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

망상토끼Q
벽은 지저분했다. 원래라면 멀쩡히 있어야 될 동화 속 주인공들이 기괴한 낙서들 밑에서 아등바등했다. 입은 더 찢어지고, 안구는 검게 그을었다. 머리는 탈색되어 이리저리 흩날리고, 희망의 말 대신 상스러운 욕설들로 가득했다. 놀이공원은 작았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큰 놀이동산에 비하면 반도 채 안 됐다.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춘 모양이었다.
휴가철 놀이공원 아르바이트가 쉽다고 생각한 건 순전히 착각 때문이었다. 일인 가족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뉴스가 자주 보였지만, 놀이공원으로 오는 사람이 줄진 않았다. 평소라면 구인 사이트에서 꼼꼼히 찾아봤을 텐데, 휴학한 데다 여러 계획을 세웠지만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은 탓에 부모님은 내가 무얼 하는지 모르셨다. 말씀드려봐야 당장 설득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누군가 날 데려다 놓고 쓰지 않는 이상. 때문에 내 모습은 반백수라는 인상을 심어드리기에 좋았고, 부모님은 날 쫓아내시려고 하셨다. 압박에 못 이겨 급한 대로 아무 곳에 연락을 한 게 놀이공원이었다. 집에서 그다지 먼 곳도 아닌 데다 급여도 많이 준다고 했다. 놀이공원 하면 먼저 안내원이나 환경미화원이 떠올랐으나 업무 내용이 제대로 적혀있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서 혹은, 일찍 포기할까봐 당일 지급도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었나싶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개장 시간보다 삼십 분 일찍 도착했다. 아주 조금 열린 문틈으로 놀이공원을 들여다보았다. 문 앞에서 사무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장은 내 또래와 비슷했다. 그는 전화로 들어오라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렸다. 문으로 들어가자 찬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편의점 진상 손님들도 아닌데, 새벽동안 놀이공원에 눌러 붙었다가 급하게 귀가하듯 들어찼다. 사무실을 찾아 길을 걷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른 새벽부터 청소를 하고 퇴근하시는 분들,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사진들이 괜히 떠올랐다.
얼마 없는 사람들을 지나쳐 놀이공원 사무실로 가자 아까 전화 받던 그가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집은 먼 지, 일을 해본 적 있는지 등 가볍게 면접을 끝낸 후 바로 일을 시작해도 된다고 했다. 실장이 유니폼을 가져오는 동안 앉아서 계획들을 곱씹어보았다. 외국유학이니 뭐니 빨리 갔다 오라는 통에 삼 주 쯤 일하다가 외국에 가서 또 새로 일을 구하면 될 것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알아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비행기 편과 비용. 그게 모일 때까지만 일할 계획이었다.
잠시 후 실장이 유니폼을 가져왔다. 내가 건네받은 건 안내원 복장도, 환경미화원 복장도 아니었다. 우스꽝스러운 거북이탈이었다. 급하게 붙인 마냥 눈이 짝짝이처럼 보이는 데다 턱도 좌우 부정합에, 찢어진 모자와 한쪽만 튀어나온 볼. 내가 너무 큰 놀이공원 인형 탈들만 봐온 탓일까?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내 반응을 보자 실장이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아, 실은 다른 것들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먼저 다 고르셨거든요. 남은 게 이것 밖에 없어요. 좀 이상하지만 그래도 거북이잖아요?”
실장도 징그러운 벌레를 던지는 것처럼 유니폼을 내게 던졌다. 그가 잘못 알고 있다. 아무리 봐도 거북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괴물이라면 괴물이지. 얼른 갈아입으라고 재촉하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거북이를 받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업무 수칙을 일러주었다. 손님들에게 무조건 잘 해주라고, 괴롭힘 당해도 그냥 넘어가라고 했다. 얼굴을 보여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게 일이었다.
