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써야하는 여자가 소설을 쓰는 소설

박윤희


1.
어쩐지 쓸 수 있는 말이 없다. 글을 써야 된다는 강박이, 글을 써야하는 일이 생긴 순간부터 여자의 머리 속에 이 한 문장만이 맴돌았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써온 (한번도 완성하지 못한) 소설들은 더 이상 여자를 자극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소설들은 무엇이 되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 움직이는 일은 두려웠고 그 심정은 글을 쓰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트북을 여는 건 세계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것, 소비해야 한다는 것, 착취되어야 한다는 것, 결국 몸과 정신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 하여튼간 뭐하나 까딱하는 일은 괴롭다는 뜻, 그러니 노트북은 닫혀있을 때 온전히 아름답다…, 고 여자는 생각했다.

어쩐지 여전히 쓸 수 있는 말이 없어 예전부터 휴대폰에 써 온 메모를 살펴보기로 했다. 과거의 글과 말은 지금 당장의 창작의 불씨가 되기에 좋으니까. 얼굴 인식으로 핸드폰의 잠금을 풀고 메모 앱을 켰다. 가장 위에 위치해 있는 메모는 많은 서비스에 가입되어있는 여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의 모음이었다.

애플(필수) / 지메일 계정(필수) / 블리자드(게임 안 함) / 쿠팡(사용 안 함) / 리브앱(사용 안 함) / 페이팔(사용 안 함) / 페이코(가끔 사용함) / 티몬(아직도 안 망함?) / 따릉이(길거리에서 자전거 못 탐) / 도미노 피자(시켜 먹어본 적 없음) / 모바일 티(가끔 사용) / 알바몬(이제는 접속할 일 없음) / 다음(활동가 외에 누가 한메일 사용함) / 어도비(밥줄) / 마포평생학습관, 마포중앙도서관(지적 허영심을 지키자) / 트위터(삭제는 곧 사망) / 네이버(외움) / 알라딘(지적 허영심을 지키자) / 용인중앙도서관(용인으로 돌아갈 일 없음) / 공인인증서(저는 한국인입니다) / Cj one(포인트 적립 말고 사용은 언제 하지?) / 인스타그램(포트폴리오 아카이브를 지키자)

(중략)

왓챠피디아(계정이 두 개, 헷갈리지 않도록 꼭 기억할 것) / 넷플릭스(시청 안 함) / 체레미마카(피임해야 함) / 직지소프트(일단 가입했음)

놀랍지도 않지만 여자는 정말 많은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었다.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데이터로 남아 죽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녀가 직접 서비스의 웹과 앱에 접속해 아주 깊게 숨겨진 탈퇴하기 버튼(여자는 이 버튼을 포털사이트를 검색하지 않고 찾아내는 일을 즐긴다)을 클릭하지 않는 이상 휴면 상태로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데이터나 마케팅을 위해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이외에 야심차게 기획했지만 결국 흐지부지 되어버린 프로젝트에 대한 메모, 어느 순간 업데이트를 멈춘 맛집 리스트, 쓰고 싶었던 소설의 주제를 적은 짧은 메모, 감상적인 글이 적힌 메모, 맘에 들었던 그래픽 디자이너, 멋진 디자인과 주목했던 책 등이 메모로 남아있었다.



2.

