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된 밤 외 2편

혜수




돌이 된 밤

너는 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돌돌돌 굴러가는 돌,
아니 그보다 한자리에서 꿈쩍 않는 바위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 너는 회색 이불 아래 누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그 옆에 누워 창밖으로 귀를 기울였다.
고가 위로 달리는 차 소리가 여러 가지 모음 소리를 내며
ᅮᅮᅮᅮᅮᅮᅮᅮᅡᅡᅡᅡᅡᅪᅪ
ᅲᅲᅲᅩᅩᅩᅩᅱᅱᅱᅱᅱᅱᅱᅥ
ᅮᅦᅮᅦᅮᅦᅦᅦᅦᅵᅳᅲᅲᅲᅲ
사라졌다 커졌다 사라졌다 커졌다 했다.
착한 마법사가 주문을 거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착한 마법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너의 마음 가장 어두운 구석에 들어가는 중이라고
그것은 약물로도 투약할 수 없는 혈관 너머 정신을 맑게 할 거라고
그리고 넌 곧 회색 이불에서 나와 핏기가 도는 볼을 내게 부비며 꿈을 꾸었다고 말할 거라고
그렇게 빌었다.
이불 밖에 삐져나온 너의 발끝이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추워서 그런 거라고 나는 그 위에 이불을 겹겹이 얹히고 얹히고 얹혔다.
마법은 소용이 없는 듯 했고 너는 바위가 된 듯했다.
마치 한때 바위였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흙흙흙흙흙 흩흩흫흫흫흫
숨을 쉬고 있는 듯 흐느끼는 듯 웃는 듯했다.
주문처럼 들렸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나는 바위 주변을 빙빙 돌았다.
너였던 바위는 어떠한 힘으로도 들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덩어리였다.
그건 모든 명암을 아우르는 무채색이었고
모든 감각을 끌어안고 있는 무감각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다른 개체가 되었다.




점등 시간


오후 4시 57분 집 앞 가로등이 일제히 켜진다. 갑자기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나온다. 그즈음 창문 끄트머리에서 가까스로 보이는 다리 위에 매일 한 여자가 나와 서 있다.

저 여자 중국 창녀래

이제 슬슬 저녁을 먹기 위해 쌀을 씻는다. 필요한 재료들이 냉장고에 다 있길 바란다. 매일 먹어도 줄지 않던 양파가 때마침 다 떨어져 슈퍼를 가야 한다. 다리를 가로질러 갈까, 운하를 빙 돌아서 갈까 잠깐 고민한다. 오히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눌러 쓰고 가면 되니까 편하다. 그러면 나는 그녀를 곁눈질하며 애써 못 본척하지 않아도 되니까.

저 여자 원래는 바텐더였다는데

사레인이 문을 닫은 지는 한참 되었지만 이후 마음에 드는 바를 찾지 못했다. 밤에 외출이 잦은 편은 아니었는데 더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 사레인에서 눈인사를 주고받던 바텐더 마리케가 가끔 떠올랐다. 여자끼리 키스하는 거 구경하러 왔다며 반쯤 풀린 눈으로 찾아오는 이성애 남자 손님들을 부드럽지만, 위협적으로 쫓아내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긴 너네 따위가 오는 데가 아니야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하고 어찌 됐든 다리를 건너기로 한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마리케한테 했던 것처럼 가볍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기로 한다. 거울을 보며 가볍게 입술을 칠하고 후드가 달린 점퍼를 입다가 긴 롱코트로 바꿔 입는다. 얼마 전에 산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박스에서 꺼내 신는다. 밖은 금세 어두워져 집 안의 그림자도 사라진 지 오래다.

네가 어떻게 보여지길 바래?

엊그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최근 상담하는 환자 중에 아시아 여성이 있다고 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며 환자의 제스쳐나 말하는 방식이 나와 비슷하다고 했다. 조금만 더 대화하면 내가 감정적으로 될 거라는 생각에 그냥 웃으며 넘어갔다. 집 밖으로 나와 다리로 걸어간다. 멀리서 그녀가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와 그녀가 비슷한 점은 무엇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본다. 어떤 사람은 bitch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니하오라고 한다. 그녀가 퍽오프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은 워워 물러서고 어떤 사람은 너네 나라로 꺼지라고 말한다. 어떤 남자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뭐라고 속삭이더니 어깨를 감싼다. 그리고 둘은 다리를 건넌다. 남자는 힐끗 뒤를 돌아보더니 내게 눈을 찡끗한다. 나와 그녀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The Hanged Man


쉬 히 노 쉬 노노 히허 데이뎀 예스 노 쏘리 데이 아임 쏘쏘리
혀가 꼬여 버렸다
마음도 꼬여 버렸다
굳어 버린 얼굴들이 서로 외면한다

남자인 그들 여자였던 그들
복용하는 테스트스테론 때문인지
털은 멈추지 않고 자라고
이내 그들의 살을 파고 든다

애써 태연한 척
꼬인 혀로 쉴새 없이 말을 한다
버얻틀러가, 인디드 젠더와 퍼포오머티비피디,
라이크 구조적으로 보면, 쏘 위 알 릴레이셔널버러너블,
크라이크리시스, 섭서브써뷰젝티이브티 쏘온앤온앵웅

매달기 메말라 메여와 목이 아니 몸이 마르다
중력을 거스를 수 없어 거꾸로 매달렸다
혀가 아래로 떨어졌다
부드러운 이끼를 햝았다
씁스읍음음크허컭흡흑
늘 아래를 향하는 머리카락들이
치렁치렁우축축츠츠츠뚝 간신히 땅에 닿았다

만나서 반가웠어 자리를 떠나는 그들
취소된 몸 삭제되었습니다 영원히 폐기하시겠습니까
아무렇게 아무르지 않은 게 아닌
더 이상 거꾸로 매달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제거된/재건된 제느틀

꼬인 혀로 말한다
데이 알 퐈인
저스트 행 뎀셀브스





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