개장 시간 10분 전, 배정받은 구역은 중앙에서 왼쪽이다. 놀이공원 전체가 원형으로 되어 있었다. 어디론가 굴러가는 쳇바퀴 같았다. 양 옆으로 회전목마와 바이킹이 있는 곳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조차 없었다. 찬바람은 가시질 않았다. 혼자 서 있는 거북이는 추웠다. 거기다 불편했다. 처음에 입을 땐 몰랐는데 입고 나서 몇 군데 구멍이 뚫린 걸 보았다. 탈 안쪽이 누렇게 베긴 걸 봐선 옷에 있는 구멍은 담배가 뚫어 놓은 모양이다. 몇 군덴 그나마 기워놓은 덕에 안이 다 비치지는 않았다. 눈이 작게 뚫려있어 왼쪽 눈으로밖에 앞을 볼 수 없었다. 옷은 커서 흘러내리고 신발도 안에 솜 대신 신문지로 차 있었다. 처음 상태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옷을 입을 무렵 발견한 구멍들을 통풍구라 생각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따뜻하게 입고와 더울 거란 생각에 외투를 벗었다. 후회할 만큼 추웠다. 등딱지는 거추장스러운 플라스틱 장식일 뿐 추위를 막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개장 시작시간에 맞춰 조금씩 사람들 모습이 눈에 보였다.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자주 눈에 띄었다. 어른들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무조건 잘 해주란 실장 말이 떠올랐다.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해주면 도망갈지도 모른다. 그냥 있으면 재미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못생긴 거북이는 어렵다. 편의점이나 카페 알바는 조금 고되긴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 할 일에 바빴다. 가끔 문제가 생기면 죄송함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놀이공원에서 거북이 안에 들어가 있는 건 다른 문제다. 안내원들처럼 유치한 말로 사람들을 웃기는 것도, 물건판매원처럼 사람들과 서로 민낯으로 대면하지도 않는다. 서비스 직종이라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첫 손님 여자아이였다. 쭈그리고 앉아 손을 흔들었다. 인사해주자 아이는 거북이를 피했다. 무안해서 가만히 있자 다시 오는가 싶더니 징그럽다며, 거북이 정강이를 차곤 멀리 달아나버렸다. 멀리서 괴물 같다는 소리가 들렸다. 만화에서처럼 아프진 않았다. 그런데도 괴물이라고 했으니까 아파야만 할 것 같았다. 어떤 아이들이 있었다.
날이 추운 탓에 머리가 굳어 있었다. 벤치에 앉아 일에 대한 회유감이 느껴졌다. 곧, 다른 아이들이 무더기로 왔다. 벤치에서 일어났다. 인사하려고 손을 드는데 누군가 뒤통수를 세게 쳤다. 장난감 망치 소리가 아이들 웃음소리만큼 크게 들렸다. 뒤를 보자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아, 진짜 토끼는 아니었다. 토끼는 거북이와 달리 우스꽝스럽지 않았다. 어디 구멍하나 뚫리지 않은 말끔하고 깨끗한 옷에 눈도 잘 달려있고 옷도 빳빳하게 다려져 있었다. 남은 게 왜 거북이 뿐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은 익살스러운 표정 덕에 날 때린 상황을 더 재밌어 했다. 토끼는 배를 움켜쥐며 웃겨 죽겠다는 시늉을 보였다. 아이들은 웃으면서 토끼 곁으로 모여들었다. 실장이 분명 업무 수칙을 이야기할 때 누구와 같이 다니라는 말은 없었다. 이 사람한테만 따로 말했거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날 우둔하고 잘 속는, 농락당하는 거북이로 만들려고 일부러 온 게 아닌가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자였다. 거기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지만 장난기가 심한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면 정말로 대단한 연기를 선보이거나. 토끼를 무시하고 내 구역을 돌아다녔다. 너무 쉬었다.
애써 열심히 할 필요 없었다. 돈을 받을 만큼만 일하면 그만이었다. 의욕을 갖고 시작한 일도 아니거니와, 못생긴 거북이로 한 달 넘게 산다는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바람이 뚫린 구멍으로 자꾸 들어왔다. 가시지 않는 추위 때문에 아무 건물에나 들어가고 싶었다. 시간은 며칠 밤을 술로 채우고 뒤늦게 일어나 먹으려던 컵라면에 물 끓는 시간만큼이나 천천히 흘러갔다.
겨우 점심시간쯤 되자 사람들이 놀이기구보다 식당가 쪽으로 가는 게 보였다. 그나마 조금 날이 풀리고 높지 않은 해가 위에 있으니, 거북이도 딱 죽지 않을 만큼 추웠다. 안내원들도 교대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풀타임으로 뛴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가는 길에 아까 그 토끼를 찾았다. 일단 내 일거리를 줄여준 데에 감사인사를 할 겸 같이 밥을 먹을 심산이었다. 아마, 이런 일에도 열정을 갖고 했으니, 나보다 여유롭거나, 나보다 절실하거나 하지 않을까. 토끼가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에는 이미 다 먹은 그릇이 하나 남아있었다. 토끼답게 거북이와 달리 행동이 날랜 편이었다.