비뚤어진 사각형들이 모여 풍경을 이룬다


메모 리스트의 제일 아래에 저장되어 있었던 메모입니다. 여자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많은 드로잉을 했다. 한창 여자가 예술에 빠져있을 때, 그녀 미래의 풍경 안의 그녀는 시각예술가로 전용 작업실에서 조각과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풍경 안의 그녀는 돈을 벌 수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대학생인 그녀는 독립한 한 명의 사람이 삶을 연명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금액이 얼마인지 몰랐다. 아무도 그 부분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에선 돈에 대해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돈의 어두운 이면, 돈을 숭배 및 찬양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어린 나이에 문화 향유 대신 노동을 택하는 일의 어리석음 등 도덕적 가치에 대한 말들이 더 우선적으로 가르쳐졌다. 사실 그때의 여자에겐 돈이 필요했다. 여자는 알바를 하고도 언제나 모자란 돈에 시달리면서도 여자는 그녀의 말이나 행동에서 돈에 인색해 보이는 뉘앙스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특히 교수들 앞에서 그랬다. 저는 돈이 더럽다고 생각해요. 노동은 부끄러운 거예요. 가난하더라도 미술만 바라보겠습니다. 이번 방학에도 알바만 하겠지만 굳이 그 말은 하지 않겠어요. 돈을 버는 시간이 아깝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당시 그녀에겐 작업이 곧 자신이었다. 물론 좁은 원룸의 월세와 식비도 중요했지만. 중요했지만 미술이 죽음을 가져오지 않으리라고 착각하며 미술을 믿었다. 미친 생각을 하던 여자는 작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했다. 여전히 돈에 시달리던 여자는 일단 생활비와 대학원 등록금을 벌기 위해 혜화에 있는 대학 병원 근처의 대형 약국에서 알바를 하기로 하고 월세 13만원의 공유형 작업실도 구했다.

여자는 약국의 구석진 골방에서 하루 7시간 동안 알약을 가르고 최저시급을 받겠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썼다. 골방에는 창문이 없어 어두컴컴했고 건물의 벽에서는 냉기가 느껴졌다. 여자의 머리 바로 위에는 천장이 있어 똑바로 설 수 없었다. 책상 아래에는 환기를 위한 팬이 돌아갔다. 골방은 어딘가의 내부와 외부의 사이처럼 느껴졌다.

약사들과 분명 약대에 다니지 않았을 약국 직원들이 쉴 새 없이 약을 반으로 갈라달라고 했다. 다목적 절단 가위로 약을 갈랐다. 딱, 딱, 딱, 딱. 두 명의 아저씨들이 저녁을 사주겠다는 징그러운 말. 영미권으로 유학 가 있는 아들을 자랑하는 아주머니. 딱, 딱, 딱, 딱. 여자는 하루 빨리 조형예술 대학원이라는 대단한 세상으로 편입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5개월 동안 한 학기 등록금의 반 정도를 간신히 모았다. 불행하게도 미술 작업마저 지지부진했다. 겨울의 지하 작업실은 난방이 되지 않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정도로 추웠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책상에 앉아 A5 크기의 종이에 짧은 글을 적거나 드로잉 하는 것. 풍경 안의 규칙적인 형태의 집합을 재구성하는 것에 관심이 많던 여자는 약국의 벽면에 붙어있는 선반들이 만들어내는 수직의 선들과 사각형의 면과 알약마다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형태가 좋았다. 약국에서 유일하게 좋아했던 풍경이었다. 그것을 종이에 그렸다. 풍경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상상과 구상은 재밌었지만 그 상상된 이미지와 형태를 3차원으로 데려오는 과정은 그녀에게 벅찼다. 시각예술가에게 필요한 그 능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작품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는 끈질김이 부족했거나. 상상은 2차원에 머물고 어쩌다 3차원으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은 여러 곳을 배회하다 폐기되었다. 지금 여자에게 남은 건 그때의 시간을 기록한 메모와 사진뿐이다.

그리고 여자는 다른 나라로 떠난다. 런던에 간다든지, 파리에 간다든지, 베를린에 간다든지 하는 그런 말을 남들에게 하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런던행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친한 대학 동기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 베를린에서 만나자, 나 좀 재워줘.

그녀의 남자친구는 여자 혼자 유럽에 가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걱정하지 마, 유럽에 가서 들뜬 마음에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지 않을 거야. 이런 말들로 남자친구를 안심시키려 노력하면서도 여자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값 싸지만 맛있는 와인에 취한 채 다른 남자와 운명적이지만 진정한 사랑에 빠지는 상상을 했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체구가 작고 누가 봐도 소심해서 말을 걸면 바로 울어버릴 것 같은 아시안 여성이면서 그런 안타까운 상상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유럽은 백인들이 넘쳐 났고 여자는 종종 중국인이 됐다.

