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자

김나은


장은혜는 원무과 직원에게 재연의 번호를 불러주고 병실 침대에 누웠다. 병원은 재연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 사이 장은혜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비명을 질렀다. 장은혜의 법적 보호자는 아니지만,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안예원이 의사와 간호사를 닦달하며 당장 수술을 해달라고 요구해서 의사는 본인 동의서를 받고 장은혜를 수술했다. 그러는 동안 재연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홉 시에 일이 끝났고 사물함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자마자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는 재연이 받았다. 전화를 건 원무과 직원은 왜 이저세야 전화를 받느냐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재연을 나무랐다.

“장은혜 씨의 따님이시죠?”

“아닌데요.”

재연의 엄마의 이름은 장은혜가 아니라 장미희였다. 장미희와 연락이 끊긴 지는 십 년이 넘었다. 재연은 왜 자신의 전화번호가 장은혜에게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장은혜 씨는 김재연 씨가 분명 자기 딸이 맞다고 하셨는데요.”

원무과 직원이 반복해 말했다. 재연은 여덟 시간 동안 그릇을 나르느라 무척 피곤했고, 장은혜의 딸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어서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내일 병원에 찾아가겠다고 말한 뒤 통화를 끊고 소주를 사서 집으로 갔다.




장은혜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재연은 잠든 그녀를 보고 이 사람이 자신의 엄마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다른 점이 많았지만 비슷한 점도 있었다. 뼈가 굵은 팔뚝과 목선에 있는 점. 장은혜의 얼굴은 야위었고 혈색은 회색빛으로 어두웠다. 병을 앓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십 년 전에 봤던 장미희의 얼굴은 어땠더라? 재연은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과도를 들고 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베란다 문에 기대 앉아 서걱거리며 사과를 깎는 엄마. 재연은 배를 바닥에 붙이고 길게 누워 있었다. 그때 살던 집은 여름에 무척 더워서 베란다에 요를 펼쳐놓고 살았다. 어스름이 내린 저녁 공기는 후덥지근했고 단내가 났다. 차가운 너의 이별의 말이… 엄마는 사과를 깎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장미희는 목소리가 무척 좋았다. 노래의 음정은 기억이 나는데 재연에게 엄마의 얼굴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물에 푹 젖은 종이처럼 흐릿했다. 재연이 야윈 장은혜의 얼굴을 관찰한다 해서 흐린 얼굴이 선명해지지도 않았다. 이 얼굴은 재연의 뿌연 기억에 빗대어 보기에는 차이점만 두드러져 보였다.




재연이 장은혜의 얼굴에서 장미희의 흔적을 찾으려 고심하는 동안, 옆에는 안예원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재연이 오기 전까지 장은혜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있었고, 덕분에 재연이 병실에 들어오다 말고 다시 나가 음료수를 하나 사 먹으며 그냥 집에 갈까 고민하는 원인이 되었다. 재연은 기도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재연에게 장은혜 씨의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며, 자세한 건 예원에게 물어보라 말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재연은 예원에게 자세한 걸 묻지 않았다. 그냥 의자를 갖고 와서 옆에 앉았다.

“제가 안 선생님의 딸이에요.” 예원이 말했다.

“안 선생님이 누군데요.” 재연이 물었다.

“음, 아주머니의, 어머니의 친구예요.”

병실은 4인실이었다. 장은혜를 제외한 두 사람은 커튼을 치고 있었고 한 사람은 자리에 없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같이 살았어요.”

예원이 장은혜의 콧등에 얹힌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아주머니는 정말 정말 좋은 분이에요.”




재연은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보고 나서야 장은혜가 정말 자신의 엄마가 맞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재연이 지금까지 엄마 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을 수 있다. 자랄 때는 엄마야 그냥 엄마였으니 이름이 중요하지도 않았다. 재연은 장미희 아닌 장은혜의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지고 할 일이 많았다. 서명해야 할 동의서가 무척 많았고 보험 청구도 해야 했다. 보험 청구는 무척 번거로운 일이었다. 장은혜가 들어놓은 보험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재연은 머리가 아팠고, 그래서 병원 옆의 파스타집에 들어가 맥주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장은혜는 재연이 필요했다. 법적 혈연만이 보험과 수술과 서류에 본인을 대신해 손을 댈 수 있었다. 재연은 의도치 않은 일에 휘말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장은혜의 카드로 결제하고 파스타집을 나왔다.

