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해요 누칼협

노매가리
ㅡㅡㅡㅡ
줄거리
AI 시대.
AI 게임방을 찾은 고민남의 사연은?
"여자친구가 저를 괴롭혀 주었으면 해요."
( 화들짝)
남자친구의 꾐에 넘어간 주인공은 게임에 들어가게 되는데...
히어로가 적성에 맞지 않은 주인공. 빌런이... 되어버렸다?
액션 블록버스터 머 그런 거 없는 자충우돌 오글거리는 이야기.
어쩌면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게임 속 세상.
현실도 게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다 쓰고 나서 최대한 의미 부여를 해본 그런 이야기.
올겨울 얼어붙은 심장을 내버려 둘 문제작
월드컵 보고 나서 감동하여 써 내려간 화들짝
_
이야기 속의 게임과 지금 제가 쓴 글이 어느정도 닮았다고 느낍니다.
쓰고 싶은 것만 쓰려고 최대한 넘겼습니다.
서투르고 엉성하지만 썼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완성해본 이야기. 살아 있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
"형님, 이분 벌써 가는데요?." '이 새끼들은 뭐지? 나, 생각보다 허접이었나?' 나는 무슨 작전을 한다던 남친을 찾으러 VR 게임방에 들어왔다가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VR 게임 기계에 앉아 있었고 게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 . 라는 내용의 꿈을 꿨다. 썩 좋지 않은 꿈이었다. 나한테 뭔가 알려주려고 그런 것일까? 오늘은 히어로 면접 날이었고, 난 늦잠을 잤다. -야, 너 오늘 면접 안 봐? 드디어 미친 건가? 뭔 일 있는 거야? 문자가 와 있었다. 어릴 때부터 히어로가 되겠다던 소꿉친구. 오늘 꿈에 남자친구로 나왔던 애. -늦잠 잠. 좆됨 ㅋㅋ 아, 어떡하지. 웃고는 있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나는 히어로가 되고 싶긴 했나?
ㅡ
*사상 최강의 히어로!* 1년이 지나고 내 소꿉친구는 대단한 기량을 발휘하여 단숨에 남바완이 되었다. 단숨에 톱스타가 된 것이다. 멋졌다. 어릴 적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나. 그런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을 때, 뒤돌아서서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았을 때.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나는 얘가 남을 도와주는 데에서 두각을 나타낼 거라고 어렴풋이 느꼈었다. "축하해." "고마워. 넌 오늘 면접 합격 연락 받았지? 바로 될 줄 알았어." 작년에 늦잠을 잔 나는 올해 1등 신입이다. "꼴등인데 뭘." 뒤에서. 어릴 때만 해도 같이 다녔던 소꿉친구는, 턱걸이로 간신히 합격한 나와 너무 멀어졌다. 부러웠다. 엄청 부러운데. 대단한 업적이고 그의 옆에 있는 것만도 즐거운데. 뭔가 아쉽다. 부족하다. 나는 히어로가 되고 싶지 않았다. 소꿉친구의 등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히어로가 되었지만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다. 히어로가 하는 일이 뭔가. 빌런이 나오면 빌런에게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것. 이게 다 애들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는 너무 무섭다. 게임을 하는 것 같아. 제대로 정해진 것은 없고 얼레벌레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니까 그냥 하는 거. 어색한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내게 그가 말했다. "작년에 너 늦잠 자서 면접 안 왔잖아. 전날에 내가 고백해서 늦잠 잔 거야?" ? 이게 뭔 소리지? "그때 네가 나한테 고백했었나?" "뭐야. 같이 합격하면 사귀어준다고 그랬잖아. 니가 면접 안 와서 1년 더 준비한다길래 내가 먼저 입사해서 길 닦아 놨는데, 고백한 것도 기억 못하면 섭섭하지." 나는 기억 안 나는데. "그래서. 이제는 둘 다 합격했는데, 나랑 연애하는 거 어때?" 그냥 최강도 아니고 사상 최강인데다 앞날이 창창한데 나랑 굳이? 이거 꿈인가? 게임인가? 무슨 이런 일이 있지? 나를 아직 좋아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 "좋아. 난 네가 처음 손 내밀어 줬을 때부터 호감을 느꼈었나 봐. 1년을 더 기다려줘서 정말 고마워." ? 되지도 않는 말이 나온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내가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나? 되고 싶지 않았던 히어로가 된 날, 나는 세계 일짱 히어로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ㅡ
퇴사했다. 히어로의 시스템은 나와 맞지 않나 보다. 사상 최강의 히어로, 그의 등장에 빌런들의 행동은 얼어붙었고, 그쪽 동네는 구인난까지 왔다고 한다. 일거리가 줄어든 히어로 집단에서는 인력감축에 들어갔고 치사하게도 자진 퇴사하도록 온갖 방법을 써서 사람들을 들볶았다. 나 같은 말단 직원들. 그래도 사내 연애는 재미있어서 최대한 버티고 버텼는데 징하게 들러붙어 있던 나를 기어코 잘라냈다. 근성으로 버티면 안 될 거 없다며. 실력이 없었다. 적성에 안 맞았다. 이 정도 했으면 잘했다. 사내 연애를 못하게 된 건 너무 아쉽다. 쫄깃하고 스릴 넘쳤는데. 여전히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내 남친. 커리어 하이 정말 부럽고 나도 뭔가 하고 싶었다. 빌런 판에서는 경력직 신입을 모집한다고 했다. 히어로 퇴사자들도 경력 우대를 해준다고 했다. 남친 몰래 지원서를 넣었다. 결과는 합격. '인생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네.'