곧,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는데 못 보던 사람들이 들어왔다. 같이 따라 들어온 실장에게 물어보니 다들 나와 같이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대부분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일하는 첫 날이라 아침부터 고생을 시켰나. 토끼가 그럼 사수인가? 다른 사람들은 도와주지도 않나. 의구심은 이내 실장이 준 도시락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구역이 다른 탓에 못 봤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묵묵히 식사만 했다. 원래 이런 분위기냐고 물었는데, 다들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한 거라고 했다. 예전에는 다들 하하호호 했다며. 놀이공원이 첫 손님을 받은 지 오래 된 게 아닐까. 전에 하던 사람들과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는 건지, 아예 새로 구인한 건지 모르겠다. 전에 하던 사람들이 없으니 분위기가 이렇겠지 싶었다. 내가 탈을 벗고 낑낑대며 점심을 먹자 몇몇은 날 흘깃 보더니 비웃는 건지 동정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신입이라고 인사를 하려다 치워버렸다. 여기 사람들은 같은 직종끼리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 않아보였다. 나처럼 급하게 일자리를 구해 돈만 받고 하루가 끝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치면 아까 그 토끼는 대체 뭘까.
사람들은 식사를 끝내고 각자 자기 탈을 썼다. 곰, 너구리, 기린. 나를 보는 모습이 저런 모습이었을까 싶었다. 눈썹은 과장되게 올라갔고 웃는 채로 고정된 입이 있다. 절대 다물지 못하는 입, 복화술에 쓰이는 인형들은 성대 없는 목으로, 벌어진 입으로 거짓말을 한다. 저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실에 묶여 들리지 않을 것이다. 밥을 다 먹었을 때쯤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불편하지만 아까 추위에 한참 데여 외투를 입고 다시 거북이를 입었다. 어차피 뛸 일도 없고, 거북이처럼 설렁설렁 다닌다고 무어라 할 사람도 없었다.
다시 내 구역까지 슬금슬금 10분을 걸려 돌아가자, 멀리서 토끼가 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과장되는 손짓에 아이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아이들 눈을 보고 있자면, 분명 또 커다란 망치로 치는 둥 나를 괴롭힐 모습이 그려졌다. 일부러 최대한 늦장을 부려 도착했더니 토끼는 나를 반겼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보였다. 과장된 행동도 자연스러웠다.
나는 토끼에게 밥은 먹었냐며 손짓 발짓으로 물었다. 토끼는 자기 배를 두드리곤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사무실에 안 치우고 남겨 둔 그릇은 아무래도 토끼 몫이었나 보다. 손으로 알았다고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탄다고 마구 뛰어다녔다. 안내원들 몇 명은 아이들을 어른들과 함께 줄 서게 했다. 어른들은 곧 아이들만 태우고 기구 밖 울타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평범했다.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어른들도 웃고 있었다. 다만 한쪽 눈으로만 봐서인지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즐거운 상황인데도 말이다.
거미는 날지 못한다. 날아다니는 작은 거미를 본 적 있다. 새끼 거미 때 실을 타고 비행을 할 수 있다고 교양 프로그램에서 봤다. 실을 길게 뽑아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날아간다고 했다. 착각일지 모르나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놀이공원마다 엉켜 있는 게 보였다. 고개를 흔들고 정신을 차렸다.
뒷걸음질 치다가 망치 소리가 들렸다. 삑삑대는 장난감 망치에 이번엔 일방적으로 내가 머리를 박았다. 스스로에게 정신이라도 차리라고 말하는 소리가 안쪽에서 들렸다. 뒤쪽에선 토끼가 아이들을 끌고 다니며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로썬 좋은 일이다. 귀찮을 필요도 없고, 아이들한테 괴물이니 뭐니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다. 한참을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한 대 맞았지만 목을 움츠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거북이처럼 시간 따라 느리게 걸어 다녔다.
날씨가 풀린 탓에 탈이 답답했다. 탈을 잠깐 벗어버리려고 화장실로 가는데 뒤에서 누가 잡아끌었다. 뒷덜미를 잡은 손은 굉장히 푹신했다. 토끼는 나를 끌고 나왔다. 뭐라 변명할 틈도 없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더웠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은 어차피 토끼만 볼 것이다. 아이들이 거북이를 흉보는 소리가 없는 귀로 다 들어왔다. 옆에 있는 토끼는 내 손을 잡고 자신과 거북이는 친한 것처럼 행동했다. 손으로 어릴 적 하던 푸른 하늘 은하수 비슷한 모양새를 취했다. 알아차린 아이들 몇몇이 손동작을 따라하고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토끼가 거북이에게 일을 떠넘기는 거라 생각했다. 갑자기 아이들이 많아져서 버거운 게 아닌가 싶었지만, 토끼라면 단순히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를 들지 않을까.
