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틱 패러독스 외 1편
송유림
포에틱 패러독스
너의, 나를 제하지 않는 너희의, 누구보다 나의
정수리를 선회하지 말고자
혀뿌리가 아리도록 시큰하고자
닳아빠지지 않고자 낡아빠진 것 같아요
낡아빠지지 않고자 닳아빠진 것 같고요
책등뿐이 아닌 책과
문자도 음성도 아닌 가약
사람다운 연서
곡행하지 않는 철학
스민 잉크처럼 말이에요
살기 위해 쓰지 않고
쓰기 위해 살지 않는다면,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지 않고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다면,
벌거벗지 않으려 흩뜨리지 않았다면
아니야
아니라고 하세요
(말 없는 음악)
…….
(매끄럽게 크로스 페이드)
그러게요, 분명 XX이고 XX인데
정녕 이 순간에도 우리
포스트-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을 디컨스트럭팅하고
등 맞댈 뿐 돌아보지를 않으니
겹쳐질수록 엇갈릴 수밖에
아름답게 추하니까요
그런데 추하지 않기 위해 아름답지 않았으니까요
진부할 걸 그랬어요
데자뷰
나 아마 백만겁 번 던져졌을 테지
억 겁 생사 백만겁 번째 나는
일백만 번보다 입었을 테다
삼천만 번보다 오고 갔을 테고
로망보다 실망의 낯이 익을 테고
모든 투성이일 테지만
백만 겁의 나도 백만의 겁이 나도
역시 나라면
단 하나의 세계를 찾으려
내세 구천구백 만의 겁을 뒤질 테네
저희가 가운데로 기우는 여럿 중에도
기어이 잇닿고 마는 바로 그 생으로
여기의 당신과 스치려
거기의 내가 억 겹을 입지 않도록
차원을 두어 꺼풀 벗긴 다음
고이 접어 단숨에 와닿을 테니
그리하여 마침내 당도한 땅
당장에 밟고 있는 거라면
몇 겁을 지났는지 모를 다름 아닌 이때의 나는
당신을 찾아 떠날 채비를 할 테다
송유림