21일 정도의 짧지 않은 유럽 여행 이후의 삶은 어때야 할까. 서구 사회에 열등감을 느끼고 동양에서도 아주 작은 나라인 한국에서 열심히 살면서 그들을 견제하기? 넓은 세상과 터질 듯한 인구 속에서 미천한 나의 존재를 느끼고 해탈하기? 그녀에게 유럽의 대도시들은 귀엽고, 더럽고, 가끔 친절해서 맘에 들었지만 여자는 백인들에게 빼앗긴 무언가를 경험하러 돈을 주고 약 20시간 정도의 비행을 해서 그곳까지 간 것에 허탈함도 느꼈다. 그런 생각이 든 것 치고 만나는 사람마다 유럽에 다녀왔다, 런던이 좋았다, 파리가 좋았다, 라는 말로 운을 띄운 후 그 이유를 열심히 설명하고 꼭 이 도시는 가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여자는 약을 반으로 가르는 쪽방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한국, 그리고 서울을 벗어난 것만으로 행복했다. 그저 한국에서 할 수 없는 일들, 노동하지 않고 공원에서 누워 빵에 잼을 찍어 먹고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누구도 타박하지 않고 재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했다. 애매한 가난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달았다. 영원한 해방을 꿈꾸자. 여자는 결국 삶에는 미술보다 돈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세워지고 부서지는 건물들. 한국 - 좁게는 서울의 건물들의 세워지고 부서지는 주기는 짧다. 공터의 수명은 짧다. 어느새 수많은 자제들로 채워진다. 그것이 준비가 되었있건 아니건 간에. 그곳에 세워지는 철근과, 시멘트, 천, 실리콘, 타일, 벽돌 등은 설계도면과 같거나 다르게 지어진다. 계획과 다르게 지어지는 경우는 사실 용납되지 않는다. 다르게 지어지는 것은 사고를 의미한다. 적은 수의 자제, 가벼운 무게, 의도된 빈 공간, 그 빈 공간을 채우는 알 수 없는 물체들, 늘어난 가벽. 어찌됐든 그것들의 합이 쌓아올려져 높은 건물이 완성된다. 일단은 단단한 수직과 평면의 합이다. 그러나 무너질 준비가 가정되어있거나 가정되어있지 않기도한 상태이며 결과적으로 무너질 예정이다. 아닌 척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큰 힘이 닥쳤을 경우 단단한 수직은 급격히 그 반대의 형용사로 변모하여 무너져내릴 것이다.



3.

하트 날카롭게 깨졌고 많이 깨졌음, 비율, 이미지 밖으로 나가게?? -> 시원하게 터주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하트개체 위에 하나 더 올려서(투명도는 낮게) 블랙 위에서도 좀 더 마젠타가 튀게


여자는 작가의 자아를 버리고 매달 돈을 버는 회사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미술은 밥도 돈도, 마침내 정신까지. 내게 얼마 없는 모든 것을 박박 긁어 뺏어가는 파렴치한, 이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인정한다. 파렴치, 파렴치. 여자는 되뇐다. 무엇을 해서 돈을 벌지.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마침 주변에는 출판물을 디자인하는 대학 동기들이 몇 명 생겨났는데, 그들이 꽤나 대단해 보였다. 여자도 생각해보니 자신도 책을 좋아하고 도서관 가는 것을 좋아하고 예쁘고 멋있는 책 표지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 외 나열할 수 있는 이유도 찾아보면 더 있겠지. 오히려 출판 시장에서 여자를 위한 자리 하나 없는 게 이상했다. 학부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어도비Adobe에서 만든 디자인을 위한 프로그램들에 드디어 눈을 돌렸다.