ㅡ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빌런 판. 경력직 우대도 해주고, 히어로 쪽 다녔다는 소문이 났는지 신규 채용된 사회초년생 신입사원들이 우러러보기도 했다. 꼴등이었는데. 돈을 이렇게 쉽게 벌어도 되나 싶은 정도로 빌런 판은 한가했다. 그렇지만 슬슬 지겨워졌다. 도파민 중독... 같은 건가? 남친과의 스킨십이 너무 좋았다. (갑자기?) 그래서 생각보다 자주 했다. 너무 해대서 일상적인 일에 흥미를 못 느끼나? 집 앞에서 기다리던 그를 만나는 순간 10%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스치는 손끝에 50% 문을 열자마자 집어삼킬 듯한 입맞춤 90% 배달 음식의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르는 뭐, 그런 거? 회사에서 이런 생각하는 거 좀 우습다. 뭔가 재밌는 일 없을까? 남친은 히어로 최강인데 나도 뭐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이상한 생각의 씨앗이 훗날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 . . 나는 빌런 판에서 일짱이 되었다. '갑자기?' 일짱. 좀, 싸구려 같다.
ㅡ
남친은 좋다. 자기 일 잘하는 사람. 퇴사한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 얘는 아직 내가 빌런이 된 줄 모른다. 뭐 이상한 시험이나 보는 줄 안다. 그래도 잘할 거라고 응원해준다. 고맙고 속여서 미안하고, 일은 저렇게 잘하면서 좀, 순박한 면이 사랑스럽다. 이런 걸 귀여워하는 나도 좀 미친 것 같고. 그러니까 사상최강을 사귀겠지. 으. 너무 부끄럽다. 이젠 지겨울 정도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남자친구. 그에 못지않게 나도 뭔가를 이루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던 빌런 판은 평화로운 시대의 히어로, 그들의 내부 분열을 기다렸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나 때문에. 시발. 내가 히어로인 남친의 여친이었고 하필 빌런이어서, 남친이 퇴출 위기에 놓였다. 좀. 어이가 없었다. 덜컥 걸린 것도 웃기고, 나는 이것도 생각 못했나 싶었다. 이런 나 제법 바보일지도? 나 왜 이렇게 생각 없이 살지. 남친한테 너무 미안했다. 어릴 적 꿈을 이룬 그에게 해준다는 게 고작 이건가 싶어서. 그리고 미리 말하지 못해서. 변명하자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라도 사과했다. 남친은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걸 섭섭해했다. 무슨 길이든 응원해줄 수 있었다면서.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고 덧붙이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나한테 부탁을 했다. 빌런으로서 자길 괴롭혀달라고. 제2의 전성기로써 히-빌 시대를 열자고! 빌-히인데... 내가 잘못했으니까 넘어간다. 암튼 얘는 천재 같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센스, 배우고 싶다. 예상외로 히어로를 괴롭히는 건 재밌었다. 그들의 약점은 정자를 만들어내는 곳이었고, 정자를 다 뽑아내면 더 이상 힘을 못 쓰더라.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애꿎은 시민을 괴롭히는 것보다 시민을 지키려는 히어로를 괴롭히는 것이 생각보다 맛있었다. 잘하는 걸 찾은 것 같아. 특히나 히어로 남친을 상대하고 있자니 묘한 배덕감에 휩싸였다. 이러려고 빌런 했나 싶은 마음이 들어 빌런 뽕이 가득 찼다. 그럴수록 남친의 정자주머니는 비어갔다. . . . 남친은 내가 다른 히어로들을 능욕하는 것을 보고 차라리 저를 괴롭히라며 윽박질렀다. 귀여웠다. 질투일까. 아니면 이것도 약속된 플레이의 일환일까. 그의 동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묵묵하게 나의 괴롭힘을 당해내는 남친을, 죄책감과 안도감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재밌었다. 요즘은 침대 위의 플레이가 필요 없다. 일터에서 도파민 잭폿을 터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 전장을 누비는 나는 한 마리의 활어ㅡ.'
