 얼굴
응시하는 눈동자

구름이 흘러갈 때
머리가 두 개 달린 비둘기를 봐
그게 머리가 두 개여서
결국 날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는데
떨어져서도 죽지 않고
일단 잘 산다나
여력이 없는 친구도
여유가 없는 연인도
일단은 여러 개의 머리와
노란 고무줄을 가지고서
대신 서로 쳐다봐 주면서




각주
*Blasé : 무감각해진, 흥미를 잃은 이라는 뜻의 형용사. 한국식 발음 표기로는 [블라제]라고 읽는다.
**Les ailes sont les elles : ‘그 날개들은 그(여성)들이다.’ 라는 뜻의 문장. 한국식 발은 표기로는 [레 젤 송 레 젤]이라고 읽는다. 날개를 뜻하 는 단어 aile과 여성형 인칭대명사 elle의 발음이 같아 말 놀이를 한 것이다.
***,****그(il), 그(elle) : 한국식 표기에서 인칭 대명사를 쓸 때 여성/남성의 성별 구분 없이 ‘그’라고 표기하기로 한다. 다만 불어로 남성형 인칭 대명사 il, 여성형 인칭 대명사 elle을 넣어 각주를 읽었을 때 ‘그’를 지칭하는 성별이 어떤 성별인지 알 수 있도록 맥락 이해를 위한 한 번의 장 치를 주었다. 한국어를 쓸 때 ‘그녀’를 쓰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어서 한국어 사용에서는 어떤 성별을 지칭하던 ‘그’를 쓰 겠다는 규칙을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렇지만 시의 맥락을 위해 사회적 여성/남성을 구분 지어서 표기하는 장치가 어느 정도 필요했다. 불어를 배울 때 남성형/여성형 혹은 남성/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들을 끊임 없이 배우고, 그 규칙들이 현대적으로 수정되고 있더라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는 성별 구분이 문화적으로 매우 명확한 언어임을 두드러지게 인지했던 경험에 착안하여, 불어를 배워서 쓰는 사용자의 입장으로 인칭대명사 의 성별 구분은 불어로 표기하였고 이를 부가 설명하기 위한 각주를 달았다.

- 이 시는 모모코 안도 감독의 2009년작 "파편"을 본 후 썼다.





호러


호러를 찾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호러
추억을 되새기는 호러
위로하는 호러
단잠 재우는 호러

호러,
호러를 찾습니다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호러
절대로 고독사 하지 않는 호러
상처를 치유하는 호러

아, 호러,
봉합된 수술 부위를 보여주면서도
그곳이 잘 낫고 있기 때문에
안도합니다

아, 호러,
여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괴한이 될 뻔한 사람은
마음을 접습니다

아, 호러만큼 감동적인 게 없습니다
호러만큼 달콤한 것도요

그러니까 옆에 사람 머리 쓸어주세요
귀신의 머리칼이 되지 않도록

그 사람 등 토닥여 주세요
텅 빈 공터가 되지 않도록

그 사람 손가락 잡아주세요
앙상한 나뭇가지 되지 않도록

그 사람 눈 쳐다봐 주세요
눈물이 썩은 물 되지 않도록

그 사람 가슴 꼭 껴안아 주세요
커다란 무덤이 되지 않도록

호러를 찾고 또 찾습니다
언제고 다시 볼 수 있는




지영서
배려 또한 끊임없이 상대에게 끼어들고 싶은 나의 욕망임을. 끼어듦은 상대를 혼자 멀리 두고 허허벌판 위에 서 있음을. 나와 타인을 팽팽하게 합일하는 감각이자 지각/상상된 동등성을 글이나 이미지로 붙잡으려 합니다. 현재 프랑스 세르지에서 미술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 @yongxo.x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