디자인은 여자에게 새로운 차원을 열어 주었다. 그동안 하던 드로잉을 마우스와 ctrl, alt, shift, z, c, v 키로 화면에 구현해 내는 행위는 새로운 차원의 감각이었다. 생각, 행위 모두 구닥다리 모더니즘에서 탈피했다(과연?). 여자는 아주 늦게 포스트모더니즘에 합류했다(이때 진정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여자에게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차원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은 전국의 시각 디자인과 학생들에게 화가 났다. 이 좋은 걸 너희들만? 폐과 위기에서 빗겨가는 것도 너희들만? 취직도 너희들만? 시기와 질투를 느끼는 동시에 여자는 그들과 동류가 되고 싶었다. 그들과 디자인 시류에 대해 말하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공개하고, 대학 동기 서너명과 그래픽 디자인계를 선도하는 스튜디오를 차리는 모든 성장을 위한 과정에 참여하고 싶었다. 월세 20만 원의 역삼역 공유 작업실에서 망상을 하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포트폴리오는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피드백도 받지 않았다. 오로지 핀터레스트Pinterest만 들여다보았다. 신기하게도 스크롤을 죽죽 내리기만 하면 몇 년 전에 유행한 스타일로 디자인 된 포스터, 리플렛, 책 표지가 쏟아졌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불분명한 이 작업물들은 어쩌다 핀터레스트를 떠돌게 되었을까? 그것들이 대단해 보였지만 이정도는 자신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고 여자는 내심 장담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번째 포트폴리오는 당연하게도 구렸다. 그런 포트폴리오를 가진 디자이너는 잡코리아, 사람인에서 구인하는 회사에서 채용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여자가 인스타그램에서 눈여겨보고있던 디자인 스튜디오에는 그녀를 위한 자리가 있었냐고 물으면 당연하게도 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어느 곳에도 없는 자신의 자리에 절망했다. 그리고 또 깨달았다. 연봉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

연봉은 여느 디자인 에이전시에 뒤지지 않을 만큼 낮게 주면서 야근은 필수인 곳에 다니는 대학 동기 언니가 출판인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곳은 교육비가 무료인 데다 월 30만 원 정도의 생활 지원비도 나온다고 했다. 헉, 그런 단체가 있어? 거기 수료하면 대형 출판사에서 막 데려간대. 말도 안 돼. 그 교육 기관의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곧 원서 접수 기간이었다. 여자는 이상하게도 자신이 그곳에 다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여자는 역삼역의 공유 오피스의 주인에게 이번 달까지만 작업실을 쓰겠다는 말을 전했다.

여자는 1차 서류심사에 통과해 2차 면접 심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여자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어설픈 정장에 검정 구두를 신었다. 빨간 시외버스를 타고 을지로 3가에 내려 2호선을 타고 합정역에 내렸다. 면접 시간이 한참 남은 상태로 도착했기 때문에 그 근방의 빵집에서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으면서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외웠다. 빵집의 마당에는 참새가 많았다. 빵 조각을 계속해서 쪼아 먹었다. 크루아상의 한 부분을 뜯어 던져주었다. 잘 쪼아먹었다. 답변 외우기를 그만두고 빵을 쪼아먹는 참새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저 빵 쪼아먹는 참새인 걸 알고도 계속 바라보았다. 여자는 그녀가 준비한 예상 질문과 답변이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면접 시간 30분 전이었다. 주황색 숄더백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기가 차서 눈이 시렸다. 저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대학 때에도 도서관에 자주가며 읽고 싶은 책을 가까이 했습니다…, 비록 디자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합격자 리스트에 여자의 이름이 있었다. ◌◌◌(94). 출판계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는 마련되었고 여자는 6개월의 교육 과정을 소화할 모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용인의 부모 집에서 6시 반에 일어나 9시까지 서교동에 위치한 교육 기관에 도착해야 했다. 점심을 사먹어야 했고 저녁에는 선생님이 내준 팀 과제를 하기 위해 저녁도 사먹어야 했고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커피도 사먹어야 했다. 6개월을 같이 할 친구들과 친목을 다지기 위한 술값도 필요했다. 월요일부터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에 이것 모두가 필요했다. 정부에서 주는 30만원 정도의 지원금으로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시간 또한 부족했다. 합정과 용인의 왕복 시간은 약 4시간 정도였다. 홍대, 합정, 상수, 망원에는 여자를 위한 방은 없었다. 교육과정이 시작된지 2주 정도 지난 비가 많이 오는 어느 날 언제나 그렇 듯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 안의 버스에서 생각했다. 생각했다. 슬프다고. 여자는 6개월을 버틸 수 있을까? 그녀는 억척스럽지 못했다. 누르면 누르는 대로 밀면 미는 대로 대로 눌리고 밀렸다. 아득해졌다.