곧 토끼가 내 양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이들 중간으로 뛰어 들어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토끼처럼 정신없이 뛰었다. 거북이는 목이 돌아갔다.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손이 잡힌 터라 고개를 흔들어가며 겨우 머리를 바로잡았을 땐 아이들이 토끼와 거북이를 따라 서로 손잡고 돌고 있는 게 보였다. 어른들도 몇몇 껴 있었다. 부끄러운 듯이 금방 내 빼는 어른들을 토끼가 잡아다가 아이들과 같이 있게 했다. 돌고, 또 돌았다. 계속 해서 도는 동안 아이들이 붙고 또 붙었다. 나중에는 강강술래 하듯 큰 원이 만들어졌다. 구경꾼 중 일부는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한참을 그렇게 뛰니 몸이 뜨거웠다. 거북이는 육지거북이었지만, 땀으로 목욕을 한 덕에 축축해졌다. 바다거북들은 습하다.
쉬는 시간에 딱 맞춰 사무실로 왔다. 무거워진 외투도 다시 벗어두고, 밥 먹고 급하게 뛰어 놀란 속을 달래기 위해 잠깐 쉬었다. 사무실은 방음이 잘 안 됐다. 바이킹에서 지르는 비명소리, 회전목마에서 들리는 음악소리부터 해서, 저쪽 어디선가 범퍼가 부딪히는 소리까지 놀이공원 소리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바람소리가 가고, 놀이공원에 있어야 할 소리들이 왔다. 텃세에 밀려 쫓겨난 바람들은 온통 사무실로 도망쳤다. 아직도 귀가 웅웅 울렸다. 그럼에도 탈을 쓰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무뎌졌거나, 귀가 막힌 탓이다.
토끼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사수가 잘못 걸렸다. 신입이라고 너무 괴롭히는 게 아니었나 싶었다. 누구일까, 혹시 영화나 만화처럼 아는 사람일까. 저 사람에게 익숙해지거나 일을 그만두거나 하고 싶었다. 극단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진상손님들을 버텨낸 경험이 있다만, 같이 일하는 사람이 피곤한 사람이면 일을 바꾸는 게 옳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토끼처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처럼 만사가 귀찮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그런데도 정답이라고 믿고 있는 게 있어야 편할 것만 같았다. 대학에서 그런 것처럼, 학점이 잘 안 나오면 그만큼 다르다 혹은 틀리다고 말할 거리들이 생기는 핑계지만.
학기 중에 한 선배가 떠올랐다. 토끼처럼 생기진 않았지만 토끼와 똑같았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데 하나하나 잘 어울렸다. 자기만 갖는 답을 따라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흔히 말하는 개척자나 모험가 스타일. 선배는 정답 같은 건 없다고 했다. 답이 없다는 건 어려우면서도 쉽게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아직 잘 모르겠다. 답만 생각하다보면 나를 부정하게 되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버렸다. 다시 탈을 쓰고 바이킹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토끼가 손에 뭘 들고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게 보였다. 토끼는 나를 반기며 손에 쥔 풍선 한 개를 나눠 나에게 건네줬다. 이것도 일이구나 싶어 풍선을 받았다. 몇 개 더 달라고 손짓을 했지만 토끼는 괜찮다고 손짓하곤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줬다. 토끼가 나눠준 풍선을 봤다. 눈알이 곧 터져버릴 것 같은 거북이였다. 목을 조이고 있는지 혀를 축 내밀고 입은 멍청하게 벌어져 있었다. 거북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토끼는 일하는 와중에도 끝끝내 거북이 놀리기에 열중했다.
풍선을 나눠주는 동안 나는 다른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은 못생긴 거북이가 토끼와 함께 있어 가능한 일 중 하나라 생각했다. 취향 차이지만 못생긴 동물에게 연민을 느껴 다가오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아이들이 새끼 거북이들이 새에 잡아먹힌다느니, 비닐봉지를 먹고 죽는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내 일은 간단하다. 들어주고 적당한 동작을 취하면 그만이었다. 그래, 나 불쌍한 거북이야. 새끼들 다 내던지고 놀이공원에 팔려왔어. 그냥 울먹이는 손짓만 보여줘도 자신이 똑똑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을 쉽게 맞춰줄 수 있다. 머지않아 저 아이들도 나중에 비닐봉지를 버리며 사겠지. 또, 거북이가 되고, 토끼가 되어 놀이공원에서 멍하게 서 있을 것이다. 동심은 인형들만 볼 수 있는 것이라지만, 단어 자체는 그다지 좋은 말이 아니었다. 풍선들에 웃는 동물들은 사람들 앞에선 저렇게 웃지 않는다.