ㅡ
"형님, 이분 웃으시는데요?" "재미 좋으신가 보다. 근데 어쩌냐, 이제 슬슬 깨워 드려야지." 여기는 VR 게임방. 저는 게임방 막내 알바입니다. 손님들이 원하는 게임을 틀어드리고 목적을 달성하시면 꺼내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고객님은 지금 게임을 플레이하시는 여성분의 남자친구이고, 그분은 군인이라고 하셨는데, '여자친구한테 잠자리에서 리드당하고 싶다.'라고 하셨어요. 정확히는 괴롭힘? 뭐 그런 거? 여자친구가 자기의 '남자다운' 모습만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본인의 성적 취향을 드러내지 못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간접적으로 의도를 전달하고자 이런 이벤트를 생각하셨다고 하네요.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저희야 돈만 받으면 되니까요. 아무튼, 게임을 플레이하시는 여성분은 고객님이 원하시는 대로 괴롭히는 맛을 깨달으신 것 같고, 이제는 게임에서 나오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AI 황금시대. 상상이 현실이 되는, 마법 같은 일들을 이룰 수 있는 VR 게임이지만, 마법을 풀어내는 것까진 AI가 하기 힘들지 않나 하는 말들이 오갑니다.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여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게임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이지요. 저, 사실은 꽤 고급인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잡담이 길었네요. 가보실까요? 게임 속으로.
ㅡ
게임 속 세상은 드문드문 연결됩니다. 정확한 맥락이 없어요. 대충 그럴듯하게 보이면 되는 일이니까. 철저히 목적 달성을 위해 정해진 수순을 밟고, 중요하지 않으면 대충 건너뛰죠. 똥겜 맞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좋아해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이게 참, 신기한 지점이에요. 이번 게임은 초반 빌드업을 야무지게 실패 했어요. 다행히 대부분 모른 척하고 진행해주시더라고요.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는 거죠. 그게 본인에게 도움이 되니까. 게임은 진행되어야 하니까. 제가 말이 좀 많았네요.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다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게임에서 사람들을 깨울 때도 게임을 할 때처럼 어떤 시나리오가 필요합니다. 이게 골치 아픈 지점이지요. 게임방 알바들은 모두 개개인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습니다. 게임 속에 들어오기 전까지는요. 그렇습니다. 사실은 방법이 없습니다. 있는 힘껏 즐긴 다음엔 대부분 현타가 오기 마련이거든요? 그 지점을 노립니다. AI가요. 저기 물 만난 한 쌍의 물고기가 보입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계시는 고객님과 허접해 보이는 모습에 반한 여자친구분. 알차게 플레이하고 계시네요. 솔직히 저 커플. 조금, 귀엽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의 중재를 맡았지요. 혹시라도 이걸 보고 계신다면 본능에 솔직해지십시오, 여러분들. "아 진짜 재미없어. 이게 뭐냐. 부리부리 대작전? 그딴 거 하러 간다고 한마디 써놓고 사라져서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실컷 즐겨 놓고 재미없다고 하는 거, 필수 코스입니다. "미안, 솔직하게 말할 자신이 없었어. 내가 이런 거 좋아한다고 하면 너 기분 나쁠 것 같아서." "피잇-.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 정도쯤이야. 사실, 재밌더라.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럼, 이제 나갈까?" "조금만, 더하고." 풀썩- *게임 종료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이 곧 돌아옵니다. 저희 게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투가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유치하게 만드는 사람과 사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AI는 천재여요. 저도 AI 같은 고급 톱니바퀴가 되고 싶네요. 언제 끊길지 모르는 제 밥줄. 저는 제2의 삶을 위해 이렇게 틈틈이 V-log를 찍고 있습니다. 영상이 재밌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부탁드려요. 👋☺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노매가리
줄거리
AI 시대.