한 달 뒤 여자는 방 하나를 어렵사리 구했는데 물론 자기만의 방은 아니었고 일면식 없는 중년 여성의 집의 방 중 하나였다. 집은 교육 기관에서 10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었다. 옆에는 전시공간을 같이 운영하는 세련된 큰 카페가 있었다. 동네는 조용했다. 심지어 방 안에는 공짜 옷 정리함과 큰 책상, 책꽂이가 있었다. 그리고 집 주인은 크게 티브이를 켜고 크게 방귀를 뀌었다. 꽤나 괜찮은 집이었다. 8시 20분쯤 기상해 빠르게 씻고 옷을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도착했다. 정부에서 강요하는 앱 출석을 하고 교실에 들어가면 동기들이 있었다. 이제 조금 친해진 동기들과 인사를 하고 지정 자리에 앉는다. 엄마에게 구박 받으며 새로 산 맥북 프로를 꺼냈다. 개인 노트북이 없으면 하교 이후 과제를 할 수 없었다. 원래 여자가 가지고 있던 벽돌같이 무거운 PC형 태블릿으로는 섬세한 디자인 작업이 불가능했다. 또 무엇에 돈을 내어야 할까. 두려워졌다. 하지만 시간은 거침없이 흐르고 여러 명의 선생님도 포트폴리오를 위한 과제를 거침없이 내주었다. 그리고 틈틈이 동기들과 술을 마시고 이야기했다. 같이 카페에서 밤까지 과제를 했다. 새벽까지, 더 나아가 밤새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가끔 그중 한 명에게 다른 동기들에게는 하지 않던 개인적인 말들을 흘렸다. 그도 적당히 사적인 말들로 답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오고 가는 그 말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두 개의 입은 우리가 될 거에요. 그에게 속삭이고 싶었다. 아주 가끔 그와 나는 산책을 했다.

6개월의 교육 과정은 금방 끝이 나고 어느새 졸업식을 하고 동기들은 친구가 되었다. 이 중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다른 누군가는 토닥이고 여자도 울컥, 울컥했다. 하지만 시간은 완결되지 않고 이어진다. 그 출판사 어때? 갈 만하대? 선생님은 아무데나 일단 가래. 거기서 거기래. 여자는 선생님들의 말이 싫었다. 여자는 그녀에게 딱 맞는 책과 그에 맞는 디자인을 보이는 출판사에 가고 싶었고 그럴수록 초조해졌다. 맘에 들지는 않지만 상상은 점점 더 악화되어 선생님들의 말에 수긍해야하는 정도가 되었다. 출판사를 중점으로 디자인 외주를 받는 스튜디오에 면접을 갔다. 사장은 여자에게 혼자 살고 있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부모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지 물어보았고 디자인 업무에 관한 실질적인 질문은 아주 피곤한 안색을 하고 있지만 착한 말투를 가진 젊은 여성만 던졌다. 결국 두 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여자와 가끔 산책하던 그도 잘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리고 빙하기에 접어든다.