토끼가 풍선을 다 나눠주고, 아이들이 다시 기구타기에 열중하는 동안 나는 벤치에서 쉬며 토끼를 봤다. 일을 열심히 한다고 급여가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실장이 먼저 말했다. 빡빡한 급여 속에서 아까 점심 때 본 그러려니 표정들이 떠올랐다. 곧 표정들과 정반대인 토끼를 봤다. 성격이 활발하거나, 토끼로써 인기가 마음에 들어서 열심히 하거나, 아니면 그냥 단순히 토끼가 좋아서? 무슨 이유든 간에 자신감 넘치고, 경험이라 생각하며 편하게 일하는 사람은 아닐까. 게다가 잘 웃고,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같아 다른 일을 구하는 게 귀찮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생각이 끝나면 항상 멍해졌다. 그 덕에 토끼가 내 옆에 와 앉아있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퍼뜩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자기 세상처럼 연기하며 살아봤자 힘만 들고, 지칠 건데. 토끼라는 삶을 사는 건 놀이공원 밖이면 끝인데. 더 중요한 게 있을 게 아니냐고. 너무 쓸데없는 일에 힘을 쏟는 게 아니냐고. 장황한 질문을 손으로만 묻는 게 힘들었다. 풍선을 내려놓고 이런 저런 궁리를 했다. 탈을 벗자고 할까. 소리라도 지를까 했는데, 토끼가 스케치북과 검은색 크레파스를 줬다. 아까 아이들 손에 들려있던 그림들을 그리고 남은 모양이다. 자신은 말을 못 한다며, 입 앞에 손으로 X자를 보였다.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아니면 얼굴을 보이기 싫을 정도로 부끄럼을 많이 타거나. 스케치북을 받아들고 가볍게 질문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토끼는 스케치북을 보고 받아들었다. 그리고 무어라 쓰는 대신 종이 중앙에 커다랗게 물음표를 그려 넣었다. 의아했다. 질문을 못 알아들은 걸까? 아니다. 제대로 말을 들을 줄은 알았다. 서로 아무런 행동도 없자 토끼는 다시 스케치북을 넘겨 내게 물었다. 당연한 게 아니냐고. 뭐가 당연하다는 건지 묻자 토끼는 또 배를 붙잡고 웃는 시늉을 했다. 토끼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토끼는 내 말 밑에 짧게 ‘재미’라고 적었다. 재미였다. 누구를 위한 재미일까. 어떤 사람들은 이런 단순한 일에도 하루 끼니를 벌고 이거보다 고된 일을 하면서 하루를 이어간다. 거기서 찾은 것 중에 재미는 없었다. 토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간을 주지 않으려고 거북이를 속이고 있다.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스케치북이 다 떨어졌다. 토끼는 스케치북을 맨 앞장으로 넘기더니 거기다가 웃는 토끼를 그려놓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토끼는 달아나버렸다.
풍선, 스케치북. 몇 번씩 다시보고 생각하느라 일도 제대로 못했다. 놀이공원에 커다란 시계는 여섯 시를 알렸다. 풍선은 바람이 빠져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지길 반복하고, 스케치북도 너덜너덜해졌다. 급여가 올라가진 않더라도 깎일 거란 불안에 얼른 일어났지만 주위에 아이들이 없었다. 벌써 다들 집에 간 모양이었다. 실장이 겨울이라 금세 어두워지고 폐장 시간도 앞당긴다고 했다. 해가 떨어지자 아침보다 훨씬 추웠다. 제대로 노는 아이들은 몇 없었다.
안내 방송으로 잠시 후 7시부터 중앙무대에서 공연을 한다고 했다. 공연이 무언가 싶어서 사무실로 돌아와 실장에게 물었다. 나는 하는 게 없냐고. 실장이 날 특이하다 생각하는 표정으로 보았다. 보통 놀이공원에선 스토리를 짜서 그대로 연극을 한다. 여긴 큰 곳도 아니었고, 스토리 없이 그냥 춤만 추는 것이라 했다. 그는 내게 첫날부터 무대에 설 생각을 한다며 너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오늘은 일단 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정 심심하면 올라가라고 했지만, 실장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마다했다.