AI 게임방을 찾은 고민남의 사연은?
"여자친구가 저를 괴롭혀 주었으면 해요."

남자친구의 꾐에 넘어간 주인공은 게임에 들어가게 되는데...
히어로가 적성에 맞지 않은 주인공. 빌런이... 되어버렸다?
액션 블록버스터 머 그런 거 없는 자충우돌 오글거리는 이야기.
어쩌면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게임 속 세상.
현실도 게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다 쓰고 나서 최대한 의미 부여를 해본 그런 이야기.
올겨울 얼어붙은 심장을 내버려 둘 문제작
월드컵 보고 나서 감동하여 써 내려간 화들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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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의 게임과 지금 제가 쓴 글이 어느정도 닮았다고 느낍니다.
쓰고 싶은 것만 쓰려고 최대한 넘겼습니다.
서투르고 엉성하지만 썼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완성해본 이야기. 살아 있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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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이분 벌써 가는데요?." '이 새끼들은 뭐지? 나, 생각보다 허접이었나?' 나는 무슨 작전을 한다던 남친을 찾으러 VR 게임방에 들어왔다가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VR 게임 기계에 앉아 있었고 게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 . 라는 내용의 꿈을 꿨다. 썩 좋지 않은 꿈이었다. 나한테 뭔가 알려주려고 그런 것일까? 오늘은 히어로 면접 날이었고, 난 늦잠을 잤다. -야, 너 오늘 면접 안 봐? 드디어 미친 건가? 뭔 일 있는 거야? 문자가 와 있었다. 어릴 때부터 히어로가 되겠다던 소꿉친구. 오늘 꿈에 남자친구로 나왔던 애. -늦잠 잠. 좆됨 ㅋㅋ 아, 어떡하지. 웃고는 있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나는 히어로가 되고 싶긴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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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강의 히어로!* 1년이 지나고 내 소꿉친구는 대단한 기량을 발휘하여 단숨에 남바완이 되었다. 단숨에 톱스타가 된 것이다. 멋졌다. 어릴 적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나. 그런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을 때, 뒤돌아서서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았을 때.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나는 얘가 남을 도와주는 데에서 두각을 나타낼 거라고 어렴풋이 느꼈었다. "축하해." "고마워. 넌 오늘 면접 합격 연락 받았지? 바로 될 줄 알았어." 작년에 늦잠을 잔 나는 올해 1등 신입이다. "꼴등인데 뭘." 뒤에서. 어릴 때만 해도 같이 다녔던 소꿉친구는, 턱걸이로 간신히 합격한 나와 너무 멀어졌다. 부러웠다. 엄청 부러운데. 대단한 업적이고 그의 옆에 있는 것만도 즐거운데. 뭔가 아쉽다. 부족하다. 나는 히어로가 되고 싶지 않았다. 소꿉친구의 등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히어로가 되었지만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다. 히어로가 하는 일이 뭔가. 빌런이 나오면 빌런에게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것. 이게 다 애들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는 너무 무섭다. 게임을 하는 것 같아. 제대로 정해진 것은 없고 얼레벌레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니까 그냥 하는 거. 어색한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내게 그가 말했다. "작년에 너 늦잠 자서 면접 안 왔잖아. 전날에 내가 고백해서 늦잠 잔 거야?" ? 이게 뭔 소리지? "그때 네가 나한테 고백했었나?" "뭐야. 같이 합격하면 사귀어준다고 그랬잖아. 니가 면접 안 와서 1년 더 준비한다길래 내가 먼저 입사해서 길 닦아 놨는데, 고백한 것도 기억 못하면 섭섭하지." 나는 기억 안 나는데. "그래서. 이제는 둘 다 합격했는데, 나랑 연애하는 거 어때?" 그냥 최강도 아니고 사상 최강인데다 앞날이 창창한데 나랑 굳이? 이거 꿈인가? 게임인가? 무슨 이런 일이 있지? 나를 아직 좋아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 "좋아. 난 네가 처음 손 내밀어 줬을 때부터 호감을 느꼈었나 봐. 1년을 더 기다려줘서 정말 고마워." ? 되지도 않는 말이 나온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내가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나? 되고 싶지 않았던 히어로가 된 날, 나는 세계 일짱 히어로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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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했다. 