저는 _____ ‘디자이너’입니다
회화를 전공하였지만, 페인팅뿐만 아닌 설치, 조각, 드로잉까지 평면에서 입체까지 폭넓게 작업해 보았습니다. 손으로 그리거나 만지고 만드는 일에는 낯설지 않습니다. 물론 주로 디지털 작업을 하지만, 상상하는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시도해 본 경험이 디자인함에 있어서도 상상하는 결과물을 재현하는데 제한을 두지 않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 결과물을 상상하며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태도를 가지게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이미지에 강점을 두고 있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에 시선을 끄는 강한 힘이 센 디자인도 좋지만 긴 호흡과 적절한 여백으로 숨을 틀 수 있게 하는 디자인도 중요합니다. 이미지에 강한 만큼 여백이나 긴 텍스트를 다루는 데에는 미숙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실제 출판될 2권의 책의 본문을 디자인하며 이 단점을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회사 안의 경력자 분들의 조언으로 도움을 얻으며 실무의 감각도 같이 익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입 디자이너로서 경력이 부족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포트폴리오에선 저의 성장력과 잠재성(프로젝트 기획의 맥락 파악하기, 올바른 커뮤니케이션 능력, 새로운 그래픽 시도 등)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이 장점에 집중해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성장하여 회사의 좋은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4.
나는 노동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노동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는 고마운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노동은 언제나 누군가-정체가 있지도 없지도 않은-에게 고마움을 느끼도록 강요했다(누군가가,혹은 무언가가 나에게 가깝든 가깝지않던 간에). 그렇다고 노동이 아닌 어떤 행위에 감사함을 느끼느냐, 에 대한 답은 글쎄였다. 나는 감사함을 모른다. 애초에 노동이 아닌 행위나 따위가 있었나? 모든 일은 노동을 위해 준비되어있는 것들 뿐이었다.


여자는 베스트셀러이면서도 스테디셀러인, 유명 지식인들이 꼭 추천하는 책을 가지고 있는 대형 출판사에서 디자인부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여자의 그가 먼저 제안 받았지만 거절한 일자리를 넘겨받았다. 혹시나 가망 있는 좋은 일자리를 뺏은 걸까, 미안하기도 했다. 동시에 여자는 아르바이트이지만 성실히 일하는 자신을 정직원으로 전환해 주지 않을까 설레기도 했다. 교육 기관의 담임 선생님도 가능성이 있다며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업데이트 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정말 여자가 정직원이 된다면 그와 그녀는 분해될 것만 같았다. 여자는 야망과 사랑 사이에서 안절부절하지 못했는데, 한 달 이후 이 고민은 멍청한 짓이 된다.

출판사는 코로나19의 유행이 또다시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재택근무를 시행한다. 정직원에 한정해서. 본의아니게 창궐한 바이러스의 면역자로 출퇴근을 해야하는 자신의 처지에 여자는 웃음이 났다. 마스크 안으로 어색한 입모양으로 웃고 나서 욕을 내뱉었다. 씨발, 니들 싫어. 그래도 출판계에서 복지가 좋다는 곳 아니었던가. 복지에도 등급이 있다. 여자는 악착같이 출판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빵을 아침마다 챙겨 먹었다. 흡연 구역에도 부지런히 갔다.

원래 그때는 돈이 없는 거야. 김밥천국에 자주 간다는 여자의 말에 부장이 답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애기도 돈이 필요해요. 여자가 한 번 더 말했다. 바로 파하하 웃어버리는 그들의 음성에 당황스러움이 묻어있었다. 그때 여자는 본래 아르바이트로서 해야 하는 일 외에도 곧 나올 경영서의 본문 디자인을 맡고 있었다. 경험과 기회라는 명분 아래 일을 떠맡게 됐다. 아르바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정직원이 하는 업무에 상응하는 정도의 일을 맡게 된 것에 기쁘면서도 억울했다. 그리고 그녀의 시급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여자의 옆 자리에 앉아 여자를 은근히 챙겨 주던 근속 연수가 긴 과장 님은 ◌◌씨, 부장님께 고맙다고 하세요, 라고 여자에게 개인 메세지를 보냈다. 여자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까지 점심시간에 혼자 산책을 했고 종종 책상에 엎드려 잤다.



낙태는 살인이다. 낙태를 찬성하는 당은 반드시 망한다.