중앙 무대를 찾았다. 야외에다가 밤이나 되어야 보일법한 작은 조명들.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에 무대도 앙증맞았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을 모아 공연한다는 게 우스웠다. 그렇게 우스웠는데도 사람들은 의자를 꽉 채워가며 앉아있었다. 나는 거북이였다. 무대에 오르지 않았지만, 무대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 위쪽에 종탑 모형에서 인형들이 나왔다. 사람들 말고. 겉은 나무에 속은 기계로 되어있는 인형들이었다. 십자 나무 막대기, 바랜 색깔에 실 달린 인형들이 보였다. 실 몇 가닥은 끊겨 있었다. 그런데도 거기서 실에 매달린 것처럼 움직였다. 자의식을 갖고 움직이는 모양새지만 습관을 들여 원래 틀에서 벗어나질 않는 것처럼 보였다. 움직일 때마다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거북이는 귀가 없는 데도 들렸으니, 누구나 들었을법한 소리였다. 웅성거림과 톱니바퀴 소리는 전혀 생뚱맞은 화음을 냈다. 인형들은 뻣뻣하게 움직였다. 실에 매달려 축 쳐지다가도 생물처럼 팍 튀어나올 마리오네트들이 기계가 되었다. 같은 동작, 같은 표정.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벌어진 채로 노래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래는 놀이공원 주제곡이었다. 꿈이니 희망이란 말이 많이 쓰인 노래, 보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는다. 곧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서 인형들이 크게 움직였다. 아이들이 마냥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점점 의심이 사라진다. 인형이 되었다.
춤이 끝나자 이번에는 무대 위로 요정 하나가 올라왔다. 예쁘진 않았다. 뭐가 좋은지 무대에 서는 내내 싱글벙글했다. 급하게 레크레이션 강사를 데리고 온 게 아닌가 싶었다. 추워보였지만 그 요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했다.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다. 잠시 후 이야기를 시작했고, 아이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중간에 문제도 내면서 상품도 줬다. 주로 어린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아이들은 언젠가 쓸지 모를 문화상품권을 손에 쥐고 무대에서 아장아장 내려왔다. 일곱 시가 거의 다 될 때쯤 요정은 동물 친구들을 불러보자고 했다. 머리가 아팠다. 거북이 안쪽에서 나는 담배냄새가 익숙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잠시 후 무대에 오른 건 아까 사무실에서 본 동물들이었다. 곰, 사자, 기린, 그 외에 몇몇.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춤추는 게 어색했다. 잘 추고 못 추고를 떠나서 이상했다. 동작은 어색하지만 다들 정해진 춤처럼 똑같았다. 아이들은 동물들이 춤추니 신나는 게 당연했다. 어른들도 놀이공원에서 하는 거라며 그저 아이들 좋아하는 데에 맞춰 보고 있었다. 사자는 사자 같지 않고, 곰은 곰 같지 않았다. 험상궂게 귀여웠다. 적어도 누구처럼 괴물 소리를 듣는 동물은 없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던 사람들이 안쪽에 비쳐보였다. 짓고 있는 표정까지 눈에 보였다. 정말로. 숨쉬는 입 쪽에 구멍이 뚫려 실제로 보이는데, 아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저기서도 토끼가 말한 재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 저게 맞는 거다. 토끼가 특이한 거다. 토끼처럼 뛰어다니지 않고, 토끼 같지 않아도 재미는 있다. 저 사람들은 그냥 일을 하는 거다. 토끼처럼 놀이공원 안에만 삶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토끼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멍하게 토끼를 찾아 다녔다. 동물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이걸 준비하느라 뛰어간 것 같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무대는 길었다. 음악이 바뀔 때마다 동물들은 음악에 맞춰 다른 춤을 췄다. 유치원에서도 안할 율동을 하거나 한명씩 무대 앞에서 동물처럼 움직였다. 내가 저기 있었으면 30분쯤 시간을 떼울 수도 있을 텐데. 동물들이 많아서 그런지 금방 공연이 막바지에 이렀다. 춤추는 도중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으니 시간이 부족했다. 무대에 올라간 아이들이 여러 사람들 입에 미소를 띠웠다. 끊기지 않는 춤곡 탓에 무도회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공연이 끝나는 시간이 곧 퇴근시간이다. 나는 정리를 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익숙한 손이 내 뒷덜미를 잡았다. 아까처럼 푹신하면서도 날카롭고 얇은 뭔가가 같이 느껴졌다. 난 뒤도 돌아볼 겨를 없이 무대로 끌려갔다. 마지막 10분을 남기고, 나와 토끼는 무대 중앙에 섰다. 어쩔 줄 몰라서 얼어붙어있었다. 그러다 또 장난감 망치에 얻어맞았다. 나를 보고 있던 아이들은 웃었다. 내 뒤에 있는 다른 동물들은 동작을 멈췄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예고도 없었으니 그럴 만 하다고 느꼈다. 결국 토끼가 주인공이다. 토끼가 망치를 멀리 던져버리고 내 손을 잡고 아까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아까 없던 음악까지 같이, 모두가 돌기 시작했다. 동물들도 어설프게 움직이다가 토끼와 거북이에게 같이 꼈다. 무대 위아래 할 것 없이 아이들은 서로 손잡고 계속 돌았다. 몇 명은 인형들 사이에 껴서 같이 손을 잡고 돌았다.