병실에 돌아가니 장은혜는 침대를 반쯤 세우고 기대 앉아 있었다.

“전화해서 받을 수 있는 건 다 청구해. 이제는 내가 뭘 들어 놨는지 기억도 안 나. 암보험, 치매 보험, 간병 보험…”

재연은 편의점에서 사 온 음료수를 서랍에 올려 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지. 성현 씨가 대학 병원에 아는 의사가 있다니까 거기로 갈 거야.”

성현 씨는 안 선생님이었다. 안성현은 병실에 있다 재연을 보고 인사를 한 뒤 나갔다. 머리가 희고 목이 구부정한 남자였다. 안경을 쓰고 면도를 말끔하게 한 게 재연의 아빠와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거기로 가면 너도 자주 올 수 있겠지.” 장은혜가 말했다.

“내가 지금 어디 사는지 어떻게 알아?”

“너 서울에 살잖아.”

장은혜는 무슨 당연한 걸 묻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재연은 서울은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지명이니 장은혜가 짐작으로 던진 말이 우연히 들어맞은 거라고 생각했다. 재연이 서울에 사는 건 맞았으니까.

“네가 할 게 많으니 일주일에 두 번은 꼭 나한테 와야 해.”

장은혜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재연이 들어본 노래가 아니었다. 찬송가일테지. 재연은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사망 보험은 안 들었어.”

의자에서 일어선 재연에게 장은혜가 말했다. 장은혜는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무통 주사를 여러번 누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는 거야. 아무한테도 손 벌리지 않고, 피해주지 않고, 이대로…알겠어?”

장은혜가 숨을 가쁘게 쉬었다. 재연은 의사의 말대로 엄마의 예후가 좋지 않을 테고 그녀가 오래 살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알겠어.”

재연은 대답하고 병실을 나갔다.




장은혜가 서울의 대학 병원에 입원했다. 재연의 집에서 사십 분 거리였다. 두 달 간 재연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장은혜를 찾아갔다. 최근 열 흘 동안은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재연의 일로도 충분히 바빴다. 회식 날 맥주에 보드카를 섞어 먹고 다음날 위염에 걸린데다 주민센터에서 모집하는 저축 계좌를 신청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작성해야 할 서류가 스물 여덟 장이었다. 서울시 청년을 대상으로 백만 원을 넣으면 이백 만원을 돌려주고, 천 만원을 넣으면 이천 만원을 돌려준다는 대단한 계좌였다. 회식 때 셰프님이 알려주었는데, 그는 서른 아홉 살 이하의 사람이 이걸 신청하지 않으면 멍청이라고 말했다. 재연은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아 시간과 공을 들여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번호표를 뽑고 복지과로 갔다. 청년을 위한 저축 계좌를 만들러 왔다고 말했다. 창구의 공무원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격 조건에서 탈락하는 열네 가지 예시가 인쇄된 종이를 먼저 건넸다. 재연은 아마도 자신이 이 열네 가지에 해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모두 아니오에 체크했다. 프린터기의 기나긴 우웅거림이 끝나고 공무원은 인쇄된 스물 여덟 장의 서류를 재연에게 주었다. 등본과 증명서와 동의서와 사유서와… 공무원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말해서 재연은 부모는 오래 전에 이혼했다고 말했다.

“관계가 단절됐나요? 이혼만으로는 단절로 보지 않아요.”

“전 제 엄마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가족 관계 단절 사유서를 적어오세요. 확실하고 세세하게 적어야 해요. 조금이라도 설득력이 없으면 인정하지 않아요.”

스물 여덟 장의 서류는 그 자리에서 작성할 수 없는 분량이어서 재연은 쓰린 속을 끌고 다시 집으로 왔다. 재연은 그 뒤로 일주일 간 맥주와 함께 위산 억제제를 삼키며 모든 주민센터의 공무원을 감동시킬 만큼 명문을 생각했다.