차가운 아침에 확실한 목적지를 향해 익숙하고 이상하고 복잡하고 지겨운 길은 가끔씩, 혹은 매주, 매일의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8시 50분과 저녁 6시 1분 쯤에 나를. 나 이외의 여성들은 감사할 새도 없이 절망이 붙었다.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절망을 따돌리고 싶었다. 언제나 지각을 간신히 면하는 나는 걸음을 빨리 하기와 가볍게 뛰기를 반복했다. 언제나 빠르게 빠르게인 평소보다 더 빠르게 빠르게 해서 절망을 따돌리려는 전략을 짜보기도 했지만 따돌림은 윤리적인 행동이 못된다는 것. 그래서 평소처럼 빠르게 빠르게 정도만 하기도 했다. 평일 오전 9시까지 매일 도착해야하는 어딘가에 도달하기 전부터 절망은 눈에, 몸통에, 다리에 착 달라붙어있고 나는 빠르게 빠르게, 그리고 힘겹게 언덕을 오른다. 언덕이 아니고 산이던가. 얘만 떨어져 나가면 덜 힘겨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힘겨움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네, 받아들이고 말아야 할까. 절망을 제공하는 사람들, 그것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을 사람들 앞에서 이것 좀 가져가라고 할까. 하지만 그 사람들도 아침 일찍 도착해야하는 어딘가로 향하는 길에 또 다른 절망을 만나고서 따돌리지도, 떼어내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는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절망 하나 붙이지 않고 어딘가로 향하는 놈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사이를 보란 듯이 가로지르며 오르막길을 빠르게 빠르게 걷는다.



5.
쓸 글
S의 베를린 방과 서울의 내 방을 묘사하는 것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작년에 다니고 있던 디자인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터를 찾고 있습니다. 혹시 자리가 있는 출판사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릴게요. 여자는 교육 기관의 담임 선생님에게 염치없이 문자를 보냈다. 이전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3개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대형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할 때 구한 공유 작업실에 안 나간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작업실 책상에 앉아도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초조와 우울이 여자를 지배했다. 이 상태를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말하니 빠르게 타자를 치고는 새로운 약으로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효과는 딱히 없었다. 여자는 이것 저것에 패배했다. 그래, ◌◌◌아. 요새 디자이너 구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통화 한 번 할까? 네, 선생님. 저는 지금도 통화 가능해요.

담임 선생님이 소개 해준 출판사의 사장은 말이 되게 많았다. 여자에게 물어본 질문 속에는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거주지, 나이, 전에 다닌 출판사의 상황 등, 여자가 디자이너로서 어떤 자질과 능력이 갖추고 있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표지는 얼굴이며 화장化粧을 잘 시켜주는 게 디자이너의 몫, 요즘 출판 시장이 힘들어 남는 게 없다, 직원들이 나와 맥주를 마셔주지 않는다, 라는 자신의 구질한 디자인 철학, 신세한탄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여자는 간절했다. 월세가 필요하기 때문에. 3일 정도 뒤에 출근하라는 문자가 왔다.

출판사는 평화롭고 연봉은 적었다. 편집자와 마케터, 디자인팀의 사수, 관리팀, 전부 합치면 열 명이 간신히 되는 사람들 모두가 친절했다. 안정됨에서 나오는 여유가 사무실 대기에 흘렀다. 역시나 여자는 성실하게 일했다. 회사 동료들도 그녀를 응원하고 실수를 넘겨주고 집에서 싸온 간식을 나눠주었다. 월급도 정확히 매달 5일에 입금되었다. 평온했지만 왠지 모르게 찾아오는 울적함을 어찌할 줄 몰랐다. 여자는 이제 그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일단 누워 책을 읽었다. 소파에서 바로 보이는 창문의 흔들림을 슬쩍슬쩍 곁눈질했다.