음악 형식 중에 ‘론도’가 있다. A-B-A1-C-A2-D-A3식인 걸로 알고 있다. 거북이 머리 돌아가듯 계속 반복된다. 하지만 어제 오늘 다르듯 같지 않다. 가령 오늘 거북이 탈이 더러워도, 내일은 누가 세탁해 놓을 수도 있다. 작은 변화에 맞춰 인형들이 돌아간다. 이런 춤곡은 꼭두각시들이 싫어한다. 실이 엉키다 못해 끊어지기까지 하면 의지가 없는 한 움직일 수 없다. 실에 매달려 자유로운 데에 그치면 그것은 놀이공원 안에 작은 무대에서 끝이 난다.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올랐다. 추운데 뛰느라 숨이 찼다. 거북이 머리 안쪽에 입김이 찼다.
노래가 끝났다. 공연이 끝나고 잠시 뒤에 불꽃놀이가 있을 거란 방송이 들렸다.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토끼랑 같이 있었다. 목이 돌아가서 또 고개를 흔들어대자 토끼는 계속 깔깔거렸다. 무대 막이 내려가지 않고 바로 불꽃놀이가 이어졌다. 불꽃놀이 소리에 맞춰서 토끼가 내 손을 잡아서 뭔가를 쥐어줬다. 입이 움직이는 것처럼도 보였다. 분명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불꽃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포기하고 물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게 뭔가 싶어서 손을 펴려는데 토끼는 내 손을 꽉 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나중에 확인하라는 소리 같았다. 잠시 후 가장 큰 불꽃이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토끼는 언제 다시 주워왔는지 모를 장난감 망치로 또 날 때리고 도망쳤다. 몇 번 맞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슬슬 화가 났다. 이번에는 잡으려고 쫓아가는데 토끼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무대 계단까지 내려가는 게 보였는데 그세 사라졌다. 내일이라도 잡겠다는 생각에 토끼가 준 것부터 확인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손에서 뭔가 꼬물거렸다.
불꽃놀이가 끝났다. 불꽃이란 단어 끝은 어둡다. 불꽃 끝에서 탄성은 적막이 멈춘 시간을 다시 움직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속에서도 삐걱대며 돌아가는 톱니바퀴, 아까 들은 소리다. 무대에서 막을 내리는 소리를 내는 게 똑똑히 들린다. 놀이공원이 문 닫을 시간이다. 사람들이 멀어진다. 사람들이 가고나면 기구들은 멈추고 인형들은 탈을 벗는다. 얼마 남지 않은 빛을 받는 쓰레기들이 널브러져있다. 엇나간 톱니바퀴처럼 인형들은, 탈을 벗으면 사라진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퇴근하고 없었다. 실장만 남아있었는데 나보고 고생했다며 첫날인데 힘들거나 그러진 않았는지,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나는 거북이를 쓴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답답한 걸 왜 아직도 쓰고 있어요? 안 벗으려고요?”
아니라고 했다. 거북이 머리에선 아직도 담배냄새가 났다. 한참 앉아 있다가 탈을 벗었다. 실장은 오늘 일당을 봉투에 담아서 줬다. 실장에게 토끼에 대해 물었다. 내 물음에 그녀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토끼 인형탈이요? 지금은 없어요. 예전에야 거북이랑 토끼가 같이 다니기는 했지만, 지금은 거북이 뿐이거든요. 한 번 놀이공원에서 화재사고가 났는데 그 때 사라졌거든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고 계셔요?”