‘저는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이건 너무 과장이었다. 재연은 엄마가 장미희라는 걸 분명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제가 모르는 사이 개명을 하고 쌍커풀 수술을 하고 코수술도 하고 가슴 수술도 했는데 그로 인해 저는 영영 제가 알던 어머니를 잃은 기분입니다. 제 어머니는 수술대 위에서 지방 부산물과 함께 사라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역시 썼다 지워야 했다. 결국 재연은 엄마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재연은 엄마가 병색이 완연하다는 말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 그녀와 재연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차례로 썼다가 다 지워버렸다. 무엇이 설득력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에 등장하는 예시를 찾아보다 하루를 더 보냈고, 마침내 재연은 사유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병원에서 전화가 두 번 왔다. 의사는 더 이상 장은혜에게 수술을 권하지 않았다. 이젠 그 부담을 몸이 견딜 수 없었다. 신실한 안예원이 엄마의 곁에 있어줄 터이니 재연은 전화를 무시하고 잠시 이천 만원을 위한 고뇌에 빠져 있기로 했다. 재연이 병실을 찾아갈 때면 시시때때로 교회에서 온 사람들과 안성현, 예원이 장은혜 주위에 모여 안수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럴 때 재연은 병실 밖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모든 주의 종들에게 이 믿음을 굳게 붙잡고 충성하게 하옵소서, 아멘.

“네 엄마는 죽으면 안 돼. 정말 좋은 분이야. 정말 좋은 여자지.” 안성현은 기도를 끝내고 나가는 길이면 재연에게 말했다. 재연은 입을 꾹 다물고 턱에 힘을 주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엄마에게 가지 않은 열 흘 동안 재연의 귀에서 기도 소리가 씻겨 나간 것 같았고 그녀는 그게 적잖이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에게 속아서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서로가 전혀 바라던 사람이 아니어서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둘 다 돈 버는 재주는 없었는데 그게 어머니를 화나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릇이 날아가고 어머니가 과도를 휘둘렀는데 아버지가 찔렸습니다. 아버지가 칼 위로 넘어진 탓도 있어서 신고는 하지 않았어요. 2010년 5월 27일에 사랑에 빠진 어머니는 하나님인지 목사인지 아무튼 잘난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갔는데 그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우리는 각자 전혀 다른 인생을 살기로 했습니다. 저는 열여섯 살이었고 엄마야 저보다 나이가 많았겠지요. 못돼먹은 사람이었어요. 세상이 떠나가라 울면 두 층 위에 사는 사람도 내려와 문을 두드릴 정도였습니다. 무척 슬프고 불우했답니다. 제가 아니라 어머니가요. 저는 어머니와 달리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고 성실하고 바르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경제난과 고달픈 노동에 이기지 못하고 이 서류를 쓰고 있을 뿐 저와 어머니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없다고 할 수 있지요. 아는 게 전혀 없습니다. 몇 년 전에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사실은 죽지 않았는지도 모르고, 아무려나 우리는 단절된 사이니 죽거나 죽지 않거나 제가 신경쓸 바는 아니지요. 저는 이 나라의 성실한 공무원 분들이 제게 줄 이천 만원으로 훌륭한 계획을 세웠으니, 남자친구와 결혼해 아들딸 둘 낳아서 착하고 행복하게 바르게 살 계획입니다.’




손으로 적고 보니 종이에 여백이 너무 많이 남아서 재연은 글자를 지우고 큼직하게 다시 썼다. 대충 거짓말인 내용을 지어내다 보니 즐거워서 실실 웃었다. 엄마는 술을 마셨다. 많이. 술과 약을 함께 먹는 게 취미였다. 장미희는 호텔 청소를 다녔는데 그래서 재연의 집에는 엄마가 호텔에서 슬쩍 한 비품과 숙박객들이 두고 간 물건이 돌아다녔다. 멋진 시절이었다. 재연은 종이에 맥주 흘린 자국을 탈탈 턴 뒤 관계 단절 사유서를 스물 여덟 장 서류 속에 끼웠다. 다음날 주민센터의 복지과는 흠, 하는 소리를 내며 서류를 접수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심사가 들어갈 거예요.”