퇴근 후 바로 방으로 들어와 소파에 누워 긴 시간 동안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잠깐 동안 책을 읽었다. 여러 유명한 소설가들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유명한 한국 작가의 산문집을 통해 알았는데, 여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산책을 하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을 그렇게 달가워 하지 않았다. 여자는 누울 수 있는 곳이면 일단 누웠고 잠을 잘 수 있다면 더욱 좋았다.

여자는 그녀가 머무르는 방을 박제해서 평생 기억에 남기고 싶었다. 집도 아닌 방을 살 수 있는 돈이 당연하게도 없었기 때문에 글로 영원히 남기기로 한다. 여자는 얼마 전 벨기에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대학 동기의 베를린 유학 시절 지내던 집의 묘사, 그 방에 얽힌 에피소드, 생각을 녹음 파일로 전달 받았었다. 여자는 유럽 여행 때 베를린 그 집에 가본 적이 있었으므로 음성이 만드는 풍경을 상상하기에 수월했다. 하지만 그 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면 더 재미있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방과 집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곧 집이고 집이 곧 사람이고 집과 사람은 곧 이야기가 아닐까. 아마도 이야기의 도착지. 창문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덜컹거리는 소리를 냈다. 여자는 여전히 소파에 누워 책을 만지작댔다. 글을 써야지, 해야 하는 모든 말과 지나가는 모든 시간을 엮어 소설을 써야지, 라고 여자는 그리고 생각했다.



창문

2인용 소파 옆에는 방에서 제일 큰 존재감을 보이는 창문이 있다. 창문에는 그가 누웠을 때 외풍이 들어오지 못하게 창틀에 쫄대를 붙여 비닐을 그사이에 끼워 넣은 창문의 외풍 막이 설치되어있다. 바람이 불 때 반투명한 비닐은 낡은 나무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부풀어 올랐다가 꺼지는 일을 반복했다. 그는 소파에 눕거나 앉아 그것을 멍하게 쳐다봤다. 그의 아빠가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용인에서부터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직접 설치해 놓은 것이다. 이것은 방 안의 온도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용도로 설치됐을 뿐 이 방의 미감을 높이기 위함은 결코 아니었다. 몇 년간 서울의 열리는 크고 작은 전시장에 놓여진 작품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의 방은 전시장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집이다.



6.
계속 밖을 바라봅니다. 저의 글에 집중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계속해서 중심이 아닌 바깥을 겉도세요.


디자인을 합니다. 디자이너는 아닙니다. 소설을 씁니다. 소설가는 아닙니다. 미술은….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애호가 정도일까요.

발터 벤야민을 읽는 사람들, 사무엘 베케트를 읽는 사람들, 할 포스터를 읽는 사람들, 히토 슈타이얼을 읽고 보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정확히는 그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말하고 인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이 정도가 저의 밑천입니다. 여자는 일부러 솔직했다. 그 사람들이 꿰뚫어 볼까. 난무하는 얕은 지식들로 조잡하게 얼기설기 짜여진 여자의 뇌를 꿰뚫어 볼까, 일부러 여자는 솔직하게 이 정도가 저의 밑천이라고 밝혔다. 여자는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말할 수 없었고 인용할 수 없었다. 많은 경우 오해하는 여자는 그런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이해는 오해로 시작되기도 했다. 그 생각에 다다랐을 때 여자는 오해라는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로 한다. 저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물론 빈번히 실패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나요, 저는. 저는…. 이대로 존재하려고 합니다. 여자는 이제 미술이든 디자인이든 문학이든… 사람이든, 모든 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화해했다. 뒤를 돌아보아도, 한치 앞만 내다보아도 그녀는 다시 지금으로 돌아오게 된다. 과거로, 미래로, 다시 지금으로. 시간이 휘어져 다시 여자에게로 돌아온다. 다룰 수 없는 시간과 말을 움켜쥐었다, 폈다, 움켜쥐었다, 폈다…. 그리고 소설을 쓴다. 그런데, 누가 여자의 소설을 읽지?






박윤희
소설을 쓰고 그래픽 디자인을 합니다. 항상 어딘가의 주변부를 맴돌며 소설 쓰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