오늘 토끼와 같이 일했다고 말했다. 내가 토끼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실장은 그 토끼가 예전에 있던 토끼라고 하며 말을 이었다.
“이상하네요. 분명 페인트칠해서 거북이 밖에 안 보일 텐데. 오늘 줄곧 혼자 일하신 줄 알았는데요? 아까 무대 위에서 혼자 올라갔을 때도 토끼가 있었나 봐요?”
실장이 나를 비웃는 투로 말했다. 별로 신경 쓰이진 않았다. 다만, 내 봉투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이 빠져나가는 건 신경 쓰였다. 모른다는 건 모른다는 거니까.
“뭐, 토끼가 있건 없건 별 일 있겠어요? 중요한 건 못생겼지만 거북이가 있다는 거니까요.”
일부러 거북이를 못생기게 만들었다고 실장이 말했다. 무어라 이유를 말해줬지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거북이 탈과 옷을 벗어 개켜두고 놀이공원을 나왔다. 어두운 데서 보는 놀이공원은 커다란 산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토끼를 생각했다. 무서웠다. 당황스러운 탓에 내릴 때 교통카드 대신 수당이 든 봉투를 찍고는 왜 안 되냐고 허둥거렸다. 사람들이 보고 기사님이 뭐라고 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교통카드를 찍고 내렸다.
일을 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놀이공원에서 나를 잘랐다. 놀이공원 적자가 메워지지 않아 문을 닫는다고 했다. 일당은 다 주되 앞으론 더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다들 별반 달라지지 않고 일했다. 토끼가 나를 자르지도 않았는데 괜히 멍하게 있었다. 주인공은 언제나 거북이가 아니라 토끼였다. 그런데 주인공이 실종되었다. 거북이를 죽여 놓고, 자긴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처럼 사라졌다. 누군가는 좋아할만한 엔딩이다. 열린 결말! 문자로 학교 선배한테 내가 일하던 놀이공원을 아느냐고 물어봤다. 모른다고 했다. 자기는 놀이공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다.
그 일주일 사이 무대에 서는 것도 익숙해졌다. 마지막 날까지 그때 토끼처럼 빙글빙글 돌지 못했다.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한다고 다른 동물들한테 핀잔을 들었다. 다들 불만투성이였다. 괜히 뛰고 이게 무슨 짓이냐면서 나한테만 뭐라고 했다. 없는 토끼를 데리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마지막까지 좋지 못하게 일을 끝내고 거북이를 벗어두고 놀이공원을 나왔다.
며칠이 지나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시급도 짰고, 일도 많았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편의점에서 혼자 있는 게 이렇게 편한 줄 몰랐다. 새로 구한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 꺼진 놀이공원이 보였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그냥 가려던 차에 토끼가 떠올랐다. 놀이공원 안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주 조금 열린 문틈으로 놀이공원에 들어갔다.
놀이공원은 전처럼 추웠다. 혹한기라도 되는 것처럼 온통 바람 밖에 남지 않았다. 사무실도 문이 잠겨있었고, 무대도 어질러진 그대로였다. 놀이기구 몇 개엔 먼지가 쌓이고 부서진 곳도 보였다. 이런 곳에선 아무리 토끼라도 춤을 추진 못할 거라 생각했다. 나는 다시 정문을 향했다. 가는 길에 쓰레기통이 하나 눈에 띄었다. 청소하다 만 것 마냥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뭐라도 있나 싶어 슬쩍 봤는데, 푸른색 무언가가 보였다. 어두우니까 원래는 다른 색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게 하나가 통째로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게 뭔지 자세히 보다가 집으로 왔다. 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에는 아직도 목매단 거북이가 있다. 처음부터 죽어있었다. 아니, 어쩌면 살아있었는지도 모른다. 토끼가 준 거북이는 목에 얇은 낚싯줄을 감고 있었다. 낚싯줄 끝에 제 몸 만한 명찰이 달려있었는데 거기엔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걸 어쩌다 집에 가져오게 됐는지 모른다. 그 날 쓰레기통에 들어있던 토끼를 보고 놀이공원 앞에서 구역질을 하면서 뭔가 기다란 실뭉치도 같이 나왔다. 명찰을 들자 거북이가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거렸다. 죽은 거북이한테 벌써 썩는 냄새가 났다. 토끼가 죽었다. 열린 결말 따위는 없었다. 줄을 끊고 거북이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날 밤, 목이 잘리는 꿈을 꿨다. 못생긴 거북이는 토끼처럼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다 쓰고 고장나버린 꼭두각시 인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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