심사가 들어갈 즈음이면 장은혜는 죽고 없겠지. 재연은 생각했다. 장은혜는 이제 거의 걷지 못했고 간병인을 고용한 상태였다. 배가 부었고 얼굴도 퉁퉁 부었다. 손만 앙상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을 수 있었다. 만약 장은혜가 죽지 않는다면? 재연은 거울 구석에 서서 엄마를 지켜 보았다. 지금처럼 장은혜가 안수기도 속에 힘없이 누워있고 서류로 꼬인 끈 때문에 나와 이 우울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장은혜와 내 사이는 어떻게 될까? 재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장은혜를 휠체어에 태웠다. 병원 건물을 나와 관목이 심어진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창문을 꼭꼭 닫은 병실 공기가 너무 답답해 재연이 제안한 일이었다. 장은혜는 내키지 않아했지만 병원복 위에 두꺼운 점퍼와 담요를 걸치고 나왔다. 손목과 손등은 주사 바늘로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산책로를 적당한 햇빛이 비추었다. 재연은 산책로 바닥의 자갈이 덜덜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휠체어를 밀었다.

“날 위해 기도해.” 장은혜가 점퍼에 몸을 푹 파묻으며 말했다.

“난 기도 안 해.” 재연이 대답했다.

“왜?” 장은혜는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재연은 몇년 전까지 엄마가 이 질문을 하고 자신이 대답하는 상상을 여러 번 했었다.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재연이 기억하는 장미희는 무슨 대답을 하든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믿는 걸 나는 믿지 않으니까.”

산책로 끝에 정자가 있었고 장은혜가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해서 재연은 휠체어를 세우고 앉았다. 정자 앞 관목 밑을 바위가 둘러 쌓고 있었다. 바위 저편에 시디와 비디오를 파는 낡은 노점상이 있었다. 노점상에서 틀어놓은 노랫소리가 재연에게 들려왔다. 너의 사랑 없인 단 하루도…오랜만에 듣는 노래였다. 엄마가 노랫말을 따라 흥얼거렸다. “삶에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거 같지 않니?” 장은혜가 물었다.

“응.”

“난 약하거든. 무언가를 붙잡고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거야.”

“그렇지.”

“처음엔 네 아빠야 말로 흔들리는 내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어. 근데 그렇지 않았지. 어느 날 깨달은 거야. 내가 아무리 나약해도, 인간은 결국 혼자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재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는 고요했다. 장은혜의 점퍼 모자에 붙은 털만 미풍에 살랑거렸다.

“너도 그런 기분을 느끼니?”

“나도 느껴.”

장은혜는 나뭇가지처럼 가는 손가락을 뻗어 옆에 앉은 재연의 손등에 얹어 느리게 어루만졌다. 손톱이 둥글고 오른손 검지와 약지 마디가 뭉툭하게 튀어나온 모양. 재연은 거무죽죽한 장은혜의 손 모양이 자신의 손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니 기도하자. 하나님은 살아계셔.”

장은혜가 눈을 감고 재연의 손을 힘 주어 잡았다. 몸을 재연 쪽으로 숨기자 장은혜가 계속 끼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가 앞으로 나와 흔들렸다. 재연은 천천히 손을 뺐다. 일어나 휠체어를 끌고 가려고 하니 장은혜가 여기 더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 나는 갈 거야.”

장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나? 너 열 살 때. 나한테 그렇게 울 거면 차라리 가라고 했잖아.”

재연이 벌써 일어나 가는 걸 아는 지 모르는지 장은혜가 말했다.

“아! 나는 가도 되는 거구나! 그때 깨달았어. 너의 그 대답이 아니었으면 떠나지 않았을 거야.”

장은혜가 재연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다섯 발자국만큼의 거리가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엄마를 가까이 붙잡고 무슨 말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녀를 때리거나. 그러기엔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 재연은 뒤를 돌았고 산책로를 지나 병원 정문 밖으로 나갔다. 간병인에게 전화를 걸어 햇빛을 쬐고 있는 엄마를 데려가라 전했다.




재연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싫었고 그래서 장은혜를 좋아할 일도 없었다. 하나님은 너무 쉬운 해결책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놓고 비겁하게 도망칠 수 있지? 재연은 소주를 사고 집에 돌아와 투명한 술잔 속에 빠져들었다. 장미희가 그 선택을 한 걸 생각하면 기분이 상했다. 너무 쉬운 답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사라졌다는 게. 재연은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거렸다. 어느새 사랑 썰물이 되어… 전화벨 소리가 끼어들었다. 예원이었다.

“아주머니가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회복하기 위해선 재연 씨의 기도가 꼭 필요해요.”