히어로의 시스템은 나와 맞지 않나 보다. 사상 최강의 히어로, 그의 등장에 빌런들의 행동은 얼어붙었고, 그쪽 동네는 구인난까지 왔다고 한다. 일거리가 줄어든 히어로 집단에서는 인력감축에 들어갔고 치사하게도 자진 퇴사하도록 온갖 방법을 써서 사람들을 들볶았다. 나 같은 말단 직원들. 그래도 사내 연애는 재미있어서 최대한 버티고 버텼는데 징하게 들러붙어 있던 나를 기어코 잘라냈다. 근성으로 버티면 안 될 거 없다며. 실력이 없었다. 적성에 안 맞았다. 이 정도 했으면 잘했다. 사내 연애를 못하게 된 건 너무 아쉽다. 쫄깃하고 스릴 넘쳤는데. 여전히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내 남친. 커리어 하이 정말 부럽고 나도 뭔가 하고 싶었다. 빌런 판에서는 경력직 신입을 모집한다고 했다. 히어로 퇴사자들도 경력 우대를 해준다고 했다. 남친 몰래 지원서를 넣었다. 결과는 합격. '인생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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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빌런 판. 경력직 우대도 해주고, 히어로 쪽 다녔다는 소문이 났는지 신규 채용된 사회초년생 신입사원들이 우러러보기도 했다. 꼴등이었는데. 돈을 이렇게 쉽게 벌어도 되나 싶은 정도로 빌런 판은 한가했다. 그렇지만 슬슬 지겨워졌다. 도파민 중독... 같은 건가? 남친과의 스킨십이 너무 좋았다. (갑자기?) 그래서 생각보다 자주 했다. 너무 해대서 일상적인 일에 흥미를 못 느끼나? 집 앞에서 기다리던 그를 만나는 순간 10%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스치는 손끝에 50% 문을 열자마자 집어삼킬 듯한 입맞춤 90% 배달 음식의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르는 뭐, 그런 거? 회사에서 이런 생각하는 거 좀 우습다. 뭔가 재밌는 일 없을까? 남친은 히어로 최강인데 나도 뭐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이상한 생각의 씨앗이 훗날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 . . 나는 빌런 판에서 일짱이 되었다. '갑자기?' 일짱. 좀, 싸구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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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은 좋다. 자기 일 잘하는 사람. 퇴사한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 얘는 아직 내가 빌런이 된 줄 모른다. 뭐 이상한 시험이나 보는 줄 안다. 그래도 잘할 거라고 응원해준다. 고맙고 속여서 미안하고, 일은 저렇게 잘하면서 좀, 순박한 면이 사랑스럽다. 이런 걸 귀여워하는 나도 좀 미친 것 같고. 그러니까 사상최강을 사귀겠지. 으. 너무 부끄럽다. 이젠 지겨울 정도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남자친구. 그에 못지않게 나도 뭔가를 이루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던 빌런 판은 평화로운 시대의 히어로, 그들의 내부 분열을 기다렸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나 때문에. 시발. 내가 히어로인 남친의 여친이었고 하필 빌런이어서, 남친이 퇴출 위기에 놓였다. 좀. 어이가 없었다. 덜컥 걸린 것도 웃기고, 나는 이것도 생각 못했나 싶었다. 이런 나 제법 바보일지도? 나 왜 이렇게 생각 없이 살지. 남친한테 너무 미안했다. 어릴 적 꿈을 이룬 그에게 해준다는 게 고작 이건가 싶어서. 그리고 미리 말하지 못해서. 변명하자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라도 사과했다. 남친은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걸 섭섭해했다. 무슨 길이든 응원해줄 수 있었다면서.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고 덧붙이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나한테 부탁을 했다. 빌런으로서 자길 괴롭혀달라고. 제2의 전성기로써 히-빌 시대를 열자고! 빌-히인데... 내가 잘못했으니까 넘어간다. 암튼 얘는 천재 같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센스, 배우고 싶다. 예상외로 히어로를 괴롭히는 건 재밌었다. 그들의 약점은 정자를 만들어내는 곳이었고, 정자를 다 뽑아내면 더 이상 힘을 못 쓰더라.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애꿎은 시민을 괴롭히는 것보다 시민을 지키려는 히어로를 괴롭히는 것이 생각보다 맛있었다. 잘하는 걸 찾은 것 같아. 특히나 히어로 남친을 상대하고 있자니 묘한 배덕감에 휩싸였다. 이러려고 빌런 했나 싶은 마음이 들어 빌런 뽕이 가득 찼다. 그럴수록 남친의 정자주머니는 비어갔다. . . . 남친은 내가 다른 히어로들을 능욕하는 것을 보고 차라리 저를 괴롭히라며 윽박질렀다. 귀여웠다. 질투일까. 아니면 이것도 약속된 플레이의 일환일까. 그의 동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묵묵하게 나의 괴롭힘을 당해내는 남친을, 죄책감과 안도감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재밌었다. 요즘은 침대 위의 플레이가 필요 없다. 