얘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예원은 병원으로 오거나 전화로라도 하나님에게 기도하라 말했다. 재연은 새벽 두 시를 넘긴 시간을 보고 바닥에 누웠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예원에게 장은혜 씨를 바꿔달라 말했다.

“엄마”

휴대전화 너머에서 장은혜가 기운없이 대답했다.

“내가 엄마를 위해 기도해줬으면 좋겠어?”

“...”

“정말로 죽고 싶지 않아?” 재연이 뒤이어 물었다.

“아니.” 장은혜가 말했다.

“상관없어. 나는 천국에 갈 거니까. 하나님만이 내 고통의 이유를 알아. 너가 내게 왜 이러는 지도. 너를 가여워 하시겠지.”

장은혜의 마지막 말에 재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통화를 끊었다. 장은혜가 재연에게 다시 한 번 부탁했다면 재연은 자신이 다시 열여섯 살이 된 것처럼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다.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그러나 그들은 단절된 사이였다. 무엇도 그 틈을 메울 수 없었다.




재연이 마지막으로 병실에 갔을 때 장은혜는 잠들어 있었다. 창문을 열어 잠시 환기를 시키고 냉장고의 우유를 꺼내 먹었다. 장은혜가 이대로 잠들어 쉽게 깨지않을 거란 생각에 안심이 됐다. 그녀는 다시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재연은 엄마가 입원한 뒤 처음으로 볼이 푹 젖게 울었으나 무엇이 슬픈 지 알 수 없었다. 휴식 시간을 끝내고 돌아온 간병인이 재연을 안아주었다. 간병인은 재연에게 엄마가 무척 좋은 분이니 그저 기도하라고 말했다. 그저 편안하도록.

“전 기도하지 않아요.”

재연이 콧물을 닦아내며 말하자 간병인도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 그런 사람이시군요.”

두 사람은 인사하고 헤어졌다.




보름 뒤에 장은혜는 죽었다. 원인은 암으로 인한 폐색전증이었다. 장은혜가 천국에 가는 동안 재연은 소주를 먹고 잠들어 있었다. 재연에게 연락한 지 세 달도 되지 않아 떠났으니 이른 죽음이었다. 그녀가 받을 수 있던 보험금이 수북히 많았지만 일찍 세상을 떴으므로 끝난 일이었다. 사망 보험은 없었다. 재연은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안상현과 예원은 어딘가 멀리 있어서 오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장은혜의 전남편이 상주가 되었다. 전남편은 무교였으므로 장례식 초반에 사람들은 절을 했다. 이내 안상현이 와서 자신이 상주라고 말했고, 중간에 얘기가 꼬여서 전달되어 장은혜의 전남편과 법적이지 않은 남편 둘 다 상주가 되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날 뻔 했다. 다행히 싸우지 않았다. 둘 다 고인이 좋은 여자라는 데 의견이 맞았다. 결국 두 남자 다 완장을 차는 걸로 합의했다.

“은혜 씨는 보기 드문 좋은 여자였지요.”

“암요. 미희가 실수가 많긴 했지만, 참 좋은 여자였습니다.”

사람들은 반절만 하고 조의금을 내고 갔다. 예원은 예배를 위한 목사를 불러오겠다며 나가서는 소식이 없었다. 몇몇 조문객은 자기들끼리 손을 붙잡고 찬송가를 불렀다. 재연은 일찍 술을 먹고 형편없는 접대를 했으므로 장은혜의 전남편의 여자친구가 상주의 아내로서 사람들을 맞이했다. 부의록을 작성하는 빠르고 정확한 손! 재연은 구석에서 휴대전화를 붙잡고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장은혜는 재연에게 장례식 때 간병인을 불러 그녀도 같이 상복을 입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그저 고마워서였다. 간병인에게 이 모든 복잡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녀와 간병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재연은 간병인이 다시 한번 자신을 안아주기를 바랐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간병인은 받지 않았다. 술 한 병을 더 따는 사이 전화가 울렸다. 주민센터였다. 심사가 끝났다고 공무원은 말했다.

“서울시는 귀하가 어머니와 완전히 단절된 사이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잘됐군요.” 재연이 말했다.






김나은
열 살 먹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밤에는 술을 마십니다. 꿈은 많이 자고 일찍 일어나기. 퀴어문예지 <일곱 개의 원호02> 와 호러 매거진 에 단편소설 게재.
tpqmfzmffh1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