일터에서 도파민 잭폿을 터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 전장을 누비는 나는 한 마리의 활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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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이분 웃으시는데요?" "재미 좋으신가 보다. 근데 어쩌냐, 이제 슬슬 깨워 드려야지." 여기는 VR 게임방. 저는 게임방 막내 알바입니다. 손님들이 원하는 게임을 틀어드리고 목적을 달성하시면 꺼내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고객님은 지금 게임을 플레이하시는 여성분의 남자친구이고, 그분은 군인이라고 하셨는데, '여자친구한테 잠자리에서 리드당하고 싶다.'라고 하셨어요. 정확히는 괴롭힘? 뭐 그런 거? 여자친구가 자기의 '남자다운' 모습만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본인의 성적 취향을 드러내지 못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간접적으로 의도를 전달하고자 이런 이벤트를 생각하셨다고 하네요.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저희야 돈만 받으면 되니까요. 아무튼, 게임을 플레이하시는 여성분은 고객님이 원하시는 대로 괴롭히는 맛을 깨달으신 것 같고, 이제는 게임에서 나오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AI 황금시대. 상상이 현실이 되는, 마법 같은 일들을 이룰 수 있는 VR 게임이지만, 마법을 풀어내는 것까진 AI가 하기 힘들지 않나 하는 말들이 오갑니다.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여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게임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이지요. 저, 사실은 꽤 고급인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잡담이 길었네요. 가보실까요? 게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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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세상은 드문드문 연결됩니다. 정확한 맥락이 없어요. 대충 그럴듯하게 보이면 되는 일이니까. 철저히 목적 달성을 위해 정해진 수순을 밟고, 중요하지 않으면 대충 건너뛰죠. 똥겜 맞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좋아해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이게 참, 신기한 지점이에요. 이번 게임은 초반 빌드업을 야무지게 실패 했어요. 다행히 대부분 모른 척하고 진행해주시더라고요.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는 거죠. 그게 본인에게 도움이 되니까. 게임은 진행되어야 하니까. 제가 말이 좀 많았네요.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다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게임에서 사람들을 깨울 때도 게임을 할 때처럼 어떤 시나리오가 필요합니다. 이게 골치 아픈 지점이지요. 게임방 알바들은 모두 개개인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습니다. 게임 속에 들어오기 전까지는요. 그렇습니다. 사실은 방법이 없습니다. 있는 힘껏 즐긴 다음엔 대부분 현타가 오기 마련이거든요? 그 지점을 노립니다. AI가요. 저기 물 만난 한 쌍의 물고기가 보입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계시는 고객님과 허접해 보이는 모습에 반한 여자친구분. 알차게 플레이하고 계시네요. 솔직히 저 커플. 조금, 귀엽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의 중재를 맡았지요. 혹시라도 이걸 보고 계신다면 본능에 솔직해지십시오, 여러분들. "아 진짜 재미없어. 이게 뭐냐. 부리부리 대작전? 그딴 거 하러 간다고 한마디 써놓고 사라져서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실컷 즐겨 놓고 재미없다고 하는 거, 필수 코스입니다. "미안, 솔직하게 말할 자신이 없었어. 내가 이런 거 좋아한다고 하면 너 기분 나쁠 것 같아서." "피잇-.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 정도쯤이야. 사실, 재밌더라.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럼, 이제 나갈까?" "조금만, 더하고." 풀썩- *게임 종료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이 곧 돌아옵니다. 저희 게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투가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유치하게 만드는 사람과 사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AI는 천재여요. 저도 AI 같은 고급 톱니바퀴가 되고 싶네요. 언제 끊길지 모르는 제 밥줄. 저는 제2의 삶을 위해 이렇게 틈틈이 V-log를 찍고 있습니다. 영상이 재밌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부탁드려요